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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칭 평론 | 기억풍경의 속살, 곳곳의 장소, 살아 오른 그림자 - 신미정

김종길

기억풍경의 속살, 곳곳의 장소, 살아 오른 그림자
- 신미정이 좇는 그림자 속살의 장소들, 혹은 기억의 목소리


이 글은 신미정의 영상작품 <식민지/추억>(2015/익산), <자신의 경로>(2016/속초), <신도(信道)>(2017/대전), <출향(出鄕)>(2018/울산)에 관한 비평적 아포리즘이다. 네 작품을 어긋 매겨서 글을 지었으니 그것들이 서로 씨줄날줄로 직조된 것이라 보면 된다. 그러니 이 글로 어느 한 작품을 풀어도 되고 네 작품 모두를 엮어도 무방하다. 


#1. 나는 평생 육지에 스며들지도 제주에 녹지도 못했다.
_ <출향(出鄕_Leaving hometown)>, 2018. 제주에서 나고 울산에 정착한 해녀 양순택의 이야기에서


그가 익산 속초 대전 울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은 부유(浮游)했다. 세월과 역사에 뜬 삶이어서 흘러서 흩어지고 잊혔다. 사라지고 도망치고 이주하고 쫓겨난 삶들은 귀신같아서 현실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들의 현실은 장소에 깊이 음각된 그림자였으나, 그 실체는 부재했다. 산 목소리로 어슬렁거리며 장소의 기억을 흔들어 깨우자 그림자는 몸으로 살아서 존재가 되었다. 그 몸이 신미정의 영상이다.


기억이란 게 멈춰 선 곳에서 떠올리는 신기루의 ‘저곳’이라면, 회억(回憶)은 기억의 저곳을 ‘이곳’으로 불러내 펼치는 구체적 현실일 터이다. 시간이 흘러 온 저 먼 곳, 그러니까 떠나고 쫓기기 전의 항구는 어디였을까? 그 항구, 그 동네 그 도시 그 고향은 온전히 살아 있을까? 영상은 산 기억의 목소리로 그림자를 붙잡아 어떤 실체를 빚으려는 듯 출향 전의 항구를 찾아 헤맨다. 기억을 되감아 푸는 목소리를 따라 플레이하는 영상들.


해방과 동시에 일본으로 돌아 간 타무라 요시코는 1945년 전라북도 이리(現 익산시)의 골목골목을 그려내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속초 아바이 마을로 도피한 인민군 권문국은 함경남도 영흥군 진평군의 작은 마을을 마음에 품고 새긴다. 수운 최제우의 예언을 따라 평안남도 개천군 동남면에서 옛 충천남도 대덕군 탄동면 금병산 자락 숯골 마을로 이주한 이춘희는 도솔천을 어슬렁거린다. 그의 말에는 북남이 없다. 생존 의지만 있을 뿐. 참 삶의 진리를 얹을 뿐. 제주에서 울산으로 시집 온 해녀 양순택의 이야기는 편린(片鱗)들로 가득해서 삶이 아니라 온통 비늘뿐이다. 바다로 잠수해 제주에 가 닿겠다는 듯이.


땅에 발 딛지 못하고, 대지로 스미지 못하고 개인의 삶으로 몰아쳐 온 것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거대한 역사 회오리다. 일본의 아시아 지배, 아니 세계 지배의 탐욕이 부른 식민과 전쟁은 참혹했다. 그들이 쏘아올린 포탄이 원폭으로 되돌아 가 패전이 되었을 때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은 다시 그들의 모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그 사이 식민지에서 태어난 일본인 아이들은,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들은 ‘모국’에 대한 극심한 현기증을 앓아야 했다. 그들이 스며들 곳은 거기 없었으므로.


네 개의 영상은 닿아서 스며들 곳을 상실한 네 사람의 이야기 역사다. 그러니 네 개의 삶이라고 해야 할 터이나, 그 삶은 오롯이 20세기를 살았던 이곳 대한민국의 미시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해방 이후, 속도전으로 밀고 온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의 한국사회는 그 삶을 겨우 기억할 뿐이다. 지우고 부수고 갈아엎고 세우기를 반복한 자리에서 ‘장소의 기억’을 찾기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은 없고 집단만 있었던 사회. 전체만을 강요했던 국가. 그래서 억압하고 떠밀고 지워버린 삶에 새긴 국가폭력의 어두운 그늘!



