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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론〕서세옥 / ‘획’과 ‘일필휘지’의 현대적 변주

김성호

〔미술작가론〕서세옥



‘획’과 ‘일필휘지’의 현대적 변주


김성호(미술평론가)



산정(山丁) 서세옥(1929- )은 1950년대 이래 ‘전통의 해방과 자유’를 기치로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을 꾸준히 실험해온 선구자적인 작가이다.







획(劃)- 점과 선의 변주

그의 전통에 대한 현대적 변용의 대표적 특성은 구상과 비구상, 형상과 추상, 물질과 정신을 통섭하는 ‘수묵의 추상실험’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1960년대 서양화단의 한국적 앵포르멜 운동과 같은 추상실험들과 무관한 것만은 아니지만, 한국화의 장에서 수묵의 고유한 언어로 회화의 본질을 찾아 나선 최초의 실험들로 평가된다. 산정에게 그것은 1957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점의 변주>, <선의 변주>와 같은 일련의 극단의 추상실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모필의 두께가 머금은 먹물의 크기와 농담에 따라, 또한 작가가 지면 위에 운영하는 모필의 운동에 따라 양자의 경계를 허물며 서로의 영역을 오고간다. 용필에 따라 용묵, 용색을 달리하는 그의 작품은 먹의 번짐과 스며듦을 변주하면서 때로는 점으로 때로는 선으로 그 위상을 수시로 탈바꿈한다. 점과 선이, 건묵(乾墨)과 농묵이, 여백과 형상이 조응하는 이 시리즈작업은 수묵이 대면하는 회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물론 초기의 이런 실험들은 문인화의 전통에 근간한 다른 형식의 구상적 작업들, 즉 한국화의 전통적인 소재인 인물, 동식물을 대상화한 작업들과 병행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그만의 독창적인 조형실험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의 독특한 미학으로 정초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초기의 실험들은 오늘날의 산정만의 고유한 추상미학을 도래케 한 첫걸음의 차원으로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과 선의 변주가 그만의 미학으로 발전해나가는 중간 노정은 그의 1974년 첫 개인전 이후 선보인, 형상을 추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즐거운 비(1976)>, <구름이 흩어지는 공간 (1977)>과 같은 일련의 작품들에서부터이다. 제목이 상기시키는 자연의 풍광을 어렵지 않게 유추하게 만드는 이러한 작품들은 가장 기초적인 조형요소로 대상을 해석해내는 그의 문인화가적 기질을 다분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그의 점과 선의 변주가 목표한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쉬어가는 ‘하나의 시공간’처럼 보인다.


그것을 필자는 ‘점이면서 선’의 정체성을 지닌 ‘획(劃)’의 시공간이라 불러본다. 획(劃, 긋다)이란 서(書, 쓰다)와 화(畵, 그리다)를 통섭하는 개념이지 않던가? 그뿐 아니라 획은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절(切, 나누다)의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통섭과 분절을 아우르는 이러한 ‘획’의 개념은 동양적 미학을 실천하는 그에게 있어 하나의 메타포이다. 획은 구상과 추상, 자연과 인간, 음과 양, 전통과 현대라는 이원대립적 요소를 끌어안고 조응시킨다. 이것은 훗날 산정에게 있어, 서화통합을 시도하는 독창적 화풍의 작업들인 인간 시리즈로 이어지게 만드는 주요한 미학적 요소가 된다.




구름이 흩어지는 공간, 한지에 수묵, 128 x 100.7 cm,

ⓒ 서세옥1977



즐거운 비, 한지에 수묵, 67.9 x 49.7 cm, ⓒ 서세옥, 1976



 사람, 닥지에 수묵, 74.7 x 68.3 cm, ⓒ 서세옥, 1982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창출되는 사람들

산정에게 ‘획’의 미학은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과 같은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련의 시리즈 작품들에서 ‘일필휘지(一筆揮之)’의 미학으로 발전한다. 문자적으로 일필휘지란 붓을 종이에서 떼지 않은 채 순간적인 속도와 강도로 하나의 획을 지속하는 서화의 방법을 의미한다. 간단히 그것은 단숨에 쓰거나 그려내는 서화의 방법을 통칭한다. 따라서 일필휘지가 약동하는 서세옥의 사람들이란 “일획을 그리는 것은 만화(萬畵)의 근본이며 모든 필묵선이 일획으로 시작되지 않는 것이 없고 일획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청대의 석도(石濤)의 화론(畵論)을 소생시킨다.


