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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강은엽의 조각, 상호의존적인 존재의 울림 | 이슬비

현대미술포럼



강은엽의 조각, 상호의존적인 존재의 울림



1962년 6월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여성 조각가 최초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 주인공은 당시 24세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재학 중이었던 강은엽(1938~)이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소녀 반신상으로 국전에 입선한 경험이 있었다. <지석> 시리즈를 비롯한 출품작 대부분은 형상을 재현하는 경향과는 뚜렷하게 달랐다. 그는 원시적인 형태에 관심이 많았고, 무엇을 만드는 것보다 돌덩어리에 기호와 같은 것을 새기는 방식으로 근원적인 조형성을 탐구하는 데 열정을 바쳤다. 

그의 작업은 여인상이나 모자상을 제작하는 보수적인 조각 전통에 머무르지 않았고,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한국 조각계를 풍미한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 조각과도 거리가 멀었다. 이후 결혼과 뒤따른 출산, 육아로 10년 가까이 작업 활동에 공백기를 가졌다. 작업에 대한 갈증이 가득했던 그에게 1972년 시작된 미국 유학은 조각가로서의 생애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와 몽클레어주립대학 미술대학원에서 수학하며 전위적인 예술의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과 혼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조각보다 그림과 판화에 집중했다. 학교의 커리큘럼은 장르의 구분이 없었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귀국 보고전 격인 1979년 공간미술관 개인전에서 그는 회화가 아닌 테라코타 조각을 선보였다. 그의 예술적 지향성은 한결같이 조각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었다. 조각가는 재료 자체가 가진 언어를 읽으며 물질과 직접적으로 대화하고 교감한다. 그는 흙을 반죽해 편편하게 밀고 굵은 삼베를 찍어내어 자국을 남겼다. 그 위에 반복되는 선을 긋고 그 부분을 끄집어내거나 밀어 넣어 기존 입체 작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그의 외국 경험은 서구 모더니즘의 흐름에 편향되거나 반대로 한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식의 경로를 따르지 않았다. <창> 시리즈는 당시 일상을 둘러싼 아파트라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첨성대나 고옥의 기와와 같은 한국의 전통문화와도 연결된다. 이처럼 경계를 가로지르며 연결하는 횡단적인 힘은 그가 흙과 교유하며 약동하는 리듬감에 자신을 내맡기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다. 여성의 신체 일부를 표현한 <가슴>, <토르소>는 자신의 몸으로 체험한 여성과 대지 사이의 유대감을 나타낸 것으로 그의 작품은 자신을 비롯한 여러 존재를 드러내는 확인물로서 그 존재 가치가 있다.  

사실 미국에서 테라코타를 작업에 집중한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학교에는 좋은 장비와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유학생의 신분으로 부피가 크고 무거운 재료를 구하고 다루기에는 벅찬 것이 현실이었다. 흙이라는 재료를 선택한 것은 편의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각가로서 물질에 대한 관심은 근본적으로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는 무엇을 만들기 보다 자연의 무한함 속에 놓인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각과 다른 존재에 대한 성찰을 작업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재료에 대한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물질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새 물질의 발견이 과학자의 몫이라면 물질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조각가의 몫” 1) 이라는 그의 말은 단순히 물성을 연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물질의 속성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사물 간의 관계나 맥락을 형성하는 공간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다. 

1987년 도쿄 마키(眞木)화랑에서 열린 전시에서 강은엽은 나무로 짠 사각형 혹은 직육면체 틀 속에 비정형의 나무 조각이나 코르크 뚜껑 등을 매달거나 둥글게 깍아낸 오브제를 쌓아 올린 작품 등을 공개했다.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명이 세계 속에서 서로에게 의존하고 반응하는 유기적인 결속 구조의 형태를 드러내는데 집중한 것이다. 여기에서 사각형의 틀은 단절된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객관적 대상이 되는 무한한 자연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이 바탕이 되는 상대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흥미롭게도 움직임이 없는 작품이지만, 사각형의 틀에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매달린 나무 조각이나 코르크 마개가 미묘하게 떨리고 요동치며 서로에 대해 연쇄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후 작업은 더욱 과감해졌다. 1989년 갤러리 서미에서 열린 개인전 《Embrace》에서는 전작과 연속선 상에 있는 <여행에의 권유>와 같은 작품도 눈길을 끌지만 철판, 동파이프, 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산업적 재료를 사용한 입체 조형물들이 단연 돋보인다. 돌과 쇠, 강철과 유리 등 이질적인 물질의 조합은 그 자체로 새로운 흥분과 자극을 선사한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시각적인 긴장감은 마치 두 물질이 마주쳐 발생하는 파열음을 자아내는 듯하다. 이질적인 물질을 조합함으로써 생성되는 의미와 울림은 충돌하면서 화해하고, 불협하면서 타협하고, 상충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역설적인 관계를 함축한다. 이러한 작품에 관해 강은엽은 “비바람에 시달려 상처 나고 시련을 겪은 뒤에도, 다시 봄이 오면 새싹을 돋우는 대지를 보고 착상을 얻었다”고 말했다. 2) 그의 작업관은 이성적인 판단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와 순환 개념과 연동된다. 그는 빛과 어둠,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총체적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조형실험으로 강한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   

