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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평론 | 비무장지대를 횡단하는 불온한 미학의 실천

김종길

비무장지대를 횡단하는 불온한 미학의 실천

(DMZ피스프로젝트 컨퍼런스 발표/2014.12.5/각주 생략)


1. 불온한 씨앗


저곳이 비무장지대라는 말은, 저곳만이 비무장지대라는 말은, 너무도 가당치 않은 말 아닌가. 우리 한반도에서 저곳만큼만이 비무장지대라면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한반도 전체가 비무장지대여야 옳겠지만, 세계가 온통 비무장지대여야 되겠지만, 당장은 그런 세상이 힘들다면, 아 차라리 바꿔라도 보았으면. 한반도에서 저 비무장지대만큼만 무장지대가 되도록 바꿔보았으면. 그것도 무장지대를 어쩔 수 없는 국경으로, 국경선으로 내보냈으면. 그리 되라고 그리 될 날 꼭 올 것이라고 마음만으로라도 기도해보는 지금 나는 불온한 씨앗이더냐.(함민복)


강화도에서 사는 시인 함민복의 집은 강을 사이에 두고 비무장지대를 마주보고 있다. 그의 시적 독백은 비무장지대의 슬픔을 향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비무장지대를 무장지대로 바꿔서 국경선으로 내보내는 불온성을 띠고 있다. 지금의 DMZ를 무장지대가 아니라 비무장지대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어쩔 수 없는 국경’은 어디일까. 한반도의 국경지대는…….


우리가 함민복의 ‘불온한 씨앗’을 그야말로 불온하게 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통일 이후의 만주지역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지금 나는 불온한 씨앗이더냐.”라고 스스로 자조하고 있듯이, 우리 또한 아직 ‘씨앗’으로만 남아 있는 불온성이지 않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가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러 평양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시인 임화가 1953년 8월에 남로당 핵심 인물들과 함께 북한의 군사재판부에서 ‘미제간첩’ 협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당했을 때, 조선미술사 연구자이자 화가였던 리여성이 여운형의 밑에서 정치국장을 하다 월북했을 때, 동양화론과 조선미술사의 석학 김용준이 월북했을 때, 화가 정종여가 월북하고 조각가 리국전이 월북하고,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이쾌대가 마지막으로 월북했을 때 이미 DMZ는 ‘금기’의 불온한 씨앗이었다.



2. 두 개의 국가, 그 사이


지금 이 시대는 전쟁의 기억과 흔적이 근대화 개발주의와 압축 고도성장의 세월에 묻힌 채 국가주의 기념식만 남아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복권시키려 들뿐, 6.25전쟁의 냉전체제나 그로인한 분단현실의 실체를 직시하려 들지 않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사라져 버린 ‘냉전체제’ 이후의 세계를 한국사회는 거의 실시간으로 받아들여서 안착시킨 듯이 보인다. 언뜻 보면, 한국사회에서 냉전은 낡은 기억이거나 오래된 과거로서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눈앞의 현실을 비현실과 초현실로 밀어내려는 ‘간헐적 외사시’에 가깝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있는 사이에도 간헐적으로 인식되는 분단인식을 밖으로 밀어내려는 무의식과 그 무의식이 빚어내는 외사시의 현기증이 종종 발견되니까. 남한과 북한은 어쩌면 외사시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면 할수록 양쪽에 위치한 두 국가의 실체는 모호하므로.


1945년 8월, 식민의 참혹한 기억과 해방의 환희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한반도는 곧 소련식 사회주의[공산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이념으로 갈렸고, 그 이념은 다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과 민주공화국대한민국이라는 두 개의 분단정권을 수립했으며, 2년 뒤 두 정권은 서로 잔혹한 살육전쟁을 벌였다. 6.25전쟁은 두 분단정권이 두 개의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를 포탄으로 쏘아 올린 뒤 피의 씨를 뿌리고 검은 주검의 잿더미만 남긴 텅 빈 황홀의 디스토피아 즉 아수라장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 죽임의 살풍경에 넋을 잃었고 발작을 멈추지 않았으며 깊게 통곡했다. 미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속으로 침묵을 삼키고 밖으로 열광하는 법을 체득해야 했다. 반공애국정책은 감시사회의 침묵을 종용했고, 지배사회에 열광토록 강제했으니까.


