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7)오경화의 ‘비디오’: 새로운 매체를 통해 바라본 사회와 여성 | 이설희

현대미술포럼





오경화의 ‘비디오’: 새로운 매체를 통해 바라본 사회와 여성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모더니즘 시기를 거쳐 1980년대 현실주의(realism)를 지향한 미술, 1990년대 전후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로 언급되는 기간 동안 시대의식을 반영한 주제와 더불어 다양한 매체의 변용과 실험은 한국 현대미술의 특징을 창출하는 기제가 되었다. 이 폭넓은 시기에 활동을 한 여성 작가 오경화(1960∼)를 주목하는 것은 한국에서 비디오아트를 처음 선보인 여성 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의 주제와 매체에만 천착하지 않고 이 모두를 자유롭게 다루며, 특정 시기 안에서 고착화된 한국 미술사의 해석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경화는 1982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4년 프랑스로 유학을 가기 전 민중미술 그룹인 ‘두렁’의 동인으로 활동을 했다 1) . 1980년대 초 한국 사회는 유신 체제의 종말 이 후 신군부 세력이 득세하는 혼란스러운 정국을 거치고 있었는데, 미술 또한 이러한 격동의 분위기에서 무관할 수 없었다. 사회의 현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한 채 미술 내부의 문제에만 머물러 있었던 기존의 미술로부터, 미술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탄생한 1980년대 민중미술 그룹은 당대 한국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미술의 사회적 맥락을 밝히면서 그 역할을 모색했다. 1982년 결성된 소그룹 ‘두렁’이 일례로, 이들은 협동 창작론과 공동체 신명을 목표로 “삶을 위한 미술”을 지향했다. ‘두렁’의 구성원이었던 오경화는 《미술동인 ‘두렁’ 창립예정전》(1983, 애오개소극장), 《미술동인 두렁 창립전》(1984) 등에 참여하여 그룹의 창립 취지에 따라 공동벽화, 걸개그림, 출판물을 함께 제작했는데, 벽화 <만상천화(萬像千畵)Ⅰ>(1981)와 그림책인 『산 그림』(1983)이 그 대표적 결과물이다.

‘두렁’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오경화는 미술에서의 매체를 소개하고 양식을 실험하는 전시에도 빈번히 초청되었다. 제3미술관에서 열린 두 번의 전시 《제2회 424 실험전:  빛과 object》(1983), 《제3회 424 실험전: 물-감성적 전이》(1984)와 청년미술관에서 개최했던 《84·한지의 작업전》(1984)이 그 증거로, 이는 예술 활동에 있어서 한 진영에만 속하지 않고 다변화하는 현대미술의 기류를 학습하고자 한 그의 태도를 엿보게 한다. 다양한 매체에 대한 관심과 이를 탐구하며 체득하는 경험은 이후 유학시절 작가가 당시 테크놀로지 최전선의 매체였던 비디오를 자유롭게 수용하는 실험정신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다.

대학 졸업 후 국내에서 3년 정도의 활동을 이어나가던 오경화는 1984년 파리 행을 단행한다. “집단적인 성향이 강했던 [1980년대 미술의] 그런 분위기가 사실은 숨이 막혔다 2) ”라고 회고하는 그에게 유학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향한 열망을 새로운 환경 속에서 실행하는 길이었다. 당시 파리에서 성행했던 미디어아트는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고 영화를 좋아했던 오경화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 접할 수 없었던 뉴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예술의 모습이 그에게 기술 매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종류의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는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그래픽, 멀티 슬라이드, 멀티비전 기법 등을 활용한 영상 작업을 시도했다. 오경화에게 미디어 작업은 당시 한국 미술계를 풍미했던 모더니즘의 대안적 언어로 포스트모던적인 입장을 견지함에 따른 소산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미디어가 대중매체라는 점은 그의 작업에 중요한 메커니즘이 되었다. 작가는 매스미디어가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 수단이므로 회화보다 영상 매체로 표현하는 작업의 위력이 훨씬 강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1986년 프랑스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한 오경화는 1988년 수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한국에서 영상 작업으로 처음 선보였던 <별이 된 친구를 위하여>는 10분가량의 비디오 설치인데, 납북 후 생사를 모르는 작가의 외할아버지와 얽힌 한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기본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이 화면은 특별한 기술상의 조작 없이 고전적인 수법으로 내러티브가 전개되는 모습이었다. 같은 해 두 번째 개인전은 여성 비디오 작가로서 오경화를 주목하고, 그의 작업을 한국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바탕골미술관 야외 전시장에서 열린 《비디오 통일굿》(1988)에서 작가는 공간을 서낭당 형식으로 설치하고 미디어와 퍼포먼스 중심의 전시를 구성했다. 여러 층으로 쌓인 29대의 모니터와 제사상, 미술관 옥상에 걸린 흰 광목줄과 그 사이 매달린 울긋불긋한 헝겊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전시 첫날에는 무당이 통일 바램굿을 재연하며 한판의 굿 잔치를 벌였는데, 이는 일종의 비디오 이벤트나 다름없었다. 

