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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무의미 속 최병소의 실험적인 태도 : 아라리오갤러리서울 《최병소》

객원연구원

의미와 무의미 속 최병소의 실험적인 태도
아라리오갤러리서울 《최병소》

아라리오갤러리서울에서 개최한 최병소 개인전 《意味와 無意味 SENS ET NON-SENS: Works from 1974 to 2020》에 다녀왔다. 작가의 예술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1970년대 초기 작품과 최근의 작품을 병치시킴으로써 1970년대 초반 전위적 한국 실험미술의 태동과 단색화의 경향을 관통하고 있는 최병소만의 독특한 미술사적 위치를 재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최병소는 예술과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주류 체계를 부정하며 그 체계를 해체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다. 이성과 논리 세계의 무의미함을 주장하고 경험과 물리적 경험성의 중시를 주장했던 메를로 퐁티의 세계관과 그 맥이 닿아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주제 ‘의미와 무의미’ 또한 작가의 작품 <무제>(1998)에 사용된 메를로 퐁티의 저서(1948)에서 가져온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젊은 작가들은 일부 개방된 문호를 통해 국제미술의 사회적이고 실험적 미술경향에 대해 접할 수 있었으나 군부독재 하의 상황 속에서 실험적 작업과 전시들은 제재와 억압을 받았다. 국전과 같은 공인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미술은 추상미술로, 그리고 단색화 사조로 점차 편중되었다. 최병소는 추상미술의 형식성을 일부 계승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직시해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정신을 실천하며 단색화와 실험 미술 사이의 경계 사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순수조형에의 의지의 확인과 실험의 장이자, 20세기 전반부 예술의 지지체였던 팽팽하게 고양된 캔버스의 평면성과 그 조건 위에서 추구되었던 일루져니즘의 미학을 부정한다”라는 언급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최병소의 작업의 기저에는 반예술적 태도가 깔려있다. 신문지, 연필, 볼펜, 의자, 잡지 사진, 안개꽃 등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물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매체의 순수성,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같은 미술의 위계를 전복시킨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의 제목은 모두 Untitled로 구분되어 신선했다.


<Untitled>, 1975, magazine, text, 26x38cm

사진 기표와 언어기표의 배치는 사진 속 한 쌍의 새가 함께 노는 상황 전체를 언어기표가 사로잡을 수 없음을 암시하며 두 기표 사이의 엇나감과 함께 기표와 기표 사이의 의미의 균열을 의미한다. 노닐고 있는 두 마리의 새와 그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의 결합에서 관람객은 도리어 상황과 현실을 담을 그릇으로 언어가 가진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1970년대 당시의 작가는 이렇게 시각언어와 문자 언어 간 해석의 차이를 노출시키는 작업을 통해 시각 예술이 언어이자 개념의 영역임을 인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0200815 Untitled>,<0201012 Untitled>, 2020, Newspaper, ballpointpen, pencil, 57.5x73x1cm

최병소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신문 지우기 연작 또한 그가 평생을 매진해온 실험적 정신의 실천이다.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은 일상의 사물을 지지체와 화구로 선택해 탄압의 대상이었던 신문을 까맣게 지우며 사회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기록해 나갔다. 오늘날 최병소의 신문 지우기 작업은 자신을 지우는 움직임으로 읽어볼 수 있다. 

하찮은 물건과 행위 모두 그 시대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음을 직시함으로써 예술을 생산해내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 이르고 있다. 최병소는 예술과 반예술,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열린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윤혜선 yhsun01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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