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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매혹과 두려움, 이불의 ‘불완전한 신체’ | 오유진

현대미술포럼






매혹과 두려움, 이불의 ‘불완전한 신체’

나체로 천장에 매달려 고통을 연출하는 퍼포먼스, 생물체의 내부 장기와 촉수 같은 형태가 뒤얽힌 핏빛 의상, 알록달록한 구슬과 시퀸으로 장식되어 썩어가는 생선, 도발적인 동양의 무녀 이미지가 프린트된 비닐 풍선, 머리와 신체 일부가 절단된 사이보그 모형, 캡슐 형태의 노래방, 건축적 스케일로 역사를 재구성한 설치 작품....... 이불(1964~)의 지난 30여 년간의 작업을 반추해보면 새로운 주제를 모색하고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구축해 온 다채로운 작품 목록에 놀라게 된다. 그는 상반된 가치체계가 공존하며 충돌하는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안정된 상태를 교란시킴으로써 우리의 낯선 감각을 일깨우고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불이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1980년대 말 한국에서는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완화되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다방면에서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해체되었다. 미술계 역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구화와 한국성의 추구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 세계 미술계의 동시대적인 흐름에 합류하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한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제도적 권위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하였고, 자신들을 둘러싼 일상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특징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견인한 대표적 작가들 중 하나인 이불은 1980년대 말 그룹 ‘뮤지엄’의 전시를 통해 작가로 첫 발을 내디딘 후 페미니즘, 오리엔탈리즘, 대중문화, 테크놀로지 등 우리 시대의 주요 쟁점들과 맞닿은 날카로운 주제의식과 독창적인 조형 감각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으며 작업의 외연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 1) 

몸의 정치학
우리 미술계에서는 1980년대 말 포스트모더니즘이 유입되면서 신체의 비합리성과 물질성이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대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불에게 있어 신체는 작업 초기부터 주요한 주제이자 표현 매체였는데,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인해 그는 페미니즘의 기수이자 미술계의 ‘여전사’로 자리매김하였다. 1989년 <낙태(Abortion)>에서 그는 밧줄에 묶여 거꾸로 매달린 채 관객들에게 자전적 경험을 유행가와 섞어서 이야기하였다. 작가의 성정체성을 강조하고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주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옷을 벗은 여성이 관음증적 대상이 되는 상황을 역전시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과 폭력적 시선을 적나라하게 노출하였다. 

<수난유감-내가 봄날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줄 알아?(Sorry for suffering-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1990)에서 그는 천과 합성 고무로 제작한 의상을 입고 도쿄 시내를 배회하며 거리 퍼포먼스를 행하였다. 생물체의 피부와 같은 촉각성이 두드러진 이 의상은 동물의 촉수와 내부 장기 등과 흡사한 형태가 결합되어 괴물같은 신체를 형상화하였다. 여성의 신체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에 비해 가변성과 모호함이 두드러진다는 이유로 통일성이 결여되었다고 폄하되어 왔다. 이에 작가는 유기체적 특성이 부각된 괴물 의상을 입고 여성의 신체에 쏟아지는 편협한 시선에 도전하였다. 이러한 직설적인 화법의 퍼포먼스 작업은 1996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불은 신체, 피, 배설물 등으로 혐오감과 충격을 일으키는 애브젝트(abject)의 전략을 사용하거나 그로테스크한 외형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성차별적 인식에 저항하였다. 그가 제시한 ‘몸’은 사회적 억압이 가해지는 대상에서 부조리한 인식을 전복시키는 주체로 거듭났다.

이불은 1991년 물고기를 이용한 작품을 처음 발표한 이후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에 <화엄(Majestic Splendor)>을 출품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비즈와 시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생선을 방치하여 부패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썩어서 형체가 무너지고 체액이 흘러나온 생선과 그에 대비되는 인공적 장식물은 지독한 악취와 함께 강렬한 애브젝트 미학을 완성하며 육체의 유한성을 부각시켰다. 작가의 유년시절 어머니가 가내수공업으로 만들던 구슬백에서 착안한 장식 재료는 한국의 경제성장기에 희생된 여성의 값싼 노동력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이들을 바늘로 생선에 꿰는 행위는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유무형의 폭력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의 공예성과 유기체적인 특징, 후각과 통각을 자극하는 속성은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공고하게 유지되어 온 미술의 권위주의와 시각 중심주의를 무력화시켰다. 

이불은 초기작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과 신체의 물질성을 다루는데 집중하였는데, 이러한 주제의식은 서구에서 통용되는 아시아 여성들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1998년 발표한 <히드라(Hydra: Monument)>는 대형 비닐풍선에 화려한 의상을 걸친 작가의 모습을 프린트한 작품이다. 그의 머리 장식과 가운은 아시아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따르고 있지만 망사 스타킹과 부츠, 속옷 등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는 서구적 문화코드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동서양의 문화적 편린들이 혼종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도발적인 의상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작가의 팜므파탈적 이미지는 동양 여성을 순종적이고 유약하다고 여기는 서구인들의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

