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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비엔나의 중심에서 북한을 만나다

루카 파치오

비엔나의 중심에서 북한을 만나다

_주요전시 '공동구역' 그리고 '전환의 장소들'



클림트와 에곤 쉴레로 유명한 곳,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1900년대 초기 근대화가 시작되던 당시 아르누보의 중심지로 파리보다 더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자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버린 지역적 위치 때문일까, 현대미술의 맥락에서는 비중이 작게 느껴지던 비엔나의 미술현장도 지난 십여 년 간 인터넷 붐을 타고 꿈틀거리며 변화하고 있다. 현재 비엔나에서 진행 중인 두 가지 주요 전시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감지해 보자.


현재 비엔나 퀸스틀러하우스(Künstlerhaus) 미술관에서는 색다른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북한과 남한을 방문해 사진작업을 하는 이태리 태생 작가 루카 파치오(Luca Faccio)의 전시, 'Common Ground (공동구역)'이다. 실제 그는 7차례 이상 외국인 사진기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본 프로젝트를 병행하였다. 


Common Ground © Luca Faccio


“한 사람이 살고 있는 국가의 정치적 틀이 무엇인가와 상관없이,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사람들은 농담 따먹기도 하고, 슬프거나 힘들어하기도 하고, 그저 앉아서 내일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더군요. 정치적 색채를 다 덜어내고 온전히 일반인 개개인의 표정에 주목했을 때, 그 때 발견할 수 있는 전인류적 공통점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루카 파치오)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본 전시는, 이러한 컨셉에 따라 ‘병렬구조’로 기획되었다. 티셔츠를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집 소파에 앉아있는 할머니. 컨텍스트가 제거된 상태에서 그들의 표정만 보면, 어느 사람이 북한 사람이고 남한 사람인지의 구별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 


“전시를 통해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닌,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누구나 다 똑 같은 사람 아닌가요. 기아에 허덕이는 극악의 이미지도, 미화된 선전용 이미지도 아닌,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휴머니즘에 기반한 이미지를 전시하고 싶었습니다.” (루카 파치오)


또 다른 전시는 현재 비엔나 미술계에서 가장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 받고 있는 큐레이터 듀오, 월터 사이들(Walter Seidl)과  귤센 발(Gülsen Bal)의 전시, 'Places of Transition (전환의 장소들)'. 무제움크봐르티어(Museums Quartier)의 실험공간 quartier21 에서 진행중인 본 전시는 무제움크봐르티어 레지던시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기획전이다. 비엔나 현대미술관(MuMOK), 레오폴드미술관과 함께 오스트리아 최대의 미술관 단지를 구성하고 있는 무제움크봐르티어의 외벽에는 현재 전시 참여작가 중 리비아 카스트로(Libia Castro)와 올라퍼 올라프슨(Olafur Olafsson) 듀오의 네온작품 <Dein Land existiert nicht(당신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푸른 빛으로 점등되어 있다. 


'Dein Land existiert nicht' (c) Libia Castro & Olafur Olafsson


“최근 아랍권 국가들의 연이은 민주화 운동과 같이 정치적 변화에 대한 인류의 갈망은 점차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보통 정치적 변화에 대한 요구는 진보적 성향이 짙기 때문에, 보수적인 미술관들에서는 이에 관련한 작가나 작업을 잘 다루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죠.” (월터 사이들) 


이런 면에서 무제움크봐르티어의 quartier21라는 공간은 다분히 의식적이며 유의미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 동유럽과 서유럽의 접점에 위치한 게이트이자 허브 역할을 하는 지역적 특성을 가져왔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 아픈 근현대사를 겪으며 동구권은 선진국이 포진한 서구에 비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많이 뒤처졌으나, 오히려 작가들의 사회참여적 작가인식은 서구 못지 않게 심도 깊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성숙해 왔다. 최근 들어 비엔나는 지리적 근접성이 가져다 주는 원활환 네트워크를 활용해 서구 미술계 및 세계시장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동구권 현대미술을 알리고 교류를 촉진하는 매개지역으로서 부상하고 있다. 사치콜렉션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큐레이터에 선정되기도 했던 귤센 발은 기획의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금번 전시에서는 특히, 서구와 동구 간의 전통적 장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전환의 장소들’은 물리적인 공간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공간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든 ‘가능한 미래들’에 대한 고민을 수반할 수 밖에 없죠. 이 생각은 ‘우리에게 미래는 더 이상 익숙하지 않다’는 명제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금번 소개한 반정치 혹은 탈정치적 메시지의 두 전시 모두, 역설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전통적인 정치 중립성과 연관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인터넷,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물리적 “국경” 즉 경계가 모호해지고 정보의 전방위적 흐름이 자연스러워진 지금. 비엔나는 지리적 강점과 전통적 예술 인프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여 발 빠르게 생동하며, 근대미술과 전통의 무거운 그림자를 벗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현대미술의 근원적 정의에 가장 가까운 통섭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루카 파치오(Luca Faccio, 1973- ) 이탈리아 태생, 오스트리아 거주. 비엔나미술대학(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졸업.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중국, 북한 등지 저널리즘 및 작품활동. 비엔나 쿤스트할레 'Image Transfers', 비엔나 퀸스틀러하우스 'Zeit Zeuge', 'Dhaka retourn', 비엔나 MUSA 'Fairplay' 등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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