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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에 담겨진 숭고한 아름다움, 조숙진 | 박영란

현대미술포럼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에 담겨진 숭고한 아름다움, 조숙진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숙진(1960∼)은 낡고 버려진 폐품을 모아 시간을 불어 넣는 작업을 시도하는 작가이다. 그는 1985년부터 드로잉, 콜라주,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설치, 공공미술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미국, 유럽, 아시아, 남미 등 세계각지에 50여점의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설치하였고, 웨스트 버지니아 헌팅턴 미술관(Huntington Museum of Art), 서울 아르코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폴란드 우치 비엔날레(Lodz Biennale), 광주비엔날레 등 여러 국제 비엔날레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선보여온 다양한 그의 작업은 표현적이며 건축적이고 동시에 미니멀하기도 하며 회화적이다. 이와 같이 상반되어 복합적인 양상을 망라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조숙진은 대학원에 입학하여 회화를 배웠다. 당시 교수진들은 대부분 1970년대 이래 한국 화단을 풍미했던 단색화 작가들이었다. 재료의 물성과 행위의 반복성이 강조되던 수업 분위기 속에서도 조숙진은 캔버스 대신 합판을 소재로 선택하였고, 이후 작가는 줄곧 나무를 소재로 작업을 하게 된다. 1985년 첫 개인전 《저 너머》에서 그는 합판에 유화물감으로 채색한 작업들을 선보이면서 미술계에 주목을 받았다. 조숙진은 《에꼴 드 서울》, 《프론티어》전 등의 그룹전에도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1988년 보다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치고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는 첫 개인전에서부터 대부분 무위자연이라는 제목아래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였는데, 합판에 동양화를 그려놓은 듯한 이 시리즈는 자연스러운 소재와 표현양식에 몰두하면서도 물질적인 세계 너머의 무엇을 탐색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긴 작업이다. 조숙진은 날카로운 합판의 가장자리를 다듬고 나무의 결처럼 합판이 지닌 고유한 물성을 살리면서 일종의 자화상과도 같은 그림을 그려 나갔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생활의 역경 속에서 작가는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스스로 물질 너머에 있을 무엇을 찾고자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조숙진이 주로 선택한 나무는 물질성이 두드러진 재료이나, 그의 작업이 물질성을 넘어선 감흥을 불러오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의 의도에서 기인한다. 작가는 나무나 철판, 못과 같은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하면서도 재료들을 덧붙이며 다듬고, 채색하며 생명의 흔적을 담아낸다. 뉴욕의 거리를 다니면서 그가 직접 주워 모은 폐품들은 각기 다른 시간과 기억을 내포하며, 각각의 감흥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작가의 직관을 더해 새롭게 변모된다. 물질세계와 그 너머를 향한 조숙진의 관심은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삶과 죽음의 공간 사이>(1995), <천국을 향한 창문은 열려있다>(1995), <존재와 비존재는 서로 창조한다>(2000), <우리는 모두 하나다>(2000) 등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버려진 재료들과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하는 그의 작업방식은 아르테 포베라로 대표되는 서구 작가들의 방식과는 구별된다. 나무의 창틀이나 문짝, 망가진 폐품과 다양한 오브제로 이루어진 조숙진의 작업은 구체적인 어떤 형상과 연결되지 않는 매우 미니멀한 형식을 보이지만, 각각의 재료를 다루는 제작방식은 물질을 통해 때로는 영적인 감흥을 일으키리만큼 풍부한 표현성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 용도를 다한 폐기된 사물이 그의 작업에 이르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비석풍경-존재는 비존재로부터 태어난다>(1998∼2000)는 작가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달리는 차안에서 바라 본 묘지풍경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당시 깊은 인상을 받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조숙진은 각기 다른 두꺼운 나무를 모아 채색하고 다듬어, 길이, 모양, 색채를 다르게 하여 똑같은 조각하나 없이 각기 다른 나무판을 만들고 그것들을 금속으로 이어 붙였다.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버려진 재료들, 죽은 듯이 쓰임을 다한 물건에 새롭게 생명을 더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부제인 존재는 비존재로부터 태어난다는 죽음을 통해 사라지는 비존재와 존재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나무는 재료 자체가 삶과 죽음을 내포한다. 생명을 지닌 나무가 쓰임을 위해 생명력을 잃게되고, 마침내 용도마저 잃게 되어, 쓰임을 다하면 버려지지만 작가의 손에 의해 다시금 생명력을 얻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조숙진이 2004년 폴란드에서 선보인 <건설 중>은 나무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이다. 그는 2001년에 브라질에서 맹그로브 나무를 처음 접하고, 뻗어나가는 뿌리와 줄기에 충격을 받아 드로잉 했던 것을 작업으로 구현한 것이다. 공간 전체를 각기 다른 나무로 바닥부터 천정까지 가득 들어서게 한 이 작업은 거대하게 엉켜있는 맹그로브 숲에서 경험한 생명력을 연상시킨다. 망가진 가구에서 잘라낸 나무, 부러지고 생명이 다한 나무를 모아 겹치고 반복한 이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다.

