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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다 - 건축을 마주하는 태도

  • 청구기호540.04/왕56ㅈ;2020
  • 저자명왕수 지음 ; 김영문 옮김
  • 출판사아트북스
  • 출판년도2020년 6월
  • ISBN9788961963732
  • 가격22,000원

상세정보

프리츠커 최연소 수상 건축가이자 교수인 저자의 건축수필집이다. 수필•회고록•논문•인터뷰•사진•산수화가 그의 철학처럼 얽히고 어울려 완성됐다. 옛 중국인들의 원림 조성과 유사한 근래 자신의 작업을 ‘건축’ 대신 ‘원림 조성’이라 칭하며, 산수화를 통해 중국 건축 철학을 얘기한다. 프랑스 소설•삼국지연의 등 영감의 원천과 그의 주요 건축도 둘러본다.

책소개

“나를 가르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인 최초,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 최연소 수상자

건축가 왕수의 건축문화 에세이

중국인 최초,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최연소 수상자 건축가 왕수(王澍, 1963~ )의 책 『집을 짓다』가 아트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중국 사회에 중대한 변혁이 발생한 1980년대 혼란기 속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건축관을 구축하고, 오늘날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 닝보박물관 등의 건축물을 통해 중국의 자연과 역사,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건축가 왕수. 그의 인생과 건축관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바로 ‘Delight in Disorder(부조화 속의 조화, 멋진 무질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언뜻 형용모순으로 들리는 이 말은 건축사 왕수(王澍)의 건축 인생을 한마디로 대변할 수 있는 용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건축수필집을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은 집을 짓는 행위에 대한 일종의 도도한 잡설집(雜說集)이다. 수필, 회고록, 논문, 인터뷰, 사진, 산수화 등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로 구성되어 있지만, 왕수 자신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짓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각종 에피소드를 펼치면서 그의 기저를 이루는 사색의 깊이와 자연에 대한 사랑도 드러내 보인다.

마치 주변의 원림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점점 그윽하고 깊숙한 산속의 비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심오한 철학 세계를 거쳐 현실 세계로 비로소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랄까? 이 책은 마치 풍부한 차이를 모아 살아 숨 쉬는 집을 지으려는 그의 건축 유형학과 닮아 있다.


중국 건축계의 아이돌 왕수가 들려주는

‘나의 작품, 나의 건축관’

프리츠커상 자체가 ‘반역’이란 말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으니, 왕수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 역시 프리츠커상의 수상자로 손색없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나를 가르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호기롭게 선언하며 독학을 결심했고, 스물네 살에 논문 「현대 중국 건축학의 위기(當代中國建築學的危機)」를 써서 중국 근대 건축계와 건축사를 비판했다. 그가 이 논문에서 비판한 대상은 지도교수는 물론이거니와 톈안먼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와 중화인민공화국 휘장을 설계한, 량치차오(梁啓超)의 아들 량쓰청(梁思成)도 예외가 아니었다. 논문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지만, 학위는 끝내 받지 못했다.


왕수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 닝보박물관, 중산로 등이 꼽힌다. 물의 도시 항저우에 살고 있는 왕수는 서양 건축의 4대 요소로 꼽히는 지붕·울타리·토대·화당(火塘) 중에서 화당 대신에 “물을 중국 건축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물의 물성은 텅 비어 있으므로 건축물이 물을 배경 삼아 배치되어 있으면 자연 속에 융합되어 보인다는 것이다. 자연보다 아름다운 건축물은 없다는 얘기다. 그의 작업방식도 특이하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이상은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작업 상황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사무실을 때때로 한 달이나 몇 주간 비워 두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기본적인 자유라고 느낀다.”(290쪽)


왕수는 도서관 사서인 어머니와 극단 연기자인 아버지를 둔 덕에 문학과 예술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문인기풍을 몸에 익혔고 그것을 건축에 연결할 수 있었다. “건축사가 되기 전, 나는 먼저 문인이었다.” “집을 짓는 일은 작은 세계 하나를 만드는 일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 말이다.


왕수는 ‘건축’ 대신 ‘영조’라는 용어를, ‘설계’ 대신 ‘흥조’라는 용어를 내세운다. 또 ‘건축가’ 대신에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건축사’를 사용한다. 일반적인 건축이라 함은 ‘창조력’이 필요한 활동이다. 여기에는, 건축사의 자아가 표현되어야 하고, 시대의 흐름도 놓쳐서는 안 되며, 전통과 역사도 계승해야 한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용어에는 ‘집짓기’만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숨어 있다. 따라서 왕수가 내세우는 ‘영조’와 ‘흥조’라는 말에는 건축사 개인의 경험과 태도를 중시하고 건축활동이 언제나 순수한 흥미에서 시작됨을 의미한다. ‘영조’와 ‘흥조’ 모두 중국의 건축 전통에서 가져왔지만 왕수는 여기에 내포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의미를 되살려 근대 건축의 차갑고 형식적인 성격을 넘어서고자 한다.


