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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재현과 기록을 넘나드는 김명희의 작업 여정 | 박윤조

현대미술포럼



재현과 기록을 넘나드는 김명희의 작업 여정



김명희(1949~ )는 1992년부터 이른바 칠판회화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에서 구상회화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칠판 위에 오일 파스텔로 세밀하게 그린 이미지를 시작으로, 사실과 재현 사이의 인식적 전회를 시도했고, 점차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조합, 비전통적 소재와 미디어의 사용 등 다층적인 회화양식을 추구하면서, 작업과 삶에 대한 성찰 과정을 작품에 구현해 왔다. 구상회화를 중심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김명희에게 그림은 재현 체계에 대해 탐색의 과정이자, 삶과 문화를 반영하는 소통의 도구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시각문화를 접해 온 삶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부친은 한국은행 총재 시절 김인승의 작품 등을 컬렉션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정도로 예술적 식견이 높았고, 이러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근현대 미술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을 회상한다. 이후 김명희는 1957년부터 3년간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과 영국에 체류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고, 이화여중 시절 석고 데생 외에도 여러 화집들을 참고하며 유화를 그리는 등 폭넓은 예술적 소양을 쌓아왔다.
  
김명희는 1971년 서울대학교 회화과 재학 당시 주로 앵포르멜 계열의 추상화를 비롯하여 반전통적인 양식을 실험했다. 앵포르멜 회화는 1950~60년대 한국 젊은 작가들에게 전후 사회의 불안과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대변하는 양식으로 여겨졌다. 김명희는 이러한 비정형의 추상작업을 참고로 하여, <생명 I, II>(1971)에서와 같이 아크릴 물감과 실을 사용하여 회화와 사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재현 방법을 시도했다.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한 1975년에 그는 도미하여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수학하면서 재현 체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그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1929)을 계기로 쓴 회화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1973)를 접하게 되면서, 닮음에 근거한 기존의 재현 방식에 질문하기 시작했다. 1) 김명희는 인화지 위에 자신의 몸을 직접 감광시키는가 하면, ‘제2’, ‘그림자’라는 용어를 작품명에 자주 사용했는데, 이는 대상과 사실적인 묘사 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제2의 그림자 I, II>(1977)에서 그는 그림자의 형태 또는 캔버스 위의 붓 터치를 부각시키는데, 전통적인 회화에서 당연시해온 재현 대상을 비껴나가는 이러한 시도는 회화라는 실체에 주목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김명희는 서구 미술에 나타난 재현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탐색해 나갔다. 1978년 그는 <반영>(1978)과 같은 작품을 통해 재현이 실재를 반영한다는 명제에 반문하기 시작했고, 1984년까지 이러한 고찰을 이어갔다. 동명의 작품에서 화면 중앙에 위치한 사각틀은 거울 혹은 그림 속 회화를 연상시키고, 그것을 지탱하는 선은 원근법적 공간을 연상시키는 소실점으로 비춰지면서, 캔버스를 경계로 한 실제와 일루전(illusion) 간에 끊임없는 시각적 균열을 일으킨다. 이러한 특성은 1980년 전후 한국 구상회화 가운데 극사실회화에서도 발견된다. 

극사실회화는 197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갓 졸업한 젊은 작가들이 시도한 양식 중 하나로, 1980년대 민중미술과는 달리, 캔버스의 프레임을 경계로 실제와 일루전의 문제를 환기시켰다. 1976년 대학 선배 김차섭(1940~)과의 결혼 후 경제적 독립이 정신적 독립이라고 생각한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뉴욕 한국일보에 근무하는가 하면 의류 판매점을 운영했다. 그러나 그는 작업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였고, 이러한 김명희에게 드로잉은 현실적 여건에 의해 선택한 방법을 넘어, 작가 자신의 모습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수단이자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부터 김명희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긴 타지 생활에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김명희는 뉴멕시코 원주민들에게 소수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의 문물과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는 타 문화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게 된 것으로, 점차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 속에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이미지들을 차용하며 서구 문화를 변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애굽으로의 도주>, <사빈느의 약탈> 등 1980년대 중후반 그의 작업에는 미술사에서 참조한 이미지와 주제가 등장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프네(Daphne)의 모습과 동시대 마라톤 선수의 모습을 병치시킨 <뛰는 여인>(1987)에서는 역사와 현실을 화해시킨다. 이질적인 맥락을 조합하는 이러한 방식은 <끝없는 생각>(1987)을 시작으로 작가 내면을 표출하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발전된다. 

