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아르코미술관 미디어 프로젝트; 언바운드 아카이브
(10.11-11.2, 아르코미술관)
미디어 프로젝트인 ‘언바운드 아카이브’의 작품 대부분은 물리적 공간을 크게 차지하는 ‘상징적 유사물’이나 ‘기호의 재현’이 아닌, ‘정보적 시뮬레이션’(마크 포스터)이라는 소통 형식을 가진다. 그것은 이미 공유된 코드를 매개로, 잘 접혀지고 또 큰 손상 없이 다시 펼쳐질 수 있는 매체의 특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면서도 어둑한 영화관처럼 연출되는 통상적인 ‘미디어 아트’ 전시의 일차원성은 피한다. 그것은 관객의 몸과 시선을 스크린에만 붙박아 놓지 않는다. 특정 소통방식은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과도 관련되는데, 스크리닝 일색의 미디어 아트 전시는 동굴 속 그림자에 고착된 관객을 낳는 경향이 있다.
비트로 바뀐 정보에도 그 전후의 맥락이 있기 마련인데, 이 프로젝트는 실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활용하여, 그 맥락들을 아카이브로 함께 제시했다. 물질과 정보는 동어반복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혼동되지 않는다. 코드의 동일성 속에서 차이를 낳게 할 언어 요소의 이질성은 억압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전문가들의 상동성이 아니라, 발명가의 배리(paralogy)’(리오타르)가 작동되는 장이 생성될 수 있다. 데이터 뱅크는 미래의 백과사전으로 간주되곤 하지만, 미래 미술관의 핵심 또한 차지하게 될 것이다. 미술관은 정보들이 수렴되고 다시 유통되는 교차점으로, 미는 기술적 효용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소통될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의 정체성은 상상력을 통해 게임의 규칙을 바꾸거나 창안하는 자로 자리매김 된다. 구체적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빛의 속도로 전송되어 지구촌 여기저기에 편재할 수 있는 전자 미디어의 언어는 현대의 보편적인 소통형식이 되었고, 전시장 또한 관객들이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인터페이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전시장은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기계 복제의 과정에서 빠져나간 분위기를 복구하는 역할을 한다. 수수께끼처럼 던져진 단편들은 좀 더 직관적인 방식으로 접근되고 추가된 현실과 공조하면서 끝없이 이어질 해석과 추리의 시작을 알린다.
영상으로 보여 진 내용물을 바로 현실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 일방적으로 전달된 코드의 소비로 소통을 대신하는 일상적 체험과 다르다. 여러 차원을 동시에 매개하는 확장된 형식은 이미 미디어 환경 속에 깊숙이 침윤되어 있는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가 작품을 입체적으로 이해시키며, 좀 더 오랫동안 전시장에 머물게 한다. 이 전시의 작가 15명의 작품 20여 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창이며 개인적 기억과 지각을 들추는 무의식의 공간이고, 허구와 현실을 뒤섞으며 코드화 된 현실을 탈코드화 시키고, 반복되는 일상을 또 다른 반복을 통해 소격시키며 관객 앞에 놓인 물리적 단편에 생동하는 맥락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출전; 월간미술 2012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