해방과 동시에 고착된 분단, 그리고 69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사회의 시민들은 6․25전쟁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과 동시에 분단이 시작되었다고 믿지만, 분단은 1945년 8월 해방과 동시에 3.8선이라는 ‘선긋기’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점령에 의한 경계로서 말이다. DMZ의 실체를 인식하고 자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강대국 간의 냉전체제 대립과 대립항으로서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점령지’로서의 비시각적 식민 상황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외사시 뜨기를 통해 냉전체제를 눈 밖으로 밀어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엄연히 냉전이 지속되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냉전은 여전히 지속이며 현재이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의 세계시간에서 냉전의 한국시간은 그러므로 역성의 거스름이며 반역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반역의 시간을 21세기까지 연장해 온 것이란 말인가!  



3. 현실의 발언, 발언으로서의 현실


분단의 문제를 주제전으로 기획한 첫 사례는 현발(현실과 발언, 약칭 현발)의 제5회 동인전이었던 《6.25》전이다. 현발은 모시는 글에서 “6.25는 우리의 가슴 한 복판에, 생멸의 증거로, 아물 수 없는 상처로, 또한 오는 날들을 올바로 지켜나가야 할 하나의 뜻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민족사상 가장 가혹한 시련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민족의 삶을 근원에서부터 결정짓는 어떤 힘이기도 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며, 우리의 눈앞에 현실적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1981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과 소련은 ‘신 냉전’의 시기를 보냈다. 1980년대 초기와 달리 레이건의 군사력 강화와 냉전정책은 실패했는데, 1985년 3월 고르바초프가 당 서기장이 되면서 1986년 2월에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발에 의한 6.25전쟁의 재인식은 국제적인 신 냉전 체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발의 작가들은 그때까지 아무도 거론할 수 없었던 분단체제와 냉전의 실체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분단과 냉전이야말로 “민족의 삶을 근원에서부터 결정짓는 어떤 힘”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눈앞에 현실적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야 말로 미학이 사회적 발화로 이어질 수 있는 발언의 구조일 것이다. 그들이 어떤 현실에 접근했는지는 그들이 다뤘던 구체적인 소재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얼굴도 모르는 오라버니의 제삿날 이야기, 흑인병사와 백인병사 사이의 격투 장면에 대한 어린 날의 목격담, 부산 하야리아 부대 이야기, 종군작가였던 삼촌에 대한 이야기, 월남, 격전, 파괴, 피난, 껌, 깡통……” 등이 그것이다.


현발은 전후 30년 만에 6.25를 호명함으로써 강제적 기억상실과 실어증에 걸린 분단과 냉전의 한국사회를 선명하게 실체화한다. 근대화‧산업화‧도시화 개발주의의 안개군단에 휩싸여서 잘 보이지 않았던 사회의 낯설고 어두운 이면들과 정신적 외상trauma)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서사를.


1988년 11월 25일, 현발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1년 전, 제7회 동인전으로 《한반도는 미국을 본다》를 다시 기획한다. 리영희 선생이 「민족문제와 한미관계란」을 주제로 강연회를 갖기도 했는데, 그들이 6.25에서 더 확장하여 “미국을 본다”라는 분단과 냉전의 한쪽 실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6.25전>에서 시작된 ‘주체적 투쟁과정’을 통해서였다. 미국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이 전시는 영민하게, 그리고 분석적이면서도 개념적으로 제시한다.


  사건은 은폐되고 왜곡되고 암장되고 모욕되었으며 또 날조되고 조작되기도 하였다. 최근의 민중적‧민족적 시각의 발전은 이러한 사건들의 진상을 복원하고 그 의미를 재발견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진전이 오직 주체적 투쟁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져 올 수 있었음을 보여주었다.(성완경)    


남한과 북한을 응시하면서 또한 미국과 소련을 응시하는 것이 분단과 냉전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응시의 실천적 전략일 수 있다. 현발은 ‘미국을 봄’으로써 “은폐되고 왜곡되고 암장되고 모욕되었으며 또 날조되고 조작되기도” 한 한국적 사건들의 진상을 재발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미술가들의 시도는 광자협(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약칭 광자협)의 후신인 시매연(시각매체연구소, 약칭 시매연)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시매연의 작가 전정호와 이상호는 1987년 9월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공동 제작했다. 노동자와 농민이 미국 성조기를 찢는 장면이 빌미가 되어서 제주도 전시 도중 작품이 탈취되어 소각처리 되었고, 두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았다.



