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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투명한 먹 ‘빛’, 오숙환의 수묵화 | 김효정

현대미술포럼



투명한 먹 ‘빛’, 오숙환의 수묵화



1981년 오숙환(1952~)은 수묵으로 밤풍경을 그린 <휴식>(1981)으로 국전의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화단에 등단했다. 작가가 어려서부터 늘 보던 밤하늘의 풍경은 원경의 주택가로부터 새어나오는 빛으로 인해 더욱 어둡고 아득한 느낌을 준다. 진한 어두움을 표현하기 위해 먹을 선택한 작가는 먹과 종이가 상호 작용하면서 우연히 퍼진 먹이 자연스러운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을 작업 과정 중에 발견하게 되었다. 불빛의 존재는 작가가 의도 하에 긋는 붓에서부터 출발하지만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며 자연스레 생기는 흰 여백이다. 두터운 먹과 투명한 여백, 이는 오숙환이 그림을 통해 변함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시각적인 특성이다. 

오숙환이 활동하기 시작한 1980년대 한국화 1) 작가들은 ‘전통 동양화’라는 거대한 유산을 소화하여 계승할 것인가, 현대적 발상과 표현으로 영역을 확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 사이에서 고민했고 그에 대한 제안 혹은 해답과 같은 작품들이 여러 기획전의 형태로 공개되었다. 《한국화 제3세대전》(1986), 《전환기의 한국화》(1988), 《한국화, 오늘과 내일》(1989), 《수묵의 재발견전》(1994) 등 기획전들에서 1970년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젊은 작가들의 고민의 과정과 결과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제3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화 제3세대전》을 보면 총 42명의 작가의 출품작 중 1980년대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인물화, 사실적인 풍경화2) 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사실적인 풍경화의 경우 조선시대 겸재의 진경산수,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의 산수화로부터 이어져 ‘리얼리즘 정신’으로 계승된 것이다. 수묵을 이용한 추상화들도 보이는데, 전통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표현을 찾았던 작가들의 시도는 간결하고 힘 있는 필체로 자연이나 인물을 그린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작가 개개인의 가치를 추구한다기보다는 전통에 대한 극복 내지 새로운 형상 추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실 동양화에서의 추상적 실험은 서양의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동시대 서양화가들에 비해 불리한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시대 문인화와 산수화는 수묵화로 다시 그린 현대의 도시 풍경으로, 풍속화는 인물화나 초상화 형태로 이어졌는데, 전통적 재료로 현대적인 화면을 만드는 것에 고충이 따랐다. 재료가 갖는 역사적 기억은 새로운 화면들과 충돌하기 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각도로 주제를 바라보고 변형시켰던 동양화가들의 시도는 계속되었지만 한국의 미술계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그룹전에 여러 번 참여했던 오숙환의 그림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초연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화 제3세대전》에 출품한 <너 그리고 나>(1985)는 역시 멀리서 본 주택가의 밤풍경을 그린 작품인데, 선과 먹의 농담의 쓰임을 화려하게 보여주기 위해 여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다른 작가들의 그림과는 달리 집을 형상화 한 자잘한 먹의 농담으로 채워져 있다. 1988년 토갤러리 기획전 《전환기의 한국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 8명의 참여 작가 중 유일한 여성 작가인 오숙환은 전면화 형태(all-over)의 수묵화를 유일하게 보여준다. 중심과 주변이 없는, 동양화의 구도에서 중시 되어온 여백이 없는 전면화를 계속해서 등장시키고 있다. 

