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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삶이 응축된 기억, 장상의의 회화세계 | 정보원

현대미술포럼



삶이 응축된 기억, 장상의의 회화세계



장상의(1940∼)는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63년, 미술계 데뷔전이나 다름없던 조선일보사 주최 《현대미술 공모전》에서 수석상, 1964년 공보부 주최 《신인미술상》 차석상 수상 등 1960년대 다수의 공모전에 입상하여 꽤 이른 시기부터 주목받았다. 총 25회 이상의 개인전을 치뤘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곳에 작가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여든이 넘은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작업하는 장상의의 예술인생을 작가의 구술기록 1) 을 바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최순우 선생님도 거기서, 김인승 선생님도 거기서 작업을 하셨던 분이고, 아버지하고도 굉장히 가까운 사이셔서 우리 집에는 김인승 선생님 작품이 꽤 많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그림을 쳐다보고 살고, 그림 가지고 놀고, 또 계절에 따라서 아버지가 그림을 바꿔 거시고..”

개성 출신인 장상의는 양조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 덕에 부유하고 자유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서화(書畵) 등 골동품 거래를 위해 거간꾼이 자주 드나들던 집안 풍경, 집에 걸려있던 김인승 화백의 그림들, 송악산 호두나무 밭, 지천에 널린 싱아 까먹던 기억까지 천방지축 유년 시절에 대한 장상의의 기억은 매우 또렷했고 이후 작품 속 원형의 기억으로 반복되어 나타났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서울로 남하하여 이화여중, 서울예고를 다니며 스승 김흥수, 장운상, 정창섭, 백문기, 김병기를 통해 동양화부터 수채화, 유화, 조소, 서양미술사까지 다방면의 학습기를 거쳤다. 1959년 서울미대 입학동기로 곽훈, 김차섭, 민병옥, 오경환 등이 있으며, 특히 이화여중 때부터 대학까지 10년간을 함께 했던 동창이 바로 최욱경이다. 

“처음에는 서양화가 훨씬 좋았고, 동양화는 전근대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뒤떨어진 옛날그림으로 생각이 들어서 안 하려고 그러다가 동양화로 갔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하면 더 현대적으로 가나, 서양화하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면 이기나. 조금 동양화로 갔지만 뭔가 새로운 걸 하려고 학생들도 몸부림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서울미대 시절 스승 월전 장우성의 권고로 동양화를 선택했지만, 화관(畵觀)을 세우는 데에 있어 실질적 영향은 묵림회(墨林會)를 이끈 산정 서세옥으로부터 비롯됐다. 당시 동양화단에서는 채색화를 일제의 잔재로 보았다. 1960년에 발족된 묵림회는 수묵을 중심으로, 기성화단을 뒤엎는 새로움을 추구했고, 주된 화풍은 비구상이었다. 장상의는 이미 서울예고 재학 시절에 《미국 현대작가 8인전》(1957, 국립박물관 덕수궁 내 석조전)에 전시된 잭슨 폴록, 로버트 마더웰의 그림을 본 뒤 충격을 받고 호기롭게 비구상을 시도한 바 있어, 비구상 자체가 새로운 표현은 아니었다. 문제는 어떻게 새로운 표현과 구도로 한국적 정서와 정신을 화면 내에 구현해 내는가였다. 수묵 추상을 추구했던 산정이지만 학생들에게 재료사용이나 채색에 제한을 두지 않았고, 심지어 선이나 구도적 측면에서 서양미술도 자유롭게 참고하도록 추천했다고 한다. 

동양화단의 기라성 같던 선배들 덕에 장상의는 졸업 후 국전이 아닌 민전(民展)을 택했고, 이른 나이에 비구상의 동양화가로 인정받았지만, 이내 십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했다. 결혼과 육아, 그리고 경북 성주의 11대 후손 종갓집 며느리로의 역할 수행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네 아이의 엄마역할을 더욱 충실히 해야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야 가사와 육아의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고, 마음에 묻었던 창작열은 불꽃이 되어 화폭에서 화려하게 춤을 추었다. 

