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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정원 The Picture Garden@인사아트스페이스

안효례

그림정원 The Picture Garden

2018.04.25-04.30

@인사아트스페이스


가족전시를 열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내 대학 동아리 후배였다. 평소 SNS를 통해 엿보는(어쩐지 엿보는 느낌이다..) 사진들이 꽤 맘에 들었었다. 언젠가 수상소식도 들었고, 어머님이 그림책을 냈다는 소식도 들었다.

열기가 조금 느껴지는 시간이라 인사동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됨을 감사하며 인사아트스페이스로 갔다. 2층 공간을 쓰고 있는 전시는 첫 작품이 보도자료에서 봤던 작품이기에 의심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고, 작가들인가 보다 했다. 평일 낮의 인사동 전시는 늘 이렇듯 한가롭다.


 


작품을 둘러보다 중간에 놓인 테이블의 꽃들로 눈이 갔다. 이것들도 작품인가 싶어 신경 써서 바라본 두 개의 화병과 한 개의 화분은 매발톱, 할미꽃, 겹벚꽃과 각종 풀이 담겨있었다. 꽃 외에 이름을 모르는 건 어쩐지 미안할만큼 흔하게 봄직한 잎새들이다. 어쩐지 출처를 묻지 않아도 가족 작업실 화단이거나 양평 인근 어딘가 일 것 같다. 여인욱 작가의 사진 <봄>에 등장한 정원들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박은미&여인경, 그림정원 I, 2018


단체전을 보러 가면 기획자가 있지 않은 한 일관된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다. 마치 아트페어를 보는 듯, 제각각 자신의 매력을 뽐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단체전을 보러 가면 조금은 집중도를 내려놓거나 반대의 경우를 만든다. 집중도를 내려놓으면 각각 작품들 전체를 놓치지 않고 훑어볼 수 있고, 반대의 경우엔 관심이 가는 작품을 골라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진) 박은미


세 작가는 사실 크게 보면 공통점이 드물다고 생각했다. 보도자료로 간략하게 만났을 때 작품의 유형이 평면인 것 제외하곤 지향하는 주제가 같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크게 묶고 있는 듯 보이는 느낌은 뭘까.


(사진) 박은미, 산책(Walk), 2014 / 구두요정(A Shoe Fairy), 2017


그들은 모두 같은 땅의 같은 자연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이 작품에 있었다. 이국적으로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리 그들의 바탕에는 이 땅의 풀과 나무들이 깔려있었다. '그림정원'이란 전시 제목 때문에 그렇게 보일수도 있다. 역시나 보는 것들이 손으로 형상화되었다면, 함께 본 풀과 나무도 같은 분위기가 새겨진다. 내가 본 닮은 면들은 그런면에서 분위기 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바람이다. 박은미 작가의 작품에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여인경 작가를 거쳐 여인욱 작가에게까지 닿았다. 35년 넘게 작가생활을 해온 박은미 작가는 커다란 바람을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새로움을 만나기 위해서는 고요보다 바람이 낫다는데 동의한다.



(사진) 여인경, 숲속의 서커스 마을(A Circus Town in the Forest) 연작 / 삐에로(Pierrot) 연작


어른이 되고서 내가 나인지 질문하게 될 때면 거울앞에 선다. 여인경 작가의 <삐에로>는 거울앞에 서서 나를 보는 느낌을 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서 나를 만든 후 사람들에게 선보일 땐 가장 완벽에 가깝게 연기하고 나의 일부만을 내보여 그것이 전부인 양 믿게하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가끔 나 혹은 내가 만든 무언가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내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삐에로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



(사진) 여인경, 꿈속의 서커스III (The Circus in a Dream), 2017 / 숲속의 서커스 마을(A Circus Town in the Forest) 연작


 
(사진) 여인경, 눈속의 집(A House in the Snow), 2015 / 눈속의 집(A House in the Snow), 2016 / 어릿광대 I(Clown), 2017


작품을 둘러보고 작가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시간의 촉박함과 소개가 필요하다는 절박함 속에 버벅대며 제대로 된 소개를 놓친 채 명함을 주고받았다. 어쩐지 이런관계는 낯설어서 였을것이다. 그렇게 들여다본 박은미, 여인경 작가의 얼굴에서 작품이 겹쳐 보였다. 많은 경우 작가의 얼굴은 작품을 닮는다. 분명 반대 일 테지만, 작품을 먼저 보게 되는 관객의 시점에서는 그러하다. 사람이 평생을 자신의 얼굴을 가장 많이 보기 때문인지 자신을 닮은 작품이 자연스러운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그 내면까지도 닮게 그리거나 만들어낸다.



(사진) 여인욱, 봄 II, 2015 / 봄 I, 2015


작품의 풀 내음이 작가들에게 났다. 내가 방문해 전시를 둘러보는 동안에도 두런두런 작품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던 것 같다. 부러웠다. 부모가 걷던 방향대로 자식이 함께 걸어가는 일은 어떤 느낌일까. 문득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길을 함께 이야기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느낌일까. 매일 걷던 산책길도 새로운 걸 발견하는 이를 보며 내 세상도 새롭게 보일 수 있겠다 싶다. 사진은 지상에서 붕 뜬 상상을 붙잡아 현실의 기억을 투영하게 한다. 여인욱 작가의 사진들로 나는 어느 길에 놓인다. 누군가의 기억에 내 기억이 겹치면 그 순간 그 장면은 의미가 생긴다. 나에게 소중한 장면이 누군가에게도 소중해질 수 있는 순간이다.


 

(사진) 여인욱, 작업실, 2016 / 산책, 2018


그들을 보며 여인욱 작가의 사진에 등장한 뒷모습들은 어머니와 여동생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 풍경에서 내가 상상한 그들의 산책길을 조금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동화책을 만드는 엄마와 그림을 그리는 딸 그들 곁에서 사진을 찍는 아들이라니. 혹자에겐 힘든 작업이란 일이 자꾸만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힘들게만 보이는 작업의 길이 그들에게만은 서정적인 동화같기를, 마음가는대로 상상하며 혼자 욕심을 냈다.


 

(사진) 여인욱, 하늘 그리고 나무, 2016 / 홀로 나무, 2018


*전시는 4월 30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한길사의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으로 자리를 옮겨 5월 한 달간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글.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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