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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물질과 정신의 ‘균열’ 너머, 안성금 | 임은우

현대미술포럼





물질과 정신의 ‘균열’ 너머, 안성금





안성금(1958∼)은 1980년대부터 수묵과 오브제, 회화와 설치를 오가는 특유의 조형세계를 구축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사에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매체를 다변화하여 인간 본연의 정신세계와 현실의 모순을 담아낸 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종교 경전을 많이 읽은 그는 특히 불교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1978년에는 비구니가 되고자 방랑했으나 결국 속세와 단절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작업은 삶의 고뇌를 종교가 아닌 예술로 발현하고 승화하는 것이었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안성금은 스승인 송수남(1938∼2013)을 중심으로 하는 ‘수묵화 운동’에 동참하였다.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수묵전》을 전후로 한국화단에는 수묵화 그룹전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안성금 역시 《한국화 오늘의 상황전》(1982∼1983), 《수묵의 현상전》(1983), 《한국현대수묵전》(1984) 등의 전시에 참여하며 수묵화단의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수묵화 운동에 참여한 작가들은 대부분 남성 화가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중 안성금은 여성 작가로서 손꼽히는 경우였다. 1980년대 수묵화 운동은 동양화의 본래의 정신을 추구하였는데, 그런 점에서 수묵의 현대적 조형성을 실험한 1960년대 묵림회의 수묵화 부흥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먹이라는 재료가 갖는 성질에 주목하면서도 정신성을 구현하고자 했던 당대 수묵화단의 흐름 속에서 안성금은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모색해 나갔다. 

1980년대 초기에 그는 수묵의 즉각적인 필치로 고뇌하는 인물상을 그렸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수묵인물화의 새로운 양식을 알렸다. 그는 주로 광목 위에 얼굴 또는 손의 주름을 강조하였다. 화면의 여백을 선염함으로써 소재를 드러내기도 했다. 광목의 거친 재질과 먹의 기법이 어우러지면서 그의 그림은 인간 본연의 정신세계를 강렬하고도 진솔하게 담아냈다. 그의 화면에 나타나는 얼굴은 승려, 노인, 죄수 등으로, 실존적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안성금의 인물상은 사회 현실의 고뇌를 담아낸 당대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한국 근·현대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한 1980년대 민중미술의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우리들의 시대>(1985) 연작에서 목이 잘린 군상을 그림으로써 정치적으로 희생당한 민중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그림은 형식적으로도 민중미술의 특징을 나타낸다. 1984년 작품 <사람들 I, II>과 <오한>은 광목의 걸개그림 형식을 사용한 것이고, <인간을 위하여>(1983∼1985) 연작은 화면에 ‘For Human’과 같은 인본주의적 문구를 배치하여 선전 포스터의 형식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다만, 사회 변혁적인 민중미술과는 달리,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암울한 현실 너머 인간의 내면세계에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성금은 1980년대의 수묵화운동과 민중미술의 양상을 동시에 나타내는 유일한 작가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미술사에 독특한 획을 그은 것이다. 