“채워지지 않는 것을 채우려고 그림이 정신없어지고, 커지고, 21m까지 그렸으니까. 그 좁은 데에서 펴 놓을 수가 없어서 병풍을 만들어서 이렇게 돌돌 말아가면서 그렸어요. 그러니까 전시장에 가서야 전부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그게 <개성에서 서울까지>가 그거에요. 내가 살았던 것이 그때는 너무 원통해서”

제도권 내 미술교육을 충실히 받았고, 가족의 든든한 지원과 배려도 있었지만, 막상 작가에게는 일상에서 화업을 끊김없이 이어간다는 것만도 큰 도전이었다. 그간의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 받으려듯 1986년부터 여류 동문전 성격의 《비상전》 기획과 전시, 1987년부터 개인전 개최 등 왕성한 작업활동을 보였지만, 그림에 대한 절박함은 좀처럼 해소되지 못했다. 장상의는 당시 작가로서의 고통스런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일제강점기에 개성에서 태어나서 해방을 맞고, 해방 후의 혼란기, 6·25 동란, 9·28 서울탈환, 또 다시 1·4 후퇴로 피난생활, 서울 수복, 폐허 속에서의 정전(휴전), 대학시절 4·19 데모참가, 5·16 군사혁명, 70년대 민주화운동(투쟁), 경제개발 등 한국 질곡의 근세사를 체험하고, 살아낸 내 개인의 역사이자 우리의 역사를 <개성에서 서울까지>(212x2100cm)라는 제독의 대작으로 1989년 완성하였다. 이것은 나의 자화상이다” 2)

이후에도 작가는 <달을 먹은 새>(1992, 1995), <바람과 넋>(1986∼2005), <꽃과 영혼>(1996∼2009), <꽃비>(2003∼2009), <하늘에 걸린 산>(1991, 2018) 등의 반복된 시리즈를 통해 수묵과 채색의 경계를 다양하게 넘나들었다. 재료나 기법면에서 모시. 삼베 뿐만 아니라 가죽, 황토, 금을 사용했고, 신문 사진의 전사(轉寫), 광고 전단지의 활용, 설치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계속했다. 장상의의 조형언어는 1970∼1980년대 한창 동양화 붐이 일고 수묵산수화 바람이 불던 때에도, 비구상으로 일관됐고, 화제(畫題)는 어디까지나 작가 개인의 무의식 저편에 깊숙이 자리잡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삶과 생명, 자연의 원형에 대한 이미지에 기초했다. 

피난 길, 어린 시절에 옻이 올라 장포동 개울가에서 생 닭피를 받아 온 몸에 휘감기던 공포스런 기억이 <달을 먹은 새>로 환생하였다. <바람과 넋>시리즈는 작가로서의 치열했던 지난 삶이 화폭 속에 응축되어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폭발하듯, 때로는 침잠하듯 고요히 녹아, 삶의 희노애락으로 표현됐다. 한편 장상의는 1993년도부터 십년 넘게 대구예술대학교에서 동양화가 교수로 재직하였는데, 학교가 자리한 터가 사실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지인 다부동 전투가 벌어지던 곳임을 알게 됐다. 봄이면 근방에 진달래, 철쭉이 꽃물결을 이루는데, 작가는 이것이 6.25때 전사한 군인들의 혼이 되살아난 것으로 여겨, <꽃과 영혼>, <꽃비>시리즈를 통해 그들의 억울한 넋을 달래고 위로하고자 했다. <하늘에 걸린 산>은 작가의 삶에 대한 관조, 세상에 대한 시선이 점점 더 본질로 수렴돼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도시인>(2000), <수묵과 도시>(2008) 시리즈처럼 현대의 도상을 다룬 시의성 있는 주제들도 있지만, 대체로 장상의의 그림은 작가의 체험, 현실, 무의식 속에 뿌리내린 눈물나게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원형에 대한 기억이고 표현이다. 

“그냥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안하면 죽을 것 같아서, 그림 안 그리면 정말 눈물 나고 죽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게 내가 사는 거니까. 나를 얘기하고 사는 거니까”



정보원(1976∼),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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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상의 구술, 문정희 채록, 『2009년도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187: 20세기 한국 서화전통의 변모와 현대화 Ⅱ,  장상의』 , 2010, 국립예술자료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p. 155. 

2)   장상의, 『장상의 카탈로그 레조네』, 도서출판 룩북, 2010, p. 204. 





장상의, <자연으로>, 1969, 광목에 수묵, 혼합매체, 180x180cm




장상의, <개성에서 서울까지>, 1989, 화선지에 수묵채색, 212x2100cm




장상의, <바람의 넋>, 1990, 화선지에 수묵채색, 50x70cm




장상의, <꽃과 영혼>, 2002, 한지에 수묵, 65x90cm




장상의, <하늘에 걸린 산>, 2018, 종이에 수묵, 혼합재료, 126x18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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