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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자연에서 출발한 모성적 아우름의 미학: 방혜자의 다른 그림 | 윤난지

현대미술포럼





자연에서 출발한 모성적 아우름의 미학: 방혜자의 ‘다른’ 그림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추상미술 형성기인 1950년대 중엽부터 10여년의 역사는 주로 현대미술가협회 작가들 즉 남성 작가들의 실험 위주로 기술되어 왔다. 이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여성 작가 방혜자(1937∼)를 주목하는 것은 그가 남성들과 ‘다름없이’ 현대미술 실험에 동참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가를 주목하는 것은 그가 한편으로는 남성들과 ‘다른’ 태도와 방법을 구사하였으며 이런 ‘다름’이 한국 현대 미술사를 더욱 풍성한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다닌(1956∼1960) 방혜자는 김봉태, 윤명로, 김종학 등 이후 앵포르멜 미술운동의 중심인물이 되는 입학동기들과 교류하면서 일찍부터 새로운 미술조류를 접했다. 특히 스승 김병기 등이 이끈 현대미술연구소와 안국동의 서울현대미술연구소를 자주 드나들면서 추상미술과 같은 현대미술 최전방의 기류를 마음껏 흡입하였다. <서울풍경>(1958)이 그 증거로, 얼룩과 거친 붓 터치 등 추상적 요소들이 구상적 이미지들과 혼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추상 실험은 졸업 후 그린 그의 첫 추상작품 <대지의 한가운데 Ⅰ>(1961)로 이어지는데, 검은 색조가 지배하는 가운데, 황토색과 청색 계열의 색조가 섬광처럼 반짝이는 이 그림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방혜자 작품의 전형적인 색조의 시작을 알린다. 이 그림을 포함한 몇 점의 유화작품들로 이루어진 첫 개인전(1961년 2월, 서울국립도서관)은 전문적인 미술가로서의 그의 첫 걸음이었다. 

이 전시 직후인 1961년 3월 방혜자는 작품을 팔아 구입한 항공권으로 프랑스 파리 행을 단행한다. 이는 20세기 후반기에 전 지구적으로 보편화된 이산(離散, diaspora), 그 중에서도 문화적 이산의 한 증례다. 당시 프랑스로 간 다른 작가들처럼 방혜자도 미지의 예술을 체험하기 위해 떠났다. 예술을 “한없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는 항해” 1) 라고 말한 그에게 이주는 예술의 본성인 ‘미지의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실행하는 길이었다. 또한, 그에게 이주는 자국 문화를 확인하는, 그리고 자국과 타국 문화가 만난 제3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계기였다. 한지와 서양물감, 서예의 획과 추상형상이 만나는 그의 그림이 그 증거다. 파리에서의 본격적인 수업은 1963년 에꼴 데 보자르의 벽화공방에서 시작되는데, 3년간 지속된 이 수업기에 그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경험하게 된다. 콜라주 등 여러 기법을 사용한 이후의 작업이 이 시기 수업의 소산이다. 

1968년의 한국방문은 이후 8년간의 체류로 이어지는데, 이 때 열린 신세계화랑과 현대화랑개인전은 자신의 작업을 고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방혜자는 이 시기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한국 땅에서의 어머니 됨은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함축한다. 모국을 떠났던 디아스포라 주체가 자신의 아이를 통해 다시 모국에 뿌리박게 됨으로써 모든 정처 없는 영혼들을 대지의 품에 아우르는 모성의 근본을 환기한 것이다. 1976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작가는 그 후에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해오고 있으며, 2000년부터는 파리 14구의 작업실과 한국 영은미술관 작업실을 왕래하고 있다. 그의 전시 또한 한국과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세계 도시들로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의 삶을 통해 체질화된 디아스포라와 모성이라는 두 축이 작업을 통해 발현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형식과 내용, 재료와 기법에 있어서의 너른 포용성으로 드러난다. 형식적인 면에서 방혜자의 그림은 추상 형식과 구상 형상을 아우른다. 이는 그의 초기 그림부터 나타나는 특징으로, 풍경을 그린 그림에 추상적인 형상들과 터치들이 교차하는가하면, 첫 추상 작품이 석굴암을 그린 것이라는 작가 말처럼, 앵포르멜 추상화면에서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어두운 공간을 추적할 수도 있다. 