1985년 두손갤러리의 안성금 초대 개인전은 그의 작업 전반의 행보를 암시한다. 이 전시에서 그는 이후 작업의 지속적인 모티브가 되는 ‘부처’와 ‘소리’에 관한 작품을 선보였다. 1984년부터 그의 작업은 회화와 설치 장르를 오갔으며 한 작품에서 먹과 오브제를 혼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선, <불(佛)의 이미지>(1984∼1985) 연작에서 그는 불상을 제작하여 천이나 종이로 감싸기도 하고 밧줄로 묶기도 하고 그 위에 먹을 쏟아 붓기도 했다. 혹은, 불두를 깨뜨리기도 했다. 또한, 종이 악보 위에 얼굴을 채워 그리기도 했는데, <고향의 봄>(1985), <세상은 하나>(1985)와 같은 작품이 그 예다. 여기에서 악보는 일종의 오브제로서, ‘소리(音)’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이후의 작업에 대한 단서가 된다. 그에게 소리란 관세음(觀世音)의 ‘음’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번뇌의 호소이자 해소를 상징하는 그 소리는 청각의 물리적 작용을 넘어서는 내면의 울림과 같다. 그는 소리라는 소재를 통해 육안이 아닌 심안의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그가 주목한 부처의 형상과 소리의 감각은 모두 인체의 소산인데, 그는 정신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몸에 주목하고 있었다. 부처든 소리든 결국 몸에 깃든 정신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이 두 소재는 그의 작품에서 다르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한편 1985년 <해변의 불(佛) 이미지>는 불상을 파괴하여 바닷가에 배치한 그의 퍼포먼스 결과물이다. 그 일련의 작업 중에서 좌우로 절단한 불상은 안성금의 이후 설치 작업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불상 형식의 시작을 알린다. 그는 불상이라는 이른바 성물을 과감히 훼손함으로써 낯선 충격을 전달한다. 그가 불상을 파괴하는 행위는 형상에 매어있는 마음을 넘어서기 위해 극대화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는 불상의 ‘온전한’ 형상에 ‘불완전한’ 균열을 일으킴으로써 그것이 실상 부처가 아니라 그저 물질임을 증명한다. 물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과 집착을 깨고, 그 안에 매몰된 자아를 깨우기 위함이다. 그의 행위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임제록(臨濟錄)>의 구절처럼 대상에 속박되지 않아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옛 선사의 뜻을 일깨운다. 깨진 불상은 해변에 놓임으로써, 실체 없이 흘러가고 변화하는 모든 현상의 속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고통 또한 그 실체가 없음을 직시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역설의 세계, 고해(苦海)를 환기한다.

안성금은 1986∼1997년에 파리에 머물면서 활동 범위를 국제적으로 넓혀 나갔다. 1990년대에 프랑스에 체류한 한인 미술가들은 비교적 다국적으로 활동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안성금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1988년 베를린의 카를로스 훌쉬(Carlos Hulsch) 갤러리를 통해 유럽화단에 전시를 선보인 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일본 그리고 한국을 오가며 초대 개인전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때 주로 회화의 영역에 머물고 있었던 다른 재불 작가들과 달리 안성금은 평면과 입체 형식을 아우르는 조형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는 불상, 불경, 만다라, 스투파와 같은 불교 도상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불교 사상을 형상화함으로써 동양적 세계관을 현대적인 조형예술로 구현하였다.

그는 1988년에 수묵화의 추상 형식을 확대해 갔고, 1989∼1990년에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의 장르를 아우르며 매체를 확장해 갔다. 1988년의 그림 <From Sound and Circle>, <Figuration of Sound - 19 Pieces of Music>에서는 자연의 형상이 남아있었는데, 1989년의 <소리의 비전>에서는 원형으로 환원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이처럼 다변화하는 원의 형상은 우주의 순환과 윤회의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다. 안성금은 회화뿐 아니라 <Touch for Sound>(1989∼1990)와 같은 퍼포먼스에서도 악보나 불경을 캔버스 전면에 콜라주하여 그 위에 먹의 강렬한 필치로 크고 작은 원형을 그려 넣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의 일련의 ‘소리(Sound)’ 작업은 내면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으로, 그는 태생적으로 추상성을 갖는 청각의 작용을 구체적인 시각의 산물로 치환하였다. 화면마다 규칙성과 불규칙성을 오가는 먹의 배치는 리듬감을 만들어 내며 두 감각을 역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그의 필치는 음악 또는 염불의 이미지에 함축된 서사적인 흐름을 단절시킴으로써 일종의 균열을 만들어 낸다. 이 균열의 지점에서 시각과 청각, 공간과 시간, 소리와 정적, 공허와 충만 등의 대응관계가 중첩되며 만물의 상호의존 원리가 공명한다. 

1993∼1996년에 안성금은 <부처의 소리> 연작을 중심으로 설치의 형식을 다변화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이원적인 형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993년, 그는 아래로 긴 캔버스 천에 실크스크린으로 불경을 찍어낸 뒤 그것을 바닥까지 늘어뜨려 걸었다. 수직과 수평의 배치를 선보인 것이다. 1994년에는 대리석과 청동,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한 뼘 정도의 불상 108개를 바닥에 넓게 설치하였다. 그는 불상을 이등분할 뿐 아니라 흑백으로 채색하기도 했다. 또한, 1995년 광주비엔날레 출품 연작 <우리는 모두 불구자다>에서는 인물의 얼굴을 이등분하여 절반은 해골 형상으로 나타냈다. 어떤 경우에는 얼굴과 해골의 채색을 달리하여 이원 구도를 강조하였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흑과 백, 삶과 죽음, 육신과 영혼, 물질과 정신 등 대응관계의 두 축이 교차하는 현장인데, 그 관계는 대립적인 동시에 보완적이다. 

