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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멀지 않은 곳의 풍경, 이인실의 산수화 | 김효정

현대미술포럼



멀지 않은 곳의 풍경, 이인실의 산수화




전통적 재료의 특성 때문인지 흑백의 화면이 풍기는 시간의 두께 때문인지, 수묵으로 그려진 산수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있는 이곳과는 다른 먼 곳의 풍경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1963년부터 오랜 시간 동안 팔당, 덕소, 양평, 설악산, 제주 등 향토적이고 소박한 자연을 묵묵히 그린 소현 이인실의 그림에서 이런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가보지 못한 어떤 곳이 아닌 도시 근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변, 숲, 계절에 따른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소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수묵 산수화를 우리의 가까이에 위치시켰을까. 


1934년에 태어난 이인실은 서울대학교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1961년 첫 개인전에서 유화로 그린 인물화를 선보였는데, 이 때 전시 준비 차 설악산과 동해안을 스케치하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의 토속적인 아름다움은 유성의 재료로 표현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미 국전에서 서양화로 여러 차례 입선을 하며 등단한 그는 1963년 수묵화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쉽지 않으면서도 흔치 않은 이인실의 결단의 배경에는 물론 재료의 특성상 한국의 향토적 풍경을 나타내기에 동양화가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당시 추상의 흐름에 있었던 한국화단의 상황이 있었다. 


1950~60년대 한국화단은 광복 이후 서양에서 유입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모던아트협회, 신조형파, 현대미술협회 등 비구상 경향의 단체들이 생겨났고 동양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입체주의적 화면분할 구성을 시도했던 김기창과 박래현, 먹이 종이에서 번지고 스며드는 성질을 동양의 자연과 정신성과 연결하여 추상적 화면의 수묵화를 이끈 서세옥 중심의 묵림회가 등장했다. 이는 이인실이 1961년 유화 작품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하고 그로부터 2년 뒤 수묵화로 전향한 시기와 맞물리는데, 그의 작품은 이 같은 비구상 화면의 출현, 재료의 특성과 정신성을 내세운 한국화단의 새로운 바람에는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문인 수묵화의 전형을 보여준 월전 장우성과 배염을 사사한 그의 선택은 역시 추상 계열의 화면과 결별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1983년 첫 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전시를 이어오고 있는 여류동양화가들의 모임 ‘가락지회’에서 이인실은 1980년대 당시 원앙 그림 연작에 몰두했던 원문자, 보리밭을 배경으로 여성 누드화를 주로 그린 채색화가 이숙자 등 특정적인 소재로 자신들의 화풍을 만들어가던 동료들과는 달리 서울 근교의 정겨운 자연 풍경을 수묵담채로 그려나갔다. 1960년대 초 이인실이 배염 선생을 사사했을 때 서양화과에서 경험한 것과는 다른 자연에 대한 동양적 접근 방식에 어려움을 경험했지만 이내 스승의 방식과 자신이 자연에서 느끼는 감흥을 절충하는 것으로 작품의 방향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청전 이상범을 사사한 배염의 작품 역시 향토적 수묵 사경화 1) 에 근거하고 있지만 연무에 감싸인 산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점묘법으로 표현하거나 저녁 무렵 또는 비온 후와 같은 계절감이나 기상감이 작품의 주된 색깔이었으므로 이인실은 이를 선별적으로 학습하여 관념 산수로 가는 길로부터 거리를 둔 것이다. 


