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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광대한 여정의 알레고리, 정연희의 심상 풍경화 | 임은우

현대미술포럼



광대한 여정의 알레고리, 정연희의 심상 풍경화



정연희(1945~)의 풍경화는 새롭다. 그는 구체적인 현실의 이미지를 나타내지만 그로 인한 풍경은 가보지 않은 세계처럼 낯설다. 그의 그림은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듯이 어떤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고 그 실존적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작가 자신을 대입한 방랑의 이미지는 진리에의 여정을 대변한다. 그의 활동 또한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서울을 오가는 광범위한 여정의 일환이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남편 성을 따른 ‘백연희(Younhee C. Paik)’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민자로서의 삶, 여행자로서의 경험은 그의 화면에서 독자적인 알레고리로 나타난다. 

정연희는 1960년 현대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미술 전공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서울예고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실기 교육을 받았고, 1964~1968년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김병기(1916~2022), 김창열(1929~2021), 문미애(1937~2004), 정창섭(1927~2011), 류경채(1920~1995) 등 주로 1세대 추상회화 작가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윌리엄 드 쿠닝의 회화에 매료되면서 구체적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주관적 형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1970~1973년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구상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작업 초기에 해당하는 1970~1980년대는 모더니즘 미술의 추상 형식에 대한 반향으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구상회화를 추구하는 신표현주의가 국제적으로 부상하던 때다. 정연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상징주의를 기반으로 표현주의의 계보를 잇는 줄리어스 하토프스키(1922~2006), 브루스 맥거우(1935~) 등으로부터 회화와 드로잉을 배우며 구상 이미지의 독자적 표현 방식을 발굴해 나갔다. 

1970년대 당시 국내 미술계에서는 해외 유학이 크게 증가하고 있었으며 국제 활동을 위해 장기 체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 정연희는 미국에서 자리 잡은 작가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1975년 제29회 샌프란시스코 아트 페스티벌에서 수상하고 이듬해 9월 신세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이때 선보인 <출발>(1975)은 주관적 상징을 통해 방황과 고뇌의 낙관적 전망을 표현한 그림이다. 명암이 두드러지는 그의 화면은 이 시기부터 지속된 특징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그는 작업을 떠나는 행위에 비유하였다.1)  이러한 그림은 신표현주의의 유행에 앞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남성 작가 중심의 신표현주의 운동에서 정연희의 행보는 여성 작가로서, 동아시아인으로서, 그리고 이주민으로서 과감했다. 신표현주의자들이 주로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내용으로 다룬 것에 비해, 정연희는 현실을 초월한 근본적인 주제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사회 현실이나 미술계의 주요 경향과는 무관하게 초월적 세계를 구현하고 독자적인 작업의 길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정연희의 그림에는 주로 움직임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1973년 그의 동판화에서는 힘의 방향이나 대기의 흐름을 암시하는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1980~1982년 <다섯 번째 계절> 시리즈에서 발전하였다. 이 시리즈는 막대기, 줄, 또는 바위 등을 움직이는 인간의 형상을 통해 물리적 힘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화면에서 힘의 원리는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운동 궤도가 후광을 연상시키며 성스러운 영역을 구획하고, 수직과 수평의 구도가 화면의 균형을 만들어 내는 한편 십자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단색조의 화면에 나타난 작은 인간의 형상은 무한한 우주 속에 놓인 개인의 나약함을 대변한다. 작가는 모노크롬의 추상적 요소와 구체적인 현실의 이미지를 조합함으로써 초자연적 세계관을 구현한 것이다. 

또한 정연희는 공간을 매개하는 소재들의 구성을 통해 특유의 원근감을 나타낸다. 계단, 문, 사다리 등의 이미지는 그의 화면에 기하학적 조형 요소를 도입한 것이기도 하다. 1987년 <다시 만날 때-층계>는 계단을 여러 각도로 변화시키고 중첩함으로써 무한한 공간을 함축하는 그림이다. 계단은 당시 작가가 거주하던 샌프란시스코의 지형상 비교적 익숙한 소재로서, 특히 그에게는 가사를 마치고 화실로 향하는 통로를 상기한다. 이는 가정에서의 역할과 예술가로서의 의지를 오가는 그의 끊임없는 여정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다루는 일상의 소재는 일상 너머의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의 그림은 끝없이 펼쳐지는 듯한 공간감을 통해 초월적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빛과 바람, 물의 흐름과 같은 이미지를 화면에 나타내기도 했다. 자연현상의 고정되어 있지 않은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의 그림은 물질의 유동적 상태를 포착함으로써 순간의 영원성을 담아낸다. 1986년 캘리포니아 산호세 미술관에서 전시한 <나무-왕>, <나무-여왕>(1985)은 십자가형 화면에 나무를 그린 그림이다. 여기에서 나무는 마치 후광 같은 강렬한 빛과 함께 등장하며 화면의 명암을 강조한다. 그는 빛을 표현할 때 캔버스에 황금색을 먼저 채운 뒤 이미지를 덧그렸다. ‘물질이 존재하기 이전의 빛’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2)  그런 점에서 이 빛은 현실의 자연을 초월한 종교적 속성을 갖는다. 

한편 1988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에서 선보인 <흘러가는 구름>(1986)은 대기의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는 물이 솟아오르거나 흘러내리는 상태를 볼 수 있는데, 이 시기 그의 작업의 특징이다. 그는 화면의 유동적 효과를 위해 테레빈을 유화에 붓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물의 이미지는 바다에 대한 그의 오랜 인상이 발현한 것으로,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6·25 전쟁 당시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떠난 경험을 언급하였다. 피난지 해변의 수평선과 무한한 공간이 일찍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1989년 인도 여행 이후 <갠지스 강> 시리즈 등에서 물과 빛의 표현을 심화하며 자연과 영성을 아우르는 이미지를 모색해 나갔다. 