《비디오 통일굿》을 관통하는 주제는 민족의 분단과 통일이다. 아날로그 모니터에 상영된 <저 들녘에 불었던 바람>(1988)은 8/15 해방, 이산가족찾기와 같은 핵심적 사건 기록물이 만신 김금화의 굿 장면, 무언극의 화면과 몽타주 된 비디오 작업이다. 전시의 내용과 작품을 시각화한 양식 모두에서 한국 전통문화, 근현대사, 대중매체를 한데 어우른 오경화의 대담성과 실험성을 추적할 수 있다. 전통 무속신앙인 굿을 통해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통일을 기원하는 사설을 풀어낸 점과 영상, 사운드,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가 결합되어 드러난 종합예술의 한 양상이 그것이다. 이는 이미지만을 생산하는 소비·유희적 유형의 비디오 작품과 구별되는 지점으로, 특히 비디오 매체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가져왔다. 

오경화는 당시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작품 혹은 소위 ‘신세대’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에 여성작가로서 대부분 초대된다. 《Art Video Show in Seoul》(1988, 제3갤러리), 《미술과 테크놀로지》(1991,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젊은 모색 ‘92》(1992, 국립현대미술관), 《과학+예술》(1992, COEX), 《매체<문화<미술》(1993, 코아트갤러리) 등이 그 예다. 특히 《젊은 시각 - 내일에의 제안》(1990)전에 출품한 <하늘, 땅, 사람들>(1990)은 멀티비전을 이용해 제작된 영상으로, 미디어를 통해 시공간의 교차를 경험할 수 있는 차별적인 접근을 보여주었다. 16대의 모니터가 송출하는 영상은 총 3부로 구성되는데, 1부 ‘땅’에서는 해방 후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2부 ‘사람들’은 1980년대 정치, 사회적 사건들과 대중문화를, 마지막 3부 ‘하늘’은 한국의 자연에 대한 영상이 주를 이룬다. 현실과 사회, 자연을 기록한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상 위에 상징적인 그래픽 이미지와 여성 무용수의 퍼포먼스가 삽입되며, 아울러 예술가의 모습을 은유하는 마임이 덧씌워지는 장면이 보인다. 다큐멘터리적 요소와 작가가 가공한 이미지들이 극의 흐름에 따라 서로 합성, 충돌하게 된다. 특히, 멀티비전 방식의 연출은 다른 시간대에 일어났던 한국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화면에서 합치고 분할시키며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효과를 배가시킨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경화의 작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이전 작업이 현실과 사회를 화두로 한국 현대사의 기록 영상과 텔레비전 광고, 뮤직비디오, 영화 등을 적극 차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면, 1990년대 초중반부터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탐구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말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한국에서는 냉전의 종식에 따른 사회주의 몰락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완화되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다방면에서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해체되었다. 미술계 역시 세계 미술계의 동시대적인 흐름에 합류하게 되었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초래한 매체의 획기적인 변환기를 맞고 있었다. 특히 이 시기 활동했던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제도적 권위보다도 자신들을 둘러싼 일상적 상황에 반응하며 매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특징을 보였다. 오경화 역시 당시 전반적으로 경직되어 있던 사회가 완화되는 분위기를 체화하여,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본인의 성향들이 작품에 표출되었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로 1990년대 초중반부터 그의 작업에 여성주의 시각을 반영한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매체<문화<미술》(1993) 전시에 출품한 <고백>은 섹시 아이콘 마돈나의 화보집에서 가져온 사진을 참조하여 여성의 이미지를 촬영하고 컴퓨터로 편집, 연출한 작업이다. 