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 : 기억의 주소록
2021.6.2-6.5
희수갤러리
전시전경
윤종 작가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대상이 관객의 심상과 개인적 의식들을 자극한다. 기억에 대한 개인적 심상과 대상의 모호함을 화면으로 치환하고, 이를 관객과 공유하고 공명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기억이라는 매개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요소이고 동시에 휘발성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의 주소록> 연작은 화면의 대상이 정확하지 않은, 즉 불명확함과 모호성들을 함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장치들은 의도된 것이긴 하지만 관객들이 이를 보고 온전한 사유를 하기에는 막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종 작가의 작품들은 기억을 환대하고 소중히 대하는 작가만의 따듯한 정서적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온화한 작가의 시선은 작품을 통하여 관객들에게 곧이 전이된다. 불특정 다수의 기억을 건드리는 보편적인 매개채를 사용한 연유는 작가 심상의 전달과 함께 이를 감상하는 개개인의 특수성과 상황에서 파생되는 다의적의미를 제시하기 위함이라 생각된다.
전시전경
산24번지 이야기2, Mixed media on canvas, 60.4x72.2cm, 2021
<산24번지 이야기>는 ‘산24번지’로 대표되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모호한 혹은 알 수 없는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관객 저마다의 다양한 경험과 기억들을 들춘다. ‘산24번지’라는 정확한 명제는 실존하지 않는, 불확실성의 기억을 기반으로 형성된 모호한 회화 속의 공간과 서로 대비된다. 끊임없이 개개인들이 갖은 기억 속 이미지와 화면의 이미지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한다. 이러한 연상작용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이질감은 보다 그의 회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 No.04, Mixed media on canvas, 112x162.2cm, 2019
작품들은 거창한 담론을 다루기보다는 기억에서 기인한 정서적 안정감을 보여준다. 이러한 지점은 작가의 작가노트를 통하여 확인 할 수 있다. 윤종 작가는 시인 마르쿠스 밀마르티알리스의 문구를 인용하며,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이 작가 자신에게는 또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큼의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산24번지 이야기3, Mixed media on canvas, 50x60.4cm, 2021
산24번지 이야기1, Mixed media on canvas 60.4x72.2cm, 2021
몇몇 작품들은 산수화적 기질을 보여준다 생각한다. <산24번지 이야기>시리즈의 화면 구성을 보면, 서양화의 형질을 하고 있지만 산수화가 연상되는 몇가지의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산24번지 이야기3>에서 표현된 산의 모습은 운두준법을 연상시킨다. 또한 <산24번지 이야기1>의 표현은 산수화의 준법인 피마준법, 부벽준법의 표현 방식과 리듬감을 보여주며, 하강하는 폭포의 성격과 상승하는 건물들의 일종의 대립은 낯설고 이질적 풍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작가만의 화법들은 관람객들의 문화적 보편성(산수화에 익숙한 문화)을 건드려 작가가 의도한 낯설지만 익숙함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장치들이라 생각된다.
전시전경
신작 30여점을 선보이는 윤종 작가의 <기억의 주소록>展은 오는 15일까지 희수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이건형 twowar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