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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칭 평론 | 현대도시 마천루 증후군의 비극적 서사 - 전혜주

김종길

현대도시 마천루 증후군의 비극적 서사
- 전혜주의 <회전>이 타전하는 징후의 미학



친구여, 나는 하늘에 못가겠네.
나를 내려 주시오, 나를 다시 내가 살던 도시로 내려주게.
_ 『에타나 서사시』, 「판4」, 번역 및 각색 전혜주, WHIRL, 2019.



# “<회전(Mhirl)>은 끊임없이 창조되고 멸망하기를 반복하는 도시의 순환을 다양한 방식으로 암시하는 전시이다.”
_ 전혜주의 작가노트 중에서


스페이스 캔의 1층과 2층. 1층 중앙에 목재, 패브릭, 촉감변환장치로 제작한 1.2미터 높이, 세로가로 3미터의 지구라트[ziggurat, 성탑(聖塔)] 조형물을 설치했다. 관객은 다섯 계단을 올라 구조물 위에 앉을 수 있다. 앉으면 그 안에 내장된 스피커 혹은 촉감변환장치가 웅웅 울리면서 무언가 붕괴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벽에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수집한 이미지 10개를 액자에 끼워 걸었다. 2층에서 내려온 스피커 선이 벽을 타고 가는데, 그 선의 드로잉도 지구라트다. 조명은 환히 밝아서 한 눈에 이 공간의 구조를 인식할 수 있다. 2층은 암막커튼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빛을 차단했다. 관객은 공간 안쪽의 붉고 둥근 조명을 확인하기 위해 서서히 다가가야만 한다. 그것은 알을 부화시키는 부화 장치인데, 실제로 계란이 그 안에서 빙그르르 돌고 있다. 헤드폰을 끼고 알이 돌아가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소리는 오디오믹서기로 흘러가고 다시 엠프를 통해 증폭된다. 그 증폭된 소리가 1층의 지구라트에서 쿵쿵 울리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작가가 번역하고 각색한 『에타나 서사시』를 읽으며 1층과 2층을 마주한다.
      


# “내가 너를 하늘로 데려다 주겠다.”
_ 『에타나 서사시』, 「판3」, 번역 및 각색 전혜주, WHIRL, 2019.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 사이’를 뜻하는 메소포타미아[그리스어]. 그 두 강변에 고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수도 니네베와 바빌론이 세워졌고, 최초에는 그곳 어딘가에 에덴동산이 있었다. 두 강은 현재 이라크를 흐른다. 『에타나 서사시』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했고 ‘에타나’는 바빌로니아 신화의 영웅이다(에타나 신화가 새겨진 서판Tablette portant le texte du Mythe d'Etana은 BC 1800년경 찰흙을 빚어 만들었고 쐐기 문자를 새겼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가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으나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정신을 잃고 떨어졌다는 것이 신화의 줄거리다. 그리스 신화 속 다이달로스와 나우크라테의 아들 이카루스 서사의 원형이겠다. 전혜주는 『에타나 서사시』를 번역, 각색해 <회전(Whirl)>를 구성했다. 에타나와 관련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에타나(Etana)】[바빌로니아] 키시시의 왕. 왕비가 자식을 낳을 수 없어서 탄생의 식물을 얻기 위해서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려 했다. 태양신 샤마시는 에타나에게 함정에 빠진 독수리를 찾아보라는 조언을 했다. 독수리는 뱀의 아이들을 잡았기 때문에 뱀의 올가미에 걸려 있었다. 에타나가 독수리를 풀어주자, 독수리는 기뻐서 에타나를 하늘로 실어다 주었다. 에타나와 독수리의 그 후의 운명은 확실치 않다. 일설에서는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에타나의 아들이 키시시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수메르의 도시 키쉬 제1왕조의 13번째 왕이다. “하늘에 오르고 모든 이방의 땅을 합한 목자”라고 불린다. 마쉬다의 아들이며 아르위움의 계승자다. 에타나는 많은 신들의 총애로 수메르 온 땅을 아우를 수 있었지만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태양의 신 우투(또는 샤마쉬)에게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에 우투는 에타나에게 독수리의 등에 올라타 하늘로 가서 샴무 샤 알라디(Shammu sha aladi, ‘출산의 식물’)를 구해오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알려 주었다. … 『길가메시 서사시』의 엔키두는 죽을 병에 걸렸을 때, 꿈에서 저승에 있는 먼지의 집에 에타나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에타나와 이카루스 신화의 일반적 교훈은 ‘미지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憧憬)’이다. 동경은 ‘이상세계를 그리워하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으니, ‘미지세계’는 현실적 모순과 부조리가 없는 완전한 이상세계의 유토피아를 지시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우리가 간파해야 할 것은 동경이 아니라 동경의 비극적 결과다. 에타나는 정신을 잃고 떨어졌고, 이카루스는 깃털에 붙인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 떨어져 죽었다. 둘 다 너무 높이 오르려는 욕망 때문에 죽었다. 높이 오르고자 하는 것, 인간이 꿈꿔서는 안 되는 욕망이리라. 그런데 왜 인간은 욕망하면 안 되는 것일까? 전혜주의 의문은 이 ‘욕망하기’의 비극적 결과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에타나에 관한 서사는 조금씩 다르다. 공통적인 것은 자식을 낳을 수 없어서 ‘탄생의 식물(혹은 출산의 식물)’을 구하러 떠난다는 것,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오른다는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먼지의 집’에 앉아 있는 모습을 엔키두가 꿈에 보았다는 것! 이곳저곳의 내용을 짜깁기하면, “자식 없음(아들 부재)-태양의 신 우투(샤마쉬)에게 기도-독수리를 타고 출산의 식물을 구하러 감-정신을 잃고 떨어졌으나 아들 잉태-이방의 땅을 합함-먼지의 집에 앉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혜주는 『에타나 서사시』의 「판1」~「판4」에서 위와 비슷한 서사구조로 이야기를 펼친다. 아들의 부재는 왕위 계승의 부재다. 권력은 이어지지 못한다. 그 절박함이 그를 위로 솟구치게 했다.  



