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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서울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 (Raoul dufy : la mélodie du bonheur)

객원연구원

《더현대서울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 Raoul dufy : la melodie du bonheur




더현대서울 ALT.1  라울 뒤피 작품의 최대 소장처인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의 수준 높은 작품들로 구성되며,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뒤피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뒤피의 최대 역작이자, 전기와 빛의 시대에 대한 경외와 찬사를 환상적인 색채와 선으로 표현한 “전기 요정”의 연작 오리지널 작품이 전시된다. 총 130여 점의 작품을 12개 주제로 구성하였으며,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공간 연출과 함께, 축복과 기쁨의 화가 라울 뒤피의 예술적 여정을 선보인다.


전시는 <자화상>, <인상주의로부터>, <야수파 라울 뒤피>, <입체파로서의 라울 뒤피>, <뒤피의 민중예술>, <패션>, <장식예술>, <바다와 말>, <여행, ><초상화>, <대형 벽화 장식>, <아틀리에>, <검은 빛>, <전기 요정>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화상>


첫번째 섹션을 여는 작품은 라울 뒤피의 자화상 세 점이다. 서로 매우 다른 스타일로 완성된 이 자화상들을 통해 그의 화가로서의 긴 경력을 세 가지 기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상주의로부터>


프랑스 북서부 지역 노르망디에 위치한 산업 항구 도시 르 아브르Le Havre에서 태어난 그는, 초기에는 인상파의 후예로서 재능 있는 풍경화가로 먼저 알려지게 되었다.




마르티그의 카페 테라스, 1904




<야수파 라울 뒤피>


1906년부터 그는 전통을 거부하고 혁명을 지향했던 야수파의 주요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를 비롯한 야수파 화가들은 강렬한 색상과 가벼운 붓질을 활용하여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렸다.



트루빌의 벽보들, 1906

 


<입체파로서의 라울 뒤피>


뒤피는 그의 친구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 기법을 시도했으며, 폴 세잔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1908년에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Marseilles 근처 에스타크Estaque의 풍경을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냈다.



에스타크의 나무들, 1908




<뒤피의 민중예술>


제1차세계대전 직전, 민중예술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라울 뒤피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시 ‘동물우화, 오르페의 장례행렬’Le Bestiaire ou Cortege d' Orphee의 삽화를 목판화로 그려내는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패션>


리옹의 유명 직물 제조업체와 협업하게 된 그는 수많은 견본을 그려냈고,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와도 함께 일했다. 뒤피는 1920년대의 패션계를 선도하는 대표주자였고 그 자신만의 상표를 만들었다.




<장식예술>


이 시기에 뒤피는 데생의 분리, 자연스러움, 선명하고 투명한 색상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그림체를 만들어냈다. 또한, 장식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활용해1924년부터 도예가 로렌스 아르티가스 Llorens Artigas와 함께 수많은 도자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바다와 말>


라울 뒤피는 작은 말들로 가득한 해안가 도시의 환상적인 이미지로부터 회화적 영감을 받아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그는 고향 노르망디에서 경마장을 운영하여 금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암피트리테





<여행>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라울 뒤피는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그리고 미국을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풍경을 자유롭게 그려냈다.


 


<초상화>


라울 뒤피는 초상화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초기부터 그는 아내 에밀리엔을 모델로 삼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종 유명인사들을 그리기도 했다. 영국의 케슬러 가문이 1930년에 의뢰한 기념비적 가족 초상화는 뒤피가 남긴 걸작 중 하나이다.



피에르 제스마의 초상


 <대형 벽화 장식>


1930년대는 라울 뒤피가 대형 벽화 장식에 전념한 기간이었다. 예를 들어, 1937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전시된 전기요정La Fee Electricite 또한 그의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석판화로 작업된 뒤피의 전기요정La Fee Electricit을 만날 수 있다.


반은 본연 그대로 보존된 자연의 풍경을, 또 다른 반은 산업적인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러한 과도기적 시대의 풍경 속에 전기의 발명과 관련 있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배치했다.


<아틀리에>


라울 뒤피가 다루었던 독창적인 주제들 중 하나는 바로 작가 자신의 아틀리에, 특히 파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위치한 구엘마 스튜디오였다. 뒤피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만큼 작가 자신 또한 훌륭한 아마추어 음악가였으며, 이 주제는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랑빠스 구엘마 거리의 아틀리에, 1935-1952


<검은 빛>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검은 화물선들’을 다룬다. 작가는 제 2차세계대전 중에 거의 완전히 파괴된 고향 항구를 묘사하기 위해 검정색 단일 색조를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법은 작품이 햇빛의 방향에 따라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작성: 김순기 meonze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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