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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김종례의 회화에 나타난 ‘여성과 현실’ | 손혜란

현대미술포럼



김종례의 회화에 나타난 ‘여성과 현실’



한국현대미술사 속에서 여성미술의 새로운 시작은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로 볼 수 있다. 1985년 민중미술협회 여성분과가 만들어지고, 이후 여기에 참여한 여성작가들은 ‘여성미술연구회’로 명칭을 새롭게 하였다. 공식적으로 여성미술을 다루는 미술가단체의 등장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의 소외, 노동자로서의 여성 등 현실에 투영된 여성의 삶을 보다 실질적으로 다루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들은 한국의 독특한 상황 속에서 여성을 하나의 계급으로 삼고, 이를 부각시키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들 중 김종례(1947~ )는 여성의 사회·제도적 위치를 짚어내고, 여성을 향한 문화적 인습과 억압을 거부하는 작업을 보여준 작가이다. 그는 삶을 통해 체득한 경험을 화폭에 직관적으로 옮기는 창작 활동을 함으로써 한국 현대사 속 여성들의 발언을 대변한다.

김종례는 서울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미술을 공부하였다. 그는 미술을 체계적으로 습득했다기보다는 초등학교 교사 양성에 필요한 예술적 교양의 하나로 배움을 시작했으나 재학 당시 국선에 입선하고 목우회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로 미술 창작에 노력을 기울였다. 1968년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였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모성을 배태한 여성상이 강조된 당시의 상황은 그가 10여 년간 작가로서의 창작 작업을 단절하는 요인이 되었다.

1980년대 초반 그는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 창작 활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는 서초동에 있는 미술 작업실을 다니면서 다시 미술의 기초를 배우고, 데생 연습을 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때부터 김인순, 윤석남 등의 작가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이는 김종례가 작가로서 당대 사회·문화적 억압과 여성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작품에 투영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그는 1982년 출판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소묘 11인전》에 참여하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 구조와 그에 따른 인간적 심층 인식의 저변을 드러내는 초기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작업의 특성은 1985년 관훈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예컨대, 산과 들판을 배경으로 경운기에 탄 여성 노동자들을 묘사한 <첫 새벽의 경운기>(1984)는 암녹색의 일정한 색조로 무거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초기 작품들은 굵고 투박한 선과 어두운 색채의 사용을 통해 고된 현실을 구체화하기 위한 표현주의적 시도였다. 나아가 작가는 사회적 삶의 사실성보다는 정신적 관념을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기도 하였다. <나들이를 위한 수의>(1984)가 그 예이다. 암청색의 톤으로 묘사된 여성이 흰색으로 강조되는 저고리를 다림질하는 모습을 나타낸 작품은 죽음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보여준다. 그는 특정한 관념을 여성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이를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다. 

한편, 그가 여성의 현실을 보다 진지하게 탐색하는 데에는 시월모임의 준비과정이 영향을 미쳤다. 이 여성작가들의 모임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의 현실을 지적하고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김종례, 김인순, 윤석남이 그 멤버로서 참여하고 있었는데, 1985년 10월에 창립전을 개최할 때는 김종례가 빠지고 김진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김종례는 개인전과 비슷한 시기에 시월모임 전시를 기획하고 있었고, 이와 동시에 집안의 대소사와 자녀 양육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고 회상하였다.1) 즉 여성의‘현실’적 문제가 미술 활동의 장애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그의 작품을 보다 여성의 삶 그 자체를 다루는 경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가부장제에서 요구받는 여성상과 그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어내는 그의 회화는 여성미술연구회 활동과 그 전시들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았다. 김종례는 시월모임의 멤버와 이화여대 동인 터 그룹 등이 결성한 여성미술연구회에 참여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는 미술 이론과 여성 관련 문헌을 탐독하고 여성미술의 방향성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다. 여성미술연구회는 민족미술협의회 내의 여성미술분과로 자리 잡고 여성문제에 대한 확장된 논의를 펼치고자 연례 전시인 《여성과 현실》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여성작가들은 제도적 모순과 노동 현실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를 고발하는 전시를 보여주었는데, 김종례는 이 전시에 1988년부터 1994년까지 꾸준히 출품하였다. 그는 또한 개인전과 여타 그룹전을 통해 1990년대 사회적 틀에 의해 규정지어진 여성의 입장과 그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의 모계 혈통을 통해 내려온 여성에 대한 여러 부조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 김종례는 특히 작품의 내용적 측면을 한 화면에 압축적인 양식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형식은 <일터에서 돌아온 후>(1990)에서 잘 드러난다. 방으로 구획된 화면의 각 공간에는 아이들이 잠들거나 울고 있는 모습, 산적한 빨래, 복잡한 주방 개수대가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상태와 사물들이 얽혀 있는 공간은 검은색의 배경으로 처리되어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된 과업으로써 표현된다. 화면 하단의 가방을 멘 여성의 뒷모습 주변만이 밝은 색채로 강조되는데,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여성의 입장이 마치 포스터의 한 장면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여성의 상황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된다. 1992년 그에 대한 비평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김종례씨가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은 관습이나 인습으로 인해 억눌리고 핍박당하면서 가슴에 한을 품게 된 여성상이다. (…) 이 세상을 직접 맞딱뜨리는 것이 아니라 한발짝 물러서서 현실을 대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네 여성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2)

