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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역사관, 종로구 계동

편집부

북촌 한옥역사관
화요일-일요일(월요일 휴무), 오전10시-오후6시
종로구 계동




한옥마을이 밀집되어 있는 북촌, 한국을 대표하는 곳 중에 하나로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북촌은 어떻게 형성 되었을까. 

일제 강점기 경성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택난이 심화되었고, 일본인들은 일본식 집을 지어 북촌으로 진출하려 하였다. 
기농 정세권(基農 鄭世權, 1888-1955)은 '건양사'라는 건축회사를 설립하고, 왕실과 양반층의 대규모 주택을 매입하여 토지를 나눠 10~40평형대의 작은 규모의 한옥을 중산층 이하 서민층에게 공급했다. 이를 위해 서민들에게 할부로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주택금융을 도입했다. 
한옥은 전통가옥에서 '도시형 한옥' 구조로 자재도 현대적으로 편리하고 간편한 구조로 개발하여 건축하였다.
1920년대 관철동과 낙원동, 관훈동, 소격동, 봉익동, 재동, 창신동, 사간동, 수송동, 체부동, 안국동, 익선동, 계동 등에 조선집을 신축해 분양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서대문, 창신동, 성북동 등 1940년대 이후에는 왕십리와 행당동까지 조선집을 공급하였다. 연간 300채의 한옥을 건축, 익선동 119채, 북촌에 1233채 등으로 알려져 있다.
정세권의 조선집을 지어 조선인들이 살게 하고, 우리 땅을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북촌과 그 밖에 한옥 밀집지역들을 만들게 한 것이다.

또한 정세권은 조선물산 장려운동에 참여하여 회관을 기증하였으며, 조선어학회에 회관을 기증하였다.
조선어학회 활동으로 정세권은 고문을 받고, 토지 3만5천평을 강탈 당하였으며, 그 땅은 일제 대화숙으로 강제 수용되었다.
역사관 마지막부에는 '빈집'이라는 제목으로 정세권의 마지막 생을 기록했다.
1954년 정세권은 고향인 경남 고성군으로 낙향하였으며, 현재 남아있는 집터로는 잡초가 무성하고 좁고 옹색한 것으로 기록했다. 그는 이름없는 애국지사였으며, 수많은 집을 짓고 조선과 조선사람, 조선 땅을 위해 헌신하였으나, '스스로는 빈집'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1951년 서울 한옥마을








한양도성 내 건양사 개발지 분포도







서울 한옥포털: hanok.seoul.go.kr
인스타그램: @bukconhanok_history


작성: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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