전통과 역사, 지역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다!

1.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건축주의 시(詩) 세 수에 캠퍼스로 답하다

샹산캠퍼스는 왕수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으로, 단기간에 저렴한 공사비로 완공하였다. 약 50미터 높이의 작은 항저우 샹산(象山)에 자리할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를 설계하면서 왕수는 방대한 캠퍼스가 그 작은 샹산과 공존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다고 한다. 캠퍼스가 주변 산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게 하는 게 최대 목표였다. 그 고민을 중국 전통식 건축 구조인 대문에서 행랑채, 안채, 뒤채로 이어지는 대합원(大合院) 형식에서 답을 찾았다고 한다.

재료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왕수는 남달랐다. 그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재료를 사용한다면 자연환경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본토 인문의식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철거지의 전통가옥에서 나온 폐기된 기와를 재활용하고, 연결고리와 빗장은 시골의 대장장이가 직접 만들어준 것을 사용하였다. 주류 건축관과는 차이가 두드러지는 왕수만이 새로이 구현한 작업이라고 할 만하다. 지역성과 역사성, 하나도 놓치지 않은 실험이라 할 수 있겠다.

캠퍼스와 샹산 사이에는 공터를 두어 농지와 시냇물, 연못을 그대로 보존케 하여 샹산이 위치한 좐탕이라는 도시의 자연과 부합하는 경관을 만들어냈다. 건축물이 중국 서예의 글자 흐름과 비슷하도록, 건축사가 마치 서예 작품을 일필휘지로 써나가듯 찰나적으로 위치를 정하여 샹산에 대한 방향성을 드러내 보였다. 샹산캠퍼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원림(園林)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여기에서 원림은 자연과 도시 사이를 사고하는 과정에서 반(半) 건축, 반(半) 자연의 형태를 드러낸다.

왕수는 샹산캠퍼스를 설계하면서 건축주인 학장과 얽힌 에피소드를 전하는데 이는 눈여겨볼 만하다. 건축주는 구체적인 요구사항 없이 전통시대 문인이 시를 읊조리는 방식으로 시 세 수만을 설계자이자 건축사인 왕수에게 적어주었다고 한다. 왕수는 시 세 수에 대한 답시를 대신해 샹산캠퍼스를 완공해 주었으니 허(虛)를 실(實)로 바꾼 셈이다. “‘이것은 설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중국인의 미학과 관념을 담은 살아 숨 쉬는 실물을 건조하려는 것이다.’ ‘볼 만한 것’을 제외하고도 ‘하나의 세계’의 핵심은 바로 캠퍼스 내의 생활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295쪽)


2. 닝보미술관―본래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닝보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다

닝보미술관은 폐기된 지 오래된 항운 터미널을 재개발하여 만든 건물로, 왕수는 이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100여 차례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대중에게 잊힌 항운 터미널에서 ‘진실한 감각’을 읽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왕수는 건축부지를 선정할 때도 이미 파괴된 장소이거나 심지어 한 도시에 의해 버려진 장소에서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포착하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와 공장의 소음 등 일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닝보미술관에서도 왕수 특유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자세와 독특한 건축관이 또 드러난다. 중국에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미술관이 없고 예술 박물관만 넘쳐”난다. “예술 박물관은 과거의 유물인 경전적 작품을 진열할 뿐이다. 하지만 미술관의 예술은 목전에서 발생하고 예술 활동이 발생하는 그 순간을” 포착해야 하므로 ‘공장’과 유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에서의 현장성을 중시하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테면 화강석과 대리석을 치우고 바로, 지금, 실제로 발생하는 예술만이 영생불멸하니, “진정한 미술관의 전시실은 현장 제작이 허락되어야 하고, 전시 준비 면적이 심지어 전시 면적”보다 넓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낡은 항운 터미널의 내부구조를 바꾸지 않은 원인이다. 공사가 시작된 후 나는 리노베이션 방식으로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고, 본래의 전체 조립식 구조로는 현행 내진설계 기준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오래된 목재구조를 보수하는 것처럼 무너진 기둥을 다시 수리하여 끼워넣는 방식을 견지했다. 항운 터미널과 연관된 특정 공간구조를 변경하면 수많은 사람의 기억이 바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시도하려 한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고 내가 만난 사람들도 이런 부류에 그치지 않았다. 이곳이 암시한 것은 더욱 광활한 범위와 시간을 초월했다.(234쪽)


3. 중산로―항저우 중산로 프로젝트의 몇 가지 원칙

중산로 프로젝트 역시 길의 부흥과 도시의 부흥에 역점을 두었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전통 건축물 90퍼센트 이상이 훼손되었는데, 이는 그만큼 도시가 재개발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지점이 건축사 왕수의 입장과 태도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항저우 중산로는 중화민국 시대 쑨원(孫文)의 방문을 계기로 폭 12미터로 확장한 이후, 역사적으로 번영을 구가하며 도시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나, 그 후로 20년 이상 찾는 이 없는 망각된 구역으로 남아 있었다.

