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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을 어떻게 음미할 것인가? - ‘2015 조각페스타’의 성격과 의미

윤진섭

Ⅰ. 한국조각가협회가 주최하고 국제조각페스타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15(International Sculpture Festa 2015 in Seoul]전이 5회째를 맞이하면서 대중의 곁으로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조각의 근본문제와 개념에 대한 화두를 앞세우고 전개돼 온 이 전시는 그동안 ‘세상을 조각하라(Sculpture the World, 2011)’, ‘조각은 재미있다(Sculpture is Fun, 2012)’, 조각, 꿈꾸게 하라(Sculpture, Make your Dream, 2013), '생각을 조각하라(Sculpture, Your Thinking, 2014) 등등 대중친화적인 주제를 내세워 전시를 진행해 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행사의 운영위원회가 이처럼 대중친화적인 주제를 표면에 내세우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좀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조각의, 조각에 의한, 조각을 위한’ 대중에의 접근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는 대중이 조각에 다가서는 게 아니라, 조각, 다시 말해서 조각가 스스로가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과연 어떤 곡절이 있었을까? 그 이유로는 여럿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대중의 소외현상을 들 수 있다. 특히 20세기 초엽 추상미술의 등장 이후 현대미술의 문법이 난해해지면서 예술이 대중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되고 스스로 고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의 등장이다. 예술이 처한 이 고립무원의 상태를 가리켜 일찍이 스페인의 저명한 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셋트(Ortega Y Gasset)는 ‘예술의 비인간화’라고 불렀다. 그에 의하면 대중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소수와, 현대미술에 대해 적대적이고 반감을 갖는 다수가 그것이다. 여기서 현대미술은 곧 전위미술(avant-garde art)을 지칭하거니와, 특히 후자는 현대미술에 대해 발길질을 함으로써 그에 대한 저항과 불쾌감을 표시한다. 

Ⅱ. 2015 조각페스타가 이번에 주제로 내건 ‘조각을 음미하라(Enjoy the Sculpture!)’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조각가협회를 비롯한 한국의 조각가들이 조각예술과 대중 사이의 괴리감을 극복하고 조각을 대중의 곁에 두게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명이랄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난 4년간 조각페스타가 표방하고 견지해 온 전략은 바로 이러한 모토들에 결집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조각하라!(2011)’, ‘조각은 재미있다92012)’, ‘조각, 꿈꾸게 하라!(2013)’, ‘생각을 조각하라(2014)’, ‘조각을 음미하라(2014)’와 같은 선언들은 일종의 제언이면서 동시에 권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조각이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대상)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음미의 대상이면서 ‘세상을 조각하는’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대중의 꿈을 실현시키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서의 조각은 스스로를 밝혀 예술의 향유자인 대중에게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꿈꿀 수 있는 권리를 회복시킨다.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은 한 점의 조각품을 만나면서 삶의 가치와 인생의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 예술이 지닌 이처럼 신묘한 힘은 인간이 지닌 본래의 반성적 능력에서 온다. 하나의 조각품을 보고 삶을 반추하고 꿈꿀 수 있는 권리, 즉 꿈에 대한 권능을 회복하는 이 신묘한 힘이야말로 대중의 일상적 삶을 역동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Ⅲ. 대중에게 스스로 다가가려는 적극적 의지의 발로, 혹은 조각과 대중 사이에 가로 놓인 심연을 극복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써, 조각페스타의 본전시는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게 막을 연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전관에서 펼쳐질 조각의 이 화려한 제전에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엄선된 89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한국 현대조각의 집합장’ 내지는 ‘한국 현대조각의 결집장’으로 부를 수 있는 이 전시는 비록 부스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러나 통상적인 의미의 아트페어는 아니다. 그것은 ‘견본시(見本市)’를 뜻하는 ‘시장(fair)’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명칭이 의미하듯 ‘축제(festival)’에 가깝다. 
 조각페스타는 화랑들이 집결한 ‘아트페어(art fair)’가 아니라 엄선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매개로 전시장에서 함께 만나 즐기는 시각적 축제인 것이다.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엄선된 89명 작가들의 조각품이 전시된 이 본전시는 개성이 서로 다른 작가들이 들려주는 전원교향곡이랄 수 있다. 수많은 조각품들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가득 핀 야생화들과도 같다. 관객들은 한가람미술관 1, 2, 3층 드넓은 공간에 가득 펼쳐진 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마치 초원 위에 가득 핀 야생화를 감상하듯 다채로운 조각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구상과 추상, 반추상을 망라하고, 매체적으로는 입체와 설치, 미디어 아트 그리고 회화에 가까운 부조 형태의 조각품들을 통해 관객들은 현대조각의 다양한 경향을 접하게 될 것이다. 