4. 서사의 흔적, 불화에서 대화로


1989년의 문익환, 서경원, 임수경의 방북은 한국사회를 급격한 공안정국으로 재편시켰다. 2000년 이전의 프로젝트로 1991년부터 2년마다 개최된 《비무장지대》전이 거의 유일한 것은 그런 사회적 배경이 짙게 깔렸다. 당시 성심여대 교수였던 이반에 의해 주창되고 주도된 이 전시는 “민족분단의 비극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기 위한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작업”이 함축적인 의미에서 기획취지였으나 ‘민족분단’과 ‘비극’, 그리고 ‘예술적 승화’라는 세 개의 열쇳말은 금기를 금기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하나의 장치어로서 존재했을 뿐, 그가 추구했던 개념은 1980년대의 민중미술 진영과 제도권 미술이 공동으로 참여해 ‘분단극복의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1970년대에 <팽창력-비무장지대>와 같은 작품을 발표했었고, 1987년에 이르러서는 비무장지대예술문화운동(약칭, DMZ예술운동)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러한 DMZ예술운동의 주장은 그 어떤 것들보다 급진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91년 《비무장지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홀로 DMZ예술운동을 부르짖었다.


1970년대로부터 2000년대까지 30여년에 이르는 이러한 이반의 DMZ예술운동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준기는 행동주의 경향이라 말하면서 “그의 예술은 예술작품이라는 심미적 오브제를 생산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예술의 안과 밖을 가로지른다. 이반은 1980년대 후반 이래 비무장지대예술문화운동을 주도했다. 전시에 출품한 수많은 포스터와 설치작품, 대형실사출력물, 평면작업, 퍼포먼스 영상자료, 출판자료 등이 열정에 찬 예술가의 활동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것은 시각적 오브제에 대한 경건한 감상 취미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한 예술가가 집요하게 추구해 온 의제들에 관한 격렬한 소통을 촉박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반에 의해 주도된 DMZ예술운동 외에는 2000년까지 이렇다 할 DMZ시각예술프로젝트가 시도된 적은 없으나, 송창, 정동석, 서용선, 김용태, 민정기를 비롯한 1980년대 민중미술 경향의 작가들에 의해서 미학적으로 탐색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포문을 연 것이 백남준에 의한 《DMZ2000》이었다. 언론은 당시 “미국에서 활동 중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67세)이 2000년대 한민족의 웅비를 기대하며 초인적 의지와 정성으로 제작한 비디오작품이 14일 국내 기자들에게 공개됐다.”며 크게 보도하고 있다. 《DMZ2000》은 새 천년을 맞아 MBC를 포함한 세계 87개국 방송사가 공동으로 제작해 방송하는 “2000TODAY”의 한국 콘텐츠로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백남준의 《DMZ2000》은 우리 시간으로 1999년 12월 31일 자정과 2000년 1월 1일 오전 10 20분 두 차례에 걸쳐 약 14분간 세계에 소개되었다. 백남준의 작품 외에도 MBC는 팔만대장경, 석굴암 등 당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과 하회마을의 신년제례식, 정명훈과 장영주의 신년음악회 등을 한국에 할당된 시간대에 내보냈다. 이 프로젝트의 한국 측 미술감독은 이용우가 맡았고, 《DMZ2000》은 1999년 12월 15일부터 임진각에 설치되었으며 TV모니터 300여대가 사용되었다. 백남준은 임진각에 설치된 작품에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제목을 달았는데, 그는 미술감독 이용우를 통해서 “한민족은 호랑이입니다. 반드시 전 세계 무대에서 포효할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작품의 내용은 총 45분가량의 비디오 작품이었고, 진도 씻김굿으로 시작해 국내외 예술가들이 인류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의 공연 영상이 대부분이었다.


