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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김원숙이 그린 ‘여성들’의 일기장 | 김해리

현대미술포럼



김원숙이 그린 ‘여성들’의 일기장



한국인 이름이 붙은 미국 공립대학이 있다. 바로 시카고 일리노이주립대의 예술단과대 ‘김원숙 칼리지(Kim Won Sook College of Fine Art)’이다. 동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김원숙은 2004년 예술대학 졸업 축사를 맡고, 2015년 ‘김원숙 장학금’을 개설해 미국인 학생에게 예술 공부를 계속하도록 도움을 준 인물이다. 이에 2019년 예술대학 명칭이 ‘김원숙 칼리지’로 변경되었다. 백인 학생이 대다수인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아시아 여성’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는 김원숙 칼리지. 그 주인공은 어떤 예술적 발자취를 남겨 왔을까? 

김원숙(1953~)은 부산 출생으로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는 홍익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교수의 화풍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제도화된 수업 방식에 의구심을 품고 1972년 학업을 마치지 않은 채 일리노이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작가에 따르면 당시 미국 화단은 마크 로스코, 로버트 마더웰, 헬렌 프랑켄탈러 등 ‘컬러 필드 추상’을 조명하고 있었다고 한다. 작가 역시 서구 미술 조류를 남보다 먼저 흡수하면 한발 앞서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미국 화단의 주류 양식을 습득하고자 커다란 캔버스에 물감을 거칠게 바르는 추상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애써 따라가도 그는 작품에 온전한 ‘내 언어’가 없다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회를 다녀오는 바람에 판화 제작 강의 수업 시간에 지각했는데 해명 삼아 들이민 드로잉 스케치북이 전환점이 되었다. 이를 본 해롤드 보이드 교수가 “이게 너야, 왜 이런 작업을 하지 않니? 그게 더 정직하다.”라고 그를 구슬린 것이다. 이 조언 덕에 김원숙은 ‘자신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겪은 일, 좋아하는 사람, 흔들리는 마음을 작업에 담았다.

김원숙은 인간 존재가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등 보편적인 이야기를 자신의 일에 빗대어 그림으로 그린다. 그렇게 그의 회화는 하나의 ‘자전 소설’이 된다. 특히 작가는 아내와 엄마라는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을 그림에 녹여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가족을 돌보느라 작가 커리어를 축소했던 과거를 이렇게 회고한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들어오니 내 커리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작가라서 특별히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세계적인 작가가 되려면 전략도 있어야 하며, 모든 것을 투자하고 희생해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애 보는 것이 재밌었고, 그림을 끼적거리는 게 좋았다. 미술계에는 게임의 규칙이 있다. 내가 그걸 했으면 더 성공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아웃사이더로서 행복했다. 항상 전시보다 가족이 우선이었다. 나도 내 그림을 현대적으로 만드는 법을 안다. 그림 절반을 태우거나 자를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답답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내겐 부자연스러운 일이어서 못하겠다.” 1) 이처럼 김원숙은 예술에 투신해 화단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기를 택하지 않고 여성 개인의 삶에서 직면하는 매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분노하거나 좌절하기보다 아내와 엄마를 수행하며 느낀 ‘짙은 정서’를 드러낸다. 현모양처라는 프레임에 얄팍하게 축소된 여성상이 아니라, 현모와 양처에게도 있기 마련인 내면 갈등, 성적 욕망, 심리적 요동, 자연 예찬 등을 표현해 낸다. 남성 문화에 편승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더라도 여성임을 자각하고 고뇌하는, 또한 평범한 엄마이자 주부로서 무한한 기쁨을 알고 끝없는 심연으로 내려가는 일. 김원숙은 사조나 형식에 얽매지 않고 자전적인 내용을 표현함으로써 여성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상황과 내면을 투영한 미시 서사에서 출발해 거대 담론에 물줄기를 댄다.

김원숙 작업 세계의 여성주의는 크게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독해할 수 있다. 하나, 여성의 자화상. “내 그림들은 자화상의 요소가 많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 내 마음에 와닿는 정경들, 나를 들뜨게 하는 것들, 내가 무서워하는 그림자들, 내가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 모두 그림이 된다. ‘나’라는 작은 우주 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소리, 기억, 이야기, 그리움, 꿈 등의 이미지들이 화폭에 내려앉아 자기 자리들을 잡고 이어져서 그림이 만들어진다. 내가 살아내는 삶의 일기책이다.” 2) 김원숙은 단지 얼굴이 아니라 인물의 주변을 둘러싼 상황을 묘사해 여성의 자화상을 그린다. 특히 작가 작품은 폭넓은 의미에서 ‘집’을 그린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자기 존재, 정체성과 고스란히 겹친다. 집안을 배경으로 한 김원숙의 그림은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자아를 드러내는 심리 자화상이다. 

