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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 푸진 미술의 신명, 흰그늘의 역동-김봉준, 산 미술의 미학

김종길

푸진 미술의 신명, 흰그늘의 역동
- 김봉준, 산 미술의 미학


# 예술가샤먼 김봉준


김봉준은 샤먼리얼리스트이다. 샤먼리얼리즘은 샤머니즘과 리얼리즘의 언어적 혼합이 아니다. 샤먼리얼리즘에서 ‘샤먼’은, 민중미학을 실천하는 예술가가 곧 ‘예술가샤먼’이라는 재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샤먼리얼리즘의 개념에서 샤머니즘의 뜻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샤머니즘의 상징은 그대로 ‘예술가샤먼’으로 전이되어서 드러날 수 있다.


주지하듯 샤머니즘은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샤먼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개념이다. 원시종교나 민족문화로서의 샤머니즘/샤먼에서 민중미학의 ‘예술가샤먼’으로 뜻과 상징이 변태될 때조차 그런 초자연적 존재와의 소통은 절대적이다. 1983년 애오개소극장에서 미술동인 두렁의 창립예행전이 펼쳐졌을 때 그들의 미술은 근대미술이니 현대미술이니 따위의 ‘서구적 개념’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그 무엇이었다. 미술 광대패에 가까운 그들의 협동창작과 걸개그림은 민중 스스로의 일과 놀이였으며 신명이었다. 그들의 등장은 곧 예술가샤먼의 출현이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김봉준은 예술가샤먼이다.



# 나누어 누리는 미술


1982년 미술동인 두렁의 결성을 주도한 김봉준은 푸진 미술을 꿈꿨다. 마당에서 펼치는 너부죽하고 듬직한 탈춤의 사방팔방시방 터 울림이 그대로 미술이 되기를 바랐다. 붓 맛이 칼 맛으로 살아서 탄생한 그의 목판화는 그 시대 에디션 없이 모두를 위한 미술로 넉넉했다. 그 넉넉함 속으로 스며든 형상들은 오롯이 우리 삶의 거짓 없는 참모습이어서 수수하고 투박하였다. 수수하고 투박하니, 그 거친 숨결에서 민중의 ‘얼빛’이 어른거렸다.



# ‘얼빛’을 모시는 미술
김봉준은 1981년 목판화로 <녹두장군>과 <목칼을 찬 조상>을 새겼고, 82년에는 굿그림 <갑오동학농민혁명칠신장도(갑오농민신상)>를 그렸다. 84년 4월, 경인미술관 마당에서 열림굿을 하던 날 그는 걸개그림 <조선수난민중행원탱>과 <갑오농민신상>을 걸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를 만장으로 걸었다. 그 해는 동학농민혁명 9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궁리한 미술은 ‘시천주’에 있었을 터.


천주를 모시는 일은, 큰 ‘얼빛’을 마음에 틔우는 사건이다. 다석 류영모는 몸뚱이 밖에 모르는 ‘몸나’, 제 것 밖에 모르는 ‘제나’를 벗고 ‘얼나’로 솟나야 한다고 했다. 얼나가 곧 ‘참나(眞我)’다. 김봉준의 미술은 몸나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린다. 제나의 참혹을 그린다. 그런 뒤, 그것들이 치솟아 해원의 대동세상으로 뒤바뀌는 피안(彼岸)을 그린다. 감로도(甘露圖)의 3세계가 펼쳐지는 그의 회화는 그렇게 치솟는 얼빛으로 환하다. 시천주, 인내천(人乃天)의 ‘천(天)’은 밝달 민족의 큰 얼이다. 동학 90주년의 그 해, 두렁은 얼빛의 신명을 이곳 민중들의 삶 속에 모시고자 했다. 피안이 아닌 차안(此岸)을 상정했던 것은 꿈과 현실이 하나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작품은 사라지고 잊혔다.


그가 올해 경기도미술관의 <시점(時點)․시점(視點)-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전을 위해 새로 그린 <조선수난민중해원탱>은 세로 크기가 8미터에 이르는 대작이다. 84년 작품이 신명으로 솟나는 해원의 피안이라면, 올해 그린 것은 깊은 그늘에서 밝게 틔우는 ‘흰그늘의 역동’이다. 그늘이 영롱하니 흰그늘이요, 그 안의 세계가 요동치니 역동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 온 그의 산 미술 미학이 웅숭깊게 드러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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