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카탈로그 서문(long version)_최용대_La forêt전〕
회색 숲에서 발원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 (1편)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Art critic)
I. 화두
작가 최용대가 1992년 첫 개인전 이래 회화, 오브제, 설치의 조형언어를 통해 시(詩), 꿈, 자연, 인간과 관련한 주제들을 탐구하는 가운데 부단히 모색하고자 했던 작업의 근본적인 화두(話頭)는 무엇일까?
“나에게 있어 / 그림 그리기란 삶이라는 실존(實存)과 / 죽음이라는 삶의 부재(不在) 사이를 / 이어주는 이음줄에 다름 아니다. / 하여 / 내 모든 그림은 /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들이다.” 1)
그가 6년간의 프랑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 가진 개인전 카탈로그에서 언급한 상기의 작가노트는 2014년에 이른 오늘날까지도 그에게 하나의 화두처럼 간주되는 텍스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구상, 추상의 시기를 거쳐 일련의 숲 시리즈에 이르는 최근의 전시에 이르기까지 상기의 텍스트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는 실존과 부재가 그리고 삶과 죽음이 대립하는 ‘사이의 세계’가 정초된다. 그의 표현대로 그것은 ‘이음줄’이자 ‘언어’의 세계이다. 즉 ‘이음줄로서의 언어’의 세계인 것이다. 작가 최용대가 “그림도 일종의 언어”2)라고 생각하거나 “그림이 또 다른 시적 언어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음”3)을 밝히고 있듯이, 그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매개하려는 ‘사이 세계로서의 그림’이란 ‘이음줄로서의 시적 언어’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II. 시적 언어의 세계 (1992-1999)
그가 1985년부터4) 본격적인 화업의 세계에 뛰어들었으니 그의 화업은 2014년에 이른 올해 어느새 30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가 1993년 1월-1998년 12월까지의 프랑스 유학 시기를 거치는 동안 모색했던 창작의 세계는 유학 가기 바로 전 가졌던 1992년의 개인전5)과 유학 후 가졌던 1999년 개인전6)과 연동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유학 기간 앞뒤로 1년씩을 포함한 기간을 그의 창작 세계의 1기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 1기의 시기에는 현실 세계로부터 부유하고 방황하는 20대 특유의 우울한 감성들이 작품 속에 절절히 배어있다. 특히 작품 제목들에서 발견되듯이, 그의 예민한 예술가적 감수성은 시를 녹여낸 그림들 안에서 지속적으로 꿈틀거린다. 〈시인의 침묵(沈黙)〉, 〈절망(絶望)의 시(詩)〉와 같은 제목에서처럼 현실에서 무력한 시(詩)일지라도 당시 그에게는 〈태양을 등진 해바라기〉와 같은 좌절과 곤경의 〈생(生)의 한 가운데〉에서 꿈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에게 '시'로 꿈꾸는 희망이란, 〈우울한 비상(飛翔)의 꿈〉으로 정초되는 것일지라도 언제나〈나의 천사(My angel)〉를 찾는 과정이었기에, 다음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든 근원적 힘이었다:〈얘야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것만은 포기해선 안된단다〉,〈어둠 속에서도 날개는 자라나 끝내는 하늘로 날으리라〉.
한 시인의 타계소식을 접하고 그가 우울하게 읊조린 한 편의 시는 더 이상 시가 없는 세상에 대한 울분과 좌절의 심경을 토로한다. 그는 띄어쓰기를 고의로 방기한 자신의 '시' 속에서 다음처럼 질문한다: '하여 / 남은 그대 / 무엇을 무엇으로 말할 건가.'7) 이렇듯, '피를 토(吐)한들 / 칼로 대항(對抗)한들 몸으로 쓰러진들 / 빌어먹을 놈의 어둠만 한층 짙어지고 / 확연(確然)해질 뿐”8)인 좌절의 세상에서 예술을 하기로 작정했던 20대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예술의 포기? 필경 그는 이 땅의 현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탈주해서 예술을 하고 싶었으리라.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프랑스 유학을 계획하게 되었던 일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게다.