프랑스 체류 시기인 1960년대 중엽을 지나면서 방혜자의 화면은 점차 파스텔조의 밝고 투명한 색조로 변화하는데, 이는 작가의 여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단서이기도 하다. 남성 작가들의 작업과 흡사한 이전 작품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해야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경력 초기 입장을 대변한다면, 이 시기 작품들은 남성과 ‘다른’ 자신만의 감수성을 의식하고 이를 작업을 통해 구현하기 시작한 작가의 태도 변화를 드러낸다. 방혜자는 이 무렵부터 종이, 가죽, 헝겊, 연마지 같은 재료들을 오리거나 찢어 붙인 콜라주를 시도하는데, 이를 통해 다양한 색채와 형태들로 이루어진 추상 구성이자 모종의 풍경을 환기하는 구상화면을 만들어냈다. <무제>(1969)는 일종의 색면 추상이자 둥근 지붕이 보이는 마을 풍경이기도 하다. 한지를 사용한 <새로운 땅>(1978)은 익명의 형상들로 이루어진 앵포르멜 회화이자, 제목처럼, 너른 강이 굽이쳐 흐르는 들판에 구획된 경작지들이 펼쳐져 있는 풍경화이기도 하다. 

방혜자에게 추상은 구상의 대극이 아니라 그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사물을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외양을 초월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물의 있고 없음이 문제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는 사물의 잔재를 극단적으로 소거하고자한 모더니스트들과 다른 지점을 지향하며, 오히려 전통 동양화가들과 생각을 나눈다. 사물의 외형 너머의 세계를 그리고자 한 동양의 미술가들에게 그림은 애초부터 추상인 셈이다. 동양의 회화는 추상과 구상이라는 서구식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종류의 그림이며, 방혜자의 것도 이런 그림에 더 가깝다. 

방혜자가 콜라주에 즐겨 사용한 한지는 부드럽게 찢긴 윤곽선과 주름진 표면 등 앵포르멜 형상을 만들어내기에 적절한 재료가 되었다. 동양재료가 서구양식과 만난 것인데, 이는 또한 ‘빛’이라는 그의 필생의 주제를 이끌어내는 촉매제가 되었다. 한지에 스며든 얇은 물감 층과 그것들의 겹침 효과에서 작가는 투명한 빛의 세계를 시각화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재료의 물성을 통해 ‘빛’이라는 비물질적 세계를 드러내는 한지 콜라주들은 물질과 정신을 아우르는 방혜자 미학의 구현물인데, 특히 1987년부터 시작한 한지구김 기법(papier marouflé)은 이를 우주적 도상으로 재연한 예다. 그림 그린 한지를 구겨서 캔버스에 표구한 후 그 위에 또 다시 그림을 그리는 이 방법을 통해 그는 섬세한 구김효과와 흩뿌려진 물감자국들로 이루어진 우주적 풍경화를 만들어냈다. 이름 모를 풍경이 출몰하는 이 화면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왕래한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방혜자의 작업은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1980년대 말에 개발한 한지구김 기법과 지점토 기법(papier mâché)에 더하여 먹과 자연안료, 파스텔 등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하게 되면서 더욱 섬세한 질감과 미묘한 색감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즉흥적인 필치들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게 되는데, 이는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을 환기한다. 그러나 부드럽게 화면에 스며드는, 심지어 지점토의 주름을 따라 반복되는 그의 필치는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액션의 흔적처럼 공격적이지 않다. 물질의 특성에 조응하는 이 여성 작가의 손놀림은 주체의 의지에 따라 재료를 마음대로 부리는 추상표현주의의 남성적 미학을 비껴간 지점을 보여준다.   

한지의 주름과 그 사이로 스며든 먹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효과의 그림들을 작가는 특히 ‘극미세계’ 시리즈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미시적이자 거시적 세계인 우주의 표상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위나 시냇물, 바다 등 자연의 형상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는 않는다. <대지의 숨결>과 <바다의 숨결>(1995) 같은 한 쌍의 작품처럼, 방혜자의 작품은 추상적인 형태와 색채의 배열이자 황토 빛 대지와 푸른 빛 바다를 그린 풍경화다. 

