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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한미 전시연계 세미나 - 한국예술사진의 전개와 제도

편집부

뮤지엄한미 전시연계 세미나

한국예술사진의 전개와 제도

2023.1.3.()

뮤지엄한미 삼청

 

 

 



20221221일 신축 개관전 한국사진사 1929-1982 인사이드 아웃을 개최한 뮤지엄 한미는 전시연계 세미나를 202313일 개최했다.

 

세미나는 3가지 주제로 발제가 진행되었고, 이후 토론이 이어졌다.

 

권행가(미술사학자, 서울대학교 강사)예술과 선전의 사이: 근대기 예술 사진의 형성 문맥

김지혜(미국 아리조나대학교 조교수)국제사진전 공모와 한국 사진의 국제성: 1950-70년대를 중심으로

최봉림(뮤지엄한미 부관장)광화문빌딩 2층에서 국립현대미술관까지

박평종(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 토론/모더레이터

 

 

 

첫 번째 순서는 권행가 미술사학자의 발제가 있었다.

 

근대기 예술로서의 사진과 선전미디어로서의 사진이 혼재된 채 형성되어온 한국 근대기의 예술사진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한국 예술사진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신문사 공모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근대기 한국의 예술사진은 일본인 사진 상업자본과 신문사, 조선총독부의 미디어 정치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고, 특히 신문사 공모전에는 이 배경이 종합적으로 내포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910년대부터 신문사 사진공모전이 개최되었으나, 연례행사로서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이다.

선행연구로는 경성일보와 전조선사진연맹이 주최한 조선사진전람회, 조선일보 주최 납량사진현상모집이 있으나, 이를 토대로 1926년부터 전관서사진연맹과 오사카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경성지국에서 개최한 공모전, 경성일보에 수록된 사진공모전 자료를 바탕으로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의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1920년대는 재조선 일본인 아마추어사진가들이 조선내에 자리잡는 초기상황으로 이 시기에 조선에 자리잡은 야마자와 산조(福原信三, 1883-1948)를 비롯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해방 이전까지 조선 사진계의 추축이 되고 그들이 만든 조선적 로컬 컬러를 담은 조선 사진들이 예술사진이자 조선을 선전하는 매체로 반복 재생산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1930년대에 경성일보가 주관하여 만든 전조선사진연맹은 조선 최초의 사진단체이다. 경성일보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3대 기관지 중 하나였으며, 전국적 조직망을 갖추도록 했다. 또한 1934조선사진전람회를 통해 예술사진의 아카데미화를 주도하고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 선전전략을 수행하는 외곽조직의 역할을 했다. 이 시기의 예술사진과 프로파간다로서의 사진의 경계는 불분명했으며, 추후 개별적인 작가연구를 통해 세밀한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을 발표했다.

(발제문 인용 및 참조)

 



 

두 번째 순서는 김지혜 미국 아리조나대학교 조교수의 발제가 있었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국 사진작가들의 국제 사진전 공모 및 응모에 관한 정보, 1960년대 한국 사진계의 주최로 시작한 국제 사진살롱에 관한 자료들을 통해 1950-60년대 한국 사진의 국제성을 발표했다. 특히 1960-70년대 한국 사진가들이 동남아시아 사진 공모전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한국 주최 국제 사진 공모전에 동남아시아 사진가들이 다수 차지하고 입선했던 현상에 주목했다.

한국사진계가 해방 전부터 유행하던 살롱사진의 경향을 탈피해 새로운 리얼리즘 사진을 주창했지만, 사진의 형식이나 표현방식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사진을 예술의 한 장르로 규정하고 그 예술적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 한국 사진의 리얼리즘 열품과 일본의 리얼리즘 사진 논쟁을 비교해볼 때 두 국가의 사진계 모두 미국의 스트레이트 사진특히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984-1946)와 뉴홀의 모더니즘 사진을 규정지으려는 담론에서 논의되는 특성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중심지가 뉴욕으로 이동했던 것처럼, 두 국가를 통해서 투영되는 국제 사진의 담론은 미국이 주도하는 사진사를 중심으로 전유되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냉전의 문화 헤게모니를 반영한 것이었다.

1960년대부터 한국의 주도로 열렸던 국제 사진 공모전 역시 냉전의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설명하며, 공모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을 설명하며, 그 정치성과 국제성에 대한 발제를 했다.

(발제문 인용 및 참조)

 



 

마지막으로 최봉림 뮤지엄한미 부관장의 발제가 있었다.

 

1929년 한국 최초의 예술사진 개인전인 정해창의 예술사진 개인전람회가 열렸던 광화문빌딩 2층에서 1982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석조전에서 열렸던 원로작가 초대전의 하나였던 임응식 회고전에 이르는 한국 사진사의 주요연보를 재구성하는 개관전에 관하여 발표했다.

발제문의 제목도 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특별히 이번 전시의 진행과정과 에피소드, 한국사진계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발제문 인용 및 참조)





휴식후, 토론의 모더레이터로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와 발제자들간의 토론과 관객들의 질의가 있었다.


작성: 한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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