정연희에게 자연은 작업의 원천이며 작업은 진리의 통로이다. 그는 자연을 통해 진리를 탐색하고 신의 현존을 느낀다. 또는 자연에 스스로 이입하기도 한다. 그는 풍경을 그릴 때 사람의 형상을 매우 작게 그리거나 아예 그리지 않음으로써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동양화의 전통 자연관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따르는 세계관과 동아시아인으로서 내재된 자연관이 공존한다. 다시 말해, 자연을 초월적 대상이자 의인화된 주체로 보는 그의 복합적인 관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낭만주의 형식의 맥락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자연의 타자성을 전제로 숭고함을 위시하는 낭만주의 회화와는 함의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그림은 초월적 종교와 애니미즘의 신화를 오가는 혼성의 공간을 구현한 것이다. 

한편 그의 작업에서 중심 소재들은 비슷한 함의를 지니며 그림의 연속적인 맥락을 만든다. 발자국과 물고기, 배와 교회 등의 소재들이 잇달아 엮이며 다른 그림에서 대체되거나 한 화면에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정연희는 이 소재들을 빛 또는 물을 매개로 부유하고 떠나가는 것들로 의인화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초기 그리스도교의 상징물이기도 한데, 작가가 성서적 함의를 의도한 것은 아니다. 종교 도상은 그 자체로 신앙체계를 함축하면서도 작가의 경험과 직감에서 비롯된 주관적 상징을 포함할 수 있다. 그에게 익숙한 기독교 이미지가 무의식적으로 발현한 것이더라도 그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일상적 소재를 그린 셈이다. 

이를 테면, <우리에게 자비를> 시리즈(1992~1996)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하듯이 곤두선 물고기들은 그가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대화재로 인해 타버린 나무들을 보고 연상한 이미지다. 이 물고기는 1996년의 그림에서 배로 바뀌었다. 그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그레이스 교회에서 배를 떠올리고 자연의 물질과 영성을 온전히 담아내는 상징물로서 이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배 또한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다가 2000년대에 이르러 교회 도면으로 탈바꿈하였다. 이 같은 상태의 변화는 ‘습성에서 계속 탈출하려는’3)  작가의 예술적 에너지를 대변한다. 그는 이러한 그림으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였으며 해외에 진출한 한국 미술가로서 다시 한 번 이름을 알렸다.  

정연희는 1995년 친정어머니의 타계 이후 새로운 여정을 결심하고, 이듬해 뉴욕으로 진출하였다. 이 시기 그의 작업은 소재뿐 아니라 재료, 기법, 매체 등에서도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현대적인 대도시의 이미지를 반영하듯이 그의 화면에는 기하학적 배열이 두드러지면서 추상과 구상의 이미지가 공존하기 시작했다. 그는 산업재료인 알루미늄 판을 화면으로 사용하여 물성 자체의 빛을 활용하기도 했다. 또는 캔버스를 물에 적시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붓는 드리핑 기법을 구사하였다. 수성 재질인 아크릴의 특성을 이용하여 물감이 화면 위에서 섞이게 만들고, 빗자루나 롤러로 덧그린 것이다. 이를 통해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채색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캔버스의 프레임을 탈피하여 회화를 천장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천을 천장과 벽에 띄워 매달아 놓은 형식은 그가 그린 배의 돛을 연상시켰다. 

정연희의 설치 그림은 국내에서는 1999년 토탈미술관 개인전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 <휴식으로의 초대>(1998)는 모친이 병상에 있을 때 천장에 평화로운 그림을 걸어놓고 싶었던 작가의 못다 한 염원을 천상의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다. ‘Dear Mom’, ‘If I could see’와 같은 향수의 문구를 담은 이 그림은 그리운 어머니,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모성으로의 여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구체적인 상징을 담아내기보다 무언의 안식처를 구현하고자 했으며 명상적인 관람을 유도하였다. 관람객은 전시 공간마다 다르게 연출된 설치 작품을 누워서 보거나 올려다봄으로써 신체의 위치를 변경하고 시야를 확장하였다. 이 과정은 작가의 자전적 서사를 관람객의 다층적 경험으로 확대하고 예술적 치유로 승화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설치 그림 <별의 탄생과 죽음>(1998)은 현실을 초월하는 궁극적 세계로서 우주 공간을 구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별들의 궤도는 생성과 소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함축한다. 변하는 것, 유한한 것, 소멸하는 것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불안은 그의 그림을 통해 낙관적 상태로 전환된다. 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거세하고 평화로운 우주를 펼쳐내기 시작한 것이다. 

정연희는 2000년대 이후에도 기존의 형식적 특징들을 변주하며 총체적인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작업에 나타난 이동과 방랑, 상승과 하강, 그리고 변신의 양상은 특정한 목적지를 해체하고 부유하는 실존적 존재의 궤도와 같다. 그 변화 자체가 자연의 변하지 않는 섭리임을 일깨우듯이 정연희의 예술적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임은우(1983~),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전 강릉시립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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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크 D. 존슨, 「정연희 작가의 4장에 대한 소개」, 『정연희』, 환기미술관, 2020, p.19.
2) 정연희, 「작가 노트」, 『Younhee Paik』, Triton Museum of Art, 2005, p.70.정연희, 앞의 책, p.164.
3) 정연희, 앞의 책, p.164.




정연희, <다시 만날 때-층계>, 1987, 캔버스에 유채, 172x213cm




정연희, <우리에게 자비를-축복>, 1994, 캔버스에 유채, 142x168cm




정연희, <별의 탄생과 죽음>, 1999, 토탈미술관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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