그의 작품은 이처럼 여성 그 자신에 대한 온전한 여성성보다는 여성을 둘러싼 공동체 환경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부과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좌절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점은 <할머니의 팔순>(1995)에서 한국 현대사를 몸소 체험한 여성을 통해 압축되어 나타난다. 작품에는 여섯 폭의 병풍을 배경으로 흰색 한복을 입은 백발의 여성이 제사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데, 특히 주목되는 바는 병풍의 각 화폭에 한국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시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친왕과 이토 히로부미의 사진 등으로 묘사된 일제강점기부터 38도선과 피란 행렬, 붕괴되는 건물로 표현된 한국전쟁, 이승만의 장례 행렬, 박정희의 취임식, 광주시청과 5.18 민주화 운동의 모습, 쓰러진 이한열을 통해 상징되는 6.10 민주항쟁까지 80여 년 한국사의 주요 국면들이 서술되어 있다. 더욱이 이러한 흑백회화에 대비되어 색채를 띤 꽃송이들은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여성 참가자들이 전경에게 최루탄을 사용하지 말라고 부탁하며 꽃을 건네는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곧 폭력의 역사 속 여성의 태도를 그려낸 것이다. 이와 동시에 그 앞의 여성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의 참여자였다는 측면이 부각되어 나타난다. 여성과 한국사를 구성하는 각 정치적 사건들의 결합은 작가가 당대 여성의 현실을 만들어낸 가장 큰 원인을 정치와 사회적 제도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는 여성운동을 통해 여성이 살아가는 주변 환경의 변화를 위해서 제도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가정법 개정과 호주제 폐기를 위한 사회활동에 참여한 작가는 국회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의 엽서화를 제작하고 법 개정을 위한 여성운동을 행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그의 작품이 미학적인 조형성의 맥락에서 창작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활동가로서의 작업임을 강조한다.

여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작가는 이를 통해 제도적 개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도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는 이러한 상황의 요인을 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관습과 인습으로 보았다. 예컨대, <출가외인>(1999)은 여성의 성장 과정이나 그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결혼 이후에는 남성 혈통과 그 가족에 편입되어버리는 현실을 시각화한 것이다. 화면에는 청기와가 올라간 집의 기둥에 붉은색 꽃무늬 치마가 묶여 있고, 그 아래는 흰 고무신이 놓여 있다. 이는 집의 기둥이 되어버린 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킨 것인데, 제목 그대로 ‘출가외인’이 되어 친정으로, 또한 시집으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여성의 처지를 보여준다. 특정 문화 속에서 습속으로 다뤄지며 오랜 시간 여성에게 당연시되어 온 억압을 비판한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계속적으로 행해지고 승인되어 온 문화 양식 전반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렇듯 김종례의 작업들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구체화하여 보여준다. 그는 여성이 처한 현실을 회화로 드러냄과 동시에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사회적 박탈 과정에 저항하는 여성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즉 그는 활동가로서의 작가이다. 그에게 미술은 여성에 틈입하는 모순과 사회적 폭력을 고발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이 살아가기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관습적 변화를 추구한다. 그의 작업은 한국 사회 속 여성들의 삶과 그 현실을 나타내는, 여성들을 위한 하나의 표어이다.



손혜란(1989~),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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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상창고 숨, 전주문화재단, 《2022 도래할 풍경 - 매일 매일 내일 展》 이어질 풍경 아카이브 영상 전시, 김종례 인터뷰 참고.

2) 민혜숙, 《김종례의 여성전》, 그림마당 민, 1992.




김종례, <일터에서 돌아온 후>, 1990, 유화, 65.2×80.5cm.




김종례, <할머니의 팔순>, 1995, 혼합재료, 200×200×200cm.




김종례, <출가외인>, 1999, 유화, 53×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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