테크놀로지와 신체
1997년경부터 제작된 <사이보그(Cyborg)> 시리즈는 인간의 육체가 지닌 한계와 불완전성에 주목하여 미래의 신체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역사상 미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여성 이미지를 참조하여 성적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머리, 팔, 다리 등이 절단된 신체를 제시하여 조립이 가능한 기계적 속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이미지를 모티브로 하여 작품을 구상하였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들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강력한 존재면서 소녀의 얼굴과 성숙한 육체를 지니고 있어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부응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한편 이불의 사이보그는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기체와 기계를 결합한 미래적 인간상을 제시하는 포스트 휴먼 개념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그가 테크놀로지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진보에 대한 낙관보다는 기술의 완벽성에 대한 의구심과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공모를 우려하는 경계심이 얽혀 있다. 고도의 테크놀로지가 적용되었음에도 여전히 전통적 여성관의 틀에 갇힌 사이보그의 외형은 남성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주도하는 한 기존의 성 이데올로기가 건재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불이 <사이보그>와 함께 선보인 <몬스터(Monster)> 시리즈는 사이보그의 차갑고 기계적인 외형과 대비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 퍼포먼스에 사용되었던 유기체 형태의 의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내장기관, 촉수, 식물 뿌리 등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형태가 무한 증식하며 강력한 에너지와 욕망을 표출한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테크놀로지의 발전 과정에서 언제든 출현 가능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이보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어두운 공간에 매달린 사이보그의 불완전한 신체와 괴생물체를 연상시키는 몬스터의 강렬한 외형은 미지의 영역에 있는 혼성적 존재에 대한 매혹과 공포의 양가적 감정을 유발한다. 

이처럼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신체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하던 이불은 1999년부터 대표적인 대중문화 시설인 노래방을 이용하여 디지털 기술이 육체와 감각에 작용하는 매커니즘을 다루었다. 그는 작은 부스와 스포츠카 형태의 캡슐 내부에 일인용 노래방을 설치하고, 본인이 제작한 비디오 영상을 노래 가사와 함께 모니터에 내보냈다.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노래하는 관람자는 공적 공간에서 분리되어 노래와 관련된 사적인 기억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화면 속 이미지와 현실을 오가는 동안 노래방 내부는 가상의 디지털 세계로 전환된다. 이처럼 노래방 시리즈는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시공간에 개입하여 감정과 인식을 통제하고, 현실에서 채우지 못한 욕구를 가상세계에서 충족시켜주는 상황을 체험하게 한다. 이때 관람자가 선택한 노래와 무관하게 상영되는 화면 속 이미지는 안락하지만 허구적인 가상세계의 경험 이후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공허함과 실존적 불안을 일깨운다.

좌절된 유토피아의 흔적
2005년경부터 이불은 진보에 대한 담론을 주도했던 근대주의를 재조명하는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는 <나의 거대 서사(Mon Grand Récit)>라는 제목 하에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해 왔는데, 이는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대 서사의 종말’로 정의한데서 착안한 것이다. 작가는 총체성과 집단적 경험에 기반한 모더니즘의 거대 서사 대신, 한 점으로 수렴되지 않는 개인의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 역사를 재구축하려 하였다. 그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이상적 도시 모델을 구상했던 근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받아 특정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구조물과 파괴된 도시의 잔해 같은 풍경을 통해 근대 계획에 내재해 있는 부조리와 폭력성을 드러냈다. 

<태양의 도시 II(Civitas Solis II)>(2014)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토마소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가 17세기에 발표한 책과 동명의 작품으로, 그가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제안한 가상의 도시 형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불은 전시장 바닥과 벽면에 거울 조각들을 부착하고 구석에 여러 개의 LED 전구들을 설치하여 광활한 벌판 위에 세워진 도시의 불빛처럼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였다. 이들 거울에 왜곡되어 반사되는 이미지들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분절되어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밖에도 그는 외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한국 사회의 이면에 주목하여 고도성장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은유적 풍경이나 구체적 오브제를 통해 상기시키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들 작품은 유토피아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번번이 좌절되어 왔음을 환기시키는 한편, 완전하고 통일성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단일한 정체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억압하고 배제해 온 근대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불은 활동 초기부터 최근까지 작품의 주제와 조형적 측면에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노정을 걸어왔다.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언하던 초기 작업에 비해 후기로 갈수록 은유적 표현이 두드러지고 해석의 층위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진보와 완전함을 추구하며 달려가는 가운데 억압하고 주변화한 것들에 대한 성찰이 그것이다. 그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타성에 젖어 당연시해 온 사회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고,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제시하여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완전함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좌절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향한 꿈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불은 그 꿈에 매혹되면서도 그것에 내재되어 있는 배타성과 폭력성에 대해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오유진(1980~),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경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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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뮤지엄’은 1987년 고낙범, 노경애, 명혜경, 이불, 정승, 최정화, 홍성민 등 홍익대 미대 출신의 20대 작가 7명이 결성한 그룹이다. 일련의 전시회를 개최한 후 1990년 무렵 활동을 중단하였다.  




이불, <수난유감-내가 봄날 소풍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알아?>, 1990, 퍼포먼스 스틸 이미지,
사진제공 이불 스튜디오




이불, <사이보그 W5>, 1999, 플라스틱에 폴리우레탄 패널, 우레탄 코팅, 150×55×90cm,
사진제공 이불 스튜디오
 



이불, <몬스터>, 2011(1998년 작 복원), 직물, 솜,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 아크릴 물감, 210×210×180cm,
촬영 전병철, 사진제공 이불 스튜디오





이불, <태양의 도시 Ⅱ>, 2014-2015,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4: 이불》 전시 전경,
촬영 전병철,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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