이에 왕수는 항저우 중산로 프로젝트에 임하면서 철거 대상에서 살아남은 10퍼센트 역사거리에 중산로를 재개발하기로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운다. 옛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은 새로 짓지 않는다. 강제 철거와 이주는 시행하지 않는다. 보행구역을 만들어 여기에 원림과 전통가옥의 뜰을 거리에 개방한다. 노변에는 지방색이 드러나는 상록수를 심는다. 건축물에 필요한 재료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지방성을 우선하고, 조각이나 등불, 우체통 등을 제작하는 데 예술가의 손을 빌려 도시부흥에 참여시킨다.


1. 오랜 시간 만들어온 차이성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일을 해나가고 진실성의 원칙을 강조한다.

2. 건축물 보호와 동등하게 생활방식 유지를 중요한 사항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파괴하고 보호하는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항저우의 ‘도시부흥’ 운동을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한다.

3. 도로는 보행구역, 교통서행구역, 혼합교통구역의 세 단계로 나눈다. 보행구역에는 일종의 경관시스템을 끌어들인다.

4. 이 거리의 역사구조를 다시 짜기 위해 방과 항의 경계처 길 위에 방을 나타내는 담장 일부를 만들고, 전체 거리는 10여 곳의 방 담장을 통해 거리와 전통가옥식의 정원이 합쳐지는 공간을 조성하여 전체 거리가 중국 전통 장회소설식 서사구조를 갖추게 한다.

5. 이미 확장된 거리에는 부분적으로 인도를 향해 짧은 기루 시스템을 만든다. 7미터 좌우의 2층 높이로 만들어 전체 거리의 폭은 12미터를 회복하게 하고, 2층의 역사적 건축물과 6~8층의 새로운 건축물 사이에 건축 규모의 과도적 성격을 드러내게 한다.

6. 지방성(地方性)이란 입장에서 건축물의 주요 재료 선택을 고려한다.

7. 노변의 플라타너스는 모두 보존하고 부분적으로 지방의 특성을 나타내는 상록수를 심는다. 거리 옆 연못이나 원림의 연못에는 갈대·창포·연꽃처럼 물을 좋아하는 야생식물을 심어서 항저우 특유의 산야 분위기를 만든다.

8. 예술가를 거리로 불러들여 조각에서 등불, 우체통 등 각종 방식으로 도시부흥에 참여하게 한다.

9. 건축사 그룹을 조직하여 상세한 조사 보고와 지도 원칙 아래 공동으로 설계를 완성하게 한다.

10. 기왕의 1년 기한의 시장(市長) 주도의 프로젝트는 시행하지 않고, 더 이상 건축 외부만 중시하는 공사도 진행하지 않는다. 종심(縱深)이 있는 도시를 만들려면 3년의 기한이 필요하다.(268쪽)


중국 전통 산수화에서 자신의 원림을 발견하다

왕수는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건축, 즉 중국 원림(園林)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건축물은 모두 원림이라고 이름한다. 원나라 4대 화가로 꼽히는 예찬(倪瓚, 1301~74)의 산수화 「용슬재도(容膝齋圖)」에서 전형적인 중국 원림의 구도를 발견하여 “사람이 이 그림과 같은 장면 속에서 생활하면서 내 무릎만을 들일 정도로 집을 작게 만든다”라는 인간의 ‘태도’를 강조하면서 중국 원림 건축학을 정의한다. 산수화 속의 “테두리 안에 포함된 모든 사물이 바로 원림 건축학의 모든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서양인의 관점과는 정반대이다. 서양 건축물은 완성한 후에 이른바 조경을 하기 때문이다. “한 세계를 만들 때면 가장 먼저 그 세계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원림과 비슷하거나 혹은 전혀 그렇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원림은 다양한 형태로 왕수의 건축 속에 진입해 있다. 왕수는 또한 중국 원림의 일상성과 지속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건물이 완공됨으로써 건축 행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결코 원림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원림의 주인은 끊임없이 시공간을 ‘경영하고(營)’ 경관을 ‘지음(造)’으로써 원림을 완성해 나가고 일상적인 삶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왕수는 “집은 하나의 우주이다. 그런고로 집을 짓는 행위를 하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책 제목에도 건축 대신 ‘집을 짓다(造房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에 따르면 그가 지은 집은 크든 작든 모두 원림인 셈이다. 예로부터 정취를 아는 문인이야말로 진실로 정원을 만들 만한 능력이 있으니, 오늘날에도 문인과 건축 활동을 결합하는 대학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림과 건축은 사물을 관조하는 일종의 정취이며, 뜻밖의 장소에서 자연의 이치를 바라보는 경쾌한 시선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소박하고, 단순하고, 순수하며, 자신의 유래와 근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생활과 예술을 추구한다. 항상 스스로 성찰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두 아직 어떤 것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어떤 것은 실현하지 못했으며 그것은 모두 자신의 수양과 관련되어 있다.(22쪽)


