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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삼 평론

박영택

이재삼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자연(나무)을 주목해서 그렸다. 그 특정한 소재인 자연/타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익숙한 세계에 구멍을 내고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일상에서 매번 접하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 어느 날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분명 자신의 내부에서 감지하는, 더구나 욕망하는 힘에 의해 그 대상을 다시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집요하게 그렸다. 그는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그 현재라는 시제에 만난 것, 어떤 것이 이 순간 바로 내 앞에 있는 현전의 체험에서 문득 낯선 느낌을 받는다.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옴을 느낀 것이다.




달빛(Dalbit-Moonshine), 캔버스에 목탄, 291×388cm, 2010


이재삼의 그림은 외양으로는 영락없는 극사실의 구상회화다. 그런데 단색으로만 이루어진, 목탄의 입자에 의해 응고된 이미지는 사실적이면서도 어딘지 초현실적이다. 목탄 가루들이 엉겨 붙어 이룬 이 검은 세계는 침침하고 음습하며 더없이 깊다. 작가는 그 검음, 깊음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이 현실계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다. 그는 그 안에 칩거하며 자신의 예술세계의 고고함을 드러낸다. 이 결벽과 자존성이 그의 그림을 지탱하는 축이다. 


기능과 의미가 지워진 자리에는 기묘하고 낯선 이미지만 남게 된다. 이런 생경한 이미지로부터 사물은 비로소 의미의 대상이 아닌 '의미의 주체'가 된다. 알려진 모든 선입견과 편견이 지워진 지점에서의 사물과의 우연한 만남, 맞닥뜨림, 그리고 이로부터 또 다른 가능한 세계와 대면하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 그것은 분명 여기, 이곳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이곳에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있는 묘한 풍경이다. 있으면서 부재한, '없지 않은' 그런 풍경, 세계이다.


고독하고 자존적인 이 대상들은 실은 작가 자신의 은유다. 폭포(물)와 달은 음기를 상징하고 대나무나 매화는 선비를 표상하는 기호들인데 이 이미지들이 검은 색, 밤을 배경으로 홀연히 출현한다. 적막하고 적요한 밤에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사물의 피부는 익숙한 대상을 무척 낯설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로인해 식물의 피부에 얹혀 지는 그림자를 매력적으로 포착해 그린다. 그것은 또한 현실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서식하는 존재성으로 다가온다.

이재삼은 목탄으로 나무를 그린다. 작가는 겹쳐 그리는 독특한 방식에 의해 그만의 목탄의 깊이를 얻는다. 목탄은 나무를 태운 것이고 그 목탄으로 인해 나무는 다시 환생한다. 자연이 자연을 환생시키고 죽은 자연이 살아있는 자연을 흉내 낸다. 작가는 겹쳐 그리는 독특한 방식에 의해 그만의 목탄의 깊이를 얻는다. 목탄은 나무를 태운 것이고 그 목탄으로 인해 나무는 다시 환생한다. 자연이 자연을 환생시키고 죽은 자연이 살아있는 자연을 흉내 낸다. 작가가 그린 그림은 대나무나 매화, 물이라는 대상의 재현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달빛, 음기를 가득 품고 있는 자연계의 비의적인 상황, 그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기운으로 자욱한 긴장의 순간의 시각화하려는 시도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느껴지는 비의적인 분위기, 묘한 '아우라'야말로 이재삼이 보는 한국의 풍경에서 풍기는 것이고 이 땅의 식물이고 나무고 물의 존재성에서 그가 보고 읽고 느낀 것이다. 이른바 한국적이라고 부를 만한 기운이나 냄새, 느낌의 형상화다. (미술평론 일부발췌)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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