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3. 모더니즘
'모던‘은 ‘가운데서 들려오는 소리’(vox media)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그것은 방금(modo) 생겨난 무엇을 의미하며, 그로서 현재성을 획득한다. 모더니즘은 동시대성을 강조했다. 모더니즘을 주장한 보들레르에게 그러했듯이, 당시 세계의 수도 파리는 동시대성이라는 주제의 발상지였다. 예술가들이 모여들곤 하던 대로로 트인 파리의 카페들은 보들레르가 권한 ‘근대적인 삶’의 장소를 제공했다. 동시대성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는 모더니즘의 뿌리가 된다. 린다 노클린은 리얼리즘과 동시대성에 대한 요구는 리얼리스트가 아니라 낭만주의자들이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요구와 함께 나타난 예술의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요구는 지금까지 그림으로 표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주제에 새롭게 눈을 뜨게 했다. 화가들은 동시대성의 맥락에서 평범한 일상을 기념비적 스케일로 재현한다. 뿐만 아니라 기법과 매체를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도 인식했다.
가령 꾸르베의 자화상을 보면 그가 속한 유파인 사실주의와 다르게 매우 낭만적인 보헤미안의 모습으로 표현되며, 하찮은 일상을 기념비(역사적)적인 차원으로 고양시켰고, 후기에는 화면의 평면성과 조응하는 표면의 질감과 재현 간의 미묘한 균형을 쟁취하기도 한다. 장남준은 [독일낭만주의 연구]에서 상상력의 절대자유에 대한 요청은 계몽주의에 의해 성취된 개인의 자립적인 노력을 토대로 하였을 때 비로소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낭만주의는 자아의 절대성을 강조하면서 예술도 예술가의 순수 본질적인 자아의 표출이며, 예술 활동은 절대자아가 세계 창조 작업을 하는 상징이 되었다. 낭만주의 예술의 형식과 내용은 절대적 내면성으로 규정된다. 보들레르에 의하면 진정한 작품은 철저하게 생성의 순간에 사로잡혀 있다. 모더니즘은 현대적인 도시의 초라한 모습 속에 담겨있는 시적인 가능성을 살린 보들레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또한 ‘남루한 현실주의적인 것을 환상적인 것과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엘리어트)이다. 보들레르는 현대적 삶과 유행과 예술을 통해 순간적인 것 속에 영원한 것이 존재함을 알았다. 보들레르에 의하면 현대는 ‘덧없는 것, 사라지는 것, 우연적인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반을 차지하며, 다른 반쪽은 영원한 것,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과 영원의 이와 같은 직접적 교류를 통해서 현대는 비록 과도기적 성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지만, 비루한 평범함은 떨쳐버린다. 보들레르가 말한 ‘하찮은 삶’이 현대성 전체를 만든다. 모더니스트들은 현재적 삶의 잠정적이고 덧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보들레르는 ‘모든 독창성은 시간이 우리의 감수성에 찍어 놓은 인장에서 기원한다’고 말하였다. 보들레르는 현대적 삶과 유행과 예술을 통해 순간적인 것 속에 영원한 것이 존재함을 알았다. 마샬 버만에 의하면 모더니즘에 내재된 이러한 이중성에서 덧없는 면모가 더 강조 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국면이 전개되었다.
본격 모더니즘에서 영원성, 즉 고전적 측면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후기 인상주의나 19세기 말 상징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근대의 ‘덧없음’을 견제하려는 근대예술가들의 언급--‘인상주의를 견고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 세잔의 예가 있듯이—은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고전성은 이전시대처럼 신화 및 종교적 서사 에 미술을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정 지어진 전체로서의 자율적 언어를 강조하는 면모를 말한다. 그러나 모더니즘에서 언어를 순화시켜 자율적 존재로 만들려는 노력은 ‘언어의 감옥’(프레드릭 제임슨)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언어의 자율성이 형식화되는 국면은 계몽의 역설과 비교될 수 있다. 계몽은 중세적 무지와 맹목에서의 해방이자 또 다른 족쇄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형식화와 코드화로의 점진적 변모는 모더니즘과 모더니티에 공통적이다. 자율과 종속이란 실로 동전의 앞뒷면의 관계이다.
