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례
남서울미술관 건축아카이브 상설전
〈미술관이 된 구 벨기에영사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1층 전시실
사당역에서 접근성이 좋은 남서울미술관은 건축물 자체가 문화재이다. 이곳은 1901년 벨기에와의 수호 통상 조약의 체결 후 벨기에영사관으로 1905년 완공되었다. 3년에 걸쳐 만들어진 만큼 공이 들었던 이 건물의 제 역할은 오래가지 않았다. 1910년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은 식민지가 되었고, 외교권이 빼앗겨 10번째 수교국이었던 벨기를 포함해 자동 단교가 된 것이다.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벨기에는 일본에 이 건물을 팔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광복 이후, 1968년부터 소유권을 갖고있던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은, 1980년 회현동의 소유지에 고층건물을 짓기로 결정한다. 이미 1977년 문화재로 지정되었기에 문화재 관리국과 협의 끝에 이축이 결정되어 현재의 위치로 오게 된다. 건물이 벽돌 한 장 단위로까지 모두 분해, 해체되어 현재의 위치에 다시 조립된 것이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평가되는 이 건축의 이축은, 국내 문화재 이전 복원으로 최초였다.
2004년 상업은행이 서울시에 무상임대를 결정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인 남서울미술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15년 구 벨기에영사관 건립 111주년 기념하여 진행된 SeMA 근현대사 프로젝트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영사관> 전이 열렸고, 이 상설전시는 그 때의 전시를 재단장하여 만든 것이다.
(사진) 이축 전 촬영된 벽난로의 원 모습 일부. 고전주의 건축의 양식적 특징이 간략하게 표현된 벽난로장식(mantel)의 특징을 갖고 있다._전시장 발췌
시작은 이랬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친구에게 어딜 보여주면 좋을까 하다가 여러 차례 방문 경험으로 서울 내 웬만한 유명 관광지는 둘러본 그에게 적절한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예술계 종사자라는 것을 알고 떠올린 장소가 여기였다. 어떤 특별한 현대미술 전시보다 뭔가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며 숙소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들이 종로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곳은 상대적으로 동떨어진 느낌이다. (물론 이 건물도 그쪽에 있었던 건축이다.) 사실은 그래서 접근성이 좋은 거라고 얘기하고 싶다. 내게 사당은 수원 등 경기도 지역으로 가는 많은 버스가 있어, 길목의 느낌이 강하다. 수많은 인구가 오가는 구서울역사가 그러하듯, 이곳도 이동에 지친 가난한 이들의 발길을 끌어당길 수 있는 전시관이란 생각에서 각별하게 다가왔던것 같다.
(사진) 6.25전쟁 직후에 구벨기에영사관이 담긴 서울시 전경과 1930년대 회현동의 도시적 맥락 속에서 재현된 영사관의 모습이 담긴 3D영상 _전시장 발췌
원래 3개의 공간을 사용했던 전시는 상설전이 되면서 [과거]와 [현재]로 공간 구성을 바꿨다고 한다. 먼저 [과거]는 대한제국이 벨기에와 수교를 하는 시점부터 남현동으로 이축하는 전후의 내용이 담긴 흑백 사진 자료가 연혁 등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사진) 안창모 인터뷰영상, 2015 ⓒONE O ONE factory
구벨기에영사관 이축은 근대문화재로서 첫 사례이며, 국가사적으로는 매우 희소한 경우다. 안창모와 고주환이 이축을 담당했던 문화재보수기술자 이낙천선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근대문화재의 이축과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와 과제를 짚었다.
혹시 관람할 일이 있다면 안창모 교수의 인터뷰 영상은 한 번 보고 지나가길 바란다. 그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이 건물이 일재의 잔제가 아님을 알게된다. 설계도부터 벨기에에서 온 실제 서양근대건축물임을 밝힌 것이다. 작은 중립국이었던 벨기에게 아시아의 진출을 계기로 꿈꾸던 이상의 크기가 건축물로 승화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빼어난 건축물은,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다시 눈에 면면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현재 1-2층에서 전시중인 '모던로즈'의 전시제목은 벽도 장미색 벽돌이지만 무엇보다 벨기에 영사관 시절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정원의 장미에서 유래한다. 이 시절 장미는 건물이 매각되면서 당시 조선호텔 로즈가든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사진) 1층 주 거칠에 위치한 원형 기둥의 주두(기둥머리) 부분이다. 로마시대부터 사용된 터스칸식 기둥(Tuscan Order)으로 만들어졌다. 주두의 중심이 비었는데, 이는 실내 기둥이 구조적 기능이 없는 장식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잘려진 부재의 아래에는 장식적 효과와 착시방지를 위해 만들어졌던 세로 홈의 골줄이 보인다._전시장 발췌
[현재]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내부엔 이축 공사 이후 미술관에 남겨져 있던 건축자재인 석고 기둥 일부와 타일들이 전시되어있다. 이미 건물의 외부와 내부가 (깔끔하게 정돈은 되어있지만) 오래된 건물인데, 전시된 이들은 마치 겉껍질과 더 안쪽의 속껍질까지 드러낸 두꺼운 나무 밑동의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나무 바닥에 그 당시 사용되었을 오래된 타일의 무늬는, 빈티지를 아끼는 외국인의 눈에도 전통은 아니라 낯선 내게도 귀해 보였다.
(사진)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건축된 구벨기에영사관에 설치되었던 필라스터(벽식기둥) 장식의 일부다. 목조건축과 달리 조석조(돌, 벽돌 등으로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드는 건축 구조)에 석고와 회벽으로 마감된 신고전주의양식의 장식은 이축 시 온전하게 해체해서 재사용하는데 한계가 있어 원 모습 그대로 복제하여 이축복원이 이루어졌다. 전시된 벽식기둥의 일부는 2층 복도에 위치했던 장식용 필라스터 일부로, 사각형의 이오니아기둥의 특징인 회오리장식과 세로 홈의 골줄로 구성되어 있다. _ 전시장 발췌
(사진) 남서울미술관, 2015 ⓒONE O ONE factory
현재 남서울미술관의 건축미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장면을 실내, 디테일, 실외로 구분해 9개의 기둥위에 표현했다. 하단의 타일들은 이축 공사 후 남겨진 타일의 일부로, 이축 이전에는 구벨기에영사관의 테라스 등의 바닥을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_전시장 발췌
사진.글.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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