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미술평론 일반〕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 월경하는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콜라주
김성호(미술평론가)
서구적 리얼리즘의 전통
미술에서 리얼리즘(realism, réalisme)의 전통이 서구에 있다고 전제할 때,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 혹은 한국적 리얼리즘은 미국적 리얼리즘(사실주의)로부터 유래한 것이되, 유럽적 리얼리즘(현실주의)과 혼성화된 것이라고 정의해 볼 수 있겠다.
서구 미술사에서 리얼리즘 운동의 시초로 간주되는 19세기 중반 쿠르베의 리얼리즘(réalisme)은 우리에게 간혹 사실주의(寫實主義)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현실주의(現實主義)라 할 것이다. 그가 천사를 그리지 않는 이유가 현실계에 실존하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처럼, 서구에서 리얼리즘의 이상은 현실계의 실존적 존재와 엄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고전적 리얼리즘'으로 호칭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이나 신고전주의미술이 표방했던 신화, 우화, 알레고리의 세계와 같은 비현실적 세계관은 다분히 미메시스를 통해 '회화적 대상'을 재현하는데 관심을 기울였을 뿐, 실재, 실존과 같은 '리얼리즘의 본질'과는 근본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라 하겠다. 서구 미술사에서 15세기 플랑드르의 얀 반 아이크의 경우처럼 객관적 현실을 치밀하게 묘사한 류의 작품들이나 17세기 네덜란드의 세밀화 등을 리얼리즘의 시원으로 보는 경향도 있으나, 명백히 객관적 현실의 실존과 연관된 본질적 리얼리즘이란 쿠르베로부터 근원하는 것이다. 쿠르베 류의 리얼리즘에게서 극적 묘사를 통한 외적 재현은 본질이 아니다. 현실, 실재, 실존과 같은 개념이 외려 그것의 본질이라 할 것이다.
1960년대 프랑스의 누보레알리즘(nouveaux-réalisme)은 이러한 쿠르베의 현실, 실재의 미학을 새로운 조형언어로 계승하는 리얼리즘 운동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신사실주의로 번역하기 보다는 신현실주의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 이 미술운동은 미국의 팝아트처럼 현실의 이미지를 복사하거나, 소위 후기팝아트로 지칭되는 하이퍼리얼리즘 혹은 포토리얼리즘처럼 현실의 외관을 치밀하게 재현(representation)하기보다는 쿠르베의 이상을 따라 현실을 실제 오브제를 통해 제시하는 현시(presentation)의 미학을 제시한다. 이처럼 서구에서 리얼리즘의 본질을 우리는 미메시스라는 모방으로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프레젠테이션이라는 현시로 정의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예외로, 리얼리즘의 후발주자인 1960년대 후반 미국의 포토리얼리즘, 하이퍼리얼리즘이란 미메시스의 모방을 극대화한 것으로, 객관적 현실의 외관 재현에 집중한 것이지만 말이다.
ARMAN, Poubelle des Halles, 1961
Andy Warhol,Green Coca-Cola Bottles, 1962.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한국적 리얼리즘의 전개
우리의 논의에서 관건은 한국의 미술현장에서 극사실에 기반한 리얼리즘이란 유럽적 리얼리즘(현실주의)이 아닌 미국적 리얼리즘(사실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출발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 한국의 극사실주의는 미국의 팝아트와 그것의 후속인 하이퍼리얼리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눈속임(trompe l'oeil) 기법을 극대화시켜 대상과 빼어 닮은 사실주의 화풍을 유행시켰다.
물론, 당시에 극사실적 회화를 주도한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사실(寫實)'이 아닌 '사실(事實)'으로 '현실 자체' 혹은 '사실(事實)로서의 일루전'을 주장하거나 1981년에 결성한 그룹〈시각의 메시지〉의 경우, '우리는 하이퍼 아류가 아니다'라고 항변했었다. 1970년대 이들은 현실주의 미학을 드러내는 오브제(예를 들어 고영훈의 책 페이지의 콜라주, 김강용의 모래 등)를 실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1978년 결성된 그룹 '사실과 현실'은 그룹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처럼 '그저 닮아있음'으로부터 탈주하려는 당시 극사실주의 화단의 부단한 노력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그런 차원에서 김복영은 한국의 극사실주의 회화에 대한 현실주의 접목과 발전적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새로운 사실주의' 혹은 '물상회화(物象繪畵)'라는 개념으로 그것의 의미를 규정한 바 있다. 또한 윤진섭은 냉엄한 극사실주의에 집중한 60년대의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과 달리 1970년대 한국의 극사실주의에는 '정감적 접근'이라는 차별화된 속성이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적 면모와 이론적 성찰이 있었지만, 그들의 작업이 실제로 유럽적 리얼리즘(현실주의)의 미학을 지향하고 현실과의 다차원적 모색을 온전히 혹은 성공적으로 실천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 극사실주의는 80년대 민중미술의 도래로 운동 차원의 미술이 소멸하면서, 2000년대 재부상하기 전까지 매우 짧은 기간 동안만 존재했을 뿐 아니라, 현실주의적 인식의 접목과 실재의 존재론과 같은 주제의 차원이기 보다는 외려 이미지의 콜라주를 통해서 '초현실주의적' 방식을 원용하는 형식주의에 일정부분 매몰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국전의 재현적 사실주의로부터 크게 탈피하지 못한 일련의 작품들도 함께 생산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당시에 대한 극사실주의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한국의 70년대 극사실주의를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한국의 리얼리즘이라는 것이 사실주의에 기반한 미국적 리얼리즘으로부터 출발했으나 끊임없이 현실주의라는 유럽적 리얼리즘을 접목하려고 시도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즉 한국적 리얼리즘이란 외연적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채,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적 상황 속에서 현실적 인식이 콜라주처럼 만나 형성한 것이라 할 것이다.
