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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박소영, 조각의 개념에서부터 껍질까지 | 박민혜

현대미술포럼



박소영, 조각의 개념에서부터 껍질까지


 
박소영(1961~)은 언어에 내재된 관습적 편견을 드러내는 개념적인 작업에서부터 조각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노동집약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형언어를 끈질기게 탐구해 온 중견작가 중 하나이다. 1985년 인하대 미술교육과 학사, 1987년 성신여대 조소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그는 1993년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미술대학교의 연구과정을 졸업하며, 한국과 독일에서 조각과 설치를 수학했다. 1986년 청년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 후 ‘오늘의 작가전’의 대상 작가로 선정되어 김종영 미술관에서 《반복하다》(2007) 전시를 선보이는 등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현재는 인하대8 조형예술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는 한편, 여전히 전업 작가로서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 박소영은 독일의 관념적 전통을 근간으로 언어와 작가의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개념 미술의 경향을 띠는 조각 작업에 몰두했다. 독일에서의 학업은 추상과 구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던 당대 한국 조각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1) 특히, 독일의 저명한 개념미술 작가인 팀 울리히(Timm Ulrichs)의 작품에 경도된 그는 현대미술에 있어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이 시기의 ‘조각’은 박소영이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을 담기 위한 일종의 그릇(vessel)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가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미술대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93년에 제작한 <자! 한번 올라가 주십시오>에는 막 학교를 졸업한 전업 작가의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한 당찬 포부가 담겼다. 그의 첫 번째 설치 작업이기도 한 이 작품은 천정에 짙은 색상의 천이 둥그렇게 둘러쳐 있고, 그 아래에 사다리가 놓여 있는 구조이다. 사다리 위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케 하는 설치 방식과 그의 제목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관객은 사다리를 타고 그 내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기대감을 가지고 사다리에 올라간 관객이 발견하는 것은 그저 눈앞을 가리는 어둠일 뿐이다. 결국 이 작품이 지시하는 행위의 결과는 허무하기 그지없는 무의미한 행동의 연속이 되며, 이같은 행위의 허무함은 권력이나 이상을 좇아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표상하는 것이다.2) 

이처럼 제목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작업 방식은 그의 또 다른 작품 <공통분모>(1996)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고급스러운 천이 깔린 상자에 흰색으로 칠한 오브제를 배치하고, 상자에 붙은 금색 명찰에 각 오브제의 이름을 적었다. 그 각각의 이름은 “새대가리, 접시, 깔때기, 조개, 냄비”이다. 흔히 여성을 속되게 칭할 때 사용되곤 하는 각 사물의 이름에는, 여성 자체를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결여된 존재로서 이해하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 “질은 남성들에게 금지된 손 대신 쾌락의 ‘안식처’ 노릇을 할 때 그 가치를 지니기 때문 … 즉 여성의 성기는 성기가 아니거나, 자기 성애를 위해 남성의 성기를 감싸는 ‘남성의 성기’일 뿐이다” 3) 라는 뤼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의 직설적인 언급과도 같이 작가는 이러한 편협한 관습적 언어의 행태를 예리하게 꼬집는다. 

그는 “현대인들의 내면에 감춰진 획일적이고 반여성적인 사고방식들을 색다른 형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4) 고 토로한 바 있다. 작가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저속한 단어들을 눈부시게 하얀색의 오브제와 대조시키며,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여성’의 실체는 어디에 있냐는 듯 이를 눈앞에 제시한다. 이로써 ‘여성’이라는 개념을 지칭하는 각 오브제의 “공통분모”는 사실상 그 어느 것에도 연결되지 않음을 보이며, 제목과는 역설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이외에도 박소영의 1990년대 작품을 통해 그가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실험하며 본인만의 조형언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납으로 만든 조각>(1997)에서 그는 조각에 사용했던 첫 번째 재료인 흙덩어리를 정육면체의 쇳덩이로 바꾸고 그 표면에 거짓/진실, 교만/겸손, 슬픔/기쁨과 같은 서로 상반되는 언어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각각의 쇳덩이가 서로를 짓누르는 형식으로 이를 설치했는데, 이를 통해 언어가 지닌 의미와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충동이 엿보인다. 