Ⅳ. ‘조각을 음미하라(Enjoy the Sculpture)’라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조각페스타란 용어의 의미를 잘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피상적 접촉을 넘어서 몸(body)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음미(吟味)하다’라는 한자어에서 ‘음(吟)’은 입(口)이 ‘지금(今)’ 이 순간 부단히 어떤 동작을 하는 행위를 암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어떤 맛(味)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음미하다’란 동사의 뜻을 풀이하자면, ‘입이 지금 어떤 동작을 취하는데 맛을 아직 뚜렷이 느끼지 못하는(未) 상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미적 감상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관객의 태도를 압축하고 있다.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관객의 태도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관객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가 바로 미술품을 감상할 때인데, 전시장을 그냥 휙 둘러보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자동차 정비사가 자동차 부품을 살피듯 작품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전시장에 놓인 수많은 작품을 한 눈에 둘러보는 사람은 적어도 작품을 ‘음미한다’고 할 수 없다. 음미를 가리켜 ‘지금 나의 입(口)이 어떤 일을 하는 상태’라고 풀이할 때, 그 행위의 지속성(지금, 今)은 수많은 ‘아님(未)’의 부정을 잉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의 것도 아니고, 또 지금의 것도 아니고, 또 다시 지금의 것도 아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완(未完)’의 상태를 동경한다. 
 사실, 맛의 느낌을 전제로 하는 ‘음미’란 음식에 비유해야 제격이다. 그것은 음식물을 격조 없이 게걸스럽게 먹는 탐식(貪食)이나 마구잡이로 입에 구겨넣는 폭식(暴食)과는 사뭇 다르다. 음미란 현재의 맛을 여유있게 즐기면서 천천히 곱씹는 것, 또는 그러한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 미학 용어인 미적 취미(aesthetic taste)가 바로 맛(味, taste)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사람의 입맛에 따라 각기 다르듯이, 예술품의 감상 역시 감상자의 성격이나 기호, 취향에 따라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이 생선초밥보다는 청국장찌개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어떤 관객은 구상조각보다는 간결하고 단순한 미니멀 조각을 더 좋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취향(taste)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이나 조각품이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음미하는 미적 태도(aesthetic attitude)만은 그 내용에 있어서 일정한 질과 문화적 수준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교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수많은 조각품들이 놓은 전시장을 대충 둘러보고 나가는 사람을 적어도 우리는 교양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성숙한 문화는 음미하고 완상하는 가운데 서서히 발효되는 것이다. 

Ⅴ. ‘2015 조각페스타’가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조각 교육의 장으로서의 기능이다. 사실 이제까지 한국의 미술교육은 ‘갇힌’ 교육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 초, 중, 고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예능 특별활동은 그나마 현장실습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다행이지만, 그것이 과연 수준높은 교양의 획득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단체관람을 온 학생들이 전시장에서 큰 목소리로 떠드는 것은 예사고 장난질에 작품 훼손까지 서슴치 않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아직도 문화의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한 것 같이 마음이 어둡다. 
 차제에 조각의 기술과 재료, 기법, 매체, 주제, 이미지 등이 총체적으로 한 자리에 모인 ‘2015 조각페스타’는 조각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가운데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조각에 대한 국내 유일의, 그리고 최대의 조각제전으로서 ‘2015 조각페스타’가 ‘조각을 음미하라(Enjoy the Sculpture!)’라는 주제를 내걸고 대중의 곁으로 성큼 다가간다. 대중을 기다리는 조각이 아닌, 다가가는 조각이 되기 위하여 ‘2015 조각페스타’는 축제의 광장 한 가운데로 성큼 들어서는 것이다. 


