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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상상계로 회귀하는 여정, 이수경의 작업 | 전유신

현대미술포럼



상상계로 회귀하는 여정, 이수경의 작업



2021년 10월부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 갤러리에서 이수경(1963~)의 《먼길 이야기》전이 열리고 있다. 1997년에 딸을 위해 직접 지은 동명의 동화 제목이자 1999년 작품으로 발표되기도 한 ‘먼길 이야기’는 긴 여행의 여정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험을 하는 주인공 ‘먼길’의 여행담이자 성장기이다. <먼길 이야기>는 이수경의 작업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초기작이지만, 이후의 작업에서도 ‘이동’이나 ‘여행’, ‘여정’이라는 키워드와 연계된 작품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00~2002년에 제작된 <순간 이동 그림>에 대해 작가는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유체 이탈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번식 드로잉>(2005)은 부모님을 위해 불로장생의 명약을 구하고자 저승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바리공주의 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같은 해에 제작된 회화 <잘가요>의 뒷면에 작가는 여행 중 무사 안전을 보장해 주는 조선 왕조의 신비한 부적을 고증을 거쳐 그려 넣었다.

작가 자신의 이동과 여행이 작품 제작의 출발점이 된 경우들도 있다. 이수경의 대표작인 <번역된 도자기>는 2001년 이탈리아 알비솔라에서 개최된 비엔날레 참여를 계기로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김상옥의 시조 ‘백자부’를 영어로 번역한 뒤 알비솔라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도예가가 이를 읽고 백자를 상상해서 제작하도록 하면서 <번역된 도자기>라는 제목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2014년 이후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전생 역행 그림> 또한 작가가 최면을 통해 전생으로 회귀하는 즉,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통해 경험한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이수경의 작업 속에 나타난 여행의 공통점은 주체가 여정에서 만난 ‘타자’들을 통해 ‘나’를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을 한다는 점이다. 즉, 이수경의 작업에 나타난 여행은 타자를 만나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한 여정인 것이다. 2015년 대구미술관과 대만 현대미술관에서 순회전시 되었던 이수경의 개인전은 《내가 너였을 때》라는 제목으로 개최되었다. 라캉(Jacques Lacan)에 따르면 ‘내가 너였을 때’는 주체와 타자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 즉 주체와 타자가 강한 애정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전 오이디푸스 단계인 ‘상상계(the Imaginary)’에서 가능한 일이다. 본인의 주요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보여준 대규모 개인전을 《내가 너였을 때》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것은 그의 작업 전반에 있어 이와 같은 요소가 중요한 지점임을 드러내 준다. 그런 점에서 이수경의 작업은 내가 타자였던 시간으로 회귀하는 여정, 즉 상상계로의 회귀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에 ‘한 쌍’ ‘쌍둥이’ 혹은 ‘대칭’처럼 두 개의 대상이 짝을 이루어 존재하거나 ‘거울’처럼 똑같은 대상을 또 하나 만들어 내는 장치가 자주 등장하는 것 역시 주체와 타자가 이루어내는 공존의 상태로 볼 수 있다. 좌우 대칭의 인물이 번식하듯이 증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번식 드로잉>(2005)은 <불꽃>(2005-2009) 드로잉의 특정 부분을 선택해 좌우 대칭이 되도록 디지털로 제작한 <불꽃 변주>(2012~2015)로 이어진다. <북극성>(2012)은 <매일 드로잉>(2005~현재)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이미지를 3D 모델링과 프린팅을 통해 입체화하고 거울에 반사된 것 같이 대칭을 이루도록 제작한 작업이다. 2017년에 시작된 <달빛 왕관> 연작도 화려한 색과 검정색 작품이 한 쌍의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고, <천 개의 잎사귀>(2018)에서는 3D 스캔한 한 쌍의 나무뿌리를 병풍의 양옆에 대칭적으로 배치했다. 

<쌍둥이 춤>(2012)이나 <그림자 춤>(2015)과 같은 이수경의 퍼포먼스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자는 한국 전통 무용 동작을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동일하게 추는 두 무용수의 움직임이 쌍둥이의 춤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림자 춤>(2015)에서는 동일한 모양의 샹들리에 한 쌍으로 구성된 <내가 너였을 때>(2015)가 설치된 공간에서 대만의 전통 예술가가 공연을 하고, 이수경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같은 음악에 맞춰 마치 그림자처럼 춤을 추고 있다. 두 작품은 모두 나와 동일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정작 내가 아닌 쌍둥이나 그림자와 같은 나의 타자를 등장시킨 경우이다.  

이수경은 간혹 과거의 역사 속 타자들을 위한 작업을 제작하기도 했다. <눈물>(2010)은 덕수궁 석어당에 감금되었던 인목대비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2012년에는 호주 시드니에 존재했던 여성 전용 감옥 내부에 뼈로 된 눈물을 흘리는 여성 조각과 과거의 수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손 모양 조각으로 구성된 작업 <뼈 눈물>을 전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인목대비로부터 감옥에 수감되었던 시드니의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실존 인물들과 연관된 작품들은 모두 역사 속의 타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한 제의적인 작업들이다. 

이처럼 이수경의 작업에는 작가 자신의 지리적인 이동이나 설화와 동화, 또는 본인의 전생을 되돌아보는 가상적 이야기 속으로의 여정, 그리고 역사 속의 타자들과 만나는 과거로의 여행 등 다양한 종류의 이동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관객들 역시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타자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의 삶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 여정의 끝에서 이수경은 내면적 혹은 종교적 성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이수경의 여정은 영혼의 자유를 위해 지옥, 연옥, 천국을 오가는 여행을 떠난 단테의 여정을 연상케도 한다. 『신곡』에서 단테는 내세에서 만난 역사와 신화 속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현세의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 낸 사회를 성찰적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정에서 단테는 타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되고, 나와 타자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이수경의 작업 역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시공간을 넘나들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그 경험 속에서 나와 타자, 몸과 마음이 한 쌍으로 공존하는 상상계로 회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고 그 경험을 타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이수경의 여정의 끝은 나와 타자가 공생하는 상상계에 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유신(1975~),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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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나를 두고 싸우는 두 남자>(전생역행그림 중 일부),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62.2x130.3cm, 출처: yeesookyung.com




이수경, <쌍둥이 춤>, 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1분 52초, 출처: yeesookyung.com




이수경, <북극성>, 2012, 3D 프린트, 가변 크기, 출처: yeesoo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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