이처럼 그는 사물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개념적 작업을 지속했는데, <하얀 붕대>(1997) 역시 이러한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이해 가능하다. 그는 자신이 조각에 사용하는 도구를 붕대로 감싸 벽에 걸고 그 옆에 동일한 사물을 그린 드로잉을 병치했다. 실제의 사물과 그것을 재현한 그림을 같이 배치하는 방식으로 인해 이는 대표적인 개념미술가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의 <One and Three Chairs>(1965)를 연상시킨다. 실제의 사물, 그것의 재현물, 그리고 언어 중 과연 어느 것이 가장 사물의 본질에 가까운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던 코수스의 작품과도 같이 박소영 역시 그림과 사물을 병치하여 가상과 실재를 하나의 쌍으로 관람자에게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도구를 붕대로 싸서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완전치 못한 실재와 그것의 모사품인 회화를 한 쌍으로 제시하여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도구에 당연히 기대되는 실용성을 전복시켜 무엇이 실재인지를 비교하고자 하는 논의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하얀 붕대>는 그의 작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음을 알리는 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날 10년 이상 사용하던 낡은 공구들을 보면서 붕대를 감고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자신을 치유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죠. 이 작품은 1997년 전시의 마지막 작업이었어요. 딱딱하게 굳은 제 자신을 풀어 보기 위한 의도로 제작했죠. 이번 전시는 예전의 작업과 달리 조각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5)

“나 자신을 누르고 있는 윤리적 이분법에서, 재미없는 일상의 허구성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 한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6) 고자 했다는 박소영은 이전의 개념적 작업에서 조각의 정의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관심을 돌렸다. 10년 이상 사용했던 낡은 공구를 붕대로 감싸며, 그는 지난 작업을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흰색의 붕대는 위의 언급에서와 같이 ‘치유’하는 행위를 시각적으로 상징하는데, 이는 그의 2000년대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 중 하나이다. 치료에 사용되는 붕대를 통해 치유를 시각화하는 방식은 이후 잎사귀, 꽃잎, 비늘 등의 다양한 어휘로 확장된다. 버려진 일상품을 조화, 모조 잎이나 비늘 등으로 빼곡히 덮는 노동집약적 작업이 그것인데, 이와 같은 ‘붙이기’를 통해 원래의 형상은 모호해지고 유기적인 형태의 조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1997년의 작품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는 변혁의 기미는 1998년작 <요철(凹凸)>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작품의 제목과 같이 오목하고 볼록한 유기적 형태를 지닌 두 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모조 잎으로 그 표면이 덮여 있다. 파충류의 비늘을 닮은 초록색의 모조 잎과 꽃 모양을 띤 흰색의 모조 잎이 작품의 표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모조 잎이 표상하는 자연의 생명력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형태가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에서도 박소영은 사물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천착했던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조각의 모양대로 구멍이 뚫린 아크릴 박스 안에 작품을 위치시켜 요철이라는 표제가 다시금 반복되게 했다. 동어반복적인 표현을 통해 언어와 이미지가 일치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에 이르러 그는 “조각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보이는데, <조각의 껍질>(2000)이라는 작품을 동명의 전시에서 선보이며 그의 작업은 일대기적 전환을 맞이한다. 조각의 재료로 사용되는 폴리코트의 빈 통 내부에 조화를 촘촘히 붙인 해당 작품은 이미 효용을 다한 물건에 조각으로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 동시에 앞으로의 그의 작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정표를 세운 것이었다. 

조각을 성형하는 데 사용되는 폴리코트는 조각의 껍질, 혹은 그 외관을 형성하는 재료다. 박소영은 조각을 형성하는 재료가 사라진 자리를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인 조화로 대체하여 꽃이 표상하는 생명력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예술과 비예술, 안과 밖, 가치와 무가치 등의 다양한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또한 화사한 색감의 조화가 불러일으키는 미적 쾌감과 촉각적 심상은 흑백논리와 같은 다소 무거웠던 주제를 다루었던, 개념적인 전작과는 달리 조각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서의 조각이 아닌 그 자체로 완성되는 조각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 작업 이후 박소영의 ‘껍질’은 주로 식물을 연상시키는 잎사귀 모양의 재료들로 이행한다. 기성품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필름지에 그리거나 인쇄된 잎사귀를 붙여 그 표면을 감싸는 형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마치 파충류가 탈피하고 남긴 비늘과 같은 형상의 <껍질> 연작에서 그의 조각은 말 그대로 기존의 작업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투명 필름으로 만든 모조 잎을 이어 붙임으로써 완성된 해당 조각은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평면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또한 필름지의 특성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조각으로서의 중량감마저 포기하고 가벼운 형태로, 그야말로 내용이 없는 껍질만이 되어 남아있다. 그는 이 작품을 바닥이나 벽에 자유로이 설치하는가 하면, 이를 좌대에 올리고 아크릴 상자를 씌워 전통적인 조각의 설치 방식을 따르는 등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시 한번 조각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더 나아가 그의 작업은 2000년대에 이르러 노동집약적인 제작 방식을 통해 완성되는데, 고단하게 반복되는 일종의 예술 노동은 그가 <하얀 붕대>에서 보여주었던 치유의 행위와도 연계된다. 그는 2017년 신세계갤러리에서의 전시에 기해 작성한 작업 노트에서 “작가의 고단하게 반복되는 예술 노동을 과정으로 보여주는 이번 작업들은 작가 본인에겐 분노와 슬픔을 승화시키고 불특정 다수에게 건네는 위로”라고 설명했다. 다리가 잘린 의자, 구멍 뚫린 화분, 자전거 안장과 같이 그 효용을 잃고 버려진 물건들에 잎사귀를 붙이는 방식은 사물에 생명이 깃든 것과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이로써 본래의 기능과 효용을 잃은 사물에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반복적으로 껍질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치유’의 행위라 볼 수 있겠다. 이와 같이 반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작업 방식이 극대화된 것을, 작가의 2000년대 작업의 또 다른 갈래라고 할 수 있는 <덩어리> 연작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발견된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전작과 달리 이 연작에서 그는 석고 직조 기법을 통해 어떠한 원형도 참조하지 않은 독립적인 형태의 조각을 만들었다. 커다란 석고 덩어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마치 ‘피부’와 같이 고운 표면으로 만들기 위해 60호에서 1000호에 이르는 사포로 문지르며 단순노동을 반복한다. 이로써 만들어진 유기적인 형태의 덩어리에 작가는 자칭 ‘숨구멍’을 뚫어주었다. 붙이고 문지르고 갈아내는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2000년대의 작품에는 “노동은 형태를 만들고 형태는 미술을 만듭니다” 7) 라는 작가의 말이 자연스레 투영된다.

