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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디자인 교육자이자 판화가로서의 김정자의 작업 | 전유신

현대미술포럼



디자인 교육자이자 판화가로서의 김정자의 작업 



김정자(1929~)는 1950년 숙명여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2년 후인 1952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1958년에 귀국한 직후부터 서울대에 재직하며 디자인을 교육했다. 같은 해에 창립된 ‘한국판화협회’의 활동에도 가담하며 이후 판화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1974년에 프랑스에서 1년간의 연수 기회를 가진 이후로는 회화 작업의 제작도 본격화하게 된다. 김정자는 1950~70년대에 한국 미술가들의 해외 진출이 집중되었던 두 지역인 미국과 프랑스에서 두루 유학의 기회를 가졌고, 한국의 디자인 교육 및 판화계의 활동이 본격화되던 초기부터 두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었던 인물이다. 이 글에서는 디자인 교육자이자 판화가, 화가로서의 그의 이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에 도착한 직후 김정자는 2년제 단기 초급대학인 노던 오클라호마 주니어 칼리지(Northern Oklahoma Junior College)에 다니면서 타이포그래픽을 공부했고, 이후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 입학해 건축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회화를 전공했던 그가 미국에서 건축 디자인으로 전공을 변경하게 된 것은 주택의 건축 양식이 사람들의 주(住)생활을 변화시키는 주요한 요인임을 인식한 때문이었다. 1) 2년 정도 인테리어와 건축 디자인을 학습한 뒤 김정자는 다시 미술로 전공을 변경해 현대미술과 판화를 공부하게 된다. 이 시기에 김정자는 드로잉에서 수채화, 유화를 거쳐 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실험했고, 인물, 정물, 풍경을 구상적으로 그리던 것에서 점차 입체주의식으로 화면을 분할해가며 대상을 해체하는 작업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회화, 판화, 건축, 디자인을 두루 학습했던 미국 유학 시기의 경험을 기반으로 그는1958년에 귀국하자마자 서울대에서 디자인을 교육할 기회를 얻게 된다. 미국에서 미술사 수업을 통해 바우하우스의 역사와 교육방식을 접한 것은 이후 교육자이자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활동에 있어 주요한 이론적 배경이 되 주었다. 특히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서울대 수업에서 구성, 판화, 기초 디자인 이외에 이론 학습을 강조하고 질의응답을 통해 수업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교수법을 시도하고자 했다. 실기 중심의 일본식 공예 교육이 보편화되어 있었던 데다, 서울대 출신이 아닌 젊은 여성 교수가 미국 유학을 통해 접한 새로운 교수법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이처럼 체계적인 디자인 교육이나 현대적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1958년 설립된 ‘한국공예시범소’는 김정자와 같이 당대에 디자인이나 공예를 교육하던 교수들의 교류와 재교육의 장이 되 주었다. 미국의 원조로 설립된 이 시범소는 전통공예와 경공업 제품 부분의 디자인과 기술지원 이외에도 교육과 해외연수 지원 및 수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한국 공예 디자인 분야의 진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주었고, 대학에서 디자인과 공예를 교육하던 교육자들의 구심점으로서도 기능하게 된다.3)  한국공예시범소의 디자인교수요원양성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유강열은 1960년 귀국한 이후 줄곧 홍익대에 재직하며 한국의 디자인과 판화 교육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김정자 역시 한국공예시범소를 통해 이화여대의 배만실 등 동시대에 디자인 공예 교육을 담당하던 타대학 교수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다양한 공예 기법을 학습해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기회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디자인 교육자로서 활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김정자는 김포공항 귀빈실 인테리어를 시작으로 일본 대사관저와 박정희 대통령의 의장공간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등 본인이 직접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도 활동한 바 있다. 그렇지만 작가로서의 그의 활동 이력의 대부분은 판화전 참여에 집중되어 있다. 김정자는 미국에서 귀국한 해인 1958년에 박수근, 유강열, 이항성, 최영림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판화가 단체인 한국판화협회의 창립에 가담했고, 이 해에 열린 《제1회 한국판화협회전》을 필두로 미국 신시네티 미술관에서 열린 《제5회 국제현대색채석판화 비엔날레》 등의 국제전에도 연달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김정자의 그룹전 이력은 대부분 국내외에서 개최된 판화전 참여일 만큼 그의 작업에 있어 판화는 가장 핵심적인 매체라 할 수 있다.   