또한 소현의 산수화는 1980년대 송수남을 주축으로 한 동양화의 현대화 운동과도 맞물려있지 않다. 송수남은 전시와 글을 통해 조선 후기 겸재 정선으로부터 근대기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승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우리 전통회화의 복권이라는 대의를 위한 남성 동양화가 중심의 운동이었다. 더불어 송수남의 수묵운동은 진경산수에 뿌리를 두고 출발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먹이 다양한 표현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견해를 수정하였고, 자신들을 향한 높은 사회적 호응도에 따라 대형 전시화 되며 점차 젊은이들을 규합한 현장 실험의 성격이 강해지게 된다. 2) 한편 이인실의 회화는 수묵화 혹은 한국화가 맞이한 시대적 상황에서 물러나있는 듯 보인다. 이인실은 ‘가락지회 외에도 1965년부터 《청토전》에 참가하는 등 동양화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모임과는 달리 여러 경향의 그림이 어우러졌던 청토회, 상대적으로 소수의 회원을 보유했던 가락지회의 활동만으로 소현의 산수화를 한 시대의 운동과 결부하여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특정한 운동으로 묶을 수 없는 이인실의 산수화는 특정 사조나 방식과의 관계를 통해 독자성이 드러난다. <강변>(1991), <성하1>(1994)을 보면 이인실의 작품은 선대의 동양화가들이 산수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장엄함이나 시적이고 간결한 표현 모두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다. 이는 이인실의 산수화가 동양화를 시작할 때 배염 선생이 지적한 ‘서양화식 사생’에서 출발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전통 동양화에서의 사생은 실제 본 것에서 출발하더라도 작가의 심상을 통한 고도의 철학적 간명화를 거치게 되는데 소현은 이러한 과정 없이 자연이 지니고 있는 현장성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연을 하나의 소재로만 생각했을 때에는 우리나라 산하가 너무 단조롭고 초라한 것 같아 불만스러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연을 소재의 대상에서 전환시켜 나의 삶의 친구로 받아들이니 그렇게 정답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3) 는 이인실의 발언은 산수화가의 역할을 자연을 이상화하는 것 대신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발견자로 위치시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1996년 인데코 화랑에서 《소현 이인실 화조화전》이 열렸다. 동양화에 입문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그려온 화훼화 역시 자연의 담소함을 찬미하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들국화>(1992), <패랭이꽃>(1992), <동백꽃>(1994) 등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를 화려한 기교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이인실의 화조화는 꽃과 새를 화폭에 조화롭게 배치하여 작가의 결기나 특정한 심상을 전달하고자 하는 전통 회화의 사의적 표현이 배제되어 있다. 즉 월전 선생의 문인화적 영향이 강하게 작용되었던 60년대의 화조화와는 차별화된 소현의 자연스럽고 친숙한 꽃그림인 것이다.


소현 이인실은 스케치북을 일기장처럼 들고 다니며 꾸준히 해온 사생을 바탕으로 가까이 있어 놓치기 쉬운 한국의 자연 풍경을 구현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묵필의 화려함이나 사실주의의 명료함과는 거리가 있는 어떤 따뜻한 온도를 느낄 수 있다. 자연 속의 리얼리티를 표현함과 동시에 자연을 대면한 당시 작가의 내면적 심상을 담아 냄으로써 그곳에서 나는 계절의 냄새와 분위기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김효정(1983~),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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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묵 사경화는 일본 근대화단의 향토적 자연주의 경향의 풍경화에 자극을 받아 1923년경부터 이상범을 중심으로 대두된 것으로서, 현실경에 대한 합리적 관조와 체험적 감흥으로 종래의 화보풍 관념산수를 극복하면서 한국 산수화의 근대적 활로를 개척했다. 그러나 1930년대를 통해서는 향토경의 현실성보다는 일본적 감성과 밀착된 서정성 짙은 분위기 위주로 관념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홍선표, 「문인풍 수묵산수의 모범」, 이구열, 『배염/성재휴』, 금성출판사, 1990, p. 76.


2) 김현숙, 「1980년대 한국 동양화의 탈동양화」, 『현대미술사연구 제 24호』, pp. 207~213.


3) 이인실, 「스케치북」, 『빛과 소금』, 1983. 12.






이인실, <강변>, 1991, 한지에 수묵채색, 70x135cm





이인실, <성하1>, 1994, 한지에 수묵채색, 99x130cm





이인실, <들국화>, 1992, 한지에 수묵채색, 54x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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