2001년, DMZ예술운동을 실천했던 이반은 운동을 정리하고 현업에 복귀한다고 선언했다. 그 정리 작업으로 그는 14년 동안의 DMZ예술운동을 당시 서울 인사동에 있었던 갤러리 아트사이드에 《조선반도의 생명을 위한 리포트》전을 기획했다. 그러나 그의 비무장지대예술문화운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당시 “비무장지대 공연을 통해 인체에 대한 비밀도 풀었다.”고 했고 “비무장지대는 전장(戰場)이며, 그 속에서의 고민은 인체에 대한 고민과 해결로 연결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이러한 인식은 그 후 2007년 아르코미술관이 대표작가전으로 선정한 이반의 전시에서 고스란히 표출되었다. 즉 《2007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전 : 李 반 생태(生態)의 메아리~몸 The Eco-echo-body》의 전시주제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그는 이 전시를 통해 그가 지속적으로 탐색해 왔던 역사적 기록회화로서의 ‘인체작업’과 동시에 DMZ예술운동의 자료, 실물을 전시공간에 설치했고, 비공개작이었던 도라산 벽화작업도 선보였었다. 


온라인 프로젝트로는 《DMZ on the WEB》(2001.10.10~11.11)가 있었다. “은폐되고 타자화 된 자연-DMZ”라는 주제를 내세운 이 프로젝트는 호주에서 열리는 MAAP(Multimedia Art Asia Pacific)페스티벌에 참가했으며, 이광준과 임근혜가 큐레이팅을 맡았고 웹프로젝트팀 Node와 시월커뮤니케이션이 주관했다. 프로젝트는 ‘기억의 장’, ‘접촉의 장’, ‘치유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이 제시한 세 개의 개념은 이후 기획되는 DMZ 프로젝트에서도 유사하게 살필 수 있는데, 대체로 ‘역사-분단-생태’의 구도와 ‘기억-접촉-치유’의 상징이 DMZ와 관련된 주요 키워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 닫혀있는 경계와 거울보기의 이면


국제적 규모의 첫 DMZ프로젝트는 김유연이 기획한 《DMZ_2005》전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6․25전쟁 발발 55주년이 되는 2005년 6월 25일을 기념하여 전 세계 16개국 42명(팀)이 참가한 국제 현대미술전이었다. 프로젝트의 기획취지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분단현실이 존재하는 DMZ(비무장지대)를 주제로 세계 각국과의 사회정치 경제의 이해관계로 인해 한반도의 현시점을 지각해” 보기위한 것이었으며, 국내 참여 작가들의 기존 작품(1970~2005)과 분쟁국가 참여 작가들의 기존 작품(팔레스타인, 이라크, 이스라엘, 멕시코 등), DMZ 답사 후 새로 창작한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큐레이터 김유연은 시공간의 단절이 강요된 DMZ의 지정학적이고 문화사적인 의미는 물론이고, 그 의미의 함축을 통해서 예술적 창조의 재발견에 이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유연은 전시 기획글에서 “이번 전시는 DMZ 경계선을 따라 접경지역의 공간적 특수성을 감안해 전세계 분쟁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계 각지의 작가들을 참여시켜 접경지역에 대한 공간적 의미, 이념의 문제, 국경의 심리적 측면을 표현토록 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제시하고 미래의 변화를 직시할 수있는 통찰력을 모색”하고자 했으며, “한반도 DMZ 경계선은 여느 경계선과는 다른, 닫혀있는 경계(frozen territory)로서 세계적으로 특수한 상황으로 주목 받고 있다. 변화와 유통이 불가능한 북한의 한계적 정보체계는 시대적, 정치사회적 의미에서 흑백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정보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남북에 놓여진 ‘금지된 영역(forbidden zone)’을 중심으로 오해와 불통(mis-communication)에서 유발된 가식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현대인의 거울을 반영해 보고자”했다고 밝히고 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기획된 프로젝트는 《2007경기아트프로젝트-경기, 1번국도》, 《아트이슈2010-분단미술 : 눈 위에 핀 꽃》, 《DMZ 국제평화 레지던시》, 《청소년 커뮤니티 프로젝트-평화의 나무》, 《2012 DMZ평화미술책프로젝트-겨울 겨울 겨울, 봄》을 꼽을 수 있다. 《경기, 1번국도》가 소주제 섹션으로 보여준 ‘통일전망대’ 작품들이 DMZ를 미학화한 것들이라면, <눈 위에 핀 꽃>은 국내에서 개최된 첫 분단미술전으로서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전쟁과 분단, 기억, 실존, 냉전, 현실, 통일 등의 개념으로 읽을 수 있는 분단미술 작품들의 총량을 보여주었고, 《DMZ 국제평화 레지던시》는 “DMZ, 비극의 땅에 피어나는 한국 현대미술-동북아 평화 생명시대의 미술실천”을 모토로 경희대학교 부설 현대미술연구소와 DMZ국제평화레지던시추진위원회가 기획한 최초의 DMZ레지던시였다. 《평화의 나무》는 경기도미술관이 미국무성 기금을 받아 기획한 프로젝트로 한석현 작가의 매우 개념적이며 실천적인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작업이었다. 미국의 소노마카운티 청소년들과 경기도의 청소년들이 DMZ의 분단․평화․생태적 이슈에 직접 참여하면서 한석현 작가의 ‘평화의 나무’ 제작에 동참했다. 작가는 폐목재를 활용해 거대한 나무를 만들고 그 나무에 다시 나무를 심는 것으로, 작은 나무의 뿌리가 폐목재로 된 어머니 나무를 먹고 자라는 이미지를 구상했고 그것을 실현시켰다. 《겨울 겨울 겨울, 봄》은 한중일 세 나라의 그림책 작가 12명이 아시아의 평화를 상상하며 그린 그림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이억배 작가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과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에서 전시주제가 시작되었고, 정전협정 60년을 감안하여 ‘비무장지대’를 전체 프로젝트의 핵심 키워드로 설정했다.



