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카탈로그 서문〕이민정 개인전
'미확정의 얼룩들'에게 말을 거는 회화
김성호(미술평론가)
이민정의 작업에서 우리는 '말하는 얼룩들'을 발견한다. 먹, 아크릴 혹은 수채물감이 종이 위로 번지거나 배면 뒤로 침투하면서 발현되는 얼룩들은 작가에게 긁혀지거나 덧칠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놓는다. 사실 그것은 얼룩 자체로부터 발화(發話)되는 이야기이라기보다는 얼룩으로 표상되는 사물에 감정이입하면서 '말 걸기'를 시도하는 작가 이민정으로부터 창출된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이민정이 얼룩들로부터 발견하는(혹은 읽어내는) '상상의 이미지-내러티브'라 할 만하다.
그런데 얼룩이 가득한 자신의 회화 속에서 일련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발화시키는 주체는 분명코 작가 이민정임에도 그녀는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건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왜 그럴까? 이민정 회화에서 얼룩들이란 그녀가 형상에 관한 어떠한 목적적 지향점도 배제한 채 '순수한 직관'으로 빈 화폭과 대면하면서 창출해낸 우연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즉흥과 우연의 결과물인 얼룩들로부터 특정한 형상을 발견하고 회화의 표정을 만들어가는 일은 그녀의 피조물인 얼룩들이 말하길 기다리는 것으로부터 구체화된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회화란 미확정의 형상들이 품은 푸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소망을 성취해주는 과정으로부터 완성되어 간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녀에게서 '회화에게 말 걸기'란 이러한 '회화로부터 말 듣기'의 과정을 전제로 한 '대화로서의 창작'을 의미함에 다름 아니다.
너에게로..
우연으로 짓는 회화, 시로 읽는 회화
그녀의 '대화로서의 창작'이란 적어도 두 가지 의미항으로 연결된다. 하나는 '창작의 과정에서의 회화하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전시의 과정으로서의 그것'이다. 피상적으로 전자는 작품과 대면하는 창작자로서의 몰입의 대화를 의미하며, 후자는 관객과 대면하는 전시자로서의 배려의 대화를 의미한다. 풀어 말하면 '우연성에 근간한 창작'과 '시로 풀이하는 해석'으로 대별될 수 있겠다.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전자의 창작자로서의 입장에서는 '우연성의 창작'과 '시로 풀이하는 해석', 즉 이미지와 텍스트가 한 몸처럼 작동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다음의 작가노트에서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대화
'예리한 도구로 긁은 상흔들의 비장함. / 그 속에는 수없이 많은 우연들이 형태를 품고 있다. 형태들은 시어가 되어 서로 상관하며 스스로 시가 된다.' (2013. 5. 4.)
어렴풋한 작업의 방향성만 설정한 채, 빈 화면 위에서 펼쳐내는 즉발적 드로잉과 페인팅은 통제받지 않은 물감들의 상호 침투와 우연적으로 자리하는 형상들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용인한다. 그것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후속의 붓질을 이끌어 내면서 그녀의 작품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로부터 연상되는 정제되지 않은 시어(詩語)의 출현은 그녀로 하여금 '신비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자신을 작품을 창작의 순간적 과정에 충실한 '시적 이미지'로 정초시키기에 이른다. 우연의 마블링효과가 연상시키는 형상에의 유추는 그녀로 하여금 어떠한 형태를 구축하기 위한 가필을 시도하게 하는데, 이 순간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어진다. 우연의 효과가 이끌고 있는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연상되는 형태를 암시적으로 드러내도록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작가의 말대로 '형태는 은폐되지만 의미는 은유'되어지는 상태를 그녀가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적 이미지는 '읽을 수 있는 자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전시자로서 관객에 대한 배려를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다만, '우연으로 짓는 회화'라는 우리의 작명처럼 그녀의 우연성의 시적 이미지 안에서 발현되는 '시로 읽어주는 회화'라는 독특한 특성은 그녀의 작품을 정초시키는 주요한 특장이면서도 하나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풍부한 이미지에 관한 독해의 여러 가능성을 시어로 결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는 그녀의 작품에서 훌륭한 길 안내자임과 동시에 관객들의 자유로운 그림 읽기를 방해하는 변사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우려는 그녀의 시어적 개입이 언제나 해석의 미확정성을 전제한다는 차원에서 이내 불식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의 유영.종이위에 먹,수채,아크릴,컬러펜162×130cm2012
'추락하는 날개'로부터 찾는 데페이즈망의 시어들
그녀의 풍부한 감정의 시어들이 녹아있는 시적 이미지는 해석의 미확정성을 강화하거나 나아가 심지어 독해 불가의 차원이 노정될 때 더욱 빛난다. 그것은 바다에 번져가는 석양의 빛처럼 혹은 물잔 속에 퍼져가는 커피 알갱이의 분산처럼 일련의 슬픔 혹은 기쁨의 심정적 차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그것은 작가가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뜨거운 '한풀이의 심연'이자 자신의 모습을 추스르는 차가운 '거울의 심연'임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손짓하는 따사로운 '교감의 심연'으로 자신의 회화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이민정이 직관을 통해 벌이는 '우연의 사건들'로부터 만들어진 회화적 심연은 우리에게 '의미의 미확정성'과 더불어 그녀가 투여했던 슬픔 혹은 기쁨의 감성을 전이시킨다.