한지 콜라주와 구김 작업, 지점토 작업은 주류미술사에서 소외된 영역을 품어 가는 작가의 태도가 재료와 기법을 통해서 드러난 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화면에 배어 있는 섬세한 손길, 즉 미묘한 톤으로 물감을 덧 발라간 붓질의 흔적들, 균일함과 우연성을 조심스럽게 넘나드는 얼룩들, 규칙적으로 그러나 조금씩 다르게 접힌 자국들과 갈라진 틈들에서 수공을 아끼는 작가의 감수성을 추적할 수 있다. 회화와 같은 주류매체 속에 공예 기법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그의 작업은 고도의 정신적 성찰과 치밀한 수공적 공정이 만나는 지점을 드러낸다. 

방혜자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결국 자연이다. ‘숨결’이라는 말이 제목으로 명시된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의 모든 작업은 살아 있는 자연의 호흡을 구현한 것이다. <숨결들>(1995)에서처럼, 그의 그림에서 숨결 즉 생명력은 주로 세포 같은 형태가 분열하거나 미생물 같은 형태들이 꿈틀대는 모습으로 시각화된다. 1990년대 말을 지나면서 그의 화면은 더욱 균질화되면서 생명의 고동을 환기하는 규칙적인 운율을 함축하게 되었다. 여기서 화면은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고 작가는 물감을 빚어 그것을 만들어내는 모체가 된다. 

이런 자연의 표상으로서의 미술을 더욱 독려한 것이 1996년에 작가가 남프랑스에서 발견한 황토분이다. 그는 황토로 이루어진 루시용의 대지에서 자연의 기운을 체험하게 되고 이를 재료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석채, 식물염료 등 다른 자연 안료들도 적극 사용하게 된다. 그의 그림에 출몰하는 풍경의 흔적들이 자연의 형상을 암시하고 추상화된 반복적 패턴들이 자연의 움직임을 시각화한다면, 흙 등 자연 안료를 바른 화면은 자연 그 자체를 드러낸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원천은 대지라는 의식이 깃든 그의 흙 그림은 생명을 잉태한 모성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모자상보다도 강력한 모성의 표상이다.  

이처럼 방혜자의 평생 작업을 이끌어 온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을 품어가는 관용과 화해의 원리다. 추상과 구상, 정신과 물질, 주류와 주변, 동양과 서양 등 모든 종류의 이분법을 벗어난 그의 화면은 ‘자연’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대한 적절한 표상이다. 서로 다른 문화들을 오가는 디아스포라 경험과 모든 것을 품는 모성의 체험이 이러한 아우름의 미학으로 발현된 것인데, 이는 추상 형식이라는 목표에 배치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배제해온 당대 주류미술의 순수주의 미학과 ‘다른’ 지점을 드러낸다. 이런 그의 ‘다른’ 그림을 주목하는 것은 주류에서 배제된 것들을 아우르는 그리고 이를 통해 더욱 풍성한 미술사를 구성하는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윤난지(1953∼),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2019), 현재 현대미술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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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혜자, 「떠나가는 배」, 『마음의 침묵』, 2001, 여백, p. 56.






방혜자, <대지의 한가운데 Ⅰ>, 1961, 캔버스에 유채, 100×81cm




방혜자, <무제>, 1969, 캔버스에 유채, 연마지, 가죽 콜라주, 65×91cm 




방혜자, <새로운 땅>, 1978, 캔버스에 유채, 한지 콜라주, 116×89cm




좌) 방혜자, <대지의 숨결>, 1995, 캔버스에 구긴 한지, 먹, 아크릴, 파스텔, 자연안료, 260×180cm
우) 방혜자, <바다의 숨결>, 1995, 캔버스에 구긴 한지, 먹, 아크릴, 파스텔, 자연안료, 260×180cm




방혜자, <대지-하늘>, 1996, 종이에 루시용 흙, 먹, 파스텔, 자연안료, 127×8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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