이러한 작업의 변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18년>(2000-2001)을 예시로 들고자 한다. 그는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3년에 고전적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한 조각 <사춘기>(1983)를 제작했고,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후 이 작품에 초록색의 껍질을 붙여 새로운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작품의 기초가 된 조각이 제작되고 18년 후 재작업한 의미에서 붙인 제목이 여성을 비하하여 부르는 욕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1990년대 개념적 작업을 연상시킨다. 

또한 1983년 작품이 취하고 있는 자세와 그것이 좌대 위에 놓인 입상이라는 점이 조각의 고전적 가치를 흉내내려는 시도의 결과물이었다면, 그 위에 껍질을 붙여 만든 2000년대의 조각은 18년간 작가 고유의 조형 언어를 찾으려던 노력이 만들어낸 응결체이다. 입상에서부터 좌대, 그리고 그것이 놓인 바닥과 벽에까지 이어지는 껍질은 조각의 영역이 환경으로까지 확장되는 모습을 보이며 그 고전적 가치에서 탈피한다. 그가 이전까지의 작업을 해체하고 본인만의 작업 세계를 새로이 구축하고자 했음을 이 작품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소영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을 통해 그가 지나온 조형언어를 되돌아보며, 조각의 본질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작가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러한 그의 탐구 정신은 계속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 아트스페이스 3에서 열린 개인전 《buzzing》(2022)에서도 신작을 통해 이를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명(耳鳴)과 코로나 블루를 주제로 하여 파란색의 조각과 드로잉으로 구성된 이 전시에서 그는 모조 잎이 아닌 스팽글을 사용하였다. 스팽글의 사용으로 생성된 반짝이고 단단한 표면의 조각은 초록빛의 모조 잎 조각이 연상시켰던 애벌레가 고치로 변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 고치에서 나올 박소영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박민혜(1988∼),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가나아트갤러리 전시기획팀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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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소영과의 유선 인터뷰, 2022년 4월 10일.

2)   주재환‧박소영, 「Artist Relay: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는 유연한 사고」, 『박소영』, 서진인쇄, 2007, p. 97.

3)   뤼스 이리가레이, 「하나가 아닌 성」, 유승민 옮김, 『페미니즘과 미술』, 눈빛, 2017, p. 123.

4)   노형석, 「‘냄비’, ‘조개’ 사물로 보는 언어폭력」, 『한겨레』, 1997. 5. 3. 

5)   주재환‧박소영,  앞의 글, p. 98.

6)   박소영, 『한국현대미술선 007: 박소영』, 헥사곤, 2012, p. 9.

7)   《초록과 짐》 전시도록, 2003, 갤러리 피쉬, p. 23.





박소영, <공통분모>, 1996, 나무, 천, 오브제, 구리에 채색, 각 38×32×45cm




박소영, <18년>, 2000-2001, 모조 잎, 오브제, 145×80×150cm




박소영, <하얀 붕대>, 1997, 연장, 붕대, 종이에 잉크, 500×40×3cm




박소영, <조각의 껍질>, 2000, 폴리코트 캔, 모조 꽃, 50×50×46cm




박소영, <자! 한번 올라가주십시오>, 1993, 나무, 천, 금실 등, 140×120×4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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