20세기의 모더니티는 ‘제국주의, 혁명과 전쟁의 시대’(르페브르)로 요약된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모더니즘 역시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20세기 초부터 절정기를 누리고 있었다. 모더니티가 역사주의적이고 직선적인 시간관을 바탕으로 한다면, 모더니즘은 더 이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확신 없이 순간적이고 심미적인 삶과 예술에 몰두한다. 모더니즘은 모더니티가 강조하는 진보와 혁명을 미술 언어 내부로 한정지었다. 모더니즘은 예술적 완벽함의 모델을 과거와 같이 신, 신-인간, 자연 및 그것을 재현하는 신화와 전설, 종교가 아니라, 예술 자체에 둔다. 그것은 실로 동어반복적인 것인데, 실제와 언어와의 연관성이 아직 있었던 발생기의 모더니즘에서 이 동어반복은 어느 정도 창조적일 수 있었다. 마네의 작품이 모더니즘인 것은 회화 자체의 본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마네는 회화의 주제 보다는 기법에, 소묘보다는 채색을 강조했다. 그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시키면서 중간 톤을 없앴다.
강조된 평면성은 조형적 대상을 관객의 시선 바로 앞까지 끌어당기면서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보다 생생한 효과를 준다. 검정색이나 갈색같은 칙칙한 색을 없애고 팔렛트나 화폭이 아니라 눈에서 색이 섞이도록 한다. 색채들은 분할된 상태로 병렬된다. 빛을 일곱 가지 기본요소로 해체하여 화폭에 재구성함으로서 빛과 색채의 진동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네의 화폭은 대상이 자리하는 대기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릴 수 있도록 한다. 버나드 덴버는 [가까이에서 본 인상주의 미술가]에서 ‘그림의 세부에 대해 말하자면 어느 하나 고정된 것이 없다...마치 끊임없이 변하는 반사광 때문에 늘 다르게 보이면서도 운동감, 빛, 생명으로 늘 고동치는 재현된 대상이 그러하듯이...’라는 말라르메의 말을 인용한다. 화가들은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와 대면하려 한다. 그러나 주제에서 형식으로의 이동은 곧 예술 언어의 인공성에 보다 주목하게 했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보들레르가 현대적인 것에 대한 취미와 또 그것의 비밀을 푸는 열쇄는 바로 추상과 예술, 그리고 인공적인 것 속에서였다. 보들레르는 자연과 자연주의 그리고 18세기의 낙관적인 철학과 인연을 끊고자 한다. 보들레르는 반(反)자연을 말하자면 주어지거나 외적인 어떠한 것도 모사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순수한 인공성과 동일해지는 순수한 창조성의 예술을 선택하였다. 보들레르의 전망은 표상과 환상을 사용하여 참을 수 없는 현실 세계 속에서 총체적인(이상화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에 있다. 보들레르로 대변되는 모더니즘과 다르게 마르크스로 대변되는 모더니티는 현대세계를 정치적으로 생각하여, 총체적 실천이라는 관념에 의존한다. 모더니즘이 총체성을 언어에 한정지을 때, 언어는 곧 해체된다. 현대예술은 개성적인 것과 흥미로운 것, 새롭고 진기한 것, 그리고 기발한 것을 부단히 추구하면서도 여전히 충족되지 않은 동경을 지닌다. 예술 언어에 대한 관심은 형식주의를 촉발시켰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다소간 이전 시대의 신학을 미학적으로 계승한 유미주의는 20세기에 와서 유사 과학적인 개념인 형식주의로 탈바꿈한다. 20세기 초의 미학자 클라이브 벨은 ‘의미 있는 형식(significant form)’ 이론을 통해 형식주의를 정립했다. 주관적 연상이나 객관적인 기능이 아니라, 오로지 대상이 갖는 순수 형태야말로 아름다움의 요소이다. ‘인간적인 관심사를 차단시키고 동시에 우리의 열망과 기억을 억제’시킴으로서 이룩된 형식주의의 지평은 그린버그까지 이어진다. 그린버그는 스스로의 목적이 될 수 있는 사물에 대에 관심을 쏟으면서, 예술작품을 올바르게 수용하기 위해서 삶으로부터 어떠한 것이라도 차용하지 말자고 말한다. 그린버그는 자기 반영적 형식주의(self-referring formalism)를 옹호한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미학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것은 오직 매체의 명령--그림 면의 평면화와 순수한 채색—이다.
