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오전 11시, 일민미술관에서 박윤영 개인전 《YOU, Live!》 간담회가 있었다. 박윤영 작가는 최근 캐나다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동양화의 형식을 탈피하는 독보적인 언어를 창조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9년 에르메스미술상을 수상한 이후로 국내에 9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다. 10년 동안 해외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전통적인 동양화의 특성을 뛰어넘어, 퍼포먼스, 연극, 사운드 등의 전혀 다른 분야와의 접점을 통해 오픈 시나리오식 작업을 공개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세계 정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이 박윤영 작가가 쓴 영화 시나리오로 제작되고, 전통 동양화 매체로부터 변형된 오브제들이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또한 연극연출가 임형진, 건축소장 전강우와 협업하여 특별한 공간 설치를 통해 실험적인 전시를 시도했다.
조주현 학예실장이 정십이면체 전개도 글자가 그려진 1층 전시장 입구에서 《YOU, Live!》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헤드셋을 끼고 질문을 들으며 연극에 참여하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
먼저 1층의 <당신의 만찬 Your Supper> 연극을 시작으로 전시 투어가 진행되었다. 박윤영 작가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임형진이 연출한 <당신의 만찬>에는 12명의 관람객들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참여한다.
만찬으로 제공된 옷, 주스, 커피, 핸드폰 배터리, 초콜릿, 약 등
식탁에 놓인 오브제들은 일상의 물건이다. 어린아이들의 노동력에 의해 생산되는 이 물건들을 식탁에 배열함으로써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상황을 드러내고 반성하고자 한다.
오브제들이 놓인 식탁 뒤로 깜빡이는 남녀의 눈과 어린아이의 철봉 타는 모습이 상영된다.
달콤한 밀크 초콜릿을 좋아하는가 씁쓸한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는가, 바나나를 좋아하는가 딸기를 좋아하는가 등의 질문이 헤드셋을 통해 들려온다. 사실 관람객에게는 각자 다른 질문이 주어지고 이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마치 외부에서 바라보아 그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겉 행동들만 보고 판단하는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12개의 문고리 Twelve-Door Handles> 작업이 시작되는 2층 전시장 입구
전시는 그 동안 작가가 진행해오던 연구 과정에서 발견한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본인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시나리오로 진행된다.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2장의 사진 중 하나인 '밍크 고래 이야기'를 설명 중인 조주현 학예실장
2층에 선보이는 <12개의 문고리 Twelve-Door Handles>는 오픈 시나리오로써 연극,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총 12개의 뒤섞인 타임라인으로 구성된 시나리오로, 문고리 뒤에 감춰진 사건들의 배후를 탐구해가는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처럼 전개된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 작업이 박윤영의 어린 조카가 잡아당겼던 문고리에 대한 기억과 성서 계시록에서 마주한 아마겟돈에 대한 작가 본인의 개인적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병풍과 족자 등의 여러 오브제가 등장하며, 사운드와 영상이 허구적인 무대세트를 보여준다.
2층에 설치된 <12개의 문고리 Twelve-Door Handles> 전경
전시 공간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영국의 리비아 침공 등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 발견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연결시켜 재구성하였다.
박윤영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어린 아이와 고래의 낯선 대화를 통해 수수께끼 같은 불안한 감정을 어렴풋하게 전달하고 있다.
아카이브 자료는 세계 정세와 관계된 사실 기반의 사건들도 있지만, 이를 작가 본인의 경험과도 연결시켜 형상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박윤영 작가가 각각의 이야기를 픽토그램으로 그려낸 병풍
질의응답 중인 박윤영(시각예술가), 임형진(연극연출가), 전강우(건축소장)
조주현 학예실장의 전시 투어가 끝나고 전시기획 배경 및 의의 설명과, 참여작가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조주현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박윤영 작가 개인의 작업만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2019년의 맥락에서 협업의 체계로 만들어 연극으로써 재구성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박윤영 작가는 이전에도 병풍과 족자, 악기 등의 여러 오브제들을 전시장에 선보였으며, 이러한 오브제들은 총체적 무대 안에서 행위자로써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작품에 성경적인 요소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본인이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라온 배경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면서 자연스레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임형진 연극연출가는 <당신의 만찬> 연극에서 아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점에 대하여 아이가 마치 중성화된 존재가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써 생각하게끔 아이를 최대한 지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퍼포머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올 때 씁쓸하고 불편한 감정을 갖고 나오게 하는 연극이라고 한다.
전강우 건축소장은 공간마다 각기 다른 경험을 디자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는 바닥과 질감인 에폭시 재료를 어떻게 실험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1,2층 공간을 다르게 제작하였다. 작품을 바라볼 때 청각적 뿐만 아니라 시각, 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끔 완성했다.
박윤영 개인전 《YOU, Live!》은 오는 10월 18일부터 2020년 1월 12일까지 일민미술관 1,2 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 전시 제목 'YOU, Live!'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과 고민에서 시작되어, 좀더 구체적인 삶으로써의 연결지점을 제시하는 하나의 '연극'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관객들의 참여로 완성되는 전시이기에, 연극의 퍼포머로써 적극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완성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번 연극-전시 플랫폼은 시나리오가 가진 대화적 측면 자체가 놀이와 시, 정치가 결합된 이상적인 담화를 제시하며, 사회적인 예술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운드, 영상, 조각, 영화, 아카이브 등이 결합된 박윤영 작가의 실험적인 전시를 통해 동시대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