당시 그의 작업은 구체적인 산문적 내러티브가 와해된 표현주의적 필치에 근간한 비구상 혹은 추상 계열의 작품들이었다. 마치 그가 관심을 기울였던 시적 세계처럼 말이다. 화면 안에 갈겨 쓴 텍스트들은 물감으로 이내 뒤덮이면서 읽을 수 없는 것으로 변환된다. 마치 쓰다가 지워버린 '자신만을 위한 내밀한 일기'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텍스트는 〈절망의 시〉라는 제목처럼, 그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할만한 것들로 화면을 점유한다. 흘리고, 겹쳐진 물감 층이 형성시킨 비구상적 화면은 1990년대 한국 화단의 추상미술의 형식적 면모와 얼추 유사한 지형도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 속에서 '시적 회화'라 지칭할만한 자신만의 내밀한 예술세계를 펼쳐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선보이기 된 계기는 그의 유학 기간 동안의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부터 연유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는, 유학 이후 국내에서 가졌던 1999년 그의 개인전에서, 그러한 흔적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유학 기간 동안의 작품을 선별하여 새롭게 준비한 7년만의 개인전에서, 그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주의적 붓질로 토로하던 우울한 감성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성찰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조형적 실험의 세계를 새로이 선보인다. 그것은 여전히 시의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지만, 지나온 세월을 둘러볼 만큼 여유를 가지게 된 장년의 시기를 맞게 된 작가가 도달한 ‘새로운 시’의 세계였다. 그것은 그간의 시어(詩語)로부터 모음과 자음을 분리하고 재배열한 시의 세계라 할 것이다. 그것은 순연(純然)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채 그것의 표현(expression)에만 골몰하던 젊은 날의 치기(稚氣)를 털어낸 후, 내면의 의식을 정제하고 기호의 형식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제시(presentation)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도 표현주의적 비구상 양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응집과 확산의 비정형화된 추상 언어가 기호의 양상으로 대치된 것이었다. 이 시기부터 흑과 백의 대비와 더불어 분할된 화면의 쉐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가 등장하면서 '사이 세계'에 대한 모종의 관심이 비로소 그의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발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작가 최용대의 화두라고 평가했던 상기의 작업노트가 선보인 시기가 1999년이었음을 상기한다면 그의 유학기를 중심으로 두고 있는 1기(1992-1999)의 시절은 '삶과 죽음 사이의 시적 언어'를 탐구하는 시기였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1992년을 중심으로 한 시기의 작품세계를 '배회하는 시적 언어'가 주도했다고 한다면, 1999년을 중심으로 한 작품세계는 '매개하는 이음줄의 시적 언어'가 주도했다고 좀 더 세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III. 사이 세계 (2000~2008)
작가 최용대는 2010년 자신의 작업을 정리한 한 텍스트에서 1999년 이후의 작업기를 “나 자신의 추상적인 내면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한 시기”9)로 정의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그의 2000년 이후의 작업기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말하는 시기’로 규정해볼 수 있겠다. 달리 말해, 2000년 이전은 ‘내면의 감성적 표현의 시기’라고 한다면 2000년 이후는 ‘조형적 실험의 실천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2000년 이전을 ‘표현주의의 시적 감성으로부터 구축주의의 시적 성찰로 변모하는 내면의 과정’을 펼쳐보였던 시기라고 한다면, 2000년 이후를 ‘사이 세계를 매개하는 조형적 실험의 실천’을 구체화했던 시기라고 정의해볼 수 있겠다.
1999년 3회 개인전에서 단초를 보이고, 1999년 4회 개인전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던 조형 실험은 2000년 프랑스에서의 5회 개인전10)에서 ‘사이 세계’에 대한 구체화된 가시적 결과물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그것은 화면 분할의 쉐이프트 캔버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양자를 매개하는 공간으로 개입시킨 검은색(혹은 흰색)의 정방형(혹은 직방형) 캔버스였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올라서 있기도 하고 아예 검은색, 흰색으로만 구성되기도 한 이 캔버스들은 매우 단순해진 자연과 인간의 이미지들 사이에서 ‘사이 세계’를 창출한다.
