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종갑 : 화전 畫田》
전시 기간 : 2022.02.04.-02.23
전시 장소 : 금보성아트센터
관람 시간 : 11:00-18:00(월-토/일요일 휴관)
금보성아트센터는 2월 4일부터 23일까지 길종감 작가의 초대전, 《길종갑 : 화전 畫田》을 개최한다. 길종갑은 ‘곡운구곡(谷雲九谷)’의 작가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본래 ‘곡운구곡’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용담리와 삼일리 등에 걸쳐 있는 계곡을 뜻한다. 1668년 강원도 평강 감사로 부임했던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집필한 『곡운기』에서 이 지명의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이곳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탄(史呑)이라 하였는데, 내가 사탄이라는 우리말(鄕音)을 고쳐서 곡운이라 이름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는 자신의 호인 ‘곡운’을 따서 지촌천의 물굽이 아홉 개를 곡운구곡이라고 칭했다.
전시 전경
전시 전경
길종갑에게 ‘곡운구곡’은 자신의 태생지이자 유년을 보낸 곳이며, 현재는 노모를 모시고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의 주된 소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곳의 풍경을 특유의 강렬한 붉은 빛 색채로 부감법을 사용하여 묘사한다. 생동하는 듯 꿈틀거리는 풍경들과 그 안에 숨 쉬는 역사성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곡운구곡도 계열 작품과 땅의 내력을 지닌 작업을 선보인다. 9m가 넘는 최신작, <두류산풍경>(2022)과 <화전>(2014-2016), <다산별곡>(2020) 등 작가의 삶의 터인 사창리가 담긴 작품들 또한 만나볼 수 있다.
<두류산풍경>, 2022
<화전>, 2014-2016
<다산별곡>, 2020
한편, <장시날(음력 7월 20일)>(2011)은 장삿날의 풍경을 주제로 삼았다. 길 한가운데에 들어선 상여 행렬과 유족들의 상복 차림이 눈에 띄며, 그와 반대로 세상은 밝고 영롱한 빛의 색들로 가득하다. 망자에 대한 슬픔의 이면에는 산 사람들의 삶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장삿날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사람들은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며, 행랑객들은 야외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다. 삶과 죽음이 모두 한 화폭에 담기고 이를 모두 포함한 대자연은 꽃이 피었다고 지고 융성했다가 쇠퇴하는 세상의 이치를 잔인하리만큼 아름다운 풍경으로 제시한다.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영고성쇠 앞에서 생과 사는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
<장사날(음력 7월 20일)>, 2011
<산치성>, 2009
그와 반대로, <산치성>(2009)은 자연 안에 집적된 인간의 역사를 보여준다. 작품의 왼편 하단을 자세히 보면, 6.25전쟁의 상흔인 듯한 ‘학살’의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세월이 녹아든 바위는 인골이 석화한 것임을 유추하게끔 하며, 그와 더불어 강제노동과 학대, 학살, 공포, 동물도살의 풍경들이 겹쳐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강렬한 색감의 자연 풍경에 가려져있다.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폭발적인 색들을 자랑하는 비경은 결국 처참하고 어두운 인간들의 맨얼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된다. 자연에 남은 인간 세계의 흔적의 층은 오른쪽 상단에서 볼 수 있는 도로의의 자동차와 사람들의 행렬로 이어진다. 이는 현대인의 관광투어를 연상시키며,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인간의 역사성을 보여주며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앞서 소개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광활한 자연 속에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깨알 같은 집들과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말했듯 “작은 것들의 역사”를 구성하는 일이다. 그는 이 땅의 내력과 그 안에서 반복되었던 인간들의 삶과 죽음이 만든 풍경을 그러낸다. 이와 같은 특징은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 온 작가의 가치관과 궤를 같이 하며, 그가 4.3미술제, 평화미술제, 광주 40주기 기념전 등에 꾸준히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작가가 그려내는 ‘화전(畫田)’은 무엇일까. 자연 풍경을 그린 그림에 ‘화전’이라는 제목이 붙으면, 흔히 불을 질러 만든 밭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작가는 화전(火田)이 아닌 화전(畫田)을 제시한다. 어쩌면 이들이 형성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붓질로 불타는 듯한 풍광과 인류역사의 생채기를 함께 일궈내어 자신만의 화전(畫田)을 구축해나가고 있었다.
윤란 rani75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