그는 자신의 논문 [Modernist Painting]에서 칸트와 더불어 비롯된 자기 비판적인 태도의 심화와 과장이 바로 모더니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개별 장르는 ‘순수한’ 존재로서 정립될 수 있었고 그 순수성을 통하여 자율성과 함께 질적 수준까지도 보장받게 되었다. 회화매체를 형성하는 여러 조건들, 즉 평평한 화면이나 캔버스의 형태, 그리고 물감의 성질이 만들어내는 평면성이라는 요소는 회화예술에 있어서 유일한 특징이다. 무엇이 그 그림 속에 있는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것이 한 장의 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단지 한 장의 그림은 평면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알렌 보네스는 [모던 유럽아트]에서 마네, 모네, 그리고 세잔은 모두 그림에서 공간적인 깊이 감을 피하고 평평하게 보이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림이란 본질적으로 평평한 표면이라고 생각했으며, 후에는 일정한 질서에 의해 배열된 색들로 덮인 표면이라고 정의한다. 빛을 머금은 색을 평면적으로 명암 없이 칠해 동시대 화가들이 모색하던 표면과 공간의 조화를 이룩한 마티스는 ‘내 그림의 전체적인 배열이 표현적이다. 구성은 화가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음껏 장식적으로 여러 요소들을 배열하는 기술이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앨런 보네스는 세잔에게 선 원근법은 뒤로 향하는 모든 선들을 소실점에서 모이게 하고 그림의 공간을 깔대기 형태로 취급하는 기법에 불과했다. 세잔에게는 이것이 그림에 구멍을 내는 일과 같았다. 그는 대안으로 베네치아 식 색조 체계를 선호했는데, 그것은 그림을 얕은 상자처럼 다루어서 화면 뒤로 공간을 몇 겹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세잔은 입체감을 주기 위한 모델링의 관행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세잔은 색채 가감 방식, 즉 옅은 농도의 물감들을 캔버스에 직접 나란히 칠해 색채와 색조의 차이를 통해서 3차원적 감각을 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나는 오로지 색을 가지고 원근법을 표현하려 했다’(세잔) 여기에서 회화는 대상과의 닮음이 아니라, 화면 내에서의 형태와 패턴간의 관계가 중요해지며, 이를 위해 실제의 대상은 화면의 질서를 위해 조금씩 왜곡되었다. 앨런 보네스에 의하면 세잔에게는 3차원 세계를 평면의 사각형이라는 그림의 용어로 번역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였다.
세잔의 작품 [생트 빅투아르 산]에서는 모델링, 드로잉, 색조, 색채, 그리고 구도를 구분해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에게 그림은 색깔 있는 붓자국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캔버스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공통 기준이 되었다. 자연적 현상이 회화적 실체로 이행하기 위해 공간은 시간을 통해서 파악되어야 했고 관찰자의 변화하는 의식을 고려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세잔은 ‘모든 감각의 강렬한 표현들을 압축해 하나의 유일한 과정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고갱)했다는 기대와 평가를 받았다. 큐비즘은 세잔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존 골딩은 [큐비즘]에서 입체파가 세잔에 대해 매력을 느꼈던 첫 번째의 것은, 세잔의 그림의 대상들이 환각적 방법의 모든 전통적 체제를 무시하면서도 고체성에 대한 놀라운 감각을 전달한다는 사실, 즉 세잔의 물 항아리, 대접 그리고 사과들은 거의 손으로 만져보는 듯 입체감이 나면서도 현저하게 그려져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그것들은 거의 한 결 같이 대단히 왜곡되고 추상화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세잔은 자기 그림에서 고체성과 구조의 감각을 성취하려 했으며, 브라크는 세잔의 구성방법과 불일치를 자신의 원근 사용법에 투입시켰다. 건물, 암석, 나무들은 서로 뒤에 연이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위에 포개지고 그래서 그것들은 대개 캔버스의 윗부분에까지 닿아서 시선이 그 너머의 무한대 공간으로 달아날 수 없게 되었다. 인물을 포함한 모든 것이 잘게 분할된 각진 면(facet)들로 처리되었다. 브라크에게 파편화란 ‘나는 파편화를 통해서 공간 안에서 공간과 움직임을 설정할 수 있는데, 공간을 창조하고 나서야 거기에 사물들을 하나씩 집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브라크는 ‘자연에는 촉감적인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을 나는 수공적(manual) 공간이라고 묘사하고 싶다. 입체파를 이끌어나간 원리는 내가 느꼈던 새로운 공간을 실체화(표현)하는 것 이었다’고 말했다. 앨런 보네스는 브라크의 그림에서 중요한 특질은 공간을 다루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화면 공간을 원한 브라크에게 색의 기능은 이제 묘사적인 것이 아니라, 구축적인 것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큐비즘의 조형 혁명은 공간에 대한 브라크의 관심과 형태에 대한 피카소의 관심이 합쳐진 결과였다. 브라크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그림을 시각적으로 만져보게끔 하기 위하여 관찰자를 향하여 앞쪽으로 이 공간을 전진시켰다. 존 골딩은 입체파가 환각적인 공간을 버림으로서 그림에서의 대상과 그 주변의 공간은 그림의 표면을 향해 앞으로 전개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큐비즘의 실험성은 그것이 새로운 종류의 실재(reality)를 생산한 것에 있다. 큐비즘은 독창적이고 반자연주의적인 종류의 구상성(figuration)을 전개하여, 추상과 재현 사이의 인공적인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렇게 주제로부터 탈피하고 촉각적인 회화공간을 구축 한 근대회화는 관객과 화폭을 더욱 가깝게 했다.