오숙환은 모두가 소재와 형식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때 전통과 맥을 유지하려는 생각도, 기법을 타파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자신을 회상한다. 그는 먹이 갖고 있는 투명성을 이야기하며 ‘투명함’은 곧 ‘빛’이고 이를 예상외로 고려불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려불화를 보면 빛이 보이는 것 같다. 어떤 부분은 선염법으로 투명하고 어떤 부분은 석채가 두껍게 올라간다. 이러한 불투명과 투명이 함께 존재하는 고려불화가 한국적인 빛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3) 문인화와 산수화 같은 전통 수묵화가 아닌 한국의 전통 채색화인 고려불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의 언급은 먹이라는 재료를 선택한 이유가 전통적인 매체를 지키려는 것이 아닌 작가로서 표현하고 싶은 시각적 결과물을 위한 순수한 접근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1995년부터 오숙환은 짙은 먹으로 일렁이는 물결의 형상을 화면 가득 채우는 <빛과 시공간> 연작을 시작했다. 큰 면으로 보이는 먹의 물결은 모두 선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진한 부분은 선을 여러 번 그어 불투명하게 표현하고 사이사이 밝은 부분은 여백으로 남겨두며 빛을 형상화 했다. 이처럼 대자연을 작품의 주제로 삼으며 ‘빛’을 그리려 한 동기에 작가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단지 빛 그 자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진한 어두움이 필요” 4) 했다고 언급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창세기에서의 빛을 담으려 했다. 이 빛은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인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신앙을 대하는 태도,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모두가 동양적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통 산수화는 서양화와 달리 하늘과 땅의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하늘과 땅은 너무 커서 화면에 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상하로 지속되고 작가가 그리려는 구체적인 대상, 즉 산, 냇물, 정자, 사람들을 묘사한다. 거대하고 위대해서 인간이 그릴 수 없는 영역인 하늘과 땅은 전통 동양화에서 부재하는 방식을 통해 신성시 되었던 것이다. 오숙환의 데뷔작 <휴식>이나 <빛과 시공간>에서 그가 빛을 표현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지 않는 행위’로 나타내며 빛과 대자연을 향한 경외감을 나타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숙환의 작품의 주제는 빛으로부터 이동해서 벌판으로, 우주적 공간을 품고 있는 시간으로 이동했다. 1999년 <시간과 공간>에서는 화면을 두 개로 분할하여 기존의 수묵 작업 위편에 우주적 공간을 배치했다. 대자연은 짙은 먹으로 무한한 우주적 공간은 한지의 밝은 배경 위에 중먹의 얇은 선과 점으로 표현했는데, 이질적인 두 화면의 조합은 일종의 판타지적 공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중력의 무게를 먹의 농도와 밀도, 농담으로 보여주려는 것처럼 묵직하게 바람을 받아들이는 지구의 풍경과 도식화된 선과 점으로 나타낸 우주의 풍경은 이 두 공간이 얼마나 다른 시간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구의 대자연에서 우주적 공간으로 범위를 넓힌 오숙환은 이를 통해 인간의 한계와 자연의 무한함을 한 번 더 확인하게 한다.       

2007년부터 오숙환은 <생명의 여정> 연작을 통해 모래무늬를 그린다. 그는 계속해서 넓은 공간을 그리고자 했는데, 미국에서 긴 자동차 여행을 했을 때 사막과 모래 바람과 별들, 너무나 장엄한 자연의 침묵과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먹의 밀도는 줄어든 반면 얇은 한지의 특성을 이용한 공정을 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래라는 소재를 깊이감 있는 공간처럼 표현하기 위해서 오숙환은 수제 한지에 먹선을 긋고 종이의 끝과 중간에 향으로 구멍을 낸 후 여러 겹으로 붙이는 과정을 거친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먼 과거에서부터 자연이 숨 쉬며 존재했던 시간을 미세한 모래의 형태로, 모래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그 작은 세포가 내포하고 있는 우주를 얇은 한지의 겹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바람이 보입니까?” 1992년 오숙환은 개인전을 하면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 불쑥 “보이지요”라고 대답했다가 다른 이들이 못 보는 걸 본다고 감탄을 하는 사회자의 말에 그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바람에 나는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고 살아있게 만드는 존재, 빛과 바람이 그러하듯 오숙환은 대자연의 형상으로 바람을 그리는 작가이자 빛으로 시간과 공간을 그리는 작가이다. 광활한 화면에 움직임과 시간을 부여하는 작가이다. 


김효정(1983~)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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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한국화부’라는 명칭이 사용되면서 미술계에서 ‘한국화’ 용어가 확산되었다. 본고에서는 1980년대 여러 그룹전에서 나타난 양상을 설명할 때는 ‘한국화’로, 조선시대 전통적인 회화양식을 말할 때는 ‘동양화’로 혼용해서 표기한다. 

2.   당시 홍대 동양화과 교수였던 송수남을 주축으로 후배와 제자들은 수묵을 내세운 그룹전을 기획하고 주도해 나갔는데 전반적으로 비구상보다는 구상 쪽에 무게가 실렸고 여기에 ‘수묵’이라는 전통적인 재료가 지닌 동양의 정신성과 그 표현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했으며, 당시 ‘한국화’ 용어 사용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하기도 했다. 이민수, 「1980년대 한국화의 상황과 갈등: 미술의 세계화 맥락에서 한국화의 현대성 논의를 중심으로」, 『미술사논단』, 2014, pp. 116~117.

3.   오숙환과의 전화 인터뷰, 2022년 3월 8일.  

4,   오숙환, 「나의 그림이야기」, 『오숙환 1990-1992』, 가람아트갤러리, 1992.




오숙환, <휴식>, 1981, 한지에 수묵, 162x130cm




오숙환, <빛과 시공간>, 1995, 한지에 수묵, 180x250cm




오숙환, <시간과 공간>, 1999, 한지에 수묵, 95x82.5cm




오숙환, <생명의 여정>, 2009, 한지에 수묵, 35x6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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