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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민영순의 디아스포라 미술 | 김현주

현대미술포럼



민영순의 디아스포라 미술



민영순(Yong Soon Min, 1953~)은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 작가이자 전시기획자이다.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출현한 아시안 아메리칸 미술가들의 정체성의 정치를 견인한 중요한 작가로서 미술을 매개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행동주의 미술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모국을 떠나 다른 국가로의 이주 경험을 지닌 작가들이 창작한 특정한 미술, 다시 말해 디아스포라 미술을 소개하고 알리기 위해 큰 역할을 하였다.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그가 기획한 《저기: 이산의 땅》 전시 프로젝트는 그 좋은 사례라 하겠다.

민영순은 한국에서 태어나 1960년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정착한 이민 1.5세대로서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와 비슷한 시기에 버클리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서로 친구로 지냈다. 1980년대에 뉴욕에서 활동하다 1993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캠퍼스 미술과 교수로 재직하며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후에도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전시 참여 및 기획, 심포지엄을 위해 미국과 세계 여러 지역을 오갔으며, 집은 공항 가까운 곳이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2011년 풀브라이트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서 연구를 수행하던 중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한동안 작업을 거의 못 하다 다행히 회복하고 천천히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1981년 뉴욕으로 가기 전까지 민영순은 영어가 서툰 어머니와의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한국어를 거의 잊고 미국 문화에 동화된 삶을 살았다. 아시안 아메리칸, 그리고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이후 모국어 상실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회복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으나 여전히 한국어 실력은 영어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그는 1984년 뉴욕의 “아시안 아메리칸 예술연맹(Asian American Art Alliances)”에서 다방면에 종사하는 아시안 아메리칸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다. 1986년에는 코리안 아메리칸 문화단 비나리(Binari) 그룹에 가담하고 그 그룹을 통해서 “한국청년연합(YKU, Young Korean United)”의 일원이 되면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1) 그런 활동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되는 한편, 새로운 조국인 미국을 더이상 “편안하고 안정되고 물려받은 친숙한 장소가 아니라 그 대신 정치적으로 충전된 상상의 장소”로 인식하고 국제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 등을 깨달았고, 이것이 행동주의 미술 활동을 펼치는 계기가 되었다.2)  

민영순은 1980년대 미국의 주요 담론으로 부상한 유색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를 수용하고 성, 인종, 계급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 속에서 정체성, 모국과 이민 사회, 미국과 아시아와의 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미술에서 내가 하려는 것은 나의 뿌리를 더욱 깊숙이 파 나가는 ‘다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변화하고 있는 내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접점에서 더욱 더 나의 사회, 정치적 관심을 반영하기 시작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미국 내에서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가는 주변화된 위치의 인식은 점차 모국의 의미와 모국과 자신과의 관계를 재고찰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그녀의 작품의 중심적인 모티브로 자리 잡았다. 3)   

민영순은 유사한 생각을 공유한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로서 주체 형성 단계에서부터 아시아 여성에 관한 고정관념의 심각성을 깨닫고 작업으로 연결했다. 후기 구조주의 이론 및 해체적 문화 담론을 알고 있던 작가는 애초에 아시아 여성의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를 만드시오(Make Me)>(1989)를 발표했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자신의 초상 사진 위에 텍스트를 오려 겹친 이 작품은 초기 대표작으로서 자기 얼굴 만들기 과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네 점으로 구성된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각각의 얼굴 사진 위에는 “Assimilated Alien(동화된 외국인)” “Exotic Emigrant(이국적인 이주자)” “Objectified Other(객관화된 타자)” “Model Minority(모범 인종)”라는 단어가 중첩된다. 그 단어는 미국의 지배 문화가 아시아 여성을 주변화하기 위해 이용해온 핵심적인 전략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동화의 대가로 주어지는 침묵의 강요, 영원한 로맨스의 상대자, 타자성의 자기 내면화, 열등한 우세종이란 스테레오 타입의 내재적 논리를 참조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분열되어 가는 아시아 여성 주체를 대면한다.

