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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 아트선재센터

김정현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

2025.5.9. – 7.20.

아트선재센터



홍영인(b.1972)은 태피스트리, 사운드,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다양한 매체와 형식으로 작업한다. 작가는 작업 내에서 다양한 관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수직적인 위계 구조를 유연하게 허물고,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존재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개인전으로 《파이브 액츠》(스파이크 아일랜드, 2024), 《동물의 고리》(쿤스트할레 엑스트라 시티, 2022), 《달나라의 장난》(주영한국문화원, 2017), 《6/50 fig-2》(ICA 스튜디오 & 극장, 2015) 등을 개최하였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에 선정된 바 있으며, 2011년 김세중 조각상, 2003년 석남 미술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은 2002년 대안공간루프에서의 개인전 《기둥들》이었다. 전시는 원형의 태피스트리와 동물 장난감의 형상을 한 조각들, 그리고 다섯 번의 즉흥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다섯 극>(2024/2025)과 사운드 설치 신작 <우연한 낙원>(2025)으로 구성된다.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 설치 전경.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이번 전시는 가부장적 역사 속에서 주변화된 여성과 동물의 시선으로 제의적 공간을 새롭게 엮어낸다. 여기서 제의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억눌려 온 기억과 사라진 존재들을 감각적으로 불러내고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작가는 태피스트리, 오브제, 사운드, 퍼포먼스를 매개로 공동의 몸짓과 감각을 활성화하며, 그 안에서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또 하나의 시간대를 열어 보인다.



<다섯 극> 진행 전경


<다섯 극>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사의 이야기들로부터 출발한다. 여성의 몸과 노동은 결코 주변적인 존재가 아니었음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영웅 중심의 지배적인 역사 서사에서 배제되었다. 기생 출신 독립운동가 현계옥, 제주에서 반일 투쟁을 이끈 해녀 부춘화,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지도자 신순애 등, 작가는 이들의 서사를 작품 속에 새겨 넣었다. 작가가 환기시킨 역사적 장면들은 길이 40미터의 태피스트리에 수놓아져 있으며, 이들의 이야기는 전시 기간 중 다섯 번의 퍼포먼스를 통해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아날 예정이다.


홍영인, 소품 5. 차임벨 기계, 2025, 천연 섬유, 종, 놋쇠, 밧줄, 나무 막대, 나무 구조물, 2개의 의자, 약 130x220x85cm


태피스트리의 안쪽 면에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상이 자수 되어 있다. 이는 작가가 바람, 구름, 태양 등 자연의 요소들이 돌에 새겨져 있는 울주 천전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형상은 버드나무, 천, 세라믹으로 제작된 조각들 속에서도 되풀이되어 공간 전반에 리드미컬한 시각 언어를 형성한다. 원형의 태피스트리 주변에는 훌라후프나 고리 던지기처럼 놀이 기구를 연상시키는 조각들이 있다.




이 조각들은 작가가 동물원에서 관찰한 행동 풍부화 도구에서 착안해 제작한 것이다. 전시 기간 중 펼쳐질 다섯 번의 퍼포먼스에서 이 조각들은 악기이자 도구, 그리고 신체의 연장으로 활용된다. 퍼포머들은 역사적 장면이 수놓아진 태피스트리에 반응하며, 현재의 감각 속에서 새로운 몸짓을 구성한다. 퍼포먼스에는 드러머가 함께하며, 태피스트리 하단의 동물 형상의 악보를 따라 즉흥적으로 리듬을 만들어낸다.


홍영인, 소품 8. 벨 스크린, 2024, 짚, 골풀, 14m 길이의 도자기 종, 315x20x110cm


이 전시에서 태피스트리, 사운드, 퍼포먼스는 유기적으로 어우러진다. 홍영인은 선형적 서사와 수직적 위계를 거부하며, 몸짓, 리듬, 소리를 통해 역사가 감각되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장을 제안한다. 이곳에서 저항의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고 표면 아래에서 맥동하며, 관람객의 몸과 퍼포먼스를 통해 생성될 에너지와 리듬을 통해 다시 활성화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홍영인, 우연한 낙원.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우연한 낙원>은 작가가 비무장지대에서 처음 두루미를 마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텍스트 「두루미와 나」에서 출발한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이 글에는 세 화자가 등장한다. 예술가 자신, 두루미, 그리고 인간의 신성 인식을 새의 영적 여정에 빗대어 표현한 중세 페르시아 시인 파리두딘 아타르다. 이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텍스트는 작가의 목소리로 낭독되며, 그 음성은 두루미의 울음소리로 변형되어 공간 중앙에서 재생된다. 이는 작가의 목소리에서 추출된 13개의 음향적 특징들을 수많은 두루미 소리와 연결해 재구성한 것으로, 오웬 로이드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되었다. 공간의 측면에 배치된 4개의 스피커에서는 매년 두루미가 돌아오는 비무장지대에서 수집한 자연의 소리가 배경음으로 흐른다. 미국의 자연주의 작가 피터 마티센은 『천상의 새』에서 두루미에게 이상적인 서식지인 비무장지대를 ‘우연한 낙원’이라 일컬은 바 있다. 이 설치는 작가의 목소리, 두루미의 울음, 비무장지대의 자연음이 서로 얽히며, 종 간의 위계, 허구와 현실, 이야기와 목소리의 경계를 허문다. <우연한 낙원>은 인간과 비인간, 과거와 현재, 사실과 상상이 겹쳐지는 접점에서, 작가도, 두루미도, 시인도 아닌 새로운 감각적 주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간담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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