6. 기억들의 재현 ; 냉전 없는 분단


그리고 2013년이다. 
2013년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기획된 미술관급 프로젝트는 총 6건으로 《금지된 정원(forbidden garden)》, 《DMZ 평화를 꿈꾸는 예술행동 프로젝트-스무 살, 평화 위를 걷다》, 《기억·재현, 서용선과 6.25》, 《백령도 525,600 시간과의 인터뷰》, 《리얼 DMZ 프로젝트 2013 : 보더라인》, 《DMZ 평화의 길을 가다》, 《DMZ ART PROJECT-The Line, 예술로 통일의 길을 열다》 등이다. 이전의 프로젝트가 단발성이면서 복합주제의식 안에서 DMZ를 다루거나 또는 분단과 묶어서 개념화 한 전시들인 경우가 많았다면, 2013년의 프로젝트는 모두 DMZ 자체를 주제화 했다는 특징이 있다. 더군다나 《리얼 DMZ 프로젝트》와 《DMZ 평화의 길을 가다》가 2011년부터 시작된 연례프로젝트로 기획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금지된 정원》은 “무늬만 평화로운 비무장 지대는 여전히 분단의 상처와 긴장감 깃든 군사적 대치지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무장된 역설적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가일미술관 수석큐레이터 홍성미는 DMZ 내에는 무기도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주목했고, 그것이 바로 비무장지대가 갖는 평화적 상상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 공간으로서 ‘무장지대’가 되어버린 비무장지대. 이 전시는 분단국가로서 우리보다 먼저 통일이 된 독일로 넘어가 담론의 공유점을 찾는 시도를 시작했다. 《스무 살, 평화 위를 걷다》는 《DMZ 국제평화 레지던시》를 기획했던 경희대학교 부설 현대미술연구소가 대학생 현장답사/탐방 프로젝트로 기획한 것이다.


《기억·재현, 서용선과 6.25》 역시 정전 6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기획된 전시로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미학적 전유를 시도했던 서용선의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서술적이고 상징적이면서도 강력한 표현주의적 조형언어를 구사한 그의 작품은 6.25에 대한 개인적, 역사적 ‘기억’들을 탁월하게 ‘재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의 커미셔너를 맡았던 정영목은 “무엇을 주장하거나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전시를 관람하고 접하는 대중에게 전쟁에 관한, 나아가 우리 현대사에 대한 그들의 ‘시선’과 ‘관점’을 다시 생각하도록 화두처럼 던져 주고 싶은 것이 목적”을 기획의도로 밝히고 있다.


《백령도 525,600 시간과의 인터뷰》는 인천아트플랫폼이 기획한 인천평화미술프로젝트의 세 번째 전시였다. 참여 작가는 문학과 비평을 포함해 총 66명이며 작품 수는 114점이었다. 백령도 현지에서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전시는 백령도의 심청각, 대피소 4곳, 백령평화예술레지던시, 백령성당과 백령병원을 비롯해 섬 곳곳의 야외공간을 활용해 1차전시를 진행했으며, 2차 인천전시는 백령도 현지 전시장에서 전시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을 추가하여 아카이브 형태로 보여주었다. 정전 60년의 의미뿐만 아니라 치열한 냉전 상황의 불꽃이 식지 않는 백령도를 배경으로 했다는 데 이 전시의 의의가 있다.


