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주호 / 평범함에서 찾는 즐거움

정영숙

조각가 김주호 

평범함에서 찾는 즐거움


세상 표정을 그만의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독창적인 관찰력··· 우리의 삶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 단순화하는 작업 돋보여


정영숙 문화예술학 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갤러리세인 대표


김주호(66)는 인체조각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하다.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테라코타(질구이), 철판, 돌, 나무 등 다양하다. 그가 조각한 인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소탈하고 친근하다. 가까운 이웃을 만나는 것 같다. 198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4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다. 미술관과 갤러리 기획전과 단체전에도 꾸준히 초대받았고, 국립현대미술관·대전시립미술관·국립민속박물관·김포국제조각공원 등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인천시 강화읍내에서 내가면 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10여 분 달리다 보니 고려저수지를 지나서 김 작가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작업실과 가까운 고려산 주변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강화도 고인돌이 곳곳에 널려 있다. 삼국시대에 지어졌다는 고찰 적석사의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몰 광경은 ‘강화 8경’의 하나로 꼽을 만큼 아름답다. 조각가의 작업실은 대문부터가 특별하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인체 조각상이 긴 팔로 문을 열러 방문객을 반겨주는 모습을 하고 있다. 뜰에도 돌과 나무로 만든 조각 작품이 곳곳에 있다. 작품마다 해학과 위트와 유머가 넘친다. 작업실 구조는 가마가 있는 공간, 흙 작업을 하는 공간, 크지 않는 석조각과 나무 조각을 제작하는 공간으로 나뉜다. 그가 신작 작업을 하고 있는 공간에는 이전 전시회에서 보았던 작품도 함께 있다.


<조오타!>,63(높이)x27x18cm, 질구이 재벌, 2012.


돋보기로 시대정신을 읽다


2007년 9회 개인전 <흐뭇한 풍경> 주제로 전시했던 작품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한 작품이 머리 위로 두 손을 올려 하트모양을 만들어 ‘사랑해요’라고 인사한다. 2007년 호주에서 시작된 ‘자유롭게 껴안기 (FREE HUGS)' 캠페인이 한국에 상륙해 하트모양을 한 ’사랑해요‘인사법이 유행하던 시절이다. 그해에 마침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대선 후보들도 유세과정에 이 동작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그런 시대상황을 조각에 담은 것이다. 그의 작가노트에는 이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남겼다. ‘사랑해요’에 대해서는 “머리 위 손을 맞닿게 하트표시를 하는 장면을 신문, TV, 길거리에서 보게 된다. 가장 큰 사랑표시, 이런 제스처는 우리나라만 있지 싶다”고 적었다. ‘FREE HUGS’ 작품에 대해서는 “그냥 안아준다! 인간의 본능이 안기고 싶은 것이 있나 보다. 안아줄 사람이 주말 인사동에 가면 팻말 들고 있다. 순수한 감성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광경으로 보인다.”라고 써놓았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을 예리한 관찰력을 통해 경쾌하게 작품에 옮겨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한다. 그 관찰력은 어린 시절의 별난 호기심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것은 초등학교 시절에 처음 보았다는 돋보기라는 신기한 물건과 연관이 있다. 볼록렌즈로 사물을 보면 아주 작은 것도 크게 보이는데, 어린 김주호에게 돋보기를 통해 본 세상은 마술 같았다고 한다. 이제 그 돋보기가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와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자 오브제가 됐다. 2004년 8회 개인전 <세상 들여다보기>, 2009년 12회 개인전 <삶의 돋보기>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작품 중에 테라코타 <탐구학습>에는 한쪽 눈에 돋보기를 대고 관찰하는 표정이 익살스럽게 표현돼 있다. 철판으로 제작한 <세상을 보는 창>은 단순화된 인체와 변형된 돋보기가 기존 테라코타 작업에서 볼 수 없었던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그의 테라코타 작업이, 안정된 크기로 따뜻한 채색이 주는 느낌과 작가가 의도한 표정을 다양하게 담아내는 데 제격이었다면, 철 작업은 움직이는 동작을 더욱 자유롭게 조각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2013년 개인전 팸플릿에는 테라코타 작업과 철판 작업에 대한 콘셉트가 담겨 있다. 서남미술관 개인전에서 철판작품을 몇 점 내보였다. 산소, LPG로 절단하고 야크 용접하는 초보적인 기법이었다. 그러다 프라즈마 절단과 알곤 용접을 이용하게 되며 형태와 크기가 많이 자유로워졌다. 입체를 다룸에 있어 재료의 특성에 맞는 형태연구는 창작의 새로운 즐거움이다. 재료와 형태가 맞아 떨어질 때의 기막힌 희열은 힘든 작업과정을 잊게 해 준다. 돌의 육중한 무게감은 침묵의 형상을 이끌어 낸다. 흙의 질구이는 따스한 체온의 인간미를 만나게 된다. 철판의 공간에 대한 과감함은 돌이나 흙, 나무가 갖지 못한 재료의 특성이다. 그래서인가 형태의 단위체로 제한되었던 형상이 철판으로 인하여 신나게 뻗어나가게 된다.”