한편 안성금이 절단한 불상은 간극 사이에 여백을 만들어 낸다. 물질과 허공의 경계를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허공을 대하는 관람 주체의 시선에 의해 완성된다. 관람자는 위치에 따라 불상의 틈 사이로 다른 각도의 풍경을 마주한다. 또는 그 틈 사이에 앉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는 대상의 가변적인 속성과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의 태도를 일깨운다. 끊임없는 변칙 속에서 중도(中道)를 향하는 그의 작품은 진리의 현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자기 안에서 신을 구하고 온전한 우주를 발견하는 동양적 세계관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처럼 안성금의 예술세계를 발현하는 주요 매개체는 몸이다. <우리는 모두 불구자다>(1995)의 일부에서 그는 달러 지폐 이미지로 도배한 방을 만들고, 그 주변에 절단한 마네킹의 몸, 의족과 의수 등을 설치하였다. 불구의 몸 이미지를 통해 육신의 결함 문제가 아닌 물질에 천착하는 정신적 불구 상태를 지적한 것이다. 그는 1980년대 초기 작업에서부터 얼굴, 몸통, 팔다리 등 신체의 일부 이미지에 주목하는 페티시(fetish)의 형식을 사용하였다. 그의 작품은 신체 특정 부위에 천착하는 페티시의 형식을 통해 물성을 숭배하는 페티시의 의미를 거부하는 셈이다. 이와 같이 페티시의 형식과 의미가 충돌하는 모순의 작업을 통해 그는 물성 너머의 정신성을 들춰낸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에서 물성을 드러내는 것은 정신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그가 1994년의 작업에서 쌀을 전시장 바닥에 배치하는 오브제로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을 들여 거둬들이고 수많은 생명을 키워내는 몸과 마음의 양식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는 <예수, 부처, 이름 없는 성인들께 바침>(1994)이라는 제목으로 관람객에게 몇 톨의 쌀을 담아 건네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는데, 이것을 물질적 교류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또 다른 사례인 <12·12>(1996)는 바닥에 나선형의 철판을 깔고 마이크를 설치하여 관람객이 걸을 때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물리적인 소리를 통해 철판의 물성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관람객은 나선형의 공간에서 그것이 상징하는 윤회의 시간을 환기함으로써 감각과 시공간의 물질세계를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의식할 수 있다. 

안성금은 1990년대 중반부터 <12·12>(1996), <신앙이 된 돈>(1999), <자본이 된 공기>(1999)와 같은 작품에서 정치·경제적 모티브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화>(2000), <전시중(戰時中)>(2001), <욱일기>(2003), <반제국주의>(2004) 등의 작품에서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냈다. 물질만능주의, 패권주의, 이념의 대립 등, 그의 작품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결국 권력 구도를 만들어 내는 서구식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이원성의 불균형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그의 2000년대 작업은 이전의 양상과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변화하는 우주 속에서 균열과 모순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안성금의 작품에서 균열의 의미는 서구의 변증법적 원리와는 달리, 서로 다른 두 축을 대립이 아닌 상생 관계로 만드는 포용성에 있다. 그 포용성은 동양적 세계관의 발현이자 여성의 정체성을 넘어선 그의 인간 주체성의 소산이다. 결국, 모순이 혼재하는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가 우주의 온전한 형태이자 진실이라는 것을 안성금은 보여준다. 



임은우(1983∼),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세종문화회관 전시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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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금, <오한>, 1984, 광목에 수묵, 270×150cm(3), 국립현대미술관




안성금, <소리의 비전>, 1990, 캔버스에 아크릴, 146×200cm(3), 국립현대미술관




안성금, <부처의 소리>, 1996, 청동, 대리석, 화강석, 
大: 200.5×80×115cm(2), 中: 100×74×50cm(2), 小: 70×26×32cm(4), 원형: 70×45×33cm(2),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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