유심하게 살피면, 이전의 표현주의 언어로 모색되던 자연의 풍경, 기호들은 나뭇잎을 닮은 단순해진 ‘나무’의 형상으로 대치되고, 이전의 표현주의적 형상의 인물이나 해골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단순해진 사람의 ‘손’ 형상으로 대치된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호화된 이미지를 먹이나 안료로 그리기도 했지만, 아예 MDF로 깎아 만들어 부조의 방식으로 화면에 부착시키기도 했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나무(자연)와 손(인간)의 공존을 보다 선명하게 가시화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즉 나무와 손의 형상을 구성적이고 구축적인 방식으로 화면 배치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이미지를 기호화하고 다중의 메시지로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꽃봉오리나 나뭇잎을 닮은 나무와 손의 형상들은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제유(提喩)의 방식으로 비유한 기호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며, 단순해진 형상만큼이나 그것이 함유하는 자연과 인간의 대표성으로서의 메시지는 보다 선명해진다고 할 것이다.
이미지 옆을 빼곡히 메운 텍스트 혹은 한 줄로 올려진 텍스트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보다 더 강화한다. 그것들은 시, 소설, 철학 서적으로부터 발췌된 것들로 한글도 있지만 불어, 영어로 된 것들도 있고, 단어들만 무심히 던져진 채 쓰인 것들도 있어, 가독성을 필수적인 전제로 삼지 않는다. '의미의 읽히기'를 요청하는 텍스트도 있지만, 오히려 ‘의미의 읽히기’를 거부하는 텍스트조차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의 작품 속에 개입하는 일련의 텍스트는 오히려 '이미지'처럼 간주된다. 이미지가 다의성을 지닌 존재라 할 때, 이러한 최용대의 텍스트들은 우리로 하여금 고정화된 단의성으로부터 다의성의 세계에 접어들고 있는 ‘이미지화된 텍스트’로 보게 만든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텍스트조차도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대화의 창’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관객이 제기하는 ‘작품에 대한 의문에 대해 설명하고 대화하는 과정까지를 작업의 완성’11)이라고 간주하지 않던가.
이러한 차원에서, 텍스트들이 뒤섞인 개별의 ‘나무들’ 사이에 개입하는 검은색의 빈 캔버스, 그리고 개별의 ‘손들’ 사이에 개입하는 흰색의 빈 캔버스(의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단절된 말들과 이미지로 인식되는 부분을 이어주고 재생하며 복원시킨다. 작가와 관객과의 실제적 대화가 이루어지는 소통의 차원이 이러한 정방형, 직방형의 비어 있는 캔버스(또는 캔버스 이미지)로부터 발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캔버스들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복원하려는 ‘사이 세계’이자 ‘여백으로서의 대화의 창(窓)’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10년도 설치 작품12)에서 선보인 실제의 나무에 매단 거울들은 이러한 비어있는 캔버스들이 시도하고 있는 소통과 대화로서의 '창'의 개념이 보다 진화한 것이라 하겠다.
주지하듯이, 자연(自然)의 한자적 뜻풀이,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는 자연이 스스로 생성, 소멸, 치유되는 존재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자연이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한계 그 지점에서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13)고 말하는 작가 최용대의 발언은 그런 면에서 오늘날 인간에 의해 타자(他者)화된 자연을 복원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를 공존의 것으로 복원하고자 하는 그의 자연관이 ‘사이 세계’라는 독특한 자신의 작품관을 정초하게 된 것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사이 세계’는 자연/인간 뿐 아니라 이미지/텍스트, 운문/산문, 서양/동양, 평면/설치와 같은 다양한 대립항을 화해시키고 공유하게 만드는 범주로 확산하면서 결과적으로 하나의 범주적 덩어리의 세계인 ‘숲(La forêt)’에 이르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 2000
부재, 김춘수 시화집, 2004, p.85.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시화집, 2004, p.189
제1번비가, 시화집, p.1049, 2004
IV. 숲 : 검거나 흰 (2009~ )
그에게 숲은 나무들이 지은 집이다. 그가 2010년 개인전의 부제로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숲”이라고 표기하고 있듯이 말이다. 숲은 중력에 순응하면서 뿌리를 내린 나무가 중력에 저항하면서 세워 올린 줄기로 열주(列柱)를 이룬 집이다. 그것은 땅에 직립한 채 ‘위로 자라는 나무(木)’라는 개별체의 자연으로부터 땅을 품으며 ‘옆으로 자라는 나무들(林, 森)’이라는 보편적 자연으로 자리 이동한다. ‘옆으로 자라는 나무’, 그것은 숲에 대한 필자의 시(詩)적 은유이다.