1992년의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시간의 배후>는 물성이 다른 재료가 맞물려 공명 효과를 자아냈던 전작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맞았다. 이번에는 주로 비석으로 쓰이는 오석(烏石)이라는 단일 재료만 사용됐다. 강은엽은 스물세 개의 돌덩어리가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는 돌을 유기체적인 재료이자 명상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전통적 조형에서 벗어나 낱낱의 덩어리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부여함으로써 전시 공간을 제의적인 장소로 변모시켰다. 그에게 조각은 인위적인 가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돌을 재배치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강은엽은 동물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10여 마리의 유기견을 돌보며 살았고, 동물보호협회 ‘카라’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연약한 존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그의 삶과 작품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관된 모습이다. 그는 귀국 이후 계원예술고등학교, 계원예술대학교에 몸담으며 학교 설립과 교육에 매진했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원래 다작하는 작가도 아니었고, 한 작품을 만들더라도 고민을 거듭하며 작업에 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늘 창작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고 회고했다. 정년퇴임 이후 다시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2014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인전 《타이틀매치: 강은엽 vs 김지은》은 그의 작품을 오랜만에 마주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무와 함께 걷기’라는 전체 제목이 붙여진 일련의 작품들은 그동안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었다. 전시는 특정한 나무에 관한 작가의 태도에 집중했다. 그는 청계산 아래에 살면서 20년 가까이 10여 마리의 개들과 함께 숲으로 산책을 다녔다. 매일 지나가는 길목에서 어느 해 극심한 병충해로 수많은 나무가 잘려나간 광경을 목격했다. 그에게는 주변의 친밀한 이웃을 떠나보내는 심정이었다. 한때 그 나무들은 울창한 모습으로 맑은 공기와 휴식 같은 그늘을 제공했고, 생명력이 넘치는 푸름을 선사했던 존재였다. 그는 죽은 나무의 잔해를 거두어 마치 고인의 얼굴을 데스마스크로 남기는 것처럼 시멘트로 떠내었다. 그리고 단면을 잘라 잉크를 칠하고 흔적을 남겼다. 나무의 속살들은 그 자체로 말과 글이 되고, 책이 되었다. 나무 한 토막에 새겨진 역사에서 그는 한 나무가 여러 풍파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모습을 읽어냈다. 인간과 나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할 뿐 삶의 궤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오랜 작업의 여정에서 자신을 비롯한 여러 존재의 관계를 조명하고, 세계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며, 때로는 작업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업 세계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는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여러 생명이 유기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그는 작업을 통해 꾸준히 발언해왔다.  

실제로 그의 작업에서는 물리적으로 서로 맞닿은 면이 중요한데, 첫 개인전에서는 돌에 자신 만의 기호를 새겼고, 테라코타 작업에서는 흙과 질료 사이의 유연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삼베의 흔적이 흙 표면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하나의 공통된 삶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에서는 나무 조각이 철사 줄에 매달린 형태로, 서로 다른 재료의 만남은 교차하는 모습을 띤다. 또한 바닥에 놓인 돌덩어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전시장 공간 자체가 작품이 되기도 한다. 죽은 나무의 삶에 주목한 작품도 판화 기법을 활용해 기본적으로 접촉에 의해 구축된 이미지들이다. 

마지막으로 2014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 설치된 작품 <한 그루 나무>를 주목하고자 한다. 전시실 벽 한쪽에는 나무 막대기 하나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산책할 때마다 그가 사용하던 나무 지팡이였다. 그것은 단순히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작가의 늙은 몸과 힘없는 손을 온몸으로 지탱해주었던, 서로 몸을 의지한 채 함께 걸으면서 교감을 나누었던 존재이자 삶의 동반자였다. 강은엽은 여러 생명과 자신의 삶을 겹쳐 상호의존적인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생명력의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이슬비(1982~),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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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은엽 개인전 : Embrace》 전시도록, 1989, 갤러리 서미, p. 4. 

2) 김영순, 「강은엽, 물의 유기적 구조가 생성하는 시적 감성세계」, 『공간』 263호, 1989. 7, p.138.




강은엽, <창B>, 1970년대, 흙, 20×28×40cm




강은엽, <여행에의 권유>, 1987, 나무, 스테인리스 철사, 60×60×185cm  




강은엽, <밤과 낮> 1989, 돌, 황동, 스테인리스 스틸, 45×80×1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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