본전시 
 
 대중에게 스스로 다가가려는 적극적 의지의 발로, 혹은 조각과 대중 사이에 가로 놓은 심연을 극복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써, 조각페스타의 본전시는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게 막을 연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전관에서 펼쳐질 조각의 이 화려한 제전에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엄선된 89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한국 현대조각의 집합장’ 내지는 ‘한국 현대조각의 결집장’으로 부를 수 있는 이 전시는 바록 부스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러나 통상적인 의미의 아트페어는 아니다. 그것은 ‘견본시(見本市)’를 뜻하는 ‘시장(fair)’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명칭이 의미하듯 ‘축제(festival)’에 가깝다. 
 조각페스타는 화랑들이 집결한 ‘아트페어(art fair)’가 아니라 엄선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매개로 전시장에서 함께 만나 즐기는 시각적 축제인 것이다.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엄선된 89명 작가들의 조각품이 전시된 이 본전시는 개성이 서로 다른 작가들이 들려주는 전원교향곡이랄 수 있다. 수많은 조각품들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가득 핀 야생화들과도 같다. 관객들은 한가람미술관 1, 2, 3층 드넓은 공간에 가득 펼쳐진 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마치 초원 위에 가득 핀 야생화를 감상하듯 다채로운 조각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구상과 추상, 반추상을 망라하고, 매체적으로는 입체와 설치, 미디어 아트 그리고 회화에 가까운 부조 형태의 조각품들을 통해 관객들은 현대조각의 다양한 경향을 접하게 될 것이다. 


특별전 
 이번 ‘2015 조각페스타’에서는 대중을 위한 특별전시로 이태리 현대조각의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인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의 조각과 중국 현대조각의 단면을 소개하고자 꾸민 중국현대조각가전이 꾸며진다. 
얼마 전 서울미술관 초대전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 비 있는 피노티는 추상과 구상의 결합을 통해 신과 인간, 자연 등 거대담론의 형상화를 추구해 온 작가이다. 전쟁이 낳은 참화는 피노티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친 직접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의 의식 속에 깊숙이 각인된 심리적 트라우마 또한 피노티가 즐겨 찾는 주제이다. 
 중국현대미술전에 출품된 조각품들은 개혁 개방 이후 변모된 중국 현대조각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중국 조각계의 중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은 중국의 주류미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무관한 개인적 조형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특별전을 통해 관객들은 중국의 전통이나 설화로부터 소재를 이끌어내거나 누드의 형태미, 군인을 소재로 한 초상조각 등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일상의 즐거움 
 조각의 일상적 영역에의 침투는 바단 오늘에 나타난 현상만은 아니다. 서구의 현대미술사에서 그것은 다다(Dada) 이후 플럭서스(Fluxus)와 네오 다다(Neo-Dada), 팝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빈번히 나타난 현대미술의 한 흐름이다. 
 요셉 보이스의 유명한 말처럼 이제 대중은 누구나 예술가인 시대에 들어 섰다. 특히 디지털에 의한 신패러다임의 전개 이래 관객은 모바일 폰으로 대변되는 ‘손끝의 창조(Creation from the Fingertips)’를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디카나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촬영하고 이를 다시 가공하여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게시하는 관객의 행위는 예술의 대중화 내지는 예술의 확장을 꾀하는 새로운 바람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광장에 놓이게 될 김영원, 김우진, 김정희, 김태수, 박민섭, 박성하, 양태근, 이정수, 정육장, 조덕래의 작품들은 관객에게는 감상의 대상이자 하나의 피사체면서 동시에 디지털 패러다임 하에서 나타난 새로운 맥락의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아리랑 어워드 
 최근 몇 년간 한국 미술계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작가들의 레지던시 참여이다. 이는 기존의 화랑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탈(脫)상업화를 추구하며 등장한 대안공간의 활성화 현상과 맞물린다. 
 이른바 화단의 전위세력으로 미술에 있어서 형식과 매체 실험에 주력하고 있는 대안공간과 레지던시의 대다수 참여작가들은 장식성이 두드러진 작품 경향과 구분되는 것이 특징이다. 
 아리랑 어워드는 국내의 조각가들이 모여 조각에 대해 논의하고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은 마크 페로(Mark Ferroud(France), 권석만, 김승환, 성낙중의 작품을 통해 국내 레지던시 활동 양상을 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15서울국제조각페스타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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