# “하나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벽돌이 기초가 되었다.”
 _ 『에타나 서사시』, 「판1」, 번역 및 각색 전혜주, WHIRL, 2019.


‘미지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은 신화에서 하늘 높이 오르려는 행위로 드러나지만, 전혜주에게 그것은 ‘도시 건설’로 현실화 된다. 그는 스페이스 캔의 1층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신전을 빼닮은 지구라트를 설치했다. ‘높은 곳’을 뜻하는 지구라트는 하늘[神]과 지상[人間]을 잇기 위한 신전이었고, 그 꼭대기는 ‘하얀 집’으로 불린 성소였다(도시의 수호신이 머무는 성소이다. 신전의 일꾼들은 지구라트 바깥에 머물렀다. 지구라트와 그 바깥은 철저하게 계급화 된다.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바벨탑과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지구라트의 자식들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지구라트는 이라크 나시리야 근방의 우르(Ur)에 있다. 전시장에는 지구라트에서 영감을 받은 스케치가 걸려있다. 그 외 수메르 왕명록(王名錄), 쐐기 점토판, 지구라트와 바벨탑의 상징적 평면도(지구라트는 일반적으로 사면으로 된 구조물이지만 원형으로 된 것들도 엿보인다. 회화로 그려진 바벨탑은 둥근 나선형이다.), 신들의 계보를 보여주는 나무 등이 걸렸다.


관객은 이곳에서 지구라트 조형물에 압도당할 뿐만 아니라 낯선 고대 건축물이 뜻하는 바를 찾아 헤맨다. 아무런 설명 없이 이미지로만 걸린 10개의 액자들에서 눈 밝은 이는 수메르 문명과 쐐기문자와 지구라트의 상징을 연결하려 애쓸 것이나, 그것은 하나의 수사적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이성을 집중해서 그 문명의 흔적을 찾거나 쐐기문자를 해독하려는 시도는 사실 이곳에선 부질없는 짓이다. 결과적으론.


기원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의 바퀴를 정지시키고, 우리는 지구라트에 앉아서 ‘서울’이라는 메타 폴리스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초자본주의 현대도시의 슈퍼타워 마천루를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된 인간들을. 그들은 ‘휴먼시아’ ‘생태도시’ ‘명품도시’로 치장한 아파트 공화국에 열광하며 토건국가의 이상세계를 건설하려는 듯 자본을 쏟아 붓고 대출을 당겨서 빚더미 잔치를 벌인다. 아파트값 폭등은 자본권력과 계급을 잉태시켰고 그들의 욕망은 주식의 임계점을 향해 치솟는다. 그것은 마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려냈듯이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솟구치는 탐욕의 실체와 다르지 않다.



# “그가 뛰어 내렸다. 그러자 독수리가 그를 향해 뛰어들어 다시 날개에 태웠다”
 _ 『에타나 서사시』, 「판4」, 번역 및 각색 전혜주, WHIRL, 2019.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1995년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1994년 서울시는 남산을 가리는 외인 아파트를 폭파해 철거했다. 1985년 지상 6층 높이 249.6미터의 63빌딩이 개장했고, 2017년 지상 123층 높이 555미터의 롯데월드타워가 오픈했다. 서울시는 35층 층고제한 규제를 두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고도제한을 둘러싼 갈등과 잡음이 들려온다. 붕괴와 철거가 반복되어도 도시는 초고층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부글부글 끓고 있다.


“새는 힘겹게 투쟁해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데미안』). 한 세계를 열고 날아오른 새의 신 아프락사스(Abraxas) ! 알의 안팎을 쪼아 세계를 여는 줄탁동시(啐啄同時)! 그러나 전혜주의 알은 그런 ‘참나[眞我]’의 깨달음이 아니다. 그의 <회전>은 반복되는 욕망의 잉태, 탐욕의 순환이다. 부글부글 끓어서 부화하는 마천루의 꿈과 그 꿈의 소멸에 관한 서사다. 그는 「판4」에서, 뛰어 내리는 에타나를 독수리가 다시 태우는 장면을 반복시킨다. 에타나는 결코 땅에 닿지 못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미궁이다. 그는 “(파손된 점토판)”을 마지막에 두어 결말을 늪에 빠트린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엔키두가 보았던 ‘먼지의 집’을 떠올리자. 이방의 땅을 합한 목자요, 왕이며, 영웅인 에타나는 왜 먼지의 집에 앉아 있었던 것일까? 지구라트는 흙벽돌로 쌓았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그것들은 높은 둔덕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에타나는 아들을 얻어 왕위를 계승했으나 시간은 덧없고, 현재 그의 땅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1층과 2층, 2층과 1층에서 관객은 <회전>이 회오리치는 순환구조를 엿본다. 지구라트에서 천둥이 터지듯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잉태의 외침이고 붕괴와 소멸의 아우성이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축복과 저주의 두 양극/양면성을 가졌으나 그것들은 서로 회전하면서 먼지가 된다. 아프락사스는 양극/양면성을 포괄하는 신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알을 깬 뒤의 새 세계가 무엇인지 깊게 사유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전혜주가 <회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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