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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사물을 더듬는 회화, 엄정순의 작품세계 | 손혜란

현대미술포럼



사물을 더듬는 회화, 엄정순의 작품세계



‘더듬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손으로 만져 보며 찾는다는 뜻의 동사이다. 엄정순(1961~)의 작업은 이 말을 충실히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회화가 사물의 ‘형태’를 선과 면, 색채를 통해 어떠한 형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미술 작업이라고 정의한다면 그의 회화는 이와는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물의 구조와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을 탐구한다기보다는 선적 요소를 사용하여 사물의 윤곽이나 부분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는 남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시각예술의 역사 속에서 여성적 경험의 관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새로운 모색이다.
 
1990년대 한국현대미술은 당대의 사회 변화와 함께 모더니즘 이후의 문화 이론을 토대로 다층적인 변화를 맞이하였다. 한편 1970년대부터 이어진 단색화 중심의 추상회화 계보는 모더니즘 전통을 더욱 굳건히 하며 남성 작가들의 주도 아래 계속되었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 작가들의 회화는 여전히 한국미술계의 주변에 머무르며 한국적 미니멀리즘 속 여성미술이라는 평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당대 한국 추상미술의 특성은 회화의 ‘점’과 ‘면’으로 축약될 수 있다. 이는 자연을 소재로 한 동양철학과 서구의 현상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정신성을 내재한 것으로, 강렬한 힘의 집약체로서의 ‘점’과 화폭 전체를 균질한 붓질로 채우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회화의 방향성과는 대조적으로 엄정순은 드로잉과 ‘선’을 중시하며 차별화된 회화작업을 보여주었다. 그 이면에는 추상회화의 내적 필연성보다는 신체적 경험을 회화로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있었다.

엄정순은 1983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8년까지 독일 뮌헨미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였다. 그의 유학 생활은 당대 한국에서 접하지 못한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나 지그마르 폴케(Sigmar Polke)의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독일 작가들이 다양한 주제와 방법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놀라웠고, 작가의 인식과 경험이 변화하는 바를 표현해낸 작업들에서 일종의 위로를 받았다고 회상하였다.1)  당시의 경험은 귀국 후 그가 회화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예술의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작가는 독일에서 귀국 후 1989년부터 1993년까지 개최된 개인전에서 유기적 형태의 덩어리와 기하학적 선들이 등장하는 회화를 보여주었다. 그가 발표한 작업은 서정 추상미술의 양식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의 의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무제>(1989)는 다양한 크기의 원과 수많은 곡선이 중첩된 형태를 보여준다. 화면 가득한 선들은 구체의 겉면을 가볍게 어루만지는 듯한 운동성을 드러내는데, 이처럼 일정한 방향으로의 역동성을 표현한 선의 반복은 작가의 내적 무의식의 발현이라기보다는 의도된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선이 공존하는 작품에서 나아가 그는 반복된 선으로만 구성된 작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목탄과 유화물감이 이용되었고, 화면은 길고 짧은 선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1996년 갤러리 나인에서 열린 개인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마치 곤충이 더듬이를 통해 대상을 관찰하고 느끼고 이해하듯, 나의 화면은 대상을 더듬어 가는 과정, 그 행위가 나타나며, 이때 선(line)은 중요한 수단이 된다” 작가의 이러한 견해가 드러난 <무제>(1992)는 일정한 대각선의 구도가 두드러지며 두껍고 얇은 도구의 궤적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목탄 촉과 붓끝은 작가 주체의 더듬이로 작용하고 그 선을 통해 역동성이 드러난다. 이를 담아낸 캔버스는 그 어떤 것을 만지며 알아가는 경험의 장이 된다.

