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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 horny anymore, I want to be happy》, 아웃사이트

객원연구원

I don’t want to be horny anymore, I want to be happy
 2021.12.16-2022.02.06


  아웃사이트는 작년 12월 16일부터 올해 2월 6일까지 《I don’t want to be horny anymore, I want to be happy》 전시를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Adam Centko, 박재훈, Keiken, Laura Yuile, Shir Handelsman, 총 5명이 참여한 국제기획 단체전으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과 스즈키 이즈미의 소설 <Terminal Boredom : Stories>, 또는 삶에 회의적이고 우울증과 무력감을 느끼는 20대를 지칭하는 단어인 ‘두머’(doomer),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N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히키코모리 등의 현상에서 드러나는 ‘말인’(last man)의 현대적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말인’(last man)이란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사용한 용어로,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면 이와 관련된 문장이 나온다. “우린 행복을 발명했다. ‘말인(last man)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꿈뻑거린다.” 니체가 말하는 ‘말인’은 진취적인 사고 없이 기존의 가치를 믿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한다.


전시 전경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얻게 된 편리함과 신속함은 우리에게 행복행 열차 티켓을 건네주는 듯 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예전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아름다운 외모와 육체를 위한 가이드들은 넘쳐나고, 윤택한 삶을 가져다주는 다양한 상품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예전보다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술이 그려낸 예측 가능한 미래를 보며 불확실함과 실패에서 멀어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우리를 새로운 낙원으로 데려다 줄 것 같던 열차는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울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으며, 촘촘하게 짜인 자본주의의 질서 아래 박탈감과 공허함의 심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디지털 세계의 온갖 지표들, 그래프, 질량 없는 코인 등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진한 흔적을 남기고 우리의 삶 속 모든 경로에 스며들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높은 충성심을 보이고 ‘관심 노동’의 노동자로서 포섭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 포르노 사이트에 댓글로 등장하여 밈으로 승화된 문구, 'I don’t want to be horny anymore, I want to be happy'는 이러한 상황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우리 삶의 모습과 연결된다.


박재훈, <도착하지 않는 기차>, 2019
  
  미디어가 선보이는 자동화된 황홀경이나 스크린 속의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에 중독된 오늘날의 ‘말인(last man)’은 박재훈의 <도착하지 않는 기차>(2019)를 타고 하나의 꿈에서 또 다른 안식처로, 하나의 가상에서 또 다른 스크린으로 내달리는 도피를 지속한다. 한편, Shir handelsman의 ‘말인’은 스카이차 리프트들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이다. 하늘을 향해 “하나님이시여! 언제 그 평안함이 옵니까?”라고 외치는 그의 노래에 맞춰 스카이차의 리프트들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기계음으로 선창을 이어받는다.  



Shir handelsman, <Recitative>. 2019


Shir handelsman, <Recitative>. 2019
  
  주변 세계의 상황을 반영하는 가상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Adam Centko는 이번 전시에서 <Ethereum landscapes>(2021)를 제시한다. ‘Ethereum(이더리움)’은 불록체인 기술을 업그레이드 한 가상화폐의 일종을 뜻한다. 작가는 이더리움의 거래 가격 그래프를 모방한 머신 러닝 생성 풍경을 QR코드, 실질적 그래프와 함께 보여준다. 



Adam Centko,<Ethereum landscapes>, 2021


Adam Centko,<Ethereum landscapes>, 2021


Adam Centko, <Ethereum landscapes>, 2021

  반면, Laura Yuile의 작업은 좀 더 유쾌한 방식으로 ‘말인’을 등장시킨다. 안락한 공용공간을 연상시키는 공간 속에서 상영되는 영상은 자본주의의 종식을 꿈꾸며 새로운 동지를 찾기 위해 공유 공간 ‘the collective'에 발을 딛는 주인공, 로라의 시선을 따라 진행된다. 주인공은 ’the collective'의 초소형 아파트에 도착하여, 편리한 공동체 생활을 즐길 것을 기대하지만, 정작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광고하며 살아가는 인플루언서와 미디어와의 연결과 단절에서 자아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들과 진정한 동지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제어실에 도착하여 모든 와이파이 케이블을 차단시킨다. 그 후 간신히 건물 밖으로 도망친 로라는 'the collective'에 전화를 건 후 환불 요청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콜렉티브에 전화를 건 이상 당신은 이미 우리의 동지”라는 상담사의 말뿐이었다. 결국 기술주의 사회에서 도피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Laura Yuile, <Gated community>, 2020


Laura Yuile, <Gated community>, 2020

  Keiken의 <The Life Game trilogy>(2021)을 보면, 이러한 질문은 더욱 심화된다. 이 작품은 관람자가 아이패드를 이용해 게임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세 가지의 게임 중 <Viral Energy>의 스토리는 주인공 ME가 디지털 쌍둥이인 MI의 존재에 대해 혼란을 느끼며 전개된다. ME와 MI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 활발하게 양산되는 외로움을 깨닫고 이에 대한 대화를 시도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자아는 가상으로 회피해버리는 또 다른 ‘말인(last man)'을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Keiken의 또 다른 게임, <Battle of Reality>는 메타버스 안에서의 아름다움, 희망, 그리고 변화 또한 존재함을 주장한다. 



Keiken, <The Life Game trilogy>, 2021


Keiken, <The Life Game trilogy>, 2021
  
  기획자는 전시 《I don't want to be horny anymore, I want to be happy》에 대한 글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를 현혹시키는 저 향락과 망각의 장치들이 단지 오래된 도피주의의 새로운 양태일 뿐이라 속단하고 싶지 않다. 우리 말인의 모습이 비록 현실에의 의지 없이 몸 안팎의 가상으로 회피해 버리는 향략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으로 그려져 왔지만, 능동적 자기착취와 성과주의라는 오늘날의 현실에 동조하지 않고 철회하는 듯 보이기도 하는 이 태도로부터 퇴폐주의 이상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선회할 수 있는 적극적 가능성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감지된다. 그러니 스크린에 펼쳐진 새로운 하늘 속으로 스며드는 이 새로운 세대가 도착한 그 곳에서 어떤 새로운 관계와 존재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니체의 ‘말인’으로 글의 시작을 알렸던 기획자는 결국, 그와 대척점에 존재하는 ‘초인’이 등장할 가능성을 꿈꾸고 있다. 초인은 니체가 제시한 또 다른 개념으로, ‘말인’과 달리 기존의 가치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을 뜻한다. 당시 “신은 죽었다”를 외치며, 신의 구원과 초월적 가치를 넘어서고자 하던 니체는 전시장 내에 소환되어, ‘기술의 구원과 초월적 가치’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리고 무기력해 보이던 광활한 광야 속의 ‘말인’들이 ‘초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이끈다.


관람 시간 : 12:00~18:00(화-일/월, 공휴일 휴관)
전시 기획 : 임진호
참여 작가 : Adam Centko, 박재훈, Keiken, Laura Yuile, Shir Handelsman
전시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윤란 rani7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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