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객원연구원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2021.11.11.-2022.03.01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간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박완서, 『나목』, 1970       


  여성문학의 대표 작가로 주목받은 박완서는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자신의 글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을 하게 된다. 이 글은 박완서가 박수근 화백에 대해 쓴 소설이다.  『나목』의 후기에서 박완서는 자신이 박수근 화백과 알고 지낸 기간은 1년 미만의 짧은 시간이지만, 암담하고 불안한 시기를 겪으며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다며 회상한다. 박수근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화가이지만 사실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개인의 예술과 삶이 다시 『나목』이라는 예술로 재탄생하고, 그의 그림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을 생각하면, 작품 자체를 떠나서 박수근이라는 사람이 그려낸 삶의 궤적이 저절로 궁금해질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이러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 화가’라는 수식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박수근 생애를 살펴보고 자취를 따라가는 ‘우리의 박수근’을 만나기 위해 기획되었다. 



전시 외관


전시장 입구

  전시는 박수근이 19세에 그린 수채화부터 51세 타계 직전에 제작한 유화를 포함하고 있으며, 네 개의 전시실은 각각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 여사, 소설가 박완서, 아들 박성남, 그리고 박수근의 진가를 알아본 컬렉터와 비평가의 시선을 따라 구성되었다. 그와 동시에 박수근이 살았던 서울 창신동, 업무상 그가 자주 발걸음 하였던 명동과 을지로까지 이어지는 공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1전시실 전경



  먼저 1전시실은 밀레를 사랑한 소년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박수근은 12세 때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어,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의 끝에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을 하는 결과를 안게 된다. 밀레는 농촌의 풍경과 일상을 소재로 한 그렸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박수근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이웃들,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여러 차례 반복해 그리면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 중 <절구질하는 여인>은 1936년 《제 1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일하는 여인>과 흡사한 작품으로, 본래 수채화였던 그림을 다시 유화로 제작한 것이다. 박수근은 절구질, 맷돌질, 빨래 등 여성의 노동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러 점 제작 하였는데, 이러한 소재는 관전(官展)에서 인기가 있었다. 또한 박수근 자신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던 점, 주로 아내를 모델로 그렸다는 점 등의 이유가 뒷받침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1전시실에는 박수근이 수집한 미술 잡지, 박수근이 참여한 삽화, 표지화 등의 자료 또한 전시되어 있어서, 그의 예술 세계를 폭넓게 경험할 수 있다.



<절구질하는 여인>, 1952


박수근이 수집한 미술잡지와 박수근의 삽화, 표지화

  2전시실에서는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박수근의 화풍과 규모가 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국전, 대한미술협회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등 중요 전람회에 참여하며 중견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당시 한국전쟁으로 서울은 폐허가 된 상태였고, 박수근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게 된다. 미군 부대에서 전시를 열고 그림을 판매하며 미국 개인전 제안을 받는 좋은 소식도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타계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PX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 중 한 명이 박완서였다. 비록 오래 지속된 인연은 아니었지만 훗날 박완서는 박수근의 예술혼을 자신의 저서 『나목』에 옮겨 적는다. 2전시실의 대표작 중 하나는 <집>(1953)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박수근이 월남한 이후 관전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박수근은 전업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수근의 관심사는 시골집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여인과 소녀의 모습과 같은 향토적인 소재였다. 하지만 이후 그는 서울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된다.



2전시실 전시 전경


<집>(1953)

    3전시실은 박수근이 남한으로 피난을 온 이후, 가족들과 함께 종로구 창신동에 정착했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창신동에 거주했던 10년간은 박수근이 화가로서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때였다. 전쟁 후의 피난민들이 모여들고, 시끄럽고 누추하고 판잣집이 줄을 지었던 창신동이었지만, 박수근은 폐허 속에서도 강인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과 애환을 화폭 속에 그려넣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 박수근의 그림에는 1950년대와 1960년 서민들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족들의 모습도 자주 등장하는데, 자신의 딸, 박인숙을 그린 <독서>는 평소 색을 절제하던 박수근의 화풍과는 달리, 어여쁘고 붉은 색이 사용되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잡지책을 아버지가 사다주었던 기억이 담긴 이 그림에서는 어린 딸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한편, 3전시실에서는 박완서와 그의 아내 김복순의 글이 담긴 책들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 사진작가 한영수가 촬영한 1950-1960년대 서민들의 모습 또한 함께 감상할 수 있다.



3전시실 전시 전경


<독서>


박완서와 김복순의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


한영수 섹션

  마지막으로, 4전시실에는 국내에서 추상미술이 성행했던 당시에도 자신만의 화풍을 고수했던 박수근의 그림들을 살펴본다. 비평가들은 박수근을 ‘서양의 유화를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화가’로 평가했다. 또한 박수근의 그림은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들은 대부분 반도화랑을 통해 그의 작품을 구매하였다. 반도화랑은 해방 후에 생겨난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화랑이었으며, 반도호텔 1층 로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반도화랑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반도 화랑을 통해 거래되었던 박수근의 작품 또한 감상할 수 있다. 반도화랑에서 거래된 그의 작품은 뒷면에 반도화랑 스티커가 붙어있다. <춘일>(1950년대 후반) 또한 그러하다. 늦은 오후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과 귀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이처럼 한국적 정취가 짙은 소품들에는 주요 구매자였던 외국인들의 취향이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4전시실 전시 전경


4전시실 전시 전경


박수근, 「겨울을 뛰어넘어」, 『경향신문』, 1961.01.19.


양구의 ‘박수근 나무’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그러면 사람도 늙어가는 것이려니 생각할 때 오늘까지 내가 이루어놓은 일이 무엇인가 더럭 겁도 납니다. 하지만 거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에는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박수근, 「겨울을 뛰어넘어」, 『경향신문』, 1961.01.19.

  박수근이 다니던 양구보통학교에는 그가 즐겨 그렸다고 전해지는 느릅나무가 서 있다. 수 십 년이 지나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앙상한 나뭇가지로 봄을 기다리는 ‘나목’의 모습이다. 전쟁과 가난으로 참혹한 시대였지만, 그 속에서도 주변 사람과 예술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던 박수근의 삶과 작품은 이러한 ‘나목’처럼 앙상하지만 굳은 뿌리를 가지고, 추운 겨울날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영혼을 다독여준다.  


전시 주최 : 국립현대미술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전시 후원 : (사)현대미술관회
관람 시간 : 10:00~18:00(화, 목, 금, 일/입장마감 오후 5시) | 10:00~21:00(수, 토/입장마감 오후 8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윤란 rani7510@naver.com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