나의 입장에서 신화가 직접 지향하는 것은 바로 원림이다. 원림은 신화의 땅일 뿐이다. 2001년 봄,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쑤저우 유원(留园)을 찾았다. 그곳은 거의 암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원림이었지만 그중 하나의 정원이 갑자기 처음 본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너무 평범하여 어떤 책에서 그것을 거론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곳은 사실 거의 텅 빈 공간으로 사방은 흰 담장이었고 면적은 반 무畝(약 15평)가 좀 넘었다. 정원 한구석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정자가 있었으며 모란꽃을 몇 무더기 심어놓고 낮은 대나무 울타리로 조심스럽게 둘러놓았다. 모란꽃이 대략 일고여덟 무더기는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 잠시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각자 꽃밭으로 들어가서 마음대로 서거나 앉아 보세요.” 학생들은 내 말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이유를 몰랐다. 미대 학생들은 산만하여 곧바로 낄낄거리며 놀았다. 내가 또 말했다.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이 바로 죽림칠현입니다.” 학생들은 크게 웃으며 제각각 흩어졌다.(79쪽)지은이 | 왕수 王澍


건축가이자 중국미술대학교 교수. 둥난대학교와 퉁지대학교의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홍콩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객원교수이다. 1997년 그는 아내 루원위(陸文宇)와 ‘아마추어 건축사무실’을 설립하여, 중국 현대건축 연구와 작업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왕수의 건축물은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 현대건축을 절묘하게 결합한 독특한 작품 세계를 드러낸다. 전통적 재료인 회색 전돌과 대나무 등을 건축 자재로 많이 활용하며, 지붕 부분의 기와 등 도시 지역에서 철거된 옛 건물의 재료를 재활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건축관을 구현한 대표작으로는 닝보박물관,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 상하이세계박람회 닝보 텅터우전시관 등이 있다. 2011년 프랑스 건축과학원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건축 부문 최고 영예인 프리츠커상을 중국인 최초, 최연소로 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옮긴이 | 김영문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연구재단 박사후과정에 선발되어 베이징대에서 유학했다. 경북대, 서울대, 한국교통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경북대 인문과학연구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등 연구기관에서 각종 연구과제 수행에 참여했다. 이후 엄밀한 독해를 바탕으로 뜻깊은 번역물을 선보이고 있다. 그중 『문선역주』(전10권, 공역)와 『루쉰전집』(전20권, 공역)은 국내 최초 완역본이며, 『동주열국지』(전6권)는 기성 번역본을 반세기 만에 검토하고 정정한 새 완역본이다.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번역위원, 청청재(靑靑齋) 주인으로 각종 한문 고전 및 중국어 서적을 번역하며 인문학 저술과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이밖의 저역서로 『노신의 문학과 사상』(공저) 『원본 초한지』(전3권) 『용과 독수리의 제국』 『역사, 눈앞의 현실』 『정관정요』 『루쉰, 시를 쓰다』 등 20여 종이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 송백의 푸른빛을 떠올리다


머리말

• 소박함을 집으로 삼다


의식

• 원림 만들기와 사람 만들기

• 자연 형태의 서사와 기하

• 허구의 도시를 향해 나아가다

• ‘공간’이 출현하기 시작할 때

• 영조 잡기

• 순환 건축의 시정—자연과 유사한 세계를 짓다

• 강 언덕을 사이에 두고 산에게 묻다—풍부한 차이를 모으는 건축 유형학

• 단면의 시야—텅터우전시관

• 폄하하고 억압해 온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 수석의 세계로 들어가다


언어

•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

• 우리는 내부에서 알아챈다—닝보미술관 설계

• 중산로—길의 부흥과 도시의 부흥


대화

• 반역의 노정

• 다른 세계의 가장자리와 접촉하다

• 정신산수

• 자연의 길로 회귀하다

• 문답록—한 사람이 얼마나 큰 집을 필요로 하나?


맺음말

• 그날


옮긴이의 말

• 왕수의 집짓기—일상 속 원림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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