그는 17세기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1618)를 참조한, ‘그림 속 그림’ 형식을 통해 작가의 내적 갈등을 작품에 투사하기 시작한다. 김명희는 그림 속 또 다른 그림 이미지에 원색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타 문화권 여성작가로서의 이상과 현실 극복의 의지를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제작년도인 1987년은 그가 사업을 정리하고 전업 작가로서 활동을 재기하게 된 시점이다. 

또한 독일문화원에서의 첫 개인전(1972) 이후 15년 만에 한국 원화랑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 해로, 이 전시를 계기로 그는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간다. ‘액자식 구성’을 통해 작품 속에 내적 상태를 반영하는 자신만의 주요 조형언어로 채택한 후, 그의 작품에는 1989년 모노톤의 화폭에 소, 뱀, 양 등 12지신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소수 이주자이자 여성작가로서의 삶이 투영되었다. 사각틀로 구획한 이질적인 시공간의 병치는 재현의 문제를 탐색해 온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출구가 된 것이다.

1990년을 기점으로 김명희의 작업은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0년 그는 김차섭과 함께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의 폐교에 구입하게 되면서, 뉴욕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그는 우연히 작품의 소재로 칠판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1992년 겨울 바람막이로 사용한 칠판 위에 주변 인물과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칠판은 그의 작품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1995년 원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된 31점의 작품 대다수도 한국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 칠판회화였다. 

그러나 15년 만에 본토로 돌아온 그는 기존 거주민들의 시선과 거친 환경 속에서 다시금 뿌리뽑힘(dislocation)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칠판은 치유의 기회를 제공했다. 작가는 <희철이 어머니>(1994)에서와 같이 주변 인물과 지역의 과거의 사건과 시간들을 상상하며 화폭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시간을 소급해 올라가 잃어버린 시간들을 상상하며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은 긴 타지 생활로 인한 박탈감을 보듬어 주게 된다. 주변 풍광과 지역민의 모습을 기록한 칠판회화는 미국에서 온 화가 부부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극복하고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치유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때 칠판은 회화 이면에 내재된 시간적 특성을 부각시키는 소재라 할 수 있다. 본래 칠판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판서를 위한 도구이다. 작가가 칠판 위로 스냅사진처럼 그려낸 일상적 모습들은 판서 내용처럼 언젠가 지워질 운명에 놓인 듯 비쳐진다. 나아가 김명희의 작업은 이러한 칠판 본연의 기능을 부각시키며 재현 과정에서의 시간성에 주목하게 한다. 이는 극사실회화에서 캔버스가 회화적 속성을 강화하며 유일성과 보존성을 중시하는 기존회화의 전통을 따르는 것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오히려 김명희는 교육 기자재였던 칠판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재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성을 다시금 부각시키는 것이다. 