<DMZ 평화의 길을 가다>는 경기민예총이 2011년부터 DMZ를 직접 답사한 뒤, 창작의 결과를 제시해 왔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과거 1980년대 민중미술 진영의 작가들로서 그들이 제시했던 현실주의 미학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그동안 《우리민족서화》전(2007), 《분단선 너머 하늘이 열리다》(2008), 《분단의 섬 DMZ》(2009) 등 《경기통일미술전》을 꾸준히 개최했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은 2011년부터 《DMZ 평화의 길을 가다》를 연례기획전으로 안착시켰다.



7. 리얼한 DMZ와 육체적 공간의 체현


이반의 DMZ예술운동이 21세기 버전으로 탄생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김선정이 기획하고 있는 《리얼 DMZ 프로젝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2011년부터 시작해서 2012년에 현실화 했다. 그러나 이반의 DMZ예술운동이 예술 공론장 내부에서 펼쳤던 분단모순, 냉전흔적으로서의 시각적 이미지 힘겨루기였다면, 김선정의 큐레이션은 인문 사회학적 조사와 연구를 병행하고 이를 공유시키려는 다분히 행동주의적이고 청각적인 요소를 함의한 프로젝트라 점이 다르다. 예술가들과의 프로덕션과 전시, 포럼, 지역 리서치가 DMZ를 비롯한 접경지역의 문화지리학적, 문화인류학적, 문화생태학적 측면들과 오버랩되면서 시각예술 버전을 월경하는 탈경계 예술운동으로 재정의 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리얼 DMZ 프로젝트》에 대해 밝히고 있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에서 적극적으로 읽힌다.


이 프로젝트는 비무장지대의 역설적 상황과 이에 얽혀 있는 철원의 역사가 내비치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해 ‘참된’ 비무장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는 프로덕션, 전시뿐만 아니라 포럼, 지역 리서치 등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조사와 연구를 지속하고, 이 조사와 연구를 모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고자 하는 장기적 비전의 프로젝트다.   
       
2011년부터 기획되기 시작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2012년 DMZ 접경지역 중 철원의 안보관광 코스의 일부 시설을 전시장으로 활용함으로써 전시 형태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는데, 안보관광 코스에 속한 공간들이 보여주는 ‘리얼한 장소성’은 그동안의 다른 전시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작품들은 ‘안보관광’으로 사용되고 있는 리얼한 체험공간에 설치됨으로써 화이트 큐브가 발산하지 못하는 장소성의 리얼리티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DMZ만이 형성시킬 수 있는 분단과 냉전의 육체적 공간성을 체현한다. 그 공간들은 안보를 ‘구경’이라는 관광코스에서 분단과 냉전의 상징을 ‘사유’하는 체현코스로 뒤바뀌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정전 기념일인 7월 27일부터 철원 안보관광 코스 중 사용하고 있지 않는 유휴공간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해서 DMZ 60년간의 경계가 개인과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3: 보더라인》을 기획했다. 이 전시는 안보관광 코스 일부와 주변의 공간을 활용해 전쟁의 기억과 세월이 만들어 낸 DMZ의 오늘날의 의미와 그것에서 파생된 다양한 경계의 문제들에 대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아낸 전시였다. 같은 기간 서울 아트선재센터 라운지에서는 다양한 DMZ 관련 자료들이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로 선보였다.


DMZ는 경계(Borderline)다.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를 획정하는 구체적이고 공격적인 지대가 그 경계다. 이 경계가 미친 파장은 접경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폭발물이 암시하는 파괴적, 해체적 맥락에서 ‘(다분히 비극적인)신체적 현실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한국사회 전체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예시하듯 종북좌파 프레임과 이데올로기의 편협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개인에게 있어 강력한 경계구속은 국가보안법이다. 경계의 안과 밖이라는 구조에서 한국사회는 고립된 섬이며, 섬으로서의 한국사회는 20세기를 고립무원의 세계로 살았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로서의 DMZ라기보다는 지금의 한국사회의 분단과 냉전을 재사유하도록 이끄는 알레고리의 신호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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