고영훈, 코카콜라, 캔버스 위에 유화 161x130cm, 1974
한국적 리얼리즘의 오늘
서구 현대미술사를 추상주의, 리얼리즘, 표현주의와 같은 세 흐름으로 파악하고, 오늘의 현대미술을 다원주의라고 전제할 때, 우리의 논의인 '오늘의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은 이러한 세 흐름의 계열 속에서 찾아져야만 할 것이다. 추상주의를 논외로 하고 필자가 만든 다음의 표에서 우리는 표현주의와 연동하는 리얼리즘의 계열을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표) 현대미술사 속 리얼리즘의 계열
도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구, 특히 유럽에서 리얼리즘 계보란 회화적 대상의 재현이 관건이 아니라 회화적 대상의 실재, 현실이 주요한 관심사였다. 즉 유럽의 리얼리즘이 현실주의였던 반면 미국이나 구소련의 리얼리즘은 대상의 재현에 집중한 사실주의라 할 것이다. 물론 미국에는 네오다다와 같은 물질적 요소를 강조한 현실주의적 입장 또한 있었다고 하지만, 다분히 유럽의 영향권 아래 잉태한 것이라고 한다면, 미국 자생적인 리얼리즘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재현과 관계하는 리얼리즘의 전통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면 독일, 프랑스, 영국의 리얼리즘의 경우에서는, 표현주의 유형과 연동하는 리얼리즘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듯이, 유럽적 전통에서 외연적 형식 너머 주제의식은 현실적(혹은 물질적) 리얼리즘을 정초하는데 주요한 요소임을 파악할 수 있겠다.
이러한 차원에서 유럽적 전통의 시각으로,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의 가능성을 정리해볼 때, 우리는 그것을 1970년대의 극사실주의 회화와 2000년대 이후 다시 활성화되고 있는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를 고려하기 보다는 외려 1980년대의 민중미술을 적합한 것으로 꼽을 수 있겠다. 1980년대의 형상성은 재현, 모방론에 근원적 본질이 있다고 하기 보다는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 아니라 표현주의와 종종 연동되는 만큼, 리얼리즘의 내용 및 주제의식과 더불어 실재, 현실의 문제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미술현장에서 1970년대 극사실회화나 오늘날의 하이퍼리얼리즘 회화가 한국적 버전의 리얼리즘으로 정초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가?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콜라주적 결합'이 극사실에 기반한 한국적 리얼리즘의 특성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으로 명확히 정초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은 듯하다. 특히 회화적 대상으로서의 일상의 단편적 이미지, 중앙집중식 구도, 클로즈업 화면,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눈속임기법의 극단을 지향하는 회화적 기술 외에 또 다른 차원에 대한 탈주적 노력 없이 그 수준과 양상에 지속적으로 머무른다면, 오늘날의 한국의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에서 리얼리즘의 미학을 찾는 일이란 요원할 수 있다. 본질적 리얼리즘 탐구에 있어 관건은 재현이기 보다는 현실이며, 형식이기 보다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는 오늘날의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의 전체적 양상에서 공유지점을 탐색하는 연구로는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의 위상을 추출되는 데 있어 실패의 확률이 크다고 본다. 오늘날의 하이퍼리얼리즘에서는 재현이라는 리얼리즘의 한 차원이 지나치게 편중된 경향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는 전체연구에서는 간과되기 쉬운 해당 개별 작가들의 미시적이고 비평적인 연구들에 대한 축적이 선결될 때, 비로소 이러한 연구들이 재통합됨으로써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에 관한 일련의 가시적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출전/
김성호,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 월경하는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콜라주, 가나콜로키움-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은 가능한가, 가나아트센터 자료집, 2014.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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