목판, 애쿼틴트, 석판화 등 다양한 판화 기법을 실험할 수 있었던 유학 시기와 달리, 귀국 이후 김정자는 주로 종이 위에 천과 같은 재료들을 콜라주 하듯이 부착한 뒤 찍어내는 콜라그래피(Collagraphy) 기법을 활용해 다채로운 질감 효과를 내는 판화를 주로 제작했다. 이는 프레스기와 같은 제작도구나 동판, 석판 등 판화 재료가 충분치 못했던 당시 국내 미술계 사정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1970년대 초에 제작된 콜라그래피 작업은 <수평선(Horizon)> 연작과 <반영(Reflection)> 연작으로 크게 구분된다. <수평선(Horizon)> 연작은 화면을 구분하는 수평선을 기준으로 위, 아래의 색채와 질감효과를 다르게 배치한 작업이다. <반영(Reflection)> 연작에도 수평선이 등장하지만 그 선을 중심으로 위, 아래의 화면이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마주보면서 비추는 듯한 효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수평선> 연작과는 구분된다.

1974년에는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1년간 프랑스에 체류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김정자는 제작과정이 용이하고 마르는 속도가 빠른 수채화를 집중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또한 프랑스에서 구한 한지로 작업하다가 겹쳐진 종이 위에 남겨진 번짐의 효과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후 흐르거나 번지는 효과가 만들어내는 우연적 요소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4) 이 시기에 터득한 번짐 효과를 활용한 작품들은 1980~90년대에는 마치 염색 기법으로 제작한 것처럼 보이는, 즉 공예 기법을 접목한 것처럼 보이는 회화 작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한자의 형태로부터 떡살과 기와의 문양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형태들을 응용해 1960년대 초부터 제작했던 판화 연작 <형적(形跡)>은 전통 디자인과 판화를 결합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김정자의 작업은 회화와 공예, 판화와 디자인과 같이 그가 다루었던 다양한 장르와 매체들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김정자는 한국 미술가들의 해외 진출이 시작된 1950년대에 미국 유학의 기회를 가졌고, 1970년대에는 또 다시 프랑스 연수 기회를 가진 점에서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의 역사와 연계해 그의 활동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디자인 교육이 시작되었던 1950년대 말부터 서울대에 재직하며 30여 년 이상 디자인 교육자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한국 판화가들의 활동이 본격화되는 출발점에서 그 시작을 함께한 인물이기도 하다. 역시 미국 유학을 거쳐 디자인 공예 교육자로 활동했고, 김정자와 판화협회 등에서 함께 활동했던 유강열의 활동 이력이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유강열과 친구들: 공예의 재구성》전을 통해 재조명되었던 것에 비해 김정자에 관한 연구나 전시를 통한 재조명은 아직까지는 미진한 점이 있다. 1950년대에 이루어진 그의 해외 유학의 경험이나 디자인 교육자이자 판화가로서의 다방면의 활동 역시 향후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전유신(1975~),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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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영목, 『한국 디자인의 새벽-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아카이브: 디자인 김정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2013, p. 66.

2)   정시화, 「근원적인 조형문법과 새로운 조형언어를 탐색하는 모더니스트」, 『김정자』, 예경, 1994, p. 7. 

3)   박남희, 「1960, 70년대 한국 ‘공예계’ 지형과 유강열의 위상: ‘호모 이코노미쿠스’ 시대, 미술공예와 판화의 정초」, 국립현대미술관, 2020, pp. 205-207.

4)   김영나, 「지평선에서 바라본 풍경」, 『김정자』, 예경, 1994, p. 164.




김정자, <수평선 VIII(Horizon VIII)>, 1972, 콜라그래피, 67x48cm, 출처: 『김정자』, 예경, 1994




김정자, <반영 II(Reflection II)>, 1971, 콜라그래피, 45x85cm, 출처: 『김정자』, 예경, 1994




김정자, <반영 a(Reflection a)>, 1992, 종이에 아크릴, 98x54cm, 출처: 『김정자』, 예경,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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