4. 근대적 자율성의 명과 암
화면의 평면성을 향한 진화의 여정으로 미술사를 다시 보는 그린버그에 의하면, 화면은 그자체가 깊이의 효과를 내는 가상의(fictive) 면들이 실제 캔버스의 표면인 실재적이고 물질적인 평면 위에서 하나로 만날 때까지 그것들을 평평하게 만들고 압박하는 가운데 점점 얇아진다고 한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대상물들이 양감을 유지하려고 애쓸 때 불안한 긴장이 발생한다. 보다 진전된 단계에서 사실적인 공간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표면과 평행하게 전면으로 나오는 평평한 면들이 된다. 이 면들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투명하다. 그린버그가 강조하는 것은 매체의 불투명성(opacity)이다.
한 예술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그 매체의 불투명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꼴라주를 비롯한 입체파의 공간 혁명은 사실주의적(realistic) 환영이 아니라 시각적인(optical) 환영이며, 이것은 화면의 불투명성을 강조한다. 여전히 미술은 보여주는 기술이지만, 투명한 창이나 거울로서는 아니다. 그린버그는 미술이 독립적인 직업, 원리, 기술로서의 예술,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닌 절대적으로 자율적인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예술은 보편적으로 이념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의 요소들을 훨씬 더 직접적인 감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매체의 표현능력을 확대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예술의 자율성은 동시에 예술의 위기를 초래한다. 기호는 자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호의 의미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며, 삶과의 대화에 의해 의미가 획득될 뿐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자율성은 모든 분야의 분업화라는 모더니티의 결과물이었다. 예술(Art) 자체가 근대에 와서 확립된 것이다. 자율성은 해방이자 소외의 과정이었다. 예술 특유의 고립과 소외는 새로움과 저항의 에너지가 되었다. 아도르노를 비롯한 모더니즘 옹호자는 예술은 자율성을 통해 오히려 사회적일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예술과 삶의 거리를 통해서만이 실천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아도르노는 창조적이고 소외되지 않은 노동으로서의 예술은 그 고유의 자율성 속에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고 보지만, 분업화 사회가 분업의 결과물을 동등한 가치로 교환하지 않은 한 예술이 소외되지 않는 노동이라는 사실은 자명하지 않다. 예술 또한 상업주의의 추상적인 교환가치에 끼어들어 물신화를 재생산하면서 소수의 성공한 작가들을 낳지만, 이는 동시에 절대적 다수의 소외를 말한다. 테리 이글턴에 의하면 모더니스트들은 신비로운 자기 목적적인 대상이 되기 위해 자기만의 언어로 주위에 방어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것은 상품의 또 다른 이면인 물신화를 재생산함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의 자율성을 통해 통속적인 공리주의나 상품화, 무미건조한 노동에 대한 저항하기도 했지만, 예술의 자율성은 예술가들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워야 함을 전제로 한다. 자신이 만든 것을 팔 수 없다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은 예술가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근대 예술의 추상적인 자율성은 근대 관료제도에 의해 포위되어, 예술은 ‘관리하는 사람과 관리되어지는 사람으로 양분’(수지 개블릭)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수지 개블릭은 [모더니즘은 실패했는가]에서 문화는 점점 더 전문적인 마케팅, 법인경영, 홍보기술에 의해 통제되어 전해지고 관리된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소비되는 충격이 생겨나며, 제도의 보호를 받는 미학, 가령 ‘모든 것이 미술이 된다’는 식의 개념이 생겨났다. 화면 외에 모든 주제를 제거하려던 모더니즘은 개념미술에서 보여지 듯 온통 잡다한 주제들로 가득 찬 예술이 되었다. 제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작가가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역설이다.
출전; 2013 아르코 신진작가 워크숍 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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