가령 김원숙은 그림에 부부 관계의 지독한 애증을 직간접적으로 은유하고 그것을 가정생활의 비밀 일기장처럼 활용한다. 작가는 1980년 미국 유학 생활 중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 활동을 펴는 유진 벨 재단의 스티브 린튼과 결혼한다. 이들 부부는 한인 혼혈아 둘을 입양해 길렀지만 그림보다 구호에 집중하길 바랐던 남편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끝에 2001년경 20여 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김원숙의 초기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굴레에서 외롭고 위태롭게 방황하고 있다. <바늘 비>(1983)에는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세찬 비를 맞고 선 여성이, <신부>(1989)에는 무겁게 밀려 들어오는 물을 향해 걸어가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들은 부케를 들고 있거나 면사포를 쓰고 있어 신부임을 추측할 수 있는데,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텅 빈 실내와 여성을 천천히 집어삼킬 듯한 물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는 결혼 제도에 회의를 품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작가는 얼굴에 눈코입을 묘사하지 않거나 뒷모습을 보여주는 장치를 통해 여성 보편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한편 작가는 2003년 한국 전쟁의 혼혈 고아로 태어나 미국에 입양된 토마스 클레멘트와 재혼한다. 이후 김원숙이 그린 가정은 화사한 꽃바람을 맞는 환희의 낙원으로 변신한다. 두 손을 꼭 잡고 과일을 나눠 먹으며, 달그림자 비치는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체의 몸을 살포시 포갠 남녀가 그림의 새로운 등장인물이 된다. 둘만의 우주에서 애정을 속삭이는 연인. 비로소 여성이 품고 있는 에로틱한 ‘욕망’이 집안에 싹튼 것이다. 이처럼 파트너에 따라 좌우되고 다시 정열에 불타오르기도 하는 인물상으로, 김원숙은 중년 여성에게 거세되었다고 여겨지는 사랑의 감정을 일깨우고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부각한다.

둘, 동화적인 표현법. 김원숙 그림에는 꿈과 현실이 홀연히 융화돼 있다. 요컨대 그의 회화에서 자연과 인간은 말 그대로 ‘한 몸’이 되곤 한다. 작품의 배경으로 바람, 폭풍, 화재 등의 자연 현상은 물론, 노을, 우주, 계절 변화 등 서정적인 풍광이 자주 나타난다. 이때 그림 속 여성 신체는 대지, 물, 불, 바람, 나무 등 자연의 일부에 파묻혀 동일시되고 있다. <하나님의 계곡>(1995)에는 검붉은 언덕에 엎드려 성령을 겸손하게 받들고 땅에 스며드는 여성이, <푸른 산>(1992)은 산기슭을 휘감는 물줄기를 베개 삼은 여성이 그려졌다. 동화 같은 필치는 2000년대 이후에 더욱 강화된다. <숲의 장면 Ⅸ>(2009)에는 잎사귀가 돋아나는 팔을 흔들며 춤추는 여성이, <숲의 불빛들>(2016)에는 수많은 작은 불빛을 잡으려 손을 뻗는 여성이 등장한다. 김원숙 그림에 나타나는 형상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비합리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작업에 은유와 상징을 담아 구체적인 현실을 무겁지 않게 승화한다. 

삽화 또는 동화의 한 장면 같은 김원숙의 회화들. 이는 매체 실험, 사회 비판, 양식 실험 등 미술사를 공격적으로 이끌어가는 거대 담론과 동떨어져 있기에 동화 같은 표현법은 비주류로 취급돼 왔다. 반대로 말하자면 기성 시스템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김원숙은 동화의 표현법을 활용해 통상의 사고를 초월하는 순수한 에너지를 그리고자 했다. 마치 누군가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듯 대단히 개인적인 이미지이면서도 어딘가 보편적인 이미지가 그의 회화에 들어차 있다. 즐겁고 슬픈 생활의 단편들을 도상화하는 과정에서 김원숙은 특유의 미학적 감수성으로 현실을 알레고리화 한다. 알레고리화한 그림 속의 내러티브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자 모든 여성의 이야기로서, 여성의 보편성과 공감대를 획득하게 된다. 모더니즘 추상 경향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인 형상 세계를 구축해 온 김원숙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전략 아래 여성의 집단 심리와 여성성의 의미를 부각한다. 비주류의 표현을 일평생 고집하며 여성성을 부정 대신 긍정으로, 약점에서 장점으로 역전시키는 효력을 발생시킨 작가. 남성 위주의 모더니즘 추상 미학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 노선을 구축한 김원숙의 행보는 꿋꿋이 지속해 나가는 비주류의 표현 그 자체만으로 여성주의의 실천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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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마이뉴스』, 「화가 김원숙의 그림은 왜 우리를 위로하는가?」(2012년 3월 12일), 김원숙 인터뷰 참고.
2) 김원숙, 『그림 선물』, 아트북스, 2011.
3) 김홍희, 『여성과 미술』, 눈빛, 2003.



김해리(1993~),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아트인컬처 기자




김원숙, <평형 잡기>, 1991, 캔버스에 유채, 168×122cm 




김원숙, <바늘 비>, 1983, 캔버스에 유채, 51×41cm 




김원숙, <숲의 불빛>,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168×18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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