#2. 우리 가족은 숯골 마을에 살았다.    
_ <신도(信道_The way of faith)>, 2017. 숯골 마을에 산 수운교도 이춘희 이야기에서


떠다닌 삶일지라도, 그림자로 살았을지라도 고백의 목소리는 ‘살았다’고 증언한다. 신미정의 영상이 실체로서 기억의 몸을 되찾는 한 지점은 목소리의 주체들이 여전히 살아서 실존하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의 실마리를 실재하는 한 존재의 ‘구술’로부터 시작한다. 영상으로 인터뷰하고 녹취해서 삶의 굴곡진 서사를 꿰맨다. 그것은 마치 어디 먼 곳으로부터 흘러서 해변까지 떠밀린 부표 같은 것일지 모른다. 물무늬의 물결이 삶의 잔주름으로 새겨진 부표들. 부표가 된 존재들은 어느 순간 그들이 떠나 온 곳을 놓아 버렸지만 결코 기억에서 지워지지는 않았다. 살았던 곳의 풍경은,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순간부터 다시 그림자 자국을 남기기 때문이다.


작은 골목길과 담벼락에도 자국이 있고 감나무 버드나무 대추나무에도 자국이 있다. 낮은 돌담과 칼바람으로 기운 팽나무에도 있고, 오름을 끼고 흘러 온 계곡물에도 있고, 4.3 때 스러진 마을에도 있다. 숯골 마을 도솔천 소나무 숲에도, 아바이 마을에서 꾹꾹 눌러 쓴 일기장에도 있고, 울산 앞바다 그 깊은 바닷물에도 있다. 그 그림자 자국이 삶이다. 삶의 증좌요, 삶의 피돌기다. 한 사람의 삶에 각인된 자국의 흔적들은 헤아릴 수 없다. 헤아릴 수 없어서 말과 말 사이에 뜸이 길어진다. 신미정이 영상으로 길어 올리는 목소리는 그렇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우리 한국사 곳곳에 음각된 그림자 자국이 아니고 무엇일까!


해방 직후 이북에서 이남으로 이주한 사람들. 이북이 훗날 암흑세계가 될 것이라는 수운 최제우의 예언. 수운사상을 잇고 따르는 신도들. 금병산 자락 명당을 찾아 세운 도솔천. 지상천국. 일본이 스스로 자멸한다는 예언의 실현. 그 믿음을 현실로 구현한 삶은 그러나 버거웠다. 개성의 직조기술을 옮겨 60,70년대 베틀을 짜고 직조기를 돌려도 세 끼 밥이 헐거웠다. 심지어 지상에 건설한 낙원은 미당 서정주가 시 「처음으로」에서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신다던 전두환이 정권을 휘어잡고 자운대(紫雲臺)를 세우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낙원은 현재 3군이 통합으로 군사 훈련을 시키는 군사교육기자가 되었다. 이춘희는 사라진 곳을 생각하며 도솔천에 가 닿으려 한다. 가 닿으려는 믿음이 그들을 살아있게 했으므로. 그래야만 산 삶의 기억이 온전할 것이므로.      
        


#3. 1950년 나는 북한의 인민군이었다.
_ <자신의 경로 (Path of my life)>, 2016. 속초 아바이 마을의 실향민 권문국의 이야기에서


네 영상의 이야기는 모두 ‘나’의 고백서다. 나는 영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목소리로만 그곳에 존재할 뿐이다. 나는 내가 살아 온 신산스런 삶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영상은 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집 길 정원 마을 들녘 바다 철로 기차 지도 사진을 따라 간다. 이야기가 힘을 얻는 것은 여지없이 이야기와 배경이 한데로 뭉쳐서 역사적 ‘사실’로 비춰질 때이다.


서사가 영상과 만나서 문맥을 이루는 어떤 장면들은 아카이브가 더해져서 완벽한 실체로 인식된다. 그 실체는 바로 목소리의 주체이다. 주체들은 살아 오른다. 영상 밖으로 걸어 나와 관객 앞에 현신한다.


보이지 않는 타무라 요시코가 인식되고, 권문국이 느껴지고, 이춘희가 코 앞에 있고, 양순택이 가엽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타향이어서 낯설었으나, 또한 삶이 이어졌기에 현실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유령이었고 귀신이었고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들이 ‘없는 주체’로 없는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있는 주체로, 있어야 만 했던 현실은 고통이어서 더 치열한 현실이었다.


신미정의 영상은, 살았으되 산 삶이 되지 못했던 그림자 삶을 고백하고 낭독하게 함으로써 되살리는 ‘굿짓’의 살풀이라 할 것이다. 한 삶의 미세한 비늘들이 또한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산 미학의 도큐멘타이고. 어쩌면 그가 드러내고 살려 낸 삶이, 그 역사가 20세기 한국사의 어휘이고 단어들일지 모른다.      


한 방울의 물에 숭고가 있고 바람 한 점에도 숭고가 있다. 숭고는 한 호흡에도 있다.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의 숨결에서 숭고는 찬란한 ‘얼빛’이다. 숭고는 그 이면에도 존재하는데, 어둡고 불확실한 그림자에서 무섭게 돌변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니 한(恨)의 신명이 곧 숭고이리라. 그 숭고가 삶이리라.


2019.11.18탈고 / 난지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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