작가가 이미지의 덩어리에 흩뿌려 넣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의 시어들은 이러한 감성 전이를 가능케 하는 전령이다. 데페이즈망의 이미지들이 일상적인 관계에 있는 사물을 추방하여 낯선 장소에 불러들임으로써 초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하듯이, 그녀의 데페이즈망의 시어들은 '연계되지 않은 것들의 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주선하면서 일련의 초현실적 내러티브를 구현한다. 예를 들어 '파란+개, 미끄러지는+날개, 땅에+매인+달'과 같은 현실계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그녀의 시어적 조합은 회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작품 〈일상 속의 선들의 질주〉는 즉발적인 드로잉들이 우연성에 몸을 의탁한 채 종이 위에 수채, 먹, 아크릴, 컬러펜 등 다양한 재료들을 통해서 만들어낸 추상 이미지이다. 여기에는 보는 이에 따라 날개짓하는 새 한 마리, 흩날리는 깃털,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과 같은 형상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것이 연동시키는 관객 저마다의 초현실주의적 내러티브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속의 선들의 질주.종이위에 수채,먹,아크릴,컬러펜162×130cm2012
한편 작품 〈이곳에서.....태어나다〉에서 우리는 빨간 꽃으로부터 떠오르는 새의 형상으로 된 검은 옷의 아기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작품에서 〈자화상 2013〉에서는 한 여인의 옆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기실 여러 물감층이 만든 마블링 효과 혹은 어지럽게 중첩된 선묘들의 혼돈 속에서 작가 이민정이 간략한 가필을 통해서 건져 올린 이미지들이다. 마치 우연으로부터 필연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의 삶의 한 양태를 은유하는 이러한 식의 만남의 현상학은 그녀의 또 다른 초현실적 데페이즈망의 내러티브-이미지들 속에 무수히 내포되어 있다.
이곳에서...태어나다.종이위에 수채,먹,아크릴,깃털50×41cm2013
이러한 데페이즈망의 이미지들을 긴장감 있게 만드는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는 이민정의 작업에서 캔버스천 뒤로 숨는 지지대의 역할로부터 탈주하면서 데페이즈망-이미지 덩어리 내부로 편입해 들어온다. 이것은 그녀의 작품에서 '비어있는 틀'의 위상을 견지하면서도 지지대이자 데페이즈망의 이미지들을 통일시켜내는 주요한 조형 요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한편, 그녀의 데페이즈망의 이미지들에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읊조리는 바하만(Ingeborg Bachmann)의 시구처럼 결과적 이미지에 대한 근원적 모습에의 탐구가 엿보인다. 즉 추락하는 모든 것들에는 추락이 실행될 만큼의 높은 곳으로의 이동을 가능케 한 날개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결국 추락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날개였다는 바하만식 아이러니는 역설과 대립의 언어들이 병치되는 이민정의 시적 이미지에서 쉽사리 발견된다.
물감층들의 밀침과 당김이 오버랩되고 뒤엉킨 실타래 같은 선묘 드로잉이 부대끼고 있는 작품〈자화상 2012〉에서 엿보이는 혼돈의 세계에 직립한 채 '나에게 자유라고는 없었다.'고 외치는 작가의 자조는 분명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 잠재태의 공간에 가두어진 날개에 대한 희망은 끝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은 작품 〈허무에 나락에 흩날리고〉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꽃잎과 깃털들이 허망하게 흩날리는 '세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돌 하나'처럼 초연한 상태로 침잠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작품 〈이곳에서 ... 태어나다〉에서처럼 신비한 아이의 날개옷을 입고 비상을 꿈꾸는 희망을 여전히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제 자신만을 위한 그 날개는 더 이상 불필요해져서 작품 〈파란개의 날개가 되어〉의 경우처럼 타자들을 위한 배려와 사랑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희망의 노래로 전환되거나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래적 희망을 위해서 그녀의 작품은 지금 '미확정의 얼룩들에게 말하기'를 멈추지 않고 실행하는 것에 보다 더 몰입하는 있는 중이다. ●
자화상2012.종이위에 수채,아크릴,컬러펜,깃털,거울지53cm× 72.5cm2012
자화상2013
허무의 나락에 흩날리고 .종이위에 먹,수채,아크릴,깃털,용수철,전선,철물,돌162×130cm2013
파란개의 날개가되어.종이위에 수채,먹,아크릴,깃털,전선,용수철,목재 등의 오브제129cm× 105c~
출전 /
김성호, '미확정의 얼룩들에게 말을 거는 회화', 카탈로그 서문, (이민정전, 2013. 12. 16∼12. 28, 오산중앙도서관/2014. 2.17~3,12, 북수원정보지식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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