삶과 죽음, 시간과 기억을 넘나드는 충만한 아름다움은 폐목이 아닌 다채로운 철판작업에도 이어진다. <숨바꼭질>(2020)은 원래 1999년 뉴욕시 소크라테스 조각공원에 설치했던 <삶의 색채>를 개작한 작업으로, 작가가 의도했던 것은 어린이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는 놀이공간이자 사색의 공간이다. 1990년대 중반 세기말을 앞두고 죽음에 대해 몰두하던 조숙진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에 희망을 형상화한 원형을 꿈에서 접하고, 이에 영감을 받아 원통을 쌓아올린 작업 <삶의 색채>를 선보였다. 밀폐된 내부공간의 경험은 관속의 경험과 같이 조용하고 소외되지만 외부의 덩어리 공간은 시끌벅적하고 서로 연결되어있다. 마치 죽음을 쌓아 올린 듯한 원통은 많은 사람들이 같이 내부로 들어가 사색하기도하고 안팎을 넘나들며 뛰어놀기도 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어, 개개인이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면서 동시에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공동체적 경험을 하게 한다.

삶과 죽음을 구분 짓지 않는 조숙진의 이 같은 행보는 사진이나 미디어 작업에도 이어지는데, 2021년 제주에서 전시 중인 음향설치와 비디오가 어우러진 <목격자 Ⅱ>에서도 엿보인다. 본래 이 작품은 2017년 스위스 아라우에 있는 포름 쉴러츠플라츠(Forum Scjlossplatz)에 선보였던 작품을 다시 개작한 작업이다. 자연에 숨 쉬는 나무는 수 만년 인간의 고난과 영화를 지켜본 목격자인 자연을 표상한다. 작가는 야외공원에 빗소리, 바람소기, 새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총탄과 포탄소리 등을 담은 사운드 작업을 설치하고, 작업을 따라 자연스레 영상작업을 감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수많은 시간을 걸쳐 생로병사의 기쁨과 애환과 함께 해온 자연은 목격자이면서 지나간 시간 속 수없이 많은 존재를 기억해내도록 이끌고 있다. 이처럼 회화에서 조각, 미디어,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과정은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에 담겨진 숭고한 아름다움을 일깨우고자하는 노력이며, 초월적 실재를 담아내려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박영란(1967∼),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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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진, <비석풍경-존재는 비존재로부터 태어난다>, 1998∼2000, 
나무, 금속막대, 유채, 183 x 549 x 46 cm 




조숙진, <삶의 색채>, 70 드럼통, 스틸 튜브, 페인트, 혼합재료, 176 x 465 x 325 cm, 창원 용지공원



조숙진, <숨바꼭질>, 2020, 드럼통에 채색, 철판 지침대, 볼트,  220 x 660 x 237cm,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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