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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191127) | 이재삼의 '달빛의 매혹'

김종길

달빛의 매혹



이재삼의 목탄화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폭포수를 제재(題材)로 다뤘죠. 그것들은 극동아시아 한국의 철학적 사유체계에서 철학을 서화(書畵)의 미학적 기표로 상징했던 오래된 사물들이요 풍경이에요. 세 나무는 한겨울의 벗으로 세한삼우(歲寒三友)라 불렀고, 셋을 한데 어우른 말로 ‘송죽매’라고도 했죠.


삶의 철학으로 깊게 침윤되어서 너울거리는 사물들의 뜻에는 지조 절개 은일 탈속 우의 신의 겸허 도덕과 같은 것들이 깃들었어요. 그 뜻의 세계는 조선이라는 한 세계가 지향했던 이상이어서 누구나 뜻의 가치를 최고의 덕목으로 알았죠. 그 세계에서 뜻을 세우고자 하는 이는 자주 송죽매와 어울리거나 사군자의 곁에서 살았어.


그동안 우리는 옛 그림에서 뜻풀이에 치중했을 뿐 뜻으로 뛰어들었던 그 매혹의 에로티시즘에 대해선 침묵했어요. 채호기가 수련을 두고 “수련 꽃잎의 테두리가 너를 끌어당기고/ 수련을 둘러싸고 있는 네가 흰 꽃잎을 끌어당기고/ 아, 이 탱탱한 탄력!”이라 긴장했을 때, 수련과 시인의 시선은 주객의 구분 없이 엉겨 있는 꼴이에요. 마찬가지로 이재삼의 송죽매도 그와 다르지 않아요. 그는 달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송죽매를 끌어당겨서 캔버스 천에 탱탱한 탄력의 육체를 재현했어요.


한 세기가 지난 뒤, 그의 미술세계에서 그런 눈맞춤 입맞춤 배맞춤의 미학적 돌진을 감상하는 것은 그래서 참으로 요요하죠. 송죽매의 매혹이 눈부시니 혼자서 몰래 엿보는 일 인양 낯부끄럽지만, 이 낯부끄러움의 간음이야말로 그가 드러내고자 했던 그 나무들의 실체가 아닐까 생각해요.


정재서의 『동아시아 여성의 기원』에서 여성들은 남성을 볼 때 “곁눈으로 보다(側目), 몰래 엿보다(窺), 다른 사람이 모르게 가만히 보다(伺)”와 같은 시선을 가져요. 곁눈질로 가만히 엿보는 이런 시선의 방식은 동아시아 사회가 여성의 똑바른 ‘응시’를 금기했기 때문에 발생했죠. 이재삼의 달빛소나무와 대나무, 매화를 보는 시선에서 동아시아 여성들의 몰래 엿보기를 발견하는 것은 관람의 주체가 ‘여성’의 상징주체 일수도 있음을 말해줘요.


그림의 형식은 [밤/만월․초승달/달․달빛::목탄/면천/소나무․대나무․매화]의 대비구도를 갖췄는데, 이 구도의 뜻을 달의 여성성과 나무의 남성성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것은 새롭지 않아요. 작가는 음혈(陰穴)을 이룬 곳에서 300년을 지속했던 소나무들-경북 군위의 소나무, 영양의 만지송, 하조대 소나무, 사인암 소나무-를 찾아 헤맸어요.


달과 대지가 여성성으로 한 몸 한 기운이라면 소나무는 그들이 잉태한 음혈의 힘찬 뿔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그 뿔의 불사리(木炭)로 송죽매를 그렸어요. 그러니 그가 그린 송죽매는 지근(地根)일 것이고, 폭포수는 그 지근과 한 쌍을 이루는 음수(陰水)일게 분명해요.


작가는 목탄이 “나무를 태워서 숲을 환생시키는 영혼”의 표현체라고 하고, 송죽매 너머에 “어둠 여백,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비경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리고 그 비경으로 들어가면 “달의 소리와 음혈이 그 안에 있다”고 강조해요. 그의 그림은 ‘저 너머’로 향하는 하나의 문이라는 것.


달리 말하면, 그 문이 바로 나무들이 서 있는 음혈이요, 음수의 폭포수라는 것이에요. 그렇게 그는 그 세계로 들어가는 매혹의 비경을 보여줘요. 우리가 그 비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둠의 여백을 채우는 달빛의 매혹을 ‘육체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그 너머의 세계에 가 닿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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