그러나 일필휘지의 진정한 의미론이란 ‘획의 순간적 연장’이란 조형방법으로부터 기인하기 보다는 그것이 피력하는 ‘즉발성’의 조형태도로부터 발현된다. 산정의 작품들에서 그것은 ‘액션’을 강조하는 서구의 추상표현주의와는 일정부분 다른 조형태도를 품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산정의 시리즈 작품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에 나타나는 일필휘지의 즉발성은 사혁의 육법 중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실천하는 정신적이고도 감성적인 ‘내재적 차원’이기 때문이다. 산정에게서 이른바 내재율 회화가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기운생동이란 사물의 겉모습에 매달리지 않고 간단없는 붓질로 대상 본래의 기운을 담아내는 회화에 있어 최고의 경지이다. 그것은 산정이 직접 언급했듯이, ‘비가시적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이 된다.


“내 작업의 중심은 보이지 않는 대상의 본질 포착에 있다. 오랜 명상과 통찰력으로 대상의 본질을 간취, 점과 선을 통해 추상적인 기호로 표현된다. 대상의 참모습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나는 무한한 즐거움을 누린다.”


‘획’이 생명력으로 약동하는 일필휘지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기운생동을 실천한다. 평론가 오광수는 산정의 작품세계를 ‘즉흥적으로 펼친 생명의 리듬’으로 평가한 바 있다. 특히 1970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천착된 <춤추는 사람들>에는 작가의 언급대로 “바람 불고 천둥소리 일어나는” 기운생동으로 충만하다. 모필의 전진하는 속도감, 그것이 화선지 위에 머물렀던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약동감 등은 우리로 하여금 작가 특유의 용묵과 용필의 언어를 유추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그의 작업에는 농묵과 담묵을 고루 사용한 파묵법과 같은 풍부한 발묵(潑墨)뿐 아니라 갈필(渴筆)과 파필(破筆)의 효과를 드러내면서 먹의 사용을 절제한 석묵법(惜墨法)이라는 상이한 기법이 통합적으로 사용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용묵과 용필의 전통적 배분을 배반하는 그의 조형언어가 외려 기운생동의 미학을 극대화시키는 훌륭한 장치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사람, 닥지에 수묵, 38 x 27.5 cm, ⓒ 서세옥, 1996

사람들, 닥지에 수묵, 89 x 48.5 cm, ⓒ 서세옥, 2000



사람들, 닥지에 수묵, 34.5 x 48.7 cm, ⓒ 서세옥, 1995




전통의 현대적 변주

오늘날 산정을 ‘현대적 한국화’의 지평을 열었던 선구적 작가로 자리매김하는데 있어 별반 이견이 없다 할 것이다. 특히 산정은 1960년대 묵림회(墨林會)(1960-1964)의 ‘수묵 추상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당대의 고루한 한국화 풍토를 개선시키는데 앞장섰다. 더욱이 그는 이러한 수묵 운동을 자신의 회화세계에 뿌리내린 1970년대 후반 이래, 작품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을 통해 서화(書畵)통합과 일필휘지를 기조로 한 채 전통의 현대적 변용을 현재까지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




산정(山丁) 서세옥 : 1929년 출생,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부 제1회화과 졸업(195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1955~95)



출전 /

김성호, '획과 일필휘지의 현대적 변주', (서세옥 작가론), 표지작가,『미술과 비평』, 2012. Summer no. 28, pp.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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