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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1910) | 놓아라전 ; 예술의 껍질을 벗어라! - 황영자&김주영

김종길

예술의 껍질을 벗어라

놓아라!6.27~9.15 청주시립미술관

 

정신을 기울여 열중하면 건너가 닿을 수 있는 것인가? 머리를 가라앉히고 지혜를 다하면 이렇게 솟구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잠겨서 이토록 깊이 해방될 수 있었을까? 김주영과 황영자의 전시장을 나선형으로 배회하면서, 유령처럼 떠돌면서 생각의 뿔을 키워 올렸다. 그러나 내 작은 뿔로 그들의 예술을 수신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주영의 예술은 시공(時空)을 접어서 이곳저곳을 오갔다. 그의 노마드는 공간[抽象]이 장소[具象]가 되는 생체험의 현장이었으나 그 시간은 우주의 시간이었다. 지구가 생성하고 46억년의 어떤 시간들이 특이점으로 그곳에 고였다. 그는 특이점의 순간들을 직조했다. 생멸의 순간들이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의 점을 이룰 때 그의 행위예술은 그 한 점을 스쳤다. 쌀 한 톨 흙 한 줌 나무 하나에 기울었던 몸이 두 손 모아 무릎 꿇고 향배하던 그 찰나!


황영자는 예술의 껍질을 벗겨서 날몸의 생짜를 그렸다. 어떤 형식 어떤 미학 어떤 색채의 그 어떤 것들을 지우고 오롯이 그 자신의 형식과 미학과 색채를 새겼다. 그러므로 날몸은 어쩌면 수 십 년 동안 그 스스로 벗기고 지워서 지금 여기에 이른 황영자일지 모른다. 여든에 이른 한 여성이 세계와의 쉼 없는 투쟁을 통해 그에게 덧씌웠던 수많은 굴레를 깨버리고 잉태한 회화는 숨 가빴다. 뜨거웠다.


시간의 선 위를 탈주하듯 넘나들었던 김주영의 노마드 미학이 미술관 공간으로 파고들어 움집을 열었다. 움집은 미술관 속 집(um-house)이고 선사(先史)의 옛집이며, 그의 전시를 뜻한다. 움집은 떠남과 머묾을 주제로 했는데 2005년 프랑스에서 귀국해 처음 마련한 충북 오창의 작업실에서 경기도 안성의 분토골 작업실까지를 이어서 펼쳤다. 그에게 삶터로서의 집은 삶의 원형이요, 그 원형의 무늬가 새겨지는 나날의 편린(片鱗)이었다. 그는 편린의 작은 조각들을 소중하게 채집해서 작품을 지었다.


나이가 들어서, 나이 들 때의 억압적 사회구조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이룬 황영자는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를 두려움 없이 밀어냈다. 그는 당당하게 그곳에 입성해 신성한 집(뮤즈의 집/museum)을 그의 작업실로 리모델링했다. 그야말로 그곳은 황영자의 모델링 공간이자 작품이 잉태되는 장소였다. 60대 이후의 최근 작품들을 펼쳐 놓은 전시는 초현실과 반현실이 난무했으나, 현실에서 길어 올린 서사는 때때로 폐부를 찔렀다

 

김주영의 <기억상자 시리즈>와 기록영상 <시베리아, 시베리아>는 어느 것에도 구속된 바 없는 그의 영혼이 뭇 생명들과 접화군생(接化群生)으로 관계 맺고 변화한 흔적들이다. 그는 기억의 씨앗이 될 만한 오브제를 모았고 다시 그 모은 것들을 미래의 어딘가로 보내기 위해 상자를 만들었다. 그의 미학적 행장이라고 해야 할 이것들은 지구별에 태어난 한 존재가 최소한의 예의로 남기는 삶의 그림자일 것이다.

 

황영자의 <내 안에 여럿이 산다>, <하늘 길>, <펭귄>, <인형들>이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하고 멜랑꼴리한 장면들은 신기하고 묘하다. 그러나 그 신비와 몽환이 심리적인 것이어서 현실의 바깥을 상실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작품들을 가만히 엿보고 있으면 소름끼치는 현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내 머릿속에서 청각이미지로 부풀어 올라 사이키델릭(psychedelic)한 상태로 내모는 것이다.


놓아라!’라고 말하는 전시제목은 두 작가를 옭아맸던 수많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고, 또 평생의 화업을 내려놓고 보자는 의미라고는 하나, 나는 이 놓아라!’라는 주제가, 아니 그 말의 외침이 다르게 들렸다. 예술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지 말아라! 네가 생각하는 예술은 이미 생각하는 순간부터 떠나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라! ‘해석을 들고 덤벼들지 말아라! 네 안에 두껍게 쌓인 예술의 갑옷을 벗어라! 지금, 여기의 예술이 예술이다!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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