대중매체에 나타나는 여성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에서 오경화는 사회에서 통용, 소비되는 여성으로서의 ‘성(性)’ 이미지, 즉 이데올로기나 제도와 관습에 의해 고착화되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그는 대중문화 속 에로티시즘 같은 경향을 바탕으로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와 내면, 성적 욕망을 드러낸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일례로, 한 영상 작품에 등장하는 화장 중인 작가의 모습은 여성으로서의 작가 오경화를 보여준다. 일종의 여성 내면을 보여주는 셈인데, 그는 아름다움을 향한 꾸밈 행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여성이기 때문에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지점이 수치스러움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2002년 일민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디바 오디세이》는 신화 속의 여성을 다룬 전시였다. 오경화는 이 전시에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나-인간-여성을 형성해왔던 그 속내와 겉껍질-정서-욕망, 조건들을 성(性), 에로티시즘,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표현 3) ”하고자 했다. 그가 여신을 주제로 다룬 이유는 주체적인 여성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여성이 부각되는 신화가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여신 헤라처럼 회자되지 못하는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경화는 신라시대 박제상(朴提上)의 저서 『부도지』에 나오는 여신 마고를 전시의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마고는 만물과 인류의 창조, 생산을 관장하는 최초의 여신이다. 작가는 의상과 소품, 문신 등을 통한 연출로 이 여신을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여배우처럼 변모시켰다. 설화 속 여신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이 전시에서 작가는 단군신화와 같이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공고하게 유지되어 온 권위주의를 무력화시키고, 영화적 연출 및 퍼포먼스를 통해 고착화된 기존 미술의 시각 중심주의를 부정하고자 한 것이다. 

오경화는 1980년대 활동 초기부터 2002년 마지막 개인전까지 작품의 주제와 매체적 측면에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노정을 걸어왔다. 초기 영상 설치에 보이는 굿, 통일 등과 같은 소재들은 유학 전 작가가 두렁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체득했던 전통미학과 민족미술의 요소들이다. 이들이 그가 유학 시절 실험했던 영상 매체와 결합되어 주제, 양식적으로 시대에 대응하는 결과물이 양산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한 과정에서 오경화의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일관적으로 유지되었는데, 대중의 의식을 조장하는 대중매체의 역할에 주목한 매체논의와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성찰이 그것이다. 여성 미디어 작가로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다름’을 ‘새로움’으로 수용하여 변화를 지속했던 그의 작업은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맥락 안에서 다양한 미술사를 구성하는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이설희(1987∼),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전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장/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독립 큐레이터




ㅡㅡㅡㅡㅡ
1)  두렁의 참여 작가는 김봉준(김상민), 김양호, 김준호(김주형), 오경화, 이기연, 이선형, 이연수, 장진영, 대표는 김봉준이었다. 

2)  강미경, 장현정 저, 『한국 미디어아트의 흐름』, 북코리아, 2020, p. 219.

3)  《젊은 시각 08 오경화, diva odyssey》 전시도록, 2002, 일민미술관, p. 6.





오경화, 《비디오 통일굿》 전시 전경, 1988, TV 29대, 돌, 광목천 등, 바탕골미술관 야외 전시장


 

오경화, <하늘, 땅, 사람들>, 1990, TV 16대, 200×250cm, 비디오&컴퓨터 그래픽, 컬러, 사운드, 28분




오경화, <女神列事 - 첫 번째 이야기: 마고>, 2002, 비디오, 컬러, 사운드, 4분 4초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