그에게 선을 긋는 신체적 활동은 어떠한 대상을 더듬는 과정이고, 자연적 사물을 관찰하는 행위이다. 예컨대 ‘꽃’ 연작 중 <무제>(1993)는 역동적 선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는 녹색의 화면을 보여준다. 중앙에는 흰색 선이 밀집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바깥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짙은 녹색 선이 반복되어 나타난 형태는 넝쿨식물을 연상시킨다. 곡선의 반복을 통해 잎사귀의 외곽을 그려낸 드로잉 방식은 식물을 직접 만지는 감각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식물의 다양한 테두리를 변형시키고 섬유질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선은 대상의 외형을 면밀히 감각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의 외형과 이를 촉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작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는 비정형적인 자연을 표현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그는 손의 감각을 통해 자연물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듯한 묘사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1996년 발표한 ‘촛불’ 연작 중 <15개의 촛불 7(15 Candle lights no. 7)>(1996)에는 짧은 선들이 수직으로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여기에서 붉은색 물감은 불꽃의 일렁임을 표현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화면 전체적으로 목탄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직접 문지르는 도구이기 때문에 붓보다 작가의 손길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 목탄으로 그려진 단선(短線)들이 수직적으로 분포하고 이에 따라 문질러진 흔적은 불에 직접 작가의 손이 닿았다 떨어지는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처럼 촉각적 감각을 화폭에 표현한 작가는 신체적 운동성에 대한 탐구를 보다 심화하고자 시각장애인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우리들의 눈(Another Way of Seeing)’을 기획하였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작업에서 그는 시각장애 학생들과의 예술적 관계 맺기를 통해 시각예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이 협업 작업 또한 회화작업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그는 ‘보다’라는 개념을 관념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더듬다’는 촉각적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함으로써 미술의 시각성을 보다 구체적인 행위로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의도는 1998년 인체를 주제로 한 작품들에서도 잘 나타난다. 연속된 그림 세 점은 등 뒤의 손, 등, 그리고 걸어가는 사람의 발뒤꿈치와 다리를 보여준다. 이 연작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뒷모습을 그렸다는 것인데, 이는 누구나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는 “‘더듬다’는 대상을 모른다는 점에서 출발할 때 모르는 대상을 알아가기 위해 내가 취하는 본능적, 때로 의도적 행위 같다” 2) 고 하였다. 즉 자신의 뒷모습은 누구나 볼 수 없는 신체 부위로, 그 탐구의 대상이 된다. 이를 작가는 촉각적인 회화 언어를 통해 그 몸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화면 가득히 가늘고 다양한 색상의 선을 사용하여 대상이 된 인체와 배경의 경계를 넘나듦으로써 신체를 탐색한다. 여기서 ‘선’은 신체를 일시에 파악한 것이 아니라 몸의 주변으로부터 어떠한 움직임을 통해 천천히 더듬어 간 흔적처럼 보이도록 한다. 작가는 이처럼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을 ‘더듬다’는 미술적 제스처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촉각과 ‘선’의 사용을 통해 시각적 포착이 불가능한 부분에 주목한 작가는 ‘보다’가 추구하는 한 지점을 어떠한 정서의 발현으로 보기도 하였다. 특히 ‘인체’ 연작 중 <몸의 선 – 손(Line in body – hands)>(1998)은 한 사람의 양손으로 볼 수 있으나 각각 다른 사람의 손으로도 보인다. 작가는 서로 손을 대어보고 이리저리 더듬거나 쥐는 움직임을 현현함으로써 타인의 촉각을 캔버스 위에 끌어들이고자 한다. 이는 작가가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한 테마인‘더듬기’의 또 다른 변형으로서 그림에서 특정한 정서를 발견하도록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 태도를 바탕으로 2009년에는 ‘우리들의 눈’ 프로젝트를 확장한 ‘코끼리 만지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 협동작업 또한 시각장애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전개되었는데, 작가는 이를 불교의 맹인모상(盲人摸象) 이야기에서 출발하였다고 언급하였다. 이는 경험한 부분만을 통해 대상을 정의하는 사람의 우화(寓話)이나 그는 이를 희화화하는 대신, 이것이야말로 사물을 관찰해가는 방법으로 본 것이다. 코끼리를 표현하는 방식은 촉각적 인지와 각자가 가진 경험을 드러내는 행위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코끼리 전체의 형상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각적 인지 대신 몸의 감각을 추구한 이 작업을 통해 작가는 사물에 대한 관념적 인식을 거부하고 그간 시각예술에서 배제된 감각들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회화에 촉각성을 담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1990년대 초반 그의 회화가 작가 개인의 더듬는 행위를 통해 사물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1996년 시각장애인들과의 협업은 시각 중심주의 미술에서 배제되었던 감각을 미술에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은 작품에서 수많은 ‘선’으로 치환되어 나타났다. 그의 작업은 이렇게 다양한 감각을 회화에 반영하고자 한 것이었고, 당대 남성 미술가 개인의 주체적 ‘시각’을 그려낸 회화와 차별화되었다.

엄정순에게 회화는 곧 촉각 예술이다. 사물의 윤곽을 따라가는 그의 회화 속 움직임은 그림에 촉각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엄정순의 작업은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전통적 미술에서 배제되어 온 감각을 회복시키고자 한 시도였다. 결국 엄정순의 회화가 궁극적으로추구한 바는 ‘시각’으로부터 소외된 감각과 감정을 포용하고자 한 것이다.



손혜란(1989~),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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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정순과의 서면 인터뷰, 2022년 4월 5일.

2)   엄정순과의 서면 인터뷰, 2022년 4월 5일.




엄정순, <무제>, 1989, 캔버스에 유화, 목탄, 200×130cm




엄정순, <무제>, 1992, 캔버스에 유화, 목탄, 200×150cm




엄정순, <무제>, 1993, 캔버스에 오일 스틱, 아크릴, 100×100cm




엄정순, <15개의 촛불 no.7>, 1996, 캔버스에 유화, 목탄, 100×70cm




엄정순, <몸 안의 선 – 손>, 1998, 캔버스에 유화, 227×18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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