마치 <결석한 수학여행>(2011)에 판서된 ‘기억’이라는 문구는 닮음에 근거하는 재현 체계에 내재된 시간적 불일치성, 즉 재현이란 다시 현전하게 하는 과정에서 시간적 간극이 불가피한 후속조치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관람자 또한 이미지를 둘러싼 풍설들을 상상하며 사실과 허구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넘나드는데, 금방 지울 수 있다는 칠판의 장점이 재현과 기록에 찰나적 속성을 덧입히며 감상의 폭은 더 배가된다. 르네상스 회화를 연상시키는 화폭 위의 조명효과는 이러한 경험을 강화한다. 그는 인물을 그릴 때, 무대조명 아래 있는 연극배우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모습으로 그린다. 김명희의 칠판회화는 전시장 속 칠판만큼이나 그림 속에 이질적인 시공간을 연출할 뿐만 아니라 연극무대를 연상시키며 그 공간을 현재화한다. 뿐만 아니라 폐교에서 탈각된 칠판은 김명희에 의해 또 다른 기능을 부여받아 전시장을 유랑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시간층을 축적하면서, 재현 매체인 회화의 시간적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김명희의 작업은 전통 회화의 재현방식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와 텍스트 외에도, 미디어를 한 화면에 혼용하는 양상을 띤다. 2003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유전의 역동성》에는 이러한 혼합매체 방식의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오랜 타지생활에서 그는 아시아인으로서 오리엔탈리즘을 내재화하기보다는 세계지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객관화해 왔다. <봉분축조인 이동로 메타여행>(2003)은 이러한 점을 가장 잘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여러 유적지에서 마주한 봉분들의 모습은 세계지도가 그려진 칠판 위로 LCD 모니터에 기록되고, 대륙과 대양을 가로지르는 모형기차와 선로를 통해 연결된다. 이는 김명희의 회고에서와 같이 오랜 유목적 삶이 작업과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자기치유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뿌리뽑힘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바탕으로, 유목적 세계관의 구축 과정을 한 화면에 복원해 낸 것이다. 

이는 비단 김명희라는 한 작가의 고백에만 그치지 않는다. 칠판회화의 시작이 도시화, 산업화로 인한 농촌공동화 현상과 연동된다는 사실에서와 같이, 김명희의 이러한 작업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물리·정신적으로 정주와 이주 사이를 오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환기시킨다. 이와 같이 세계지도 위의 봉분은 단순한 전통 장례문화를 대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목민의 삶을 투영하는 기호이자, 땅을 기반으로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단서가 된다. 2) 이후 그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식물과 정원의 사실적 이미지는 작품 제목에서와 같이 ‘계절’을 통과하며 뿌리를 내린 ‘야생화’의 자생력을 증거한다. 김명희의 작업은 단순히 재현 방식을 답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 및 문화와 부대끼며 복기해온 자생적 기록의 과정인 것이다.  

서구 미술사에서 논의되어온 재현의 개념을 고찰하며 구상회화의 가능성을 탐색해 온 김명희는 여전히 뉴욕 소호와 강원도 내평리를 왕래하며 작업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소호에 위치한 그의 로프트는 미국 사회에 온전히 통합되는 멜팅팟이 되지 못했다. 귀국 당시 7시간이나 걸려 진입이 가능했던 내평리에서도 그에게는 또 다른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본래 유목민의 유전자가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재현과 기록을 넘나드는 회화 작업을 통해 상실감과 박탈감을 극복해 왔다. ‘이미지의 힘’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와 시공간을 연계해 오고 있는 작가 김명희의 작업은 재현과 기록의 상호보완적 가능성을 탐색하며 구상회화의 지평을 넓혀오고 있는 것이다.



박윤조(1975~),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이화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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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명희와의 메일 인터뷰, 2022년 1월 6일. 

2.   이지은, 「Artist Voyage: 서양화가 김명희」, 『월간미술』, 2003. 6.




김명희, <제2의 그림자I>, 1977, 캔버스에 아크릴, 41x62cm




김명희, <반영>, 1984, 종이에 목탄과 연필, 70x100cm




김명희, <끝없는 생각>, 1987, 종이에 연필, 목탄, 색연필, 63x97cm 




김명희, <결석한 수학여행>, 2011, 칠판에 오일 파스텔, 120x420cm




김명희, <봉분축조인 이동로 메타여행>, 2003, 칠판에 오일스틱, 기차모형 설치물, LCD모니터, 240x4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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