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미술작가론〕
김준형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서 모색하는 의미론
김성호(미술평론가)
김준형은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정교한 조형적 짜임을 구축한다. 대부분 평면 작업으로 귀착되는 매체적 한계를 그는 미술의 메시지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최근작들에서는 이미 전환의 과정을 거쳤지만, 초기에 그는 병풍과 같은 양상으로 패널들을 세워 만든 설치작품을 통해서 그의 작업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매체적 한계를 극복하려 시도한 바 있다. 스펙터클을 지향하는 다매체 지향의 설치형 작품들에서는 비주얼아트에서 다양한 의미론을 드러내는데 별반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공간에 따라 맞춤 설계되는 이러한 유형들은 언제나 새로운 변화를 전제하는 잠재적 변형체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준형은 이러한 잠재태로서의 매체적 변형 가능성을 접고, 미술이 오래전부터 담고 있는 미술 내부의 문제로 들어와 그것의 의미론을 묻는 작업에 집중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이며 미술이 생산하는 이미지가 담고 있는 의미론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논버벌(nonverbal) 커뮤니케이션에 개입하는 버벌(verbal) 커뮤니케이션이 될 위험을 내포한 텍스트의 개입은 그의 작업에서 아슬아슬한 지점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자체로 가능한 미술을 논비주얼(non-visual)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이해내는 위험을 자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개념미술이나 오늘날 장르별 융합 혹은 통섭(consilience)의 전략도 아닌 상황에서 그의 작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김준형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로 전승되는 기독교 시원(始原)으로부터 유래하는 모든 메시지를 미술이라는 그릇에 담아 세계를 정화(淨化)시키는 작업을 펼친다. 그것은 역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일련의 'reverse...'라는 제명의 그의 시리즈 작품에서 드러나는 세계와 결부한다.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보스(Hie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을 패러디하여 이미지를 성경의 텍스트로 치환해낸 작품〈reverse course〉은 야훼라는 절대자의 메시지로 정화의 작업을 벌인다. 그것은 원죄 이전의 인간을 지향하는 본질적 쾌락주의의 메시지로, 원죄의 업보를 인간의 의무를 받아들인 금욕주의의 메시지 등으로, 해석이 분분한 보스의 작품을 ‘이미지화된 성경 텍스트’의 내러티브로 재해석해낸 것이라 할 것이다. ‘이미지화된 성경 텍스트’란 무엇인가? 그것은 김준형에게 작품 창작을 전개해 나가는 출발점이자 해석의 지평을 넓히는 상징적인 그 무엇이 된다. 그것은, 현재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이미지를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성경 텍스트로 대체한〈reverse culture〉라는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이 곱씹어야 할 세상에 대한 야훼의 경고이자 의미론이기도 하다.
김준형,〈reverse course〉
동음이의어로 구성된 그의 또 다른 작품명인 ‘닮다/담다’ 또한 야훼가 들려주는 메시지에 관한 의미론을 간결하게 함축한다. 야훼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라는 그릇이 ‘담는’ 메시지는 야훼의 말씀이어야 함을 말이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이미지란 야훼의 형상을 ‘닮은’ 것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텍스트를 빼곡하게 써놓아 텍스트를 아예 막막한 추상회화의 이미지로 만들어버린 작품 〈닮다/담다〉는 이러한 의미론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텍스트 간격 사이로 언듯언듯 비추는 알 수 없는 모호한 이미지들은 텍스트 여백을 만드는 방식으로 ‘물고기 이미지’를 형상화한 또 다른 작품으로 구체화된다. 여기서 물고기 이미지는 그의 작품에 나타난 ‘이미지화된 성경 텍스트’란 주제의식을 실천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핍박받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상징이 바로 ‘물고기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김준형 작,
김준형 작
김준형,〈닮다/담다〉
커다란 캔버스 위에 0.1mm의 얇은 유성펜으로 최대한 작은 글씨로 텍스트를 강독하듯이 써내려가고 있는 그의 작품은 기도, 명상과 같은 ‘영성 훈련’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지/텍스트의 연결고리를 바지런히 탐색하는 그의 작품은 성서라는 실제의 ‘언어적 텍스트’에 집중함으로써 ‘언어적 메시지’에 일정부분 강박증적 태도를 드러낸다. 이미지에 나타나는 무의미 자체를 거부하고 모든 이미지 자체에 의미의 덧씌우기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독교적 신앙을 미술로 실천하는 그의 작업은 종교의 문제를 떠나서 다수의 관객들에게 경건주의 메시지로 미술의 풍부한 언어를 지나치게 답답하게 만들 수 있다. 작가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비주얼아트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근본적으로 논버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일이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긴밀한 관계를 탐구하는 그의 미술이 정작 언어적 메시지로만 귀결하게 되는 답답한 자기모순(自己矛盾)의 세계에 빠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출전 /
김성호,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서 모색하는 의미론”, (김준형 작가론), 평론 매칭 프로그램,『2012 수원신진작가 발굴전-하마하마(2012. 10. ~10. 15, 수원미술전시관)』, 전시카탈로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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