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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루 엘 엔, 낙타를 삼킨 모래시계 전 / 미지의 시간으로 떠나는 여행 이야기

이선영

미지의 시간으로 떠나는 여행 이야기

  

탈루 엘.엔.(Tallur L.N.) 전 (5. 7--6. 28,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낙타를 삼킨 모래시계 전 (5. 22—8. 16, 화이트블럭 아트센터)

  

이선영(미술평론가)

  

인도의 탈루 엘 엔의 개인전과 한국의 임승천, 유현미의 2인 전 작품들은 보는 것을 넘어서 읽어야 하는 텍스트로 제시된다. 모더니즘에서 시각성은 물화되어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볼 게 없는 평면으로 환원되었다면, 모더니즘에서 억압된 서사의 복귀는 시간 여행을 이끈다. 탈루 엘 엔은 전통과 현대의 관계에 대해, 임승천은 신화적인 거대 서사에 대해, 유현미는 소설같은 이야기를 조각, 설치, 영상 등으로 풀어낸다. 탈루 엘 엔의 서사적 조각에서 전통과 현대는 충돌에 가까운 폭력적인 단절을 보여주는데, 단절 역시 연속의 또 다른 국면이다. 필름처럼 길게 늘어 뜨려진 날카로운 쇠 띠를 설치하여 관객이 다가가는 시점에 따라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는 탈루 엘 엔, 낙타라는 자전적 캐릭터가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배의 여정과 함께하는 임승천, 모래시계로 대변되는 시간의 이미지를 시적으로 보여주는 유현미의 작품에 선명한 것은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이다. 서사를 이끄는 시간적 요소란 무엇인가. 그것은 A.A 멘딜로우가 [시간과 소설]에서 말했듯이, ‘작가의 주제 선택과 처리, 서술 내용의 요소를 작가가 언어화하고 배열하는 방식, 삶의 진행과 의미에 대한 작가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 구사법’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두 전시에서 들려주는 세 작가의 이야기는 현대문명에 대한 풍자부터 운명적 비극, 그리고 형이상학적 사색까지 아우른다. 주로 공간적인 형식에 기대는 조형예술은 본격적인 시간예술과 달리 띄엄띄엄 말해질 수밖에 없다. 관객이 간격들을 채워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므로, 읽는 텍스트는 쓰는 텍스트로 전환되고, 그러면서 수동적 소비는 적극적 생산으로 고양된다. 현대소설이 전통적 서사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 때, 사진을 비롯한 동시대 시각예술의 패러다임을 빌어 왔던 것처럼, 순수시각성을 위해 내용을 점차 제거시켜 공허해진 현대미술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풍부한 서사의 전통을 참조한다. 단절적 현대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전통을 끌어들이는 탈루 엘 엔,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 같은 임승천, 이 전시를 계기로 소설집을 출간하는 유현미는 조형예술이라는 공간적 구조에 모세혈관 같은 시간의 그물망을 부여한다. 그들은 매체의 한계에 충실 하라는 모더니즘의 언명을 무시하고,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들의 작품은 영화처럼 ‘한 시간대의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의 공간으로 지나가는 무제한적인 서사’(데이비드 노먼 로도윅)를 구사한다. 

 

탈루 엘 엔, 설치 전경.

 

탈루 엘 엔, 설치 전경






탈루 엘 엔(Tallur L.N.)의 ‘임계점(Threshold)’ 전에서 전시부제와 같은 제목의 작품은 관객이 다가가면 날카로운 금속성 굉음과 함께 톱니가 갈려지는 기계이다. 지하 전시장 여기저기에 가공된(될) 날선 쇠 띠들이 거치대에 걸쳐있어서 위협적이고 섬뜩한 느낌이다. 극적인 변형의 계기를 지시하는 임계점에는 긴장감이 존재한다.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이전 사회와의 급격한 단절과 긴장에 대해, ‘모든 단단한 것은 공기 중으로 사라지며, 모든 거룩한 것은 더럽혀진다’고 한 마르크스의 예견처럼, 작품 [임계점]은 각 전통사회에서 근대로의 변화는 폭력적으로 다가옴을 알려준다.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과 사회, 기업과 국가는 이처럼 컨베이어 벨트 위에 대기하면서 끝없이 톱니를 갈아대야 한다. 그의 작품은 선적 진보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단절과 극복의 역사를 말한다.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는 한국만큼이나 인도도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면서 급격한 근대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음을 체감한다. 탈루 엘 엔 자신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인도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위상이 커진 인도 현대미술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가란 지배사회가 강요하는 단절의 역사와 단절을 고하는 존재이다. 성장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그것이 멈춰서는 안된다는 것이기에, 과거를 잘라내는 톱날은 계속해서 생산되고 소비된다. 그 옆의 작품 [Tongue Twister]에서 벌린 입모양의 돌조각에 걸쳐있는 단도는 혀가 꼬이는 것 같은 말의 부적절함이나 말하기 힘듦을 은유한다. 말하기라는 구어적 전통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다. 목조각상 같지만 돌조각상이고, 전통적인 도상같지만 조금씩 변화시킨 작품들은 자연과 더불어 급격히 사라지는 전통을 옛스러운 방식으로 복구하려는 ‘가공된 역사’를 표현한다. 도축용 칼과 사람의 머리를 결합시킨 작품은 자연에게 행해진 일들이 인간에게도 되돌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를 걸머지고 있는 코끼리나 여신상에서는 근대가 자연과 전통에 가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신성한 조상의 광배같은 형태가 실은 몸통을 반쪽내고 있는 톱니라는 것, 여기저기 구멍 나거나 너덜거리는 껍데기로만 남은 조상들은 전통 및 인간의 현재 상황을 풍자한다. 공격적인 단절감을 주는 금속성 기구들과 충돌하는 전통적인 소재들은 기호와 의미, 기표와 기의가 유리되어 있는 알레고리의 특성을 가진다. 