초기작에서 보이는 모국을 향한 회귀의 열망과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의 탐색은 10년 뒤에 한국과 미국이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으로서 이중적인 정체화 과정으로 전환되는데, 그런 변화 과정은 <반쪽의 모국(Half Home)>(1981)과 <거주지(Dwelling)>(1992)에서 드러난다.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민영순의 몸은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겪는 모든 정치적 투쟁과 이중적인 종속과 내부적 전치가 발생하는 장소가 된다. 사진과 텍스트가 겹쳐진 6점으로 구성된 작품 <결정적 순간들(Defining Moments)>(1992)의 경우 서두에 해당하는 첫 이미지에서 배꼽으로부터 나선형으로 자신의 탄생년도와 개인사에서 주요 전환점이 되었던 역사적 사건이 연대기적으로 기입된다. 그의 가슴과 양팔에는 마치 몸을 투시하듯 “Heartland(심장지대)”와 “Occupied Territory(점령지)”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는데, 각각의 단어는 모국을 여전히 영원한 고향으로 정의하는 민족주의 입장과 미군이 주둔하는 모국의 정치적 현실이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몸에 각인된 개인적 기억들과 역사적 사건들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되살아나며, 심장지대라는 감상적인 단어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드러내고 기억하는 작업이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제시된다.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이라는 작가의 정체성은 과거와 현재의 모국과 미국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축적 과정을 통해 구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영순의 몸 위에서 두 개의 국가는 분리될 수 없게 겹치고 경합하게 된다. 모국을 떠난 외부자로서 그곳의 정치적 상황을 직접적으로 재현할 수 없음을 깨달은 작가는 은유적인 방법을 통해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민영순에게 모국은 암암리에 남한과 동일시되었고, 분단과 통일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북한은 여전히 추상적으로만 존재하였다. 그러나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이던 임수경이 전대협의 한국 대표로 평양의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사건 이후 민영순은 북한을 구체적이며 지정학적인 하나의 장소로 인식하게 된다. 1995년 한국 방문 때 비무장지대를 둘러보았고, 1998년에는 북한을 여행하였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1990년대 후반에는 분단으로 인해 두 개의 장소로 나뉘어진 모국과 분단의 역사의 지속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비무장지대’의 모티브에 주목하였다. 

1998년에 아트 인 제네랄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때 비평가와 관람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대형 조각 작품 <돌아오지 않는 다리(Bridge of No Return)>(1997)는 분단된 모국의 현실과 자신의 위치를 역사적으로 재맥락화하려는 미술가의 노력이 응축된 작품이다. 작품 제목으로 한국의 비무장지대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 제목은 한편으로 남북 간의 이데올로기적 분쟁으로 인해 그 다리의 이름이 붙여진 역사를 환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민자들이 겪는 이산의 경험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모순 어법으로서 ‘경로, 혹은 연결 통로’의 의미와 ‘회귀의 불가능성’, ‘과거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 혹은 과거와의 완전한 결합’의 불가능성이란 뜻이 공존한다. 알루미늄과 나무틀을 이용하여 음양을 상징하는 S자(字)의 곡선 형태를 지닌 구조물은 휴전선의 철조망처럼 얽힌 두 개의 벽과 그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상호 침투하는 양쪽 벽은 하나에서 분리된 두 개의 한국의 차이를 지시하며, 한쪽에서 반대쪽을 바라볼 수 있지만 그 시야는 언제나 굴절되고 완전하지 못한 남북의 입장과 유사하다. 두 개의 벽을 잇는 중간의 공간은 마치 비무장지대처럼 남북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양자의 경계가 겹치고 서로를 향해 외치며 대결하는 장소로 존재한다. 그 중간지대는 혼성과 경합에 의해 새로운 것이 생성될 수 있는 “사이”의 공간이며 디아스포라의 “틈새”의 신분과 유사하다.

민영순이 모국에 접근하는 방식은 민족주의자의 순수한 기원을 향한 향수를 거부하는 대신 식민화, 사회 정치적 갈등, 군사적 지배 등 구체적인 모국의 역사와 관련된다. 그리고 모국의 현대사의 변화 순간에 미국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국과 미국이 겹쳐지는 그 사이에서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은 부정되고 다층적인 주체가 출현하는데, 그런 주체의 출현은 한국과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영순은 자신의 작품과 다양한 전시 기획을 통해 디아스포라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김현주(1958∼),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추계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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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KU는 광주 사태에 참가했다 미국에 정치적으로 망명한 학생 운동가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미국의 주요 도시에 지부를 두고 해외와 연계망을 구축하였다. 비나리 그룹은 미국의 이민 사회에 전해오는 전통적인 한국의 민속 문화를 지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전통 무용과 굿, 음악 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Penny F. Willgerodt, “Interview with Yong Soon Min,” Ikon # 9 (Asian Women United, 1988), pp. 82-83 참조.

2) Chandra T. Mohanty, “Crafting Feminist Genealogies: On the Geographt and Politics of Home, Nation, and Community,” Talking Visions: Multicultural Feminism in a Transantional Age, ed. Ella Shohat (Cambridge: MIT Press, 1998), p. 491.

3) Shirley Geok-lin Lim, et. al., The Forbidden Stitch: An Asian American Women's Anthology (Corvallis, OR: Calyx Inc., 1989), p. 70. 




민영순, <나를 만드시오> 중 “Assimilated Alien(동화된 외국인)” 1989, 젤라틴 실버 프린트, 68.5x58.4cm




민영순, <결정적 순간들>, 1992, 실버 프린트, 유리판에 에칭된 텍스트, 50x40cm




민영순, <결정적 순간들> 중 여섯번째 작품




민영순, <돌아오지 않는 다리>, 1997, 알루미늄과 나무 구조물, 인쇄물, 텍스트 담긴 자석,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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