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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流》, 김종영미술관

객원연구원

女流
2022.01.14.-03.06
김종영미술관

  김종영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이하는 2022년의 첫 전시로 네 명의 중진 조각가, 김정희, 박일순, 신옥주, 이경희를 초대한다. 《女流(여류)》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모두 1970년대에 조각을 전공한 여성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가 ‘조국근대화’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는 시기였다. 

  예술계와 조각계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학의 경우 1960년대에 들어서며 조각을 전공하는 여학생이 정원의 절반을 넘어섰으며(그 후 남녀학생 비율제가 적용되었으나 2001년 입시부터 폐지), 1974년에 ‘한국 여류조각회’가 창립되었다. 이때 당시 활동했던 2세대 ‘여류’조각가들은 ‘여류’를 넘어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은 한국미술계에서 ‘낀 세대’작가들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여전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들은 존재했고, 곧 1990년대가 돼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사진과 비디오 같은 새로운 매체와 퍼포먼스, 설치 작업들이 각광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때 이불과 같은 새로운 조각과 설치의 형태를 제시하는 여성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번 전시는 지금의 여성 예술가들에 앞서, 시대적 개념을 극복하고 ‘여류’를 제시한 작가들을 재조명하고자한다. 이들은 모두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예술과 여성상의 흐름 속에서 ‘작가’이자 ‘교육자’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해왔다. 


전시 입구

  먼저, 김정희 작가는 스테인리스 철사를 용접하여 만든 조각을 선보인다. 스테인리스 미러 판 중앙으로 용솟음치는 구조물과 그것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형태로 매달려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주변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모든 사람의 머리를 보면, 기(氣)가 올라가는 것처럼 철사들이 머리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현대사회에서 멀어지는 인간의 본성과 주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모습과 자연의 모습을 통한 인간 본성의 회복과 사유의 영원성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려 한다.
예전의 작업에서 공간과 자연의 독해를 통한 해석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의 심적 통찰을 통해 자연과 공간을 인간과 서로의 영역에 응용하여 대립면을 긴장시키고 그 경계에서 모호함과 두려움을 통한 더욱 큰 가능성을 보려고 한다.”
-김정희의 작업 노트 中

  인간의 본성은 소외와 절망의 시간을 거쳐 작가의 손을 통해 새롭게 접합된 후, 회복과 심적 성찰을 경험한다. <SPACE 2022-IDEA>(2022)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철사라는 소재의 가벼움과 대비되는 심연의 두려움과 깨달음을 동시에 다루며, 종국에는 ‘나’의 존재와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한다.


김정희, <SPACE 2022-IDEA>, 2022

  반면, 박일순 작가는 그야말로 ‘녹색’의 향연을 보여준다. ‘Green'이라는 제목의 연작들은 입체와 평면을 넘나들며 조형적 변화를 시도한다. 전시장 내의 입체 나무 작품들은 거의 다 향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작가는 과거 제재소에서 향나무를 켤 때 날리는 붉은 톱밥을 보며 나무의 고통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반면 이 붉은색과 달리, 우리는 나무가 살아있음을 상징하고자할 때, 녹색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숭고함을 표현한다. 생명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요소는 달걀과 원형의 조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근원을 찾아 헤매고 서성인다. 설령 그 정점에 이르지 못한다 하여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유영하며 즐기는 사물과의 내밀한 교감...그 자체만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발일순의 작가 노트 中

  섬세한 선으로 생명을 상징하는 형상을 한 가닥씩 칼로 평면에 그려놓고, 커다란 실패에 실을 가지런히 감아가는 과정은 작가가 사물과 교감하며 그것의 생명과 근원을 파악하는 과정의 궤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일순의 작가의 전시 전경


박일순, <Green>, 2003


박일순, <Green>, 2021

  다음으로 신옥주 작가는 앞선 작가들과는 다르게 무거운 철판을 다룬다. 철판이라는 재료는 그것이 지닌 특성으로 인해, 여성 조각가들에 의해 흔하게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그만큼 쇠를 다루는 일은 고된 작업이다. 작가는 전시장 공간 안에 철판 조각들을 배치하고, 이와 함께 철사들을 뭉쳐 둥근 형태로 만들었다. 

“버려지지 않는 것들...
이들은 다시 만나 열로 녹아 연결되고 떨어지며 무한공간으로 한 몸이 되어간다.
기도하는 마음의 흙덩이는 주물로 바뀌어 녹으면서 지평으로 퍼진다.
빛바랜 판지를 벗겨내고 덧붙이며 더듬어간다.
너에게로” 
-신옥주의 작가 노트 中

   철이 열로 녹아 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다시 분열되고 또 한 몸이 되는 과정이 각각의 조각으로 구현되었다. 여기에 작가는 오래된 앨범 판지 위에 파스텔로 그림을 그린 신작을 덧붙여 수신처가 불분명한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낸다.



신옥주 작가 전시 전경


신옥주, <너에게로Ⅰ,Ⅱ,Ⅲ,Ⅳ,Ⅴ...>, 2017

  마지막으로, 이경희 작가는 특정한 환경을 바탕으로 생성된 ‘장소성’에서 비롯한 조각을 시도한다. 물리적 공간과 달리 ‘장소’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며, 시간 속에 축적된 기억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하여 집을 짓고 사물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사물들도 시간을 살아낸다. 사물성을 가진 우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흔적을 기억하고, 공간을 장소로 만든다. 
사물의 체화한 시간(On time mapped by things)과 작품이라는 사물 속에 깃들여진 장소를 생각한다.”
-이경희의 작가 노트 中

  작가는 이처럼 자신의 조각에서 공간과 인간이 일구어 낸 ‘장소’에 대해 탐구하고, 여기에서 공간 자체가 생동하며 만들어낸 ‘장소’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평면이면서 입체이며, 조각이면서도 회화 같은 이경희 작가의 작품은 물리적 공간의 개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장소’가 갖는 의미에 대해 되짚어보게 한다.



이경희 작가 전시 전경


이경희, <원근법적 집Ⅱ>, 2022


이경희, <사선거주Ⅱ>, 2020

  혹자는 전시장에 소환된 ‘여류’라는 단어에 대해 ‘왜 아직도 여류인가?’라는 의문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약 50년 전, 조각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던 여성 작가들에게 이 ‘여류’의 물살을 타는 일은 그저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여류’라는 단어는 아직 유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동네풍경: 김종영이 사랑한 풍경들》이 진행 중이다. 조각가 김종영의 유년시절 풍경화와, 그가 삼선교 언덕에 살던 시절의 그림들과 조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3월 6일까지 관람 가능하다.



《동네풍경: 김종영이 사랑한 풍경들》전시 입구



전시 전경



관람 시간 : 10:00-17:00(동절기)/10:00-18:00(동절기 제외)/월요일 휴관


윤란 rani7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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