 

 




 

 

‘낙타를 삼킨 모래시계’ 전에서 ‘낙타’는 임승천의 서사에 등장하는 분신같은 주인공이고, ‘모래시계’는 유현미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소재다. 사막 같은 세상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삶에서 낙타와 모래시계의 조합은 시적으로 다가온다. 사막에서의 유랑은 미로 속에서의 방황을 떠올리며, 모래시계 같은 반복과 순환을 야기할 것이다. 임승천의 작품에서 출항에서 침몰까지의 여정에 오른 ‘드림 쉽’, 그 배가 오아시스같은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과정은디스토피아적이다. 유현미의 작품에서 모래시계의 유리는 깨져 있지만, 그것은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사방으로 흐른다’는 깨달음과 연결된다. 유현미의 단편소설 [모래시계]는 ‘공간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시간이 무한히 퍼져나가는 그곳에서는 모래시계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시간의 공간화는 카오스로 다가온다. 

 

해일, 선상반란, 전염병 등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끝없이 벌어지는 임승천의 서사, 그리고 삶에 있어서나 창작에 있어서나 혼돈을 끌어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체념적 인식이 있는 유현미의 작품에서, 시간(서사)은 불확정적이고 미지를 향해 열려있다. 작품 속 조트로프(Zoetrope)(임승천)와 모래시계(유현미)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되돌아올 뿐인 동일성의 원리는 거부된다. 전시장에는 이미지만큼이나 텍스트들이 많이 깔려 있다. 임승천은 아예 진열장을 짜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처럼 도면과 텍스트들을 배치했고, 유현미는 영상 작품 옆에 영화자막처럼 또 다른 영상을 띄워 텍스트를 흘려보낸다. 상하층의 위계질서와 세 개의 뱃머리를 가진 임승천의 구조물은 일종의 모델이다. 그것은 디스토피아 영화처럼 흘러가는 거대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활약상이 펼쳐지는 무대세트이다. 유현미는 숫자들과 테이블, 모래시계 등으로 연출된 공간이나 빈 화면에서 빠르게 숫자들을 통해 시간에 대한 단상을 보여준다. 이들 작품에서 서사는 부차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미지가 서사의 주요 대목들을 가시화한다. 

 

 




 

 

눈이 셋 달린 주인공이 탄 머리 셋 달린 배가 등장하는 임승천의 작품이 장대한 신화라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다면, 고화질 출력물과 깔끔한 액자같은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유현미의 작품은 현대적이다. 임승천의 작품이 개인과 집단의 운명이 긴밀하게 연결된 장편 서사시라면, 유현미의 작품은 ‘나’라는 근대적 자아의 독백같은 서사로 채워진 단편소설이다. 임승천의 낙타는 유년기, 중장년기, 노년기의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주인공의 이야기이자 그가 속한 어떤 사회의 신화적 역사가 흘러간다. 유현미의 경우 작가의 분신에 해당하는 주인공은 M이라는 여인이며, 그녀의 독백은 읽어버린 시간을 찾는 자유연상의 어법으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시간의 축은 매우 다양하다. 시간은 모래시계처럼 순환하고, 전광석화처럼 스쳐 지나가는가 하면, 여러 심지를 가진 촛불처럼 넘실대며 흐른다. 둘 다 조각과 출신이지만 임승천이 형상조각에 바탕 한 서사를 구사한다면, 유현미는 조각, 회화, 설치, 사진, 영상을 한데 합쳐 전방위적으로 서사의 시공간을 구축한다. 

 

임승천의 고고학적 연출에서는 유사 이래의 계층적 구조와 갈등이 집약되어 있으며, 이를 관찰하고 익명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주인공은 어떤 집단에도 속하기 힘든 타자로 나타난다. 이 괴물같은 주인공은 바늘이 되어 각기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면서 서사를 이끈다. 유현미는 3차원 공간에 상징적 입체를 배치하고 여기에 색을 칠한 후 사진을 찍곤 했는데, 최근 작품에서는 이를 영상에 실음으로서 시간과 서사의 차원이 더 강조됐다. 영상 속에 느릿하게 움직이는 거북이나 한 귀퉁이가 깨진 채 아래로 모래를 쏟는 시계, 옆에서 흘러나오는 자막에 맞춰 연기하는 듯한 두 촛불은 압축적인 방식으로 여러 차원을 종합하고 있어, 향 후 어떤 방식으로 더 진화할지 가늠할 수 없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두 작가의 작품 분위기는 다르지만, 그들이 형식이나 차원의 융합을 이끄는 힘은 형식을 위한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라는 점, 그 내용은 실험적 형식에 힘입어 단선적 메시지로 환원되지 않는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출전; 아트 인 컬처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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