특히 작가 최용대가 '숲'을 ‘포레(La foret)’라는 불어로 표기한 것은 발음이 유발하는 쾌적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숲’에다 의미 부여하려는 까닭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서너 그루로 간략히 표상된 숲은 검은색의 안료로 가득 메운 울창한 나뭇잎을 지닌 성하(盛夏)의 것으로 나타나거나 나뭇잎을 떨어뜨린 채 앙상한 가지들을 남긴 성동(盛冬)의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전의 구성적 화면 속 검거나 흰 캔버스가 나무의 형상을 입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숲 연작은 비교적 큰 캔버스의 크기로 인해 장중(莊重)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전 작품의 미니멀하고 구성적인 화면에서 기호처럼 나타나던 나무들이 형상의 옷을 입고 출현한 이 숲의 이미지는 흑백의 대비로 인해 매우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숲이 품고 있는 검정색은 안료의 특성상 매우 질박하고도 선명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검정이란 죽음을 상기시키는 어둠처럼 ‘부재의 색’으로 간주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모든 색을 다 포함하고 있는 ‘존재의 색’이자 모든 존재자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다 수렴하여 꿈틀거리게 만드는 강인한 ‘생명의 색’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이것은 풍경이 아니다. 이것은 실존이다.(It is not landscape, It is existence)'15)라고 단언하고 있지 않던가. 그곳에는 줄기와 잎이, 나무와 나무가, 주체와 타자가, 개별과 보편이 실존의 이름으로 함께 자리한다. 특히 그의 그림은, 피막 처리가 되지 않은 캔버스 천 위에 두텁게 겹칠해 올린 날것의 안료적 속성과 더불어 안료를 최종적으로 고착시킨 투명 미디엄의 매재(媒材)적 속성이 서로 부딪히면서 상이한 것들을 하나로 끌어안게 된다. 양자의 물질이 빛과 어우러져 유영하는 빛의 반영적 효과를 만들어냄으로써 검은색을 하나의 '검정'으로 고착화시키지 않고 다양한 색층으로 변주해내기 때문이다. 안료의 입자들이 으깨지고 비벼지면서 캔버스 위에 여러 겹으로 올라선 까닭에 빛의 반사 각도에 따라 검은 숲은 때로는 투명한 검정으로, 때로는 불투명한 검정으로, 때로는 푸른빛의 검정으로, 때로는 회색빛으로 때로는 은빛으로 변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검은 숲은 2012년 개인전16)으로부터 다른 변모를 시도한다. ‘검은 숲’으로부터 ‘회색 숲’으로의 변모가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검정색의 안료로만 그렸던 그의 회화에 흰색의 아크릴 물감을 개입시키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검정색 안료와 흰색 아크릴물감의 이질적 물질감이 상호작용하면서 창출하는 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양자가 뒤섞이면서 만들어 내는 회색의 바탕면은 신비로운 마술적 효과를 창출한다. 그것은 ‘검거나 흰 세계’를 만들어 낸다. 순식간에 창조되는 그 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안개가 뿌옇게 드리워진 풍경 또는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의 풍경 혹은 반대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의 풍경으로 인식하게 만들기에 족하다. 이와 대비되게, 미묘한 회색톤 위에 올라선 나무는, 이전 작품들에서 드러났던 무수한 나뭇가지들이 사라진 채, 그저 검은색 안료를 수직 방향으로 그은 한 줄기의 표식으로 보다 더 단순화된다. 이러한 나무들이 하나둘 여러 줄기로 화면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숲을 형상화하게 되는 것이다.
전시 전경, 갤러리 그림손, 2010
La Forêt 숲, 2009, Pigment on Canvas,145.5x112Cm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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