작가는 화순 운주사의 불상이야기를 했다. 운주사의 불상은 여느 사찰의 불상과는 달리 신체의 비례가 맞지 않아 세련된 석공의 솜씨가 아닌 듯이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는 서구 조각에서 보이는 조형적인 스타일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조선시대의 달항아리 백자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좌우·상하 대칭이 맞지 않고 채색도 하지 않은 하얀 색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1    2  

1<세상을 보는 창>, 70.5(높이)x40x20cm, 철판, 2009.

2<푸하하>, 67(높이)x27x18cm, 질구이 삼벌, 2009.


역사와 문화가 녹아든 조각


이렇듯 김 작가는 남다른 접근법을 통해 우리 문화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궁금증이 작품 활동의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의 조형작가로 활동하는 그의 작가정신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후 운주사의 미륵불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았다. 그곳의 불상들은 정형적이지 않고 지극히 단순하다. 표정들은 친근하고 해학적이다. 이와 같은 운주사 불상의 느낌이 그의 작품과 그대로 오버랩된다. 그의 인체 조각은 팔등신이 아닌 삼등신이다. 얼굴을 크게 만들어 의도한 표정을 강조한다. 2009년 작품 <철조요염보살사유입상>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감한 변화와 리듬감이 엿보인다. 간결한 표정을 가진 삼등신의 여성상에는 해학미가 넘친다. <나는 지금> <생생관계> 등 회화와 나무 조각 <나를 찾다>에서도 자화상을 미륵의 모습으로 대체했다. 이런 느낌이 돌조각에는 어떻게 표현돼 있을지 궁금해 마당에 있는 화강석 조각들을 살펴보았다. <가슴을 친다> <내 속으로>등의 작품이 눈에 띈다. 작가의 일상은 어떨까. 김작가는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40대에 이르러 교단을 떠나 강화도에 정착해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전업작가이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도시인들이 출퇴근 하는 것처럼 항상 같은 시간에 작업을 한다. 간단한 먹거리는 농사를 지어서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화도에서 정착하게 된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이곳은 단군 역사의 발원지이자,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이곳에서 많이 일어났어요. 기독교가 처음 들어온 곳이고, 남북 분단을 실감할 수있는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자연친화적 환경이 좋아 이곳에 머무르게 됐어요.” 누구보다 강화도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작업실 입구에 놓인 호랑이 얼굴에 사람의 몸을 조각한 특이한 조각상이 눈에 띈다. 최근에 나무로 제작한 <만남, 백두산 호랑이와 인왕산 호랑이>라는 작품이다. 백령도에 전시하기로 계획된 작품이었는데 갑자기 전시가 취소돼 작업실에 남게 됐다며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백두산 호랑이와 인왕산 호랑이가 같이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서로 어색한 모습이지요. 두 호랑이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지요. 강화도에서 느낄 수 있는 남북의 분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작품입니다. 가운데 빈 공간은 관람객이 앉을 수 있게 해 둘의 관계를 화해 분위기로 반전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관람객과 서로 얘기하고 참여하는 현재진행형 작품이 되는 셈이지요.”

     

1

1작업실 마당에 놓인 <만남, 백두산호랑이와 인왕산호랑이>.

2<함께라면-3>, 110x114x8cm, 질구이 후 왕겨그을음, 2013.


남북분단 현실을 호랑이로 표현


인터뷰할 때 작가는 신중하고 점잖았지만, 작품을 설명할 때는 작품의 주인공처럼 순수하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나타났다. 직접 돋보기로 작품을 들여다보고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제스처가 마치 어린 아이의 천진스러운 모습 그대로다. 그의 인체조각은 작가의 따뜻한 눈에 비친 세상 풍경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2001년에는 그의 작품이 강화군청 청사에도 들어갔다. 주민들의 출입이 많은 민원봉사실이다. 이곳에서 그의 작품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주민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주민들도 그의 예술작품을 마치 가까운 이웃을 만나듯 친숙하게 대한다고 한다. 김 작가는 “관람객과 작가가 너무 동떨어져 있어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에게서는 예술가의 권위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젊은 작가들과 함께 전시하는 기획전에도 내용만 맞으면 서슴없이 참여한다. 작품의 성향과 어울리면 전시 공간도 따지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다. 관람객이 예술작품을 가장 쉽게 즐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의 손으로 빚어낸 조각상은 운주사의 미륵처럼 고졸하고 순박하다. 전통적인 탈과 장승들처럼 해학과 위트가 넘친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통적 형식과 내용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정서와 문화에서 찾아낸 그의 인물상들은 서양의 조각이나 추상조각의 계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조형성을 획득했다. 그는 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드로잉을 통해 회화작업도 꾸준히 지속해온다. 앞으로 계획은 철판조각의 율동감에서 착안된 유연한 형태의 변주와 